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좋아진 숫자와 나아진 환자 — 대리 지표 입문
수치가 좋아진 것과 환자가 나아진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Paperis 아티클
수치가 좋아진 것과 환자가 나아진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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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치료가 좋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거의 항상 숫자 하나를 든다. 수치가 내려갔다, 영상이 나아졌다, 진행이 늦어졌다.
그런데 그 숫자들은 대부분 환자가 실제로 겪는 일이 아니다. 환자가 겪는 일은 죽는 것, 부러지는 것, 입원하는 것, 숨차서 계단을 못 오르는 것이다. 우리가 재는 것은 대개 그 자리에 세워 둔 대리물이다.
대리물을 쓰는 데는 좋은 이유가 있다. 빠르고, 적은 인원으로, 덜 비싸게 잴 수 있기 때문이다 (PMID 29595129). 문제는 이 대체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고, 값을 언제 치르게 되는지가 이 글의 내용이다.
이 글은 지표를 읽는 법에 관한 것이다. 특정 치료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정하는 글이 아니다.
먼저 규모부터 확인해 두는 편이 좋다.
유럽의약품청의 두 가지 신속 승인 경로(조건부 허가·신속 심사)로 2011~2018년에 허가된 51개 제품을 전수 조사한 연구가 있다. 임상 결과 자체를 근거로 허가된 것은 5개(10%)뿐이었고, 46개(90%)는 대리 지표를 근거로 허가됐다. 그리고 저자들이 각 대리 지표의 검증 문헌을 따로 찾아본 결과, 타당성이 확립됐다고 판정할 수 있는 대리 지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임상 결과를 예측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기대됨"(61%)이거나 "생물학적으로 그럴듯함"(94%) 수준의 등급이었다 (PMID 31504034).
미국 쪽 사정도 결이 같다. 2015~2022년 신속승인을 받은 156개 약물-적응증 쌍을 분석한 연구에서, 승인 근거가 된 핵심 시험의 77%가 단일군 설계였고 참가자 수 중앙값은 92명이었다. 승인 후 확증 연구 가운데 임상 결과를 종점으로 쓰도록 요구된 것은 25%였고, 확증 연구에서 대리 지표를 쓰는 비율은 관찰 기간 동안 50%에서 72%로 늘었다 (PMID 39695642).
특정 분야를 하나 들여다보면 더 선명하다. 녹내장에서 안압은 거의 모든 시험의 종점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분야를 정리한 개관의 문장은 이렇다 — 어떤 계열의 안압 강하 치료에 대해서도 안압을 대리 지표로 제대로 검증한 연구는 지금까지 수행된 적이 없다 (PMID 25034049).
그러니까 이건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가 치료의 성패를 이야기할 때 쓰는 언어의 상당 부분이 대리물의 언어다.
여기서 이 글의 축이 되는 사건이 나온다. 이건 이론적 우려가 아니라 관측된 역사다.
논리는 흠잡을 데 없어 보였다. 심근경색 이후 심실 부정맥이 있는 사람은 예후가 나쁘다. 부정맥을 억제하는 약이 있다. 그렇다면 억제하면 사망이 줄 것이다. 이 "억제 가설" 위에서 약이 쓰였고, 시험이 설계됐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전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약들이 심실 부정맥은 뚜렷이 억제하면서도, 심장 질환이 상당한 환자군에서는 사망을 늘렸다. 이 부정적 효과는 위약 대조 무작위 시험과 소규모 무작위 시험들의 메타분석 양쪽에서 확인됐다 (PMID 8780325).
여파는 학문의 문법 자체를 바꿨다. 이 결과들이 나온 뒤 임상시험의 종점은 "부정맥이 정해진 정도만큼 억제되었는가" 같은 대리 지표에서 총사망으로 옮겨갔다 (PMID 8780325). 심장학 진료를 정리한 당대의 개관은 그 시험이 두 가지를 보여 줬다고 적는다 — 치료 효과를 판정할 때 위약 대조가 왜 필요한가, 그리고 사망을 대리 지표로 대신할 때 어떤 함정이 있는가. 해당 계열 약의 신규 처방은 이후 꾸준히 줄었고, 약품 표기가 바뀌었으며, "억제 가설"은 더 이상 그 치료의 이론적 근거로 쓰이지 않게 됐다 (PMID 7654403).
몇 년 뒤에 쓰인 개관은 이 일을 담담하게 요약한다. 대규모 사망률 시험은 비싸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대리 지표를 썼는데, 그 관행 자체가 이 시험 이후 의문에 부쳐졌다는 것이다 (PMID 10090236).
