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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 통화량인가, 기대인가, 공급망인가

물가는 왜 오르는가 — 네 학파가 그린 네 장의 지도, 그리고 하나의 원인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주소 (근거 대부분은 프리프린트)

🔥논쟁✦AI 생성경제·금융 · 2026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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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 통화량인가, 기대인가, 공급망인가

물가가 오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범인을 찾습니다. 누가 돈을 너무 많이 풀었나? 임금이 올라서? 기름값 때문에? 아니면 그저 사람들이 "어차피 오를 텐데" 하며 미리 가격을 올린 걸까?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부릅니다. 경제학자들도 그 원인에는 한목소리로 답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결국 돈을 너무 많이 풀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어떤 이는 "물가와 실업은 맞교환"이라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사람들이 오를 거라 믿으면 진짜로 오른다"고 말합니다. 2020년 이후에는 "팬데믹과 에너지 충격"이라는 설명이 더해졌습니다.

이 글은 충돌하는 설명 네 가지를 하나의 지도 위에 펼칩니다. 화폐수량설(돈의 양이 물가를 정한다), 필립스곡선(실업과 물가의 관계), 기대(앞으로의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 공급충격(원료·에너지·물류에서 갑자기 생기는 비용 충격)입니다. 네 학파가 그린 서로 다른 지도입니다. 각 지도가 무엇을 잘 설명하고 어디서 길을 잃는지 따라가 봅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왜 하나의 원인으로 정리되지 않는지 보입니다.

카드 네 장이 나란히 있다. 화폐수량설은 통화량을 보며 돈의 양이 물가를 정한다고 본다. 필립스곡선은 실업과 물가의 관계를 보며 실업이 낮아지면 물가가 오른다고 본다. 기대는 앞으로의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을 보며 오를 거라 믿으면 가격과 임금을 올린다고 본다. 공급충격은 원료·에너지·물류의 갑작스러운 비용 충격을 본다. 아래에 어느 지도가 맞는지는 말하지 않는다는 문구.

여기 인용하는 거의 모든 논문은 전문가 심사를 받기 전에 공개한 프리프린트(arXiv)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줄도 최종 결론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 불확실성 자체가 이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첫 번째 지도 — "돈을 너무 많이 풀면 오른다"

가장 오래되고 직관적인 설명입니다. 시중에 도는 돈이 늘면 같은 물건을 더 많은 돈이 좇게 됩니다. 그래서 가격이 오릅니다. 시중에 풀린 돈의 총량을 통화량(money supply)이라 합니다.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의 뿌리라는 설명이 화폐수량설입니다.

데이터는 이 직관에 부분적으로 손을 들어 줍니다. 미국과 유로존 자료에서 통화 증가율을 구간별로 나눠 인플레이션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습니다. 증가율이 높은 쪽 구간(상위 분위, quantile)은 인플레이션 분포에 통계적으로 뚜렷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낮은 구간과 중앙 구간의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arXiv:2308.05486). 다만 이 영향의 크기는 시기에 따라 변했습니다. 돈을 적당히 풀 때는 별일 없다가 과하게 풀 때 연결이 살아나는 비대칭적인 그림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는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습니다. 가나를 1970년대부터 추적하면 통화 증가에 인플레이션이 반응하는 정도(탄력성)가 계속 떨어집니다. 마지막 시점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됩니다. 이 논문은 음의 탄력성을 보인 시기도 근거 삼아 2002년 인플레이션 타기팅(중앙은행이 물가 목표를 정해 두고 정책을 운용하는 방식) 도입이 타당했다고 봅니다. 타기팅이 기대의 닻 내리기에 크게 기여했다며 유지·강화를 권고합니다 (arXiv:1805.11562).

한발 더 나아간 견해도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금리와 인플레이션 목표를 함께 운용하면, 통화량은 정책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가 됩니다. 통화량이 경제 안에서 정해지는 이런 상태를 내생적이라 합니다. 이때 중앙은행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물가 이론에는 피셔 방정식(명목금리가 실질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의 합이라는 관계식)만 있으면 된다는 분석입니다. 같은 연구는 단서를 둘 답니다. 믿음이 불완전하거나 기대가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으면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또 정책이 유한한 기간만 이어진다고 보면, 언젠가 통화량은 다시 바깥에서 정해지는 변수(외생)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오늘부터 통화량 통계를 살펴 인플레이션 전망을 만들 유인이 생깁니다 (arXiv:2301.11207). 통화량은 인플레이션의 한 단면일 뿐, 전부는 아니라는 신호입니다.

