
Paperis 아티클
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 통화량인가, 기대인가, 공급망인가
물가는 왜 오르는가 — 네 학파가 그린 네 장의 지도, 그리고 단일 원인은 없다는 정직한 현주소

Paperis 아티클
물가는 왜 오르는가 — 네 학파가 그린 네 장의 지도, 그리고 단일 원인은 없다는 정직한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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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범인을 찾는다. 누가 돈을 너무 많이 풀었나? 임금이 올라서? 기름값 때문에? 아니면 그저 사람들이 "어차피 오를 텐데" 하며 미리 가격을 올린 걸까?
흥미로운 건, 경제학자들도 이 질문에 한목소리로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결국 돈을 너무 많이 풀었기 때문"이라 하고, 어떤 이는 "물가와 실업은 맞교환"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사람들이 오를 거라 믿으면 진짜로 오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2020년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두고는 "팬데믹과 에너지 충격"이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이 글은 그 충돌하는 통념들을 하나의 지도 위에 펼쳐 본다. 화폐수량설, 필립스곡선, 기대, 공급충격 — 네 학파가 그린 서로 다른 지도를. 각 지도가 무엇을 잘 설명하고 어디서 길을 잃는지를 따라가면, 인플레이션이 왜 단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되지 않는지가 보인다. 한 가지 미리 밝혀 둘 것이 있다. 여기 인용하는 거의 모든 논문은 동료심사 전 프리프린트(arXiv)다. 그래서 어느 한 줄도 최종 결론으로 읽으면 안 된다 — 이 불확실성 자체가 이 이야기의 일부다.
가장 오래되고 직관적인 설명은 이것이다. 시중에 도는 돈이 늘면 같은 물건을 더 많은 돈이 좇게 되고, 그래서 가격이 오른다. 통화량(money supply)이 인플레이션의 뿌리라는 화폐수량설이다.
데이터는 이 직관에 부분적으로 손을 들어 준다. 미국과 유로존 자료를 분위(quantile)별로 쪼개 본 한 연구는 통화 증가율 분포의 상단(높은 증가율)이 인플레이션 분포에 유의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통화 증가율의 하단·중앙값은 영향이 미미했다 — 다만 이 분포적 영향의 크기 자체가 미국·유로존 모두에서 시기에 따라 변한다 (arXiv:2308.05486). 돈을 적당히 풀 때는 별일 없다가 과하게 풀 때 연결이 살아난다는, 비대칭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이 지도는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가나의 사례를 1970년대부터 추적한 연구는 통화 증가의 인플레이션 탄력성이 계속 하락해 최종 시점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됐다고 보고한다 — 이 논문 자체는 그 사실을 2002년 인플레이션 타기팅 도입의 정당화 근거로 삼는다 (arXiv:1805.11562). 한발 더 나아간 견해도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와 인플레이션 목표를 동시에 운용하면, 통화량은 정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가 되어 내생적(endogenous)으로 움직이며, 이 경우 완전한 신뢰성 아래에서는 물가가 피셔 방정식만으로 설명된다는 분석이다. 다만 같은 연구는, 유한 지평에서는 통화량이 언젠가 다시 외생이 되므로 경제주체가 오늘부터 통화 총량 통계를 살펴 인플레이션 전망을 만들 유인이 생긴다는 단서도 함께 달았다 (arXiv:2301.11207). 통화량은 인플레이션의 한 단면일 뿐, 전부는 아니라는 신호다.
두 번째 지도는 노동시장을 본다. 경제가 과열되어 실업이 낮아지면 임금과 물가가 오르고, 침체가 오면 물가 압력이 가라앉는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이 역의 관계가 필립스곡선이다. 일본의 장기 자료에서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을 모두 노동력 변화율의 함수로 놓았을 때 가 통계적으로 안정되게(R²=0.68) 확인됐다 ().
문제는 이 곡선이 어디서나, 언제나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41개국을 1980~2016년에 걸쳐 본 일련의 연구들은 일관된 균열을 발견했다. 기대를 반영한(expectations-augmented) 필립스곡선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평온기에 성립하지만, 신흥국·프런티어 시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침체기에는 선진국에서조차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 그리고 그 자리를 과거 인플레이션과 기대(전향적 요소)가 뚜렷이 크게 메워, 침체기에는 시장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에 더 민감해진다 (arXiv:2511.22785, arXiv:2511.22786, arXiv:2512.01697). 필립스곡선은 경제 환경이 평온할 때만 매끄럽게 작동하는, 조건부 지도인 셈이다.
곡선의 모양 자체도 논쟁거리다. 미국 팬데믹 전후 자료를 본 연구는 인플레이션 동학이 곡선의 구조적 기울기("뼈대")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극단적 노동시장 과열에서 비선형성("형태")이 활성화된 것인지를 가르려 했다 (arXiv:2506.14030). 인도 자료에 기계학습을 적용한 연구는 곡선이 강하게 비선형이라 보고하면서, 흥미롭게도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을 가장 강하게 끌고 가는 것은 기대, 그다음이 과거 인플레이션과 산출갭이며 공급충격(강우 제외)은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arXiv:2504.05350). 반면 또 다른 신경망 기반 필립스곡선 연구는 2021년 인플레이션 급등을 2020년 말부터 시작된 큰 양(+)의 산출갭 탓으로 돌렸다 (arXiv:2202.04146). 나라와 시기가 다르긴 하지만, 어떤 변수가 주역인지에 대해 연구마다 답이 갈리는 셈이다.