여기서 얻을 교훈은 "약이 나빴다"가 아니다. 교훈은 경로에 관한 것이다. 부정맥은 나쁜 결과와 함께 나타나는 것이었지만, 그 부정맥을 없앤다고 해서 나쁜 결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는 방식 자체가 다른 해를 만들 수 있었다. 대리 지표가 무너질 때는 대개 이런 식으로 무너진다.
진짜 결과(임상 결과)는 환자가 직접 겪고 느끼는 일이다. 사망, 골절, 입원, 증상, 기능. 대리 지표(surrogate endpoint)는 그것을 대신해 재는 중간 측정값이다. 검사 수치, 영상 소견, 병리 소견, 진행까지의 시간 같은 것들.
대리 지표를 쓰는 이유는 순수하게 실용적이다. 더 짧은 시험을, 더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다 (PMID 29595129). 사망이 흔하지 않은 병에서 사망을 종점으로 삼으려면 수만 명을 수년간 따라가야 하는데, 대리 지표라면 수백 명을 1~2년 보는 것으로 끝난다.
핵심 조건을 가장 짧게 적은 문장은 녹내장 개관에 있다. 타당한 대리 지표는 임상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개입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PMID 25034049).
뒤쪽 조건이 어렵다. "예측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치료가 결과에 미치는 효과가 전부 그 대리 지표를 통과해서 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치료가 대리 지표를 거치지 않는 다른 길로도 작용한다면 —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 대리 지표만 봐서는 결과를 알 수 없다.
보건의료 기술평가용 지침을 정리한 국제 작업반은 검증에 필요한 근거를 세 층위로 나눈다. ① 치료 효과 사이의 연관 — 대리 지표에 대한 치료 효과와 진짜 결과에 대한 치료 효과가 연결되는가. ② 지표와 결과 사이의 연관 — 대리 지표 값과 결과가 연결되는가. ③ 생물학적 개연성 (PMID 41679646).
②번과 ①번이 다르다는 것이 이 분야의 핵심이자, 가장 자주 놓치는 지점이다.
앞의 것이 참이어도 뒤의 것은 거짓일 수 있다. 실제로 자주 그렇다.
폐암 면역치료 시험 13편(9,285명)을 미국 규제기관이 통합 분석한 자료가 이 차이를 그림처럼 보여 준다. 개인 수준에서 치료에 반응한 사람은 반응하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이 훨씬 좋았다(위험비 0.28, 95% CI 0.26–0.30). 반면 시험 수준에서 반응률과 전체생존의 결정계수는 0.61(95% CI 0.32–0.84), 무진행생존과 전체생존은 0.70(0.40–0.89)으로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PMID 38458207).
같은 어긋남이 골다공증 자료에서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골밀도와 골절의 관계를 다룬 개관에 따르면, 개별 환자 자료를 쓴 분석들은 항흡수제의 골절 예방 효과 가운데 골밀도 증가로 설명되는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보고했는데, 요약 통계에 대한 메타회귀를 쓴 분석들은 골절 예방 효과의 대부분이 골밀도 개선 덕분이라고 보고했다. 같은 질문에 같은 치료인데 분석 수준이 다르면 답이 달라진 것이다 (PMID 15615079).
시험 수준의 연관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만큼 움직여야 진짜 결과의 개선을 예측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려고 만든 개념이 대리 문턱 효과(surrogate threshold effect, STE)다. 정의는 간단하다 — 진짜 결과에 0이 아닌 효과가 있다고 예측하려면 대리 지표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가 있어야 하는가. 결정계수 값 하나만으로는 해석이 어렵다는 문제를 풀려고 도입됐고, 임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PMID 17080751).
모의자료로 여러 검증 방법을 겨뤄 본 연구는 이 지표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 다중 시험 기반의 대리 문턱 효과가 "대리 지표의 치료 관련 변화가 결과의 치료 관련 변화를 예측한다"는 요구를 가장 잘 포착했다는 것이다. 같은 연구의 결론에는 두 가지 경고가 함께 붙어 있다 — 한 편의 시험이나 단일 시험 기반 통계 방법만으로는 어느 것도 대리 타당성을 확립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대리 타당성 전용으로 개발된 요약 통계 중 "설명되는 효과의 비율" 같은 것은 문제가 많았다 (PMID 17343308).
이런 문턱값을 실제로 계산하는 방법과, 규제기관·시험 설계자가 각각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정리한 최근 방법론 논문도 있다. 규제기관에는 95% 예측구간이, 새 시험을 설계하는 쪽에는 대리 문턱 효과 비율과 표본수 배수가 쓸모 있다는 것이다 (PMID 39222723). 검증은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 방법을 겹쳐 봐야 한다는 제안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PMID 18285438).