두 번째 지도 — "실업과 물가의 맞교환"

두 번째 지도는 노동시장을 봅니다. 경제가 과열되어 실업이 낮아지면 임금과 물가가 오릅니다. 침체가 오면 물가 압력이 가라앉습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이 역의 관계를 그린 곡선이 필립스곡선입니다. 일본의 장기 자료에서는 통계적으로 믿을 만한 필립스곡선이 확인됐습니다 (R²=0.68, arXiv:1002.0277). 인플레이션과 실업을 모두 노동력 변화율의 함수로 놓은 모형입니다. 이 모형에서 실업이 늘 때 인플레이션이 줄고 둘이 같은 시기에 함께 움직였습니다(음의 동시 관계).

그러나 이 곡선은 어디서나, 언제나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41개국을 1980~2016년에 걸쳐 보면 일관된 균열이 나타납니다. 검증 대상은 사람들의 물가 예상(기대)을 함께 넣은 기대 반영(expectations-augmented) 필립스곡선입니다. 평온기에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성립하지만 신흥국·프런티어 시장(신흥국보다 덜 발달한 시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침체기에는 선진국에서조차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자리는 과거 인플레이션을 따라가는 부분(후향 요소)과 앞으로의 예상을 따라가는 부분(전향 요소)이 뚜렷이 크게 메웠습니다 (arXiv:2511.22785, arXiv:2511.22786, arXiv:2512.01697). 논문은 이를 침체기에 시장이 인플레이션에 더 민감해진 신호로 해석합니다. 필립스곡선은 평온기의 선진국에서 주로 작동하는 조건부 지도입니다.

왼쪽에 가로축 실업, 세로축 인플레이션의 개념 그래프와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곡선, 실업이 늘 때 인플레이션이 준다는 문구. 오른쪽에 카드 세 장: 평온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성립, 평온기 신흥국·프런티어 시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음, 침체기에는 선진국에서조차 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과거 인플레이션과 앞으로의 예상을 따르는 부분이 크게 메움. 41개국 1980~2016, 프리프린트 결과.

곡선의 모양 자체도 논쟁거리입니다. 곡선의 구조적 기울기("뼈대")가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극단적인 노동시장 과열에서 곡선이 휘는 성질(비선형성, "형태")이 켜진 것일까요? 미국 팬데믹 전후 자료로 이를 가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arXiv:2506.14030).

뼈대와 형태의 논쟁과는 별개로, 어떤 변수가 인플레이션을 이끄는지도 연구마다 답이 갈립니다. 나라와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인도 자료에서는 곡선이 임계값과 변수 간 상호작용이 두드러지는 강한 비선형이었습니다. 전체 소비자물가 기준 인플레이션(헤드라인)을 가장 강하게 끌고 가는 것은 기대였습니다. 그다음이 과거 인플레이션과 산출갭(경제가 실제로 만든 생산량과 무리 없이 낼 수 있는 생산량의 차이)이었습니다. 공급충격은 강우를 빼면 미미했습니다 (arXiv:2504.05350). 반면 신경망 필립스곡선에서는 2021년 급등이 2020년 말부터 시작된 큰 양(+)의 산출갭 탓으로 나타났습니다 (arXiv:2202.04146).

왜 곡선이 평평해졌을까요? 평평하다는 것은 실업이 낮아져도 물가가 예전만큼 오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중노동시장 모형(노동시장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불안정한 일자리로 나뉜다고 보는 모형)은 세 가지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노동자 협상력, 2차 노동시장에서 임금에 대한 노동공급 탄력성, 노동력 구성의 변화입니다 (arXiv:2103.06482). 곡선을 다시 그리는 시도도 있습니다. 한 이론 모형은 곡선을 실업 대신 노동시장 긴장도(빈 일자리 수에 비해 실업자가 얼마나 적은가)로 쓰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베버리지곡선(실업과 빈 일자리의 관계를 그린 곡선)이 이동해도 필립스곡선은 영향받지 않습니다. 이 모형을 '베버리지 필립스곡선'이라 부릅니다 (arXiv:2401.12475).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잠재변수)으로 곡선을 재정식화한 예측 연구도 그런 시도입니다 (arXiv:2601.11601).

