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을 팔 년 동안 센 아저씨
듣는 사람은 아이, 읽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이 페이지는 이야기를 들은 뒤 아이가 던질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만든 자료입니다. 이야기 대본은 재생 중 스크립트 버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다루나
수도원 정원에서 완두콩을 심고 세던 신부가 있었습니다. 팔 년 동안, 수만 개를요. 그는 그 숫자만 보고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주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유전자를 본 적도,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이요.
이야기의 심장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것이 한 세대를 건너뛰고 다시 나타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34년이 지나서야 세 사람이 각각 같은 것을 발견하고, 옛 논문을 뒤지다 그의 이름을 찾아냅니다.
그날 실제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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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 지금의 체코 브르노에 있던 성 토마스 수도원의 수사이자 신부였습니다.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공부한 적이 있고, 그 훈련이 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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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부터 약 8년간 수도원 정원에서 완두를 길렀습니다. 관찰한 형질은 일곱 가지 — 씨의 모양(둥근/주름진), 씨의 색(노란/초록), 꽃의 색, 꼬투리의 모양과 색, 꽃이 달리는 위치, 줄기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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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상식은 혼합 유전이었습니다. 부모의 특징이 물감처럼 섞여 중간이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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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완두와 작은 완두를 교배하자 자손은 전부 키가 컸습니다. 중간 키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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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손끼리 다시 교배하자 작은 완두가 약 4분의 1의 비율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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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브르노 자연과학회에서 발표하고, 1866년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라는 논문을 냅니다. 거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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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수도원장이 되면서 행정 업무가 늘어 연구는 줄어듭니다. 1884년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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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서로 다른 세 연구자(더프리스·코렌스·체르마크)가 각각 비슷한 규칙에 도달했고, 선행 문헌을 뒤지다 멘델의 논문을 발견합니다. 유전학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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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유전자(gene)"라는 말 자체는 1909년에 만들어집니다. 멘델은 그 단어를 쓴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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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완두콩만 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브르노 성 토마스 수도원의 아우구스티노회 신부이면서 브뤼른 실업학교에서 자연사와 물리를 가르친 교사였고, 매일 기상·천문 관측을 했으며 수도원의 과수원과 벌통을 돌보고 온실과 정원의 식물을 가꿨습니다. 완두콩 실험은 1856~1863년에 그 모든 일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PMID 358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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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험에 떨어진 사람입니다. 본당 신부 수습에 실패했고, 빈 대학에서 2년을 공부하고도 교사 자격시험을 끝내 통과하지 못했습니다(PMID 35858394). 아이 이야기에 그대로 넣었습니다 — 정식 자격이 없는 선생님이 남는 시간에 완두콩을 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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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은 편치 않았습니다. 1868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나 행정 부담을 크게 과소평가해 과학적 관심을 점차 놓아야 했고, 마지막 십 년은 수도원 과세를 둘러싼 관청과의 험한 분쟁으로 얼룩졌습니다(PMID 358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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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전학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현대 유전학은 1900년 멘델 법칙의 재발견에서 출발했고(PMID 39586628), 거기서 염색체 발견과 DNA 이중나선 구조로 이어집니다(PMID 41151784).
아이가 물어볼 만한 질문
"왜 하필 완두콩이야?"
고르기를 잘한 겁니다. 완두는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해서 부모를 통제하기 쉽고, 형질이 둘 중 하나로 뚜렷하게 갈리고(둥글거나 주름지거나, 중간이 없습니다), 한 해에 여러 번 세대를 볼 수 있고, 기르기 쉽습니다. 실험 재료를 잘 고르는 것 자체가 실력이라는 걸 알려주기 좋은 대목입니다.
"나는 엄마를 닮았어, 아빠를 닮았어?"
여기는 정직하게 선을 그어 주셔야 합니다. 사람의 키나 얼굴, 성격은 완두콩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고 환경도 영향을 줍니다. 멘델의 규칙은 "물려받는 것은 섞여서 사라지지 않고 알갱이처럼 전해진다"는 원리를 알려준 것이지, 사람의 모든 특징이 3:1로 나뉜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 아무도 안 알아줬어?"
너무 앞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생물학을 숫자로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생물학자들에게는 낯선 방식이었습니다. 발표된 학회지가 널리 읽히지 않았던 것도 이유로 꼽힙니다.
"멘델은 슬펐을까?"
알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적어 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그가 계속 기록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34년 뒤에 누군가가 그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숨어 있던 건 어디에 있었어?"
지금은 그것을 유전자라고 부르고, 세포 안의 DNA에 적혀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멘델은 그걸 몰랐습니다. 보지 못한 것을 숫자만으로 추론한 것이 이 이야기의 놀라운 점입니다.
이야기에 담긴 개념
- 우성과 열성 — 한 세대를 건너뛰고 다시 나타나는 이유.
- 알갱이 유전 vs 혼합 유전 — 섞여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따로 전해진다는 것.
- 세는 일의 힘 — 관찰을 숫자로 바꾸면 눈에 안 보이던 규칙이 드러납니다.
무엇이 근거이고 무엇이 전해지는 이야기인가
널리 확립된 사실
수도원 정원의 완두 실험, 약 8년, 일곱 가지 형질, 1세대의 균일함과 다음 세대의 약 3:1, 1866년 논문,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것, 1900년경의 재발견.
학계에서 논쟁이 있는 것
멘델이 보고한 수치가 이론값에 지나치게 잘 맞는다는 지적이 1936년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로부터 나왔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집니다. 의도적 조작이었다는 해석부터, 당시의 관행이나 무의식적 선택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합니다.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 이야기에는 넣지 않았지만, 나중에 "위대한 과학자도 검증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로 꺼내기 좋은 소재입니다.
의도적으로 빼놓은 것
"멘델이 다윈의 책을 읽었다/읽지 않았다" 류의 일화. 확실하지 않아 넣지 않았습니다.
근거와 그 뒤
원논문 — Gregor Mendel, 「Versuche über Pflanzen-Hybriden」(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 1866. Paperis 「거인의 어깨」 기초과학 분야에 등재돼 있습니다.
이 발견이 낳은 것
- 유전학의 탄생 — 1900년 재발견 이후 유전 연구가 하나의 분야가 됩니다.
- DNA로 가는 길 — 무엇이 전해지는지(멘델) →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 어떻게 생겼는지. 「거인의 어깨」의 여러 항목이 이 순서 위에 놓여 있습니다.
- 오늘의 의학 — 유전병의 원리, 유전자 검사, 유전자 교정 기술까지 모두 이 계보에서 나왔습니다.
함께 해볼 것
- 가족사진을 펼쳐 놓고 한 세대를 건너뛴 닮음을 찾아보기. 부모에게는 없는데 조부모에게 있는 특징이 있다면 이야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 강낭콩이나 완두를 컵에 심어 보기. 며칠이면 싹이 나고, 여러 개를 심으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눈으로 봅니다.
- 무엇이든 스무 번쯤 세어 기록해 보기(신호등에 걸린 횟수 같은 것). 세면 규칙이 보인다는 걸 체험하는 가장 싼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