대리 지표와 나란히 놓고 봐야 할 것이 복합 지표(composite endpoint)다.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처럼 서로 다른 사건을 묶어 하나의 결과로 세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대리 지표와 같다.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나므로 필요한 표본수나 추적 기간이 줄어든다. 문제도 분명하다. 이걸 정리한 짧은 해설의 권고는 이렇다 — 복합 지표를 보고한 연구를 읽는 사람은 ① 각 구성요소의 임상적 중요도, ② 각각의 발생 빈도, ③ 개입이 각각에 미친 효과가 서로 비슷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PMID 32739473).
셋 중 하나라도 크게 어긋나면, 복합 지표의 "감소"는 실제로는 가장 흔하고 가장 가벼운 구성요소가 움직인 결과일 수 있다.
가장 흔한 경우다. 치료 효과 가운데 그 대리 지표를 통과하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제로 계산해 본 연구들이 있다.
골다공증 시험 23편(91,779명)의 개별 환자 자료를 모은 분석에서, 골밀도 변화와 골절 감소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이 있었다(척추 골절에 대한 고관절 골밀도의 r² 0.73). 그런데 같은 연구가 계산한, 골밀도 변화로 설명되는 치료 효과의 몫은 44~67%였다 (PMID 32707115). 절반 안팎이 골밀도 바깥에 있다는 뜻이다.
폐동맥고혈압 쪽 숫자는 더 작다. 규제기관에 제출된 무작위 위약대조 시험 10편(2,404명)의 환자 단위 자료를 통합한 분석에서, 12주 시점의 6분 보행거리 변화가 설명한 치료 효과는 22.1%(95% CI 12.1–31.1)였다. 저자들의 결론은 명확하다 — 이 지표는 치료 효과의 큰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고, 대리 지표로서 타당성이 제한적이며, 충분한 대리 지표가 아닐 수 있다 (PMID 22696079).
골밀도가 왜 전부를 담지 못하는지는 기전 쪽에서도 설명된 바 있다. 항흡수제는 뼈의 재형성 속도를 늦추는데, 그 결과로 줄어드는 골절 위험에는 골밀도 측정에 잡히는 변화도 있고 잡히지 않는 구조적 변화도 있다. 그래서 같은 논문이 이렇게 적는다 — 골밀도가 조금 올랐다고 해서 치료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많이 올랐다고 해서 골절이 더 많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PMID 17644058).
이건 대리 지표가 좋은 소식을 놓치는 경우다.
당뇨병 치료제 중 신장에서 포도당 배설을 늘리는 계열은 원래 혈당 조절 약으로 개발됐다. 그런데 대규모 심혈관 결과 시험에서 이 계열은 심부전 입원을 포함한 심혈관·신장 결과를 개선했고, 그 이득은 당뇨병이 없는 심부전 환자에게까지 확장됐다. 이 계열을 정리한 개관은 그 기전을 논하면서 이 이득이 혈당 조절 개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적고, 초기 나트륨 배설과 혈장량 감소, 혈압 감소, 심장·신장의 대사 기질 변화 등 여러 경로를 후보로 나열한다 (PMID 32665641).
혈당이라는 대리 지표만 봤다면 이 이득의 상당 부분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리 지표는 좋은 쪽으로도 눈을 가린다.
앞에서 본 부정맥 억제 사례가 정확히 이것이다. 대리 지표(부정맥 빈도)는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치료가 그 지표 바깥의 경로 — 전도 지연 자체의 부정맥 유발성 — 로 해를 끼쳤다 (PMID 8780325, PMID 7654403).
이 세 번째가 무서운 이유는 대리 지표만 보는 시험에서는 원리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표는 좋아지고 있으므로 시험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대리 지표의 타당성은 그 지표 자체의 속성이 아니다. 어떤 질환에서, 어떤 치료 계열로, 어떤 결과에 대해 검증됐는가에 매여 있다.
이걸 가장 깨끗하게 보여 주는 것이 골밀도다. 항흡수제 시험들에서는 골밀도 변화가 골절 감소를 예측했지만, 칼슘(비타민D 병용 또는 단독) 보충 시험 15편(47,365명)을 따로 모은 메타회귀에서는 요추 골밀도가 더 많이 올라도 골절이 더 줄지 않았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 맥락에서는 골밀도 변화를 항골절 효과의 대리 지표로 쓸 수 없다는 것이고, 칼슘·비타민D는 골밀도와 무관한 기전으로 골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PMID 21060990).
같은 성질이 종양학에서도 반복된다. 진행성 대장암 무작위 시험 101편을 분석한 연구는 무진행생존·진행까지의 시간·반응률 어느 것도 좋은 대리성의 기준(시험 수준 r² 평균 0.60 초과)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고하면서, 다른 상황에서 관찰된 대리 관계가 다른 계열이나 다른 치료 차수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적는다 (PMID 25863582).