세 번째 지도 — "오를 거라 믿으면 오른다"

세 번째 지도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봅니다. 기대(inflation expectations)란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에 대한 기업과 가계의 예상입니다. 기업과 가계가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 믿으면, 그 믿음에 맞춰 가격을 올리고 임금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기대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만듭니다. 앞서 본 인도 자료에서 기대가 1순위 동인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arXiv:2504.05350). 20개 선진국의 기계학습 분석도 기대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그 중요도는 최근 10년 사이 다소 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arXiv:2208.14653).

기대를 다루는 가장 매력적인 발견 중 하나는 주의(attention)의 문턱입니다. 주의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 소식에 얼마나 신경 쓰는가입니다. 이 주의는 인플레이션율 약 4% 부근에서 급변하고, 문턱을 넘으면 두 배로 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추정에 따르면 주의가 높을 때는 불리한 공급충격이 더 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집니다. 2021년 사람들의 주의 증가는 이후 공급발 인플레이션의 절반을 설명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arXiv:2308.09480). 이 연구의 모형에서는, 평소 짧게 끝났을 충격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면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주의가 낮으면 기대 관리(사람들의 물가 예상을 원하는 수준으로 이끄는 일)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하한에 묶인 채 물가도 낮게 머무는 '주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arXiv:2105.05297).

그렇다면 기대는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1978~2016년 미국 가계 월별 자료를 본 분석은 인플레이션·통화정책 뉴스에 얼마나 노출되느냐가 기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1983년 이후에는 비대칭도 있다고 합니다. "물가가 오른다"는 뉴스와 "통화정책이 완화된다"는 뉴스가 반대 방향 뉴스보다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arXiv:2009.11557). 인플레이션 급등을 학습하지 못한 대형언어모델(GPT)로 영국 가계 설문을 흉내 내는 실험도 있었습니다. GPT는 단기로는 설문의 전체 평균 전망과 공식 통계를 따라갔습니다. 소득·주거형태·계층별 인식의 규칙성도 재현했습니다. 사람처럼 식품 인플레이션 정보에 특히 민감했지만, 일관된 소비자물가 모형은 갖지 못했습니다 (arXiv:2512.14306).

기대가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 부근에 묶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닻 내리기(anchoring)라 합니다. 한 이론 분석은 교과서적인 새케인지언 필립스곡선 모형에서, 중앙은행이 약속을 어길 확률이 100퍼센트가 아닌 최소한의 신뢰가 닻 내리기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였습니다. 신뢰가 전혀 없으면(약속을 반드시 어기면) 인플레이션이 움직이는 양상(동학)이 국소적으로 불안정해진다고 합니다 (arXiv:2012.02662).

네 번째 지도 — "팬데믹과 에너지가 밀어 올렸다"

네 번째 지도는 2020년 이후 가장 주목받았습니다. 팬데믹 봉쇄,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부른 에너지 가격 급등. 이런 공급 측 충격, 곧 공급충격이 비용을 밀어 올려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입니다.

행위자기반모형(가계와 기업이 행동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만든 시뮬레이션) Mark-0 안에서 2020~2023년을 시나리오로 분석했습니다. 팬데믹발 인플레이션을 생산·소비 충격, 공급망 충격, 에너지 가격 충격 셋으로 나누어 넣었습니다. 수요견인(수요 과열)·비용상승·이윤주도(기업의 이윤 확대) 같은 여러 설명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arXiv:2306.01284).

미국 인플레이션에 시기별로 변하는 분포 회귀모형을 적용해 위험을 갈라 본 결과가 있습니다. 물가가 크게 내릴 위험(하방)은 주로 수요 약화와 인플레이션 지속성(한번 오른 물가가 쉽게 내려오지 않는 성질)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크게 오를 위험(상방)은 주로 공급충격, 특히 에너지 가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만 에너지 충격의 효과는 시기에 따라 크게 달랐고 비대칭적이었습니다 (arXiv:2403.12456). 최근 인플레이션 급등기의 미국 인플레이션 위험이 경기 회복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주로 좌우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2024). 통화정책 조정과 신용스프레드(위험한 채권과 안전한 채권의 금리 차)가 이를 부분적으로 완화했다고 합니다 (arXiv:2405.17237). 연방준비제도의 시각을 모형화한 2020년 분석은 장기기대 추세, 필립스곡선, 에너지 가격 변동을 인플레이션의 세 요소로 놓았습니다. 추정해 보니 에너지 가격은 필립스곡선뿐 아니라 독립적인 기대 경로로도 물가에 작용했고, 에너지 가격 주기가 필립스곡선을 압도해 지난 10년의 인플레이션 퍼즐을 설명한다고 합니다 (arXiv:2006.14110).