왜 곡선이 평평해졌을까. 이중노동시장 모형을 쓴 한 연구는 노동자 협상력, 2차 노동시장에서 임금에 대한 노동공급 탄력성, 노동력 구성의 변화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arXiv:2103.06482). 한편 곡선을 실업이 아니라 노동시장 긴장도(tightness)로 다시 쓰면 베버리지곡선이 이동해도 필립스곡선은 이동하지 않는다는 '베버리지 필립스곡선' 같은 재구성 시도도 있다 (arXiv:2401.12475). 지도가 흐려지면, 더 나은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 잠재변수로 곡선을 재정식화한 예측 연구도 그중 하나다 (arXiv:2601.11601).
세 번째 지도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기업과 가계가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 믿으면, 그 믿음에 맞춰 가격을 올리고 임금을 요구한다. 그래서 기대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만든다. 앞서 본 인도 연구에서 기대가 1순위 동인이었던 것(arXiv:2504.05350)도, 20개 선진국을 본 기계학습 연구가 기대가 인플레이션 결과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결론지은 것(다만 그 중요도는 최근 10년 사이 다소 약해졌다고 덧붙인다, arXiv:2208.14653)도 같은 맥락이다.
기대를 다루는 가장 매력적인 발견 중 하나는 '주의(attention)'의 문턱이다. 한 연구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기울이는 주의가 인플레이션율 약 4% 부근에서 급변해, 이 문턱을 넘으면 주의가 두 배로 뛴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주의가 높을 때는 공급충격이 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며, 2021년 사람들의 주의 증가가 이후 공급발 인플레이션의 절반을 설명한다고 분석했다 (arXiv:2308.09480). 평소 짧게 끝났을 충격이,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하면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의가 낮으면 기대 관리가 어려워져 '주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arXiv:2105.05297).
기대는 무엇으로 형성될까. 미국 가계 자료를 본 연구는 인플레이션·통화정책 뉴스 노출이 기대를 설명하며, 특히 1983년 이후 "물가가 오른다"는 뉴스와 "통화정책이 완화된다"는 뉴스가 그 반대 방향 뉴스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비대칭이 있다고 보고했다 (arXiv:2009.11557). 흥미롭게도, 인플레이션 급등을 학습하지 못한 대형언어모델(GPT)로 영국 가계조사를 흉내 내 보니 단기 총량 전망과 공식 통계를 따라갔고, 소득·주거형태·계층별 인식의 규칙성까지 재현하면서 사람처럼 식품 인플레이션 정보에 특히 민감했다. 다만 일관된 소비자물가 모형은 갖지 못했다 (arXiv:2512.14306). 그리고 기대가 잘 닻을 내리려면(anchoring) 중앙은행의 신뢰성이 필요하며, 신뢰성이 전혀 없으면 인플레이션 동학이 불안정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arXiv:2012.02662).
네 번째 지도는 2020년 이후 가장 주목받았다. 팬데믹 봉쇄,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부른 에너지 가격 급등 — 이런 공급 측 충격이 비용을 밀어 올려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행위자기반모형(Mark-0)으로 2020~2023년을 재현한 한 연구는 팬데믹발 인플레이션을 생산·소비 충격, 공급망 충격, 에너지 가격 충격 셋으로 나누어 넣고, 수요견인·비용상승·이윤주도 같은 여러 설명을 함께 검토했다 (arXiv:2306.01284). 인플레이션의 위험 분포를 분석한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 하방(디플레이션) 위험은 주로 수요 약화와 인플레이션 지속성에서 오고, 상방(고인플레이션) 위험은 주로 공급충격, 특히 에너지 가격에서 온다고 갈라냈다 (arXiv:2403.12456). 미국 인플레이션 위험이 경기 회복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주로 좌우됐고 통화정책 조정과 신용스프레드가 그것을 부분적으로 완화했다는 분석(arXiv:2405.17237)도 같은 방향이다. 연방준비제도의 시각을 모형화한 연구는 인플레이션을 장기기대 추세 + 필립스곡선 + 에너지 가격의 합으로 보면서, 에너지 가격이 필립스곡선뿐 아니라 독립적인 기대 경로로도 물가에 작용한다고 봤다 (arXiv:2006.14110).
그런데 공급충격은 얼마나 깊고 오래갈까. 여기서 지도들이 다시 엇갈린다. 유로존을 본 연구는 팬데믹 이후 근원 인플레이션 상승의 최소 30%를 수요 요인이 설명한다고 보아, 순수한 공급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arXiv:2505.05536). 이스라엘 사례에서는 봉쇄로 소비 구성이 바뀌어 공식 물가지표에 편의가 생겼지만, 그 편의는 의외로 작고 일시적이었다 (arXiv:2506.09875). 공급충격은 분명 한 축이지만, 수요·기대와 얽히지 않은 단독 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충격은 모두에게 똑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경기에 취약한 노동자의 실업 꼬리위험을 더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arXiv:2505.05757).