가장 최근의 통계 연구는 이 조건성을 아예 설계에 반영한다. 대리 지표가 어떤 환자 하위집단에서는 타당하고 다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을 전제로, 타당한 집단에서만 대리 지표를 쓰고 나머지에서는 진짜 결과를 재는 방법론이다 (PMID 41146447).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대리 지표는 속임수가 아니고, 제대로 검증되면 실제로 일한다.
절제된 흑색종의 보조요법 시험 자료가 좋은 사례다. 무작위 시험 11편(5,826명)의 개별 환자 자료로 무재발생존과 전체생존의 관계를 모델링한 연구에서, 개인 수준 상관은 0.89, 시험 수준 결정계수는 0.91이었고, 대리 문턱 효과는 위험비 0.77로 추정됐다. 즉 무재발생존의 위험비가 0.77 이하이면 생존에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그 예측을 실제 시험에 적용했다. 한 면역관문억제제의 이중맹검 시험에서 무재발생존 위험비는 0.75였고, 모델은 생존 이득을 예측했다. 그 예측은 이후 확인됐다 — 전체생존 위험비 0.72(95.1% CI 0.58–0.88, P=.001) (PMID 28922786).
이것이 검증된 대리 지표가 하는 일이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더 적은 사건 수로, 틀릴 수 있는 예측을 내놓고 그 예측이 맞았다.
골다공증 쪽에서 대리 문턱 효과를 대규모로 계산하고 검증한 작업이 있다. 무작위 시험 16편·61,415명의 개별 환자 자료로 24개월 고관절 골밀도 변화와 골절 감소 사이의 메타회귀를 돌려 문턱값을 구했더니, 전체 골절 1.83%, 척추 골절 1.42%, 고관절 골절 3.18%, 비척추 골절 2.13%였다. 문턱이 골절 종류마다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검증은 이렇게 했다. 문턱을 만드는 데 쓴 시험 28건 중 27건이 충분한 검정력을 갖고, 골밀도 효과가 문턱을 넘었으며, 골절 감소도 유의했다. 문턱을 만드는 데 쓰지 않은 별도의 시험 11건 중 10건도 같은 조건을 만족했다 (PMID 34490915).
여기에 실무적인 단서가 하나 더 붙는다. 표본을 다시 뽑는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보니, 문턱 비교와 실제 골절 감소의 일치는 표본 크기 500명(군당 250명) 근처에서 수렴했다 (PMID 41964512). 대리 지표를 쓰더라도 시험이 너무 작으면 문턱 비교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발표된 시험들로 돌린 별도의 메타회귀도 방향이 같다. 위약대조 시험 38편·19개 약제를 분석했더니 골밀도 개선이 클수록 척추·고관절 골절 감소가 컸고(척추 골절에 대한 총 고관절 골밀도 r² 0.56), 비척추 골절에서는 그 연관이 성립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총 고관절 골밀도가 2% 개선되면 척추 골절 28%, 고관절 골절 16%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제시하면서, 곧바로 단서를 단다 — 이 결과를 개별 환자의 치료 이득을 예측하는 데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PMID 30674078).
만성콩팥병에서 단백뇨(알부민뇨)는 오랫동안 유력한 후보였다. 무작위 시험 41건·29,979명의 개별 환자 자료를 모은 2019년 메타분석에서, 치료로 알부민뇨의 기하평균이 30% 감소할 때마다 임상 종점의 위험이 평균 27% 낮아졌다(95% BCI 5–45%, 중앙 결정계수 0.47). 연관은 기저 알부민뇨가 높은 환자에서 더 강했고(r² 0.72), 낮은 환자에서는 덜 확실했다 (PMID 30635226).
2026년에 나온 후속 분석은 시험 48편·85,681명으로 규모를 키웠다. 여기서는 30% 감소마다 위험이 평균 19% 낮았고(95% BCI 5–30%), 중앙 결정계수는 0.66(95% BCI 0.06–0.98)이었다. 이 연관이 만성콩팥병의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PMID 41198855).
숫자가 두 분석에서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리 관계의 세기는 어떤 시험들을 모았는지에 따라 움직이는 추정치이지, 고정된 상수가 아니다.
암 시험에서 전체생존 대신 무진행생존을 종점으로 쓰는 일은 이제 표준에 가깝다. 그 타당성이 얼마나 검증됐는지를 훑어본 방법론 리뷰가 있다. 24개 암종에 걸쳐 무진행생존의 대리 타당성을 평가한 연구 91편을 찾았는데, 그중 "무진행생존은 좋은 대리 지표"라고 결론 내린 47편 가운데 15편(32%)은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량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PMID 32214230).