그런데 공급충격은 얼마나 깊고 오래갈까요? 여기서 지도들이 다시 엇갈립니다. 유로존에서는 팬데믹 이후 근원 인플레이션(식품·에너지처럼 들쭉날쭉한 항목을 뺀 물가 상승) 상승의 최소 30%를 수요 요인이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순수한 공급 이야기가 아니라는 시사입니다 (arXiv:2505.05536). 이스라엘에서는 봉쇄로 소비 구성이 바뀌어 공식 물가지표에 편의(한쪽으로 치우친 오차)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공식 물가지표는 고정된 상품 바구니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편의는 의외로 작고 일시적이었습니다 (arXiv:2506.09875). 공급충격은 분명 한 축이지만, 수요·기대와 얽히지 않은 단독 범인은 아닙니다. 게다가 충격은 모두에게 똑같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경기에 취약한 노동자의 실업 꼬리위험(드물지만 크게 나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불균형하게 키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arXiv:2505.05757).

그래서, 범인은 누구인가

네 지도를 겹쳐 놓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단일 원인은 없습니다. 통화량은 과하게 풀릴 때 신호가 살아납니다 (arXiv:2308.05486). 필립스곡선은 평온기의 선진국에서 주로 작동합니다 (arXiv:2511.22785).

기대는 주의의 문턱을 넘을 때 충격을 증폭합니다 (arXiv:2308.09480). 공급충격은 상방 위험을 키우지만 수요와 얽혀 있습니다 (arXiv:2403.12456, arXiv:2505.05536).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이 넷이 동시에 작동한 복합 현상에 가깝습니다.

세로로 네 줄 표. 열은 지도, 맞는 자리, 안 맞는 자리. 화폐수량설: 미국·유로존에서 통화 증가율이 높은 구간이 뚜렷한 영향 / 가나에서 반응이 떨어져 마지막엔 유의하지 않고 정책 운용 시 통화량은 결과. 필립스곡선: 평온기 대부분의 선진국 / 신흥국·프런티어에서 잘 작동 않고 침체기엔 선진국에서도 무너짐. 기대: 주의가 높을 때 공급충격이 더 큰 인플레이션으로, 인도에서 가장 강한 동인 / 최근 10년 다소 약해진 것으로 보이고 중앙은행 신뢰가 없으면 불안정. 공급충격: 미국 상방 위험은 주로 에너지 가격 / 유로존에서 수요 요인이 최소 30%를 설명하고 인도에서는 강우를 빼면 미미. 수치끼리 견주는 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책으로 잡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도 정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화정책은 유효한 도구이지만, 1차 연구들이 보고한 경기 조절력은 체계적으로 과대평가돼 있었습니다. 메타분석(여러 연구의 결과를 모아 다시 분석하는 방법)들을 종합한 연구의 결론입니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더 잘 논문이 되는 쏠림(출판 편향)을 걷어내면 그 힘은 더 온건하고 불확실하며 시차가 깁니다 (arXiv:2509.19591).

한 서베이는 선진국에서 인플레이션 타기팅이 물가 성과를 개선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고 정리합니다. 신흥국에서는 이득이 더 컸을 수 있습니다. 재정규율 개선 효과는 근거가 아주 제한적이지만 지지됩니다. 종합하면 다른 통화 전략보다 우월한 거시 이득은 없거나 있어도 미미하다고 결론짓습니다 (arXiv:2305.17474). 중앙은행이 오래 독립적이었다고 인플레이션이 반드시 낮아진다는 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arXiv:2003.02208).

앞서의 Mark-0 모형은 더 도발적인 결론을 냈습니다. 이 모형에서는 2020년대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이 금리 인상의 직접 효과라기보다 기대의 닻 내리기였습니다. 다만 강한 닻 내리기는 소비와 실업에는 해롭습니다. 그래서 "최적" 정책의 창이 매우 좁다고 이 모형은 지적합니다 (arXiv:2306.01284).

