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월 애치슨의 프레스클럽 연설과 하나의 전쟁 논리
도진순
한국사연구 · 2002 · 인용 3
애치슨 연설에서 핵심은 중국문제였으며, 아시아의 방어선 문제는 부차적이었다. 여기서 한국은 이중적으로 언급되었다. 즉 태평양의 전략적 방어선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제외된 지역에서는 최우선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요컨대 이 연설은 정연한 체계로 당시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을 기조로 하면서, 당시 중소간에 새로이 부상되었던 이슈(만주, 몽골, 신강 등)를 신속하게 포괄하는 정보력과 통착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설은 당시부터 크게 논란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핵심 내용은 연설 직전인 1월 10일과 11일 상원과 하원의 외교위원회에서 이미 장시간 논란된 것이었다. 당시 공화계 의원들이 비판한 핵심 중에 하나는 애치슨의 아시아전략이 맥아더 극동사령부와 사전에 의논한 것인가, 또는 일치하는가 여부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치슨이 언급한 방어선은 이전 맥아더의 그것과 같은 것인데, 왜 이러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일까? 1948년 12월 말 NSC 48/1, 2를 마련하고, 1월 5일 트루만의 대만 불개입정책 표명 이후, 미국 행정부의 대아시아정책에서 핵심 문제는 대만 불개입정책을 통한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었다. 이에 대해 친중 공화당의원들은 애치슨을 비롯한 행정부의 정책에 대단히 분노하였고, 트루만 행정부의 초당적 외교전략은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트루만이 대만 불개입정책을 표명한 직후, 맥아더는 이를 비판하는 새로운 공세적인 아시아 방어선 설정을 주장하였다. 그는 아시아를 유럽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확고한 반공정책을 강조하면서 극동에서 공산주의를 제압할 수 있는 명확한 저지선(definite line)을 다시 그을 것을 주장하였고, 당시 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는 전권대사 제섭에게도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저지책을 설득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