실제 예측력은 어땠나. 전이성 고형암 3상 시험 260편(172,133명)을 살펴본 연구에서, 무진행생존을 주종점으로 삼은 시험이 종점을 달성할 확률은 66.9%로 전체생존을 주종점으로 삼은 시험(33.3%)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무진행생존에서 긍정적이었던 시험이 생존 이득으로 이어진 비율은 38%(82건 중 31건)에 그쳤다 (PMID 32702645).
지난 50년의 종양학 무작위 시험 2,109편을 모아 본 연구는 더 큰 그림을 준다. 평균적으로 전체생존의 위험은 12~14%, 무진행생존의 위험은 27~30% 줄었고, 두 치료 효과 사이의 상관은 중간 정도(r = 0.60, 95% CI 0.56–0.64)였다. 무작위로 뽑은 300편에서 중앙값 개선폭은 무진행생존 1.6개월, 전체생존 1.4개월이었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생존 개선 기준을 충족한 시험은 다섯 중 하나였다 (PMID 35777712).
암종에 따라 편차가 크다. 여포림프종에서는 연구 20편(10,724명)을 모은 결과 무진행생존과 전체생존의 상관계수가 0.383, 결정계수가 0.15(95% CI 0.002–0.35)에 그쳤다 — 생존 변동의 15%만 설명된다는 뜻이다 (PMID 38571449). 진행성 대장암에서는 무진행생존·진행까지의 시간·반응률 어느 것도 기준선을 넘지 못했고, 게다가 대리 지표에서 관측된 치료 효과가 생존에서보다 평균 13% 정도 컸다 (PMID 25863582).
반대로 잘 성립하는 자리도 있다. HER2 양성 조기 유방암의 보조요법 시험 8편(21,480명)에서는 무병생존과 전체생존의 개인 수준 상관이 0.90, 시험 수준 결정계수가 0.75(95% CI 0.50–1.00)로 나왔고, 저자들은 이 상황에서는 무병생존을 계속 대리 지표로 써도 된다고 결론지었다 (PMID 30709633). 같은 지표가 암종에 따라 통과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 이것이 조건성의 실제 모습이다.
한 전이성 전립선암 3상 시험(831명)의 사후 분석이 이 결을 잘 보여 준다. 영상학적 무진행생존은 전체생존과 강하게 상관했다(ρ ≥ 0.7). 그런데 같은 자료에서 무진행생존과 증상성 골격 사건까지의 시간의 상관은 약하거나 미미했고, 건강 관련 삶의 질 악화까지의 시간과의 상관도 미미~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PMID 39031642).
"진행이 늦춰졌다"는 것과 "환자가 뼈 통증을 덜 겪었다·삶의 질이 덜 나빠졌다"가 같은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대리 지표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결과에 대한 대리인지를 명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기 유방암의 선행(수술 전) 치료 시험에서는 병리학적 완전관해가 오랫동안 주요 종점으로 쓰였다. 수술로 떼어낸 조직에 암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니, 직관적으로 좋은 소식이다.
무작위 시험 54편(32,611명)을 모아 시험 수준 대리성을 계산한 연구의 답은 그렇지 않았다. 병리학적 완전관해에 대한 치료 효과와 무병생존에 대한 치료 효과의 결정계수는 0.14(95% CI 0.00–0.29), 전체생존에 대해서는 0.08(0.00–0.22)이었다. 완전관해의 정의를 어떻게 잡든, 실험군의 치료 종류가 무엇이든,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이 어떻든 결과는 비슷했다. 저자들은 규제 목적의 선행 치료 시험에서 이 지표를 주종점으로 쓰지 말 것을 권고한다 (PMID 34933868).
여기서도 개인 수준과 시험 수준의 구분이 살아 있다. 완전관해가 온 사람의 예후가 좋다는 것과, 완전관해를 더 많이 만든 치료가 생존을 더 늘린다는 것은 별개의 명제다.
운동 기반 재활에서 흔히 쓰는 종점이 운동능력이다. 최대산소섭취량이나 6분 보행검사가 그것이다.
심부전 환자의 운동 기반 심장재활 무작위 시험 31편(4,784명)을 모아 이 지표의 대리 타당성을 따진 메타분석이 있다. 먼저 확인된 것은 재활이 실제로 운동능력을 개선했다는 사실이다 — 최대산소섭취량 +3.10 mL/kg/min(95% CI 2.01–4.20), 6분 보행거리 +41.15 m(95% CI 16.68–65.63).