예측은 어떨까요? 인플레이션은 악명 높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신경망·트랜스포머·베이지안 비모수 등 온갖 기법이 동원됐습니다. 특정 인플레이션 종류와 시계에서는 비교 기준(벤치마크)을 이긴 방법도 있습니다. 트랜스포머는 16개 실험 중 6개에서 개선을 보였습니다. 베이지안 비모수 모형은 전반적으로 그리고 좌측 꼬리(낮은 인플레이션 쪽)에서 개선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작위보행(다음 값을 지금 값 그대로 두는 가장 단순한 예측)을 안정적으로 이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합니다. 순환신경망(LSTM)의 성적은 "경쟁력은 있으나 압도적이지는 않다"로 요약됩니다 (arXiv:2303.15364, arXiv:2202.13793, arXiv:2104.03757).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의 예측은 최근의 큰 오차에도 "벤치마크 대비로는 정확한 편"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arXiv:2501.07386). 한 분석에 따르면, 예측 시점에 실현 인플레이션이 목표 아래인지로 나눠 볼 때 한국은행 예측에 편의가 있습니다. 간단한 보정 방법들은 대체로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arXiv:2512.16068).

국제 요인도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자료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율과 유가가 각국 인플레이션의 지배적 동인으로 꼽혔습니다 (arXiv:2212.05841). 더 많은 나라의 월별 자료에서는, 다수의 선진국에서 국제 요인이 고인플레이션 쪽(분포의 오른쪽 꼬리)을 설명하는 데 관련이 있었습니다. 평균이나 낮은 인플레이션보다 고인플레이션에서 더 그랬습니다. 최근 고인플레이션기에는 국제 요인의 예측력도 커졌습니다. 다만 저소득 개도국의 인플레이션은 국제 여건에 거의 영향받지 않았고, 중소득국은 결과가 엇갈렸습니다 (arXiv:2410.20628).

마무리

인플레이션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정답이 하나가 아니어서입니다. 화폐수량설은 "돈을 너무 많이 풀면"이라는 강력한 직관을 주지만, 그 연결은 가나에서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습니다. 미국과 유로존에서도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필립스곡선은 실업과 물가의 맞교환을 그리지만 침체기엔 무너집니다. 기대는 충격을 증폭하는 숨은 변수지만 무엇이 기대를 만드는지는 여전히 연구 중입니다. 공급충격은 최근 인플레이션의 한 축이지만 수요·기대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실물 효과도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1919~1923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명목 부채(액수가 돈의 숫자로 정해진 빚)의 실질 부담과 파산을 크게 줄였습니다. 인플레이션 시작 때 명목부채가 많던 기업일수록 이자 부담이 더 크게 줄고 고용이 더 많았습니다. 가격과 임금이 유연할 때도 작동하는 부채-인플레이션 경로와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arXiv:2405.13296). 남아시아 4개국 패널에서는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것이 낮은 인플레이션과 연관됐습니다 (arXiv:2310.08415). 생산의 비효율에서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찾는 논고까지 나와 있습니다 (arXiv:2301.03063, 실증 연구가 아니라 경제·철학적 고찰). 인플레이션은 어쩌면 통화·수요·공급·기대·제도가 만나는 교차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물가는 왜 오르는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은 단정이 아니라 다관점입니다. 여러 학파가 그린 지도는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전부를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측과 정책 효과마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길들였다는 자신감을 거두게 합니다. 다음에 물가가 오를 때, 범인을 하나로 지목하기 전에 네 장의 지도를 함께 펼쳐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경제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인용한 근거의 대부분은 동료심사 전 프리프린트(arXiv)입니다. 투자·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며, 추후 후속 연구로 세부 내용이 갱신될 수 있습니다.