네 지도를 겹쳐 놓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단일 원인은 없다. 통화량은 과하게 풀릴 때 신호가 살아나고(arXiv:2308.05486), 필립스곡선은 평온기에만 작동하며(arXiv:2511.22785), 기대는 주의의 문턱을 넘을 때 충격을 증폭하고(arXiv:2308.09480), 공급충격은 상방 위험을 키우지만 수요와 얽혀 있다(arXiv:2403.12456, arXiv:2505.05536).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이 넷이 동시에 작동한 복합 현상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책으로 잡을 수 있을까. 여기서도 정직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 효과를 다룬 메타분석들을 종합한 연구는, 통화정책이 유효한 도구인 것은 맞지만 1차 연구들이 보고한 경기 조절력은 출판 편향을 걷어내면 체계적으로 과대평가돼 있었다며, 그 힘은 더 온건하고 불확실하며 시차가 길다고 결론지었다 (arXiv:2509.19591). 인플레이션 타기팅은 선진국에서는 물가 성과를 개선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얻지 못했지만 신흥국에서는 이득이 있었을 수 있고 재정규율 개선 효과는 지지된다는 서베이가 있으며 (arXiv:2305.17474), 중앙은행이 오랜 기간 독립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arXiv:2003.02208). 앞서의 Mark-0 연구는 더 도발적인 결론을 냈다 — 2020년대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은 금리 인상의 직접 효과라기보다 기대 anchoring이었다는 것이다 — 다만 같은 연구는 강한 앵커링이 소비와 실업에는 해로워 "최적" 정책의 창이 매우 좁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arXiv:2306.01284).
예측은 어떨까. 인플레이션은 악명 높게 예측하기 어렵다. 신경망·트랜스포머·베이지안 비모수 등 온갖 기법이 동원돼 특정 인플레이션 종류와 시계에서는 벤치마크를 이겼지만(트랜스포머는 16개 실험 중 6개에서, 베이지안 비모수는 전 구간과 좌측 꼬리에서 개선을 보고했다), 어떤 방법도 무작위보행(random walk)을 일관되게 이기지는 못했다 — LSTM 연구는 그 성적을 "경쟁력은 있으나 압도적이지는 않다"로 요약한다 (arXiv:2303.15364, arXiv:2202.13793, arXiv:2104.03757). 영란은행조차 최근의 큰 예측 오차에도 그 예측이 "벤치마크 대비로는 정확한 편"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arXiv:2501.07386). 한국은행의 예측은, 예측 시점에 실현 인플레이션이 목표 아래인지에 따라 나눠 보면 목표치 쪽으로 편의가 있으며 간단한 보정으로 정확도가 개선된다는 분석도 있다 (arXiv:2512.16068). 게다가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인플레이션 분포의 오른쪽 꼬리(고인플레이션)를 국내 활동보다 국제 요인이 설명하는 정도가 커졌다 — 다만 저소득 개도국의 인플레이션은 국제 여건에 거의 영향받지 않았고, 중소득국은 결과가 엇갈렸다 (arXiv:2410.20628, arXiv:2212.05841).
인플레이션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정답이 하나가 아니어서다. 화폐수량설은 "돈을 너무 많이 풀면"이라는 강력한 직관을 주지만 그 연결은 시대에 따라 약해졌다. 필립스곡선은 실업과 물가의 맞교환을 그리지만 침체기엔 무너진다. 기대는 충격을 증폭하는 숨은 변수지만 무엇이 기대를 만드는지는 여전히 연구 중이다. 공급충격은 최근 인플레이션의 한 축이지만 수요·기대와 분리되지 않는다.
역사는 이 복잡성을 거듭 보여 준다. 1919~1923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명목 부채의 실질 부담과 파산을 크게 줄였고, 명목부채가 많던 기업일수록 이자 부담이 더 줄고 고용이 늘었다 — 물가·임금이 신축적일 때도 작동하는 부채-인플레이션 경로다 (arXiv:2405.13296). 남아시아 4개국 패널에서는 정치적 안정성이 높을수록 인플레이션이 낮았고 (arXiv:2310.08415), 생산의 비효율에서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찾는 사변적 논고까지 나와 있다 (arXiv:2301.03063, 실증 연구가 아니라 경제·철학적 고찰). 어쩌면 인플레이션은 통화·수요·공급·기대·제도가 만나는 교차로 그 자체다.
그래서 "물가는 왜 오르는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은, 단정이 아니라 다관점이다. 여러 학파가 그린 지도는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키지만, 어느 하나도 전부를 보여 주지 못한다. 그리고 예측과 정책 효과마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길들였다는 자신감을 거두게 한다. 다음에 물가가 오를 때, 단 하나의 범인을 지목하기 전에 — 이 네 장의 지도를 함께 펼쳐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이 글은 경제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인용한 근거의 대부분은 동료심사 전 프리프린트(arXiv)입니다. 투자·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며, 추후 후속 연구로 세부 내용이 갱신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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