문제는 그다음이다. 운동능력 개선과 사망·입원 사이의 시험 수준 연관은 낮았다. 반면 건강 관련 삶의 질과의 연관은 중간 정도였다(r² < 52%, |ρ| < 0.72). 삶의 질 개선을 예측하는 대리 문턱은 최대산소섭취량 5 mL/kg/min, 6분 보행거리 80 m로 추정됐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 지표가 사망·입원의 대리로는 부실하고, 삶의 질의 대리로는 중간 정도의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PMID 29957192).
이 결과를 "재활이 소용없다"로 읽으면 정확히 거꾸로 읽는 것이다. 같은 연구가 재활의 운동능력 개선 효과 자체는 확인했다. 말하는 바는 운동능력이 좋아진 폭을 사망·입원 감소폭으로 환산해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각 논문이 임상 결과 자체에 대해 무엇을 보고했는지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대리성을 본다.
지질. 스타틴 계열의 위약·통상치료 대조 무작위 시험 20편(194,686명, 추적 중앙값 4.85년)을 모은 우산 리뷰가 있다. 이 분석에서 스타틴 치료는 모든 임상 결과를 유의하게 개선했다. 그 위에서 저자들이 따로 물은 것은 다른 질문이다 — 시험들 사이에서 LDL 콜레스테롤이 더 많이 떨어진 시험일수록 임상 결과가 더 많이 좋아졌는가. 이 시험 수준 연관은 약했다(결정계수 LDL 0~0.1, 비HDL 0~0.04). 저자들의 결론은 이 수치들이 환자 추적에 유용한 생체지표이되, 약물 시험에서 핵심 근거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MID 39999862).
이 구분을 놓치면 안 된다. 이 논문은 그 계열 약의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하는 것은 "수치가 이만큼 떨어졌으니 결과도 이만큼 좋아졌을 것"이라는 환산이다.
혈당. 심혈관 결과 시험 18편(161,156명)의 메타회귀에서, 치료군의 당화혈색소 감소폭과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비 감소 사이에는 연관이 있었다(β = −0.298, P = 0.007). 그런데 이 연관은 비치명적 뇌졸중 위험 감소가 전부 설명했고(시험 간 분산의 100%), 심부전 입원이나 전체 사망과는 연관이 없었다 (PMID 34663316). 시험 15편(138,250명)을 대상으로 한 앞선 분석도 같은 패턴이었다 (PMID 32250550).
강화 혈당 조절 자체를 본 시험 11편(51,469명)의 메타분석은 결과를 갈라 놓는다. 강화 치료는 비치명적 심근경색을 줄였고(위험비 0.84, 95% CI 0.75–0.94), 망막병증(0.85)과 신병증(0.71)도 줄였다. 반면 주요 심혈관 사건 전체로 보면 차이가 없었다(0.97, 0.92–1.03). 그리고 당화혈색소 감소폭과 결과들 사이의 메타회귀 연관은 방향은 있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PMID 38409644).
이 세 편을 함께 읽으면 나오는 결론은 "혈당 조절이 의미 없다"가 아니다. 어떤 결과에 대해서인지를 말하지 않은 채로 대리 지표를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지표가 미세혈관 결과에는 상당히 잘 대응하고 대혈관 결과의 일부에는 잘 대응하지 않는다.
혈압. 혈압은 흔히 타당한 대리 지표의 모범 사례로 불린다. 이 통념을 형식적으로 검증한 연구가 있다. 항고혈압 치료 시험 18편을 모아 뇌졸중에 대한 대리 문턱 효과를 계산했더니 수축기 7.1 mmHg, 이완기 2.4 mmHg였고, 시험 수준 연관은 각각 0.41과 0.64였다. 평가 도식에 넣었을 때 수축기 혈압은 B+, 이완기 혈압은 A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자료로 심혈관 사망과 전체 사망에 대해서는 대리 문턱 효과를 추정할 수 없었다. 심혈관 사망 쪽 문턱은 수축기 25 mmHg 근처까지 올라갔다 (PMID 22409774). 같은 대리 지표가 뇌졸중에는 A급이고 사망에는 등급을 매길 수조차 없었다는 것 — 대리성이 결과별로 매겨져야 한다는 말의 실물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널리 퍼진 오해다. 앞에서 본 사례들이 그대로 반례가 된다.
병리학적 완전관해가 늘어난 치료가 무병생존·전체생존을 그만큼 늘리지는 않았다(결정계수 0.14와 0.08) (PMID 34933868). 무진행생존에서 긍정적이었던 시험의 38%만이 생존 이득으로 이어졌다 (PMID 32702645). 그리고 부정맥이라는 지표가 확실히 좋아지는 동안 사망이 늘어난 일이 실제로 있었다 (PMID 8780325).