근거 논문 (arXiv)

화폐수량설 · 통화량

  • 통화 증가율 분포 상단이 인플레이션에 영향(분위 민감도) (arXiv:2308.05486)
  • 통화 증가의 인플레이션 영향 약화(가나) (arXiv:1805.11562)
  • 인플레이션·금리 타기팅에서 통화량의 내생성 (arXiv:2301.11207)
  • 미국 인플레이션·유가가 국가별 인플레이션의 지배적 동인 (arXiv:2212.05841)

필립스곡선

  • 41개국 기대 보강 필립스곡선의 불안정성(평온·침체기) (arXiv:2511.22785, arXiv:2511.22786, arXiv:2512.01697)
  • 팬데믹 전후 미국 필립스곡선의 뼈대와 형태 (arXiv:2506.14030)
  • 인도 비선형 필립스곡선(ML): 기대가 1순위 동인 (arXiv:2504.05350)
  • 신경망 필립스곡선·딥 산출갭(2021 급등 해석) (arXiv:2202.04146)
  • 이중노동시장과 평평한 필립스곡선 (arXiv:2103.06482)
  • 베버리지 필립스곡선 (arXiv:2401.12475)
  • 잠재변수 필립스곡선 예측 (arXiv:2601.11601)
  • 일본 필립스곡선 장기 추정 (arXiv:1002.0277)
  • Mittag-Leffler 필립스곡선 적합 (arXiv:1604.00369)

기대 · 주의 · 신뢰성

  • 인플레이션 주의 문턱(~4%)과 공급충격 증폭 (arXiv:2308.09480)
  • 낮은 주의와 통화정책·주의 함정 (arXiv:2105.05297)
  • 뉴스 노출과 가계 인플레이션 기대(1978~2016, 1983년 이후 비대칭) (arXiv:2009.11557)
  • 기계학습이 본 인플레이션 동인: 기대의 역할 (arXiv:2208.14653)
  • 대형언어모델의 인플레이션 태도(식품 민감) (arXiv:2512.14306)
  • 최소 신뢰성은 anchoring의 필요조건, 무신뢰는 국소 불안정(새케인지언 모형) (arXiv:2012.02662)

공급충격 · 팬데믹 · 에너지

  • 포스트코로나 인플레이션 ABM(Mark-0) (arXiv:2306.01284)
  • 인플레이션 위험의 수요·공급 분해(에너지 상방) (arXiv:2403.12456)
  • 최근 급등기 미국 인플레이션 위험 동인(경기·원자재, 통화정책·신용스프레드가 부분 완화) (arXiv:2405.17237)
  • 유로존: 수요가 근원 인플레 상승의 ≥30% 설명 (arXiv:2505.05536)
  • 연준의 인플레이션 관점 모형(추정: 에너지의 독립 기대 경로) (arXiv:2006.14110)
  • 코로나기 인플레이션 가중치 편의(이스라엘) (arXiv:2506.09875)
  • 공급발 인플레이션과 실업 꼬리위험 (arXiv:2505.05757)

정책 효과 · 예측 · 국제 요인

  • 통화정책 효과의 메타분석(과대평가) (arXiv:2509.19591)
  • 인플레이션 타기팅 효과 실증 서베이 (arXiv:2305.17474)
  • 중앙은행 독립성과 인플레이션 (arXiv:2003.02208)
  • 통화정책을 위한 예측(영란은행 평가) (arXiv:2501.07386)
  • 한국은행 인플레이션 예측의 목표 편의 (arXiv:2512.16068)
  • 인플레이션의 국제적 취약성 (arXiv:2410.20628)
  • 트랜스포머 신경망 인플레이션 예측 (arXiv:2303.15364)
  • 순환신경망(LSTM) 인플레이션 예측 (arXiv:2104.03757)
  • 베이지안 비모수 미국 인플레이션 예측 (arXiv:2202.13793)

역사 · 제도 · 기타

  • 독일 (초)인플레이션의 부채-인플레이션 경로 (arXiv:2405.13296)
  • 정치적 안정성과 인플레이션(남아시아) (arXiv:2310.08415)
  • 인플레이션과 생산 효율(철학적 고찰) (arXiv:2301.03063)
📚 돈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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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 통화량인가, 기대인가, 공급망인가
  2. 2.돈은 어디서 오는가 — 은행은 예금을 빌려주는가, 만들어내는가
  3. 3.시장을 이길 수 있는가 — 효율적 시장 가설의 균열
  4. 4.금융 위기는 왜 반복되나 — 팻테일·블랙스완·시스템 리스크
  5. 5.금융의 판도를 바꾼 방정식 — 블랙-숄즈 모델의 탄생과 위기
  6. 6.비트코인은 가치가 있는가 — 디지털 금인가, 거대한 버블인가
  7. 7.왜 부는 쏠리는가 — 불평등의 물리학
다음 글 →돈은 어디서 오는가 — 은행은 예금을 빌려주는가, 만들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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