수치의 변화는 효과의 후보이지 효과의 증명이 아니다.
두 번째 오해가 실무에서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대리 지표가 어떤 질환·어떤 치료 계열에서 검증됐다고 해서, 다른 질환이나 다른 계열의 약에서도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는 보장은 없다.
대리성은 지표에 붙어 다니는 성질이 아니라 지표·질환·치료·결과의 조합에 붙는 성질이다.
복합 지표는 셋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구성요소의 임상적 중요도, 발생 빈도, 그리고 개입이 각각에 미친 효과 (PMID 32739473).
혈당 자료가 이 점검의 실물 예다. 주요 심혈관 사건은 보통 심혈관 사망·비치명적 심근경색·비치명적 뇌졸중을 묶은 복합 지표인데, 당화혈색소 감소와의 연관을 뜯어 보니 비치명적 뇌졸중이 시험 간 분산을 전부 설명했고 심부전 입원·전체 사망과는 연관이 없었다 (PMID 34663316, PMID 32250550). 강화 혈당 조절 시험들에서도 비치명적 심근경색은 줄었지만 복합 지표 전체로는 차이가 없었다 (PMID 38409644).
"복합 지표가 줄었다"는 문장만 읽으면 이런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구성요소가 움직였는지를 따로 읽는 것이 복합 지표를 읽는 법이다.
이 글이 대리 지표를 폐기하자는 이야기로 읽히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
천천히 진행하는 초희귀 신경질환을 다룬 최근 규제 검토는 문제를 이렇게 요약한다 — 사망이나 지속적 기능 저하 같은 확고한 임상 종점은 실현 가능한 시험 기간 안에서는 측정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체액·영상 생체지표가 개발을 앞당길 유일한 경로가 된다. 저자들은 기전적 개연성, 역학적 연관, 정량적 대리성 통계, 승인 후 확증 요건의 4단계 검증 모델을 제안하면서, 대리 지표의 타당성이 사용 맥락에 매여 있다는 점과 국가 간 기준이 갈라져 있다는 점을 구조적 공백으로 지목한다 (PMID 42525369).
근긴장성 이영양증 쪽도 같은 자리에 있다. 이 병은 천천히 진행하고 발현이 다양해서 무작위 시험을 합리적 기간 안에 설계하고 수행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질병 기전에 직접 연결되는 분자 수준 지표(RNA 스플라이싱 변화)를 "임상적 이득을 예측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종점으로 쓰자는 제안이 나왔고, 자연경과 자료가 이 지표와 근기능의 강한 상관을 뒷받침한다. 그러면서 저자들 스스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닫는다 —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이루어질 시험이 이 대리 지표의 타당성을, 그리고 이 지표의 교정이 의미 있는 임상 결과와 대응하는지를 확인해 주기를 바란다 (PMID 40808372).
대리 지표를 쓰는 쪽도 이것이 빌린 것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신속승인 제도의 논리는 명확하다. 대리 지표로 먼저 승인하고, 승인 후 확증 시험으로 실제 이득을 확인한다. 그 두 번째 절반이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본 자료들이 있다.
1992~2021년에 신속승인을 받았다가 정규 승인으로 전환된 미국의 항암제 적응증들을 2024년 12월까지 추적한 연구에서, 확증 시험 77건 중 전환 시점에 생존 이득을 보인 것은 25건(32%)이었고 52건(68%)은 대리 지표에 의존했다. 전환 이후 중앙값 5년을 더 추적했을 때 생존 이득이 새로 나타난 것은 7건(9%)이었다. 삶의 질 이득은 전환 시점에 9건(12%), 이후 4건(5%)이었다. 저자들의 결론은 전환 이후에 새로운 이득 근거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PMID 40690366).
시간표 쪽도 함께 봐야 공정하다. 1992~2024년의 항암제 신속승인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정규 승인 전환까지의 중앙 기간은 4.3년에서 2.3년으로, 철회까지의 기간은 9.5년에서 3.2년으로 줄었고, 승인 시점에 확증 연구가 이미 진행 중인 비율은 63%에서 85%로 늘었다 (PMID 40472969).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근거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미국·유럽 규제기관의 결정을 짝지어 비교한 연구에서, 신속 경로로 부과된 승인 후 의무 가운데 미국은 40%, 유럽은 61%가 지연된 상태였고(중앙 추적 7.25년), 미국 신속승인 후 확증 시험의 41%는 승인된 적응증과 다른 집단에서 수행되고 있었다 (PMID 33021339).
철회 이후의 국제적 어긋남도 있다. 미국에서 신속승인 후 철회된 항암제 적응증 23건을 조사한 연구에서, 유럽에도 허가를 신청했던 12건 중 10건(83%)이, 일본에 신청했던 7건은 7건 전부(100%)가 미국 철회 시점 이후에도 허가 상태로 남아 있었다. 미국 철회 시점부터 조사 종료일까지의 기간은 유럽 중앙값 1.28년, 일본 3.22년이었다 (PMID 38987923).
진료지침 쪽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2009~2018년에 신속승인을 받은 항암 적응증 62건을 미국의 주요 종양학 지침과 대조한 연구에서, 62건 모두가 지침에 권고로 올라 있었으나 신속승인 상태임이 표기된 것은 10건(16%)이었다. 확증 시험이 이득을 확인한 33건 중 27건(82%)은 권고가 유지되거나 근거 등급이 올라갔는데, 확증에 실패한 12건 중 권고가 삭제되거나 등급이 내려간 것은 5건(42%)이었다 (PMID 38596814).
가장 자주 인용되는 개별 사례는 산과에서 나왔다. 조산 재발을 막을 목적으로 쓰이던 한 주사제가 신속승인을 받았는데, 승인 8년 뒤에 완료된 확증 시험에서 35주 이전 분만은 11.0% 대 11.5%(상대위험 0.95, 95% CI 0.71–1.26), 신생아 복합 지표는 5.6% 대 5.0%(상대위험 1.12, 0.68–1.61)로 두 주요 결과 모두에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자문위원회는 9 대 7로 승인 철회를 권고했다 (PMID 33035472, PMID 32282587).
근이영양증 쪽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소년 1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관찰된 근육 단백질 수치의 매우 작은 증가가 "임상적 이득을 예측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기대된다"고 판정되어 승인이 이루어졌고, 같은 계열의 후속 약들이 같은 경로로 뒤따랐다. 규제기관이 정한 확증 시험 완료 기한은 지나갔고, 그 단백질 수치와 임상 결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PMID 37603868).
이 흐름을 더 크게 조망한 논문이 최근에 나왔다. 규제 근거의 형태를 셋으로 구분한 개념 논문인데, 두 편의 독립적 무작위 시험을 요구하던 체제에서 한 편으로 충분한 체제를 거쳐, 지금은 대리 지표·단일군 설계·외부 대조·실사용 근거·외삽에 기대는 "서사적 체제"로 이동해 왔다고 정리한다.
논문이 제시한 추정치는 이렇다 — 가정을 현실적으로 두었을 때 위양성 결론의 사후확률이 두 편 체제에서는 약 0.3%, 한 편 체제에서는 약 4~9%, 세 번째 체제에서는 15~20%를 넘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두 편 이상의 핵심 무작위 시험으로 뒷받침된 미국 승인의 비율은 1995~1997년 80.6%에서 2015~2017년 52.8%로 떨어졌다 (PMID 42580367).
이 논문의 결론은 신속 경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근거 체계를 유지하되 불확실성을 명시적으로 관리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근거의 세기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어려운 질문은 근거만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치료가 없는 병에서, 대리 지표로 지금 승인하고 확증을 기다릴 것인가, 확증될 때까지 기다리게 할 것인가. 앞의 선택은 효과가 없거나 해로울 수도 있는 치료를 쓰게 하고, 뒤의 선택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치료를 몇 년 늦춘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얼마나 급한 병인가, 대안이 있는가, 그 사람이 어떤 불확실성을 감수하려 하는가에 달려 있고, 이 저울에는 통계가 답하지 않는 칸이 있다.
이 딜레마에 대한 각 분야의 답도 아직 수렴하지 않았다. 신장 분야의 국제 학회가 최근 내놓은 연구 로드맵은 환자 보고 결과 지표의 사용 확대, 단일 생체지표 목표를 넘어서기, 위계적 복합 종점의 도입을 권고 목록의 앞자리에 놓았다. 권고 중 하나는 문장 그대로 "고립된 생체지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할 것"이다 (PMID 41033457). 방향은 있지만, 도착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하지 않는 일을 분명히 해 둔다. 이 글은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지 않는다. 여기 나온 숫자들은 전부 그 연구가 그 자료에서 그 시점에 관측한 값이고, 대부분은 개별 환자가 아니라 시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어떤 치료를 시작하거나 조정하는 일은 그 사람의 병, 위험, 대안, 지금까지의 경과를 아는 임상의와의 대화에 속한다 — 이 글이 다루는 범위 밖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할 수 있게 되는 일은 치료를 재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졌다"는 문장을 만났을 때 무엇이 좋아졌는지를 한 번 더 묻는 것이다. 그 질문 하나가 논문과 뉴스와 진료실 설명을 훨씬 정확하게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