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전후 북한 게릴라의 활동과 성격
梁寧祚
Journal of Military History Studies · 2013
이 연구는 6·25전쟁 이전 북한 지도부 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북로당계가 남한 내 지구당 게릴라에 대해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었으며,그것이 남침 결행과 직접 관련이 있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전쟁 이전 북로당계와 남로당계는 무력통일론(국토완정론)에 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게릴라운용에 관한 군사전략 방침에 있어서는 큰 이견을 보이고 있었다. 박헌영 등 남로당계는 북한정권 내에서 자신의 입지와 관련하여 남한 내 지구당과 빨치산 활동에 대해 큰 기대를 두고 있었던 반면,전쟁계획을 주도한 김일성 등 북로당계는 정규작전에 의한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하되 일부의 비정규전 부대를 운용한다는 방침이었다. 김일성을 비롯하여 전쟁을 구상하고 주도한 북로당계의 입장은 정권수립 직후부터 남한 내 빨치산 활동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이었고,그러한 입장은 남파유격대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1949년 후반기부터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북로당계는 남한 내 지구당 활동을 지원하는데 대단히 소극적이었으며,북한군의 선제타격작전에 의한 전면남침 시 지구당 빨치산이 아니라 남파유격대,제766부대,제549부대 및 사단 내 유격대대 등의 역할에만 기대를 걸고 있었다.김일성은 남한 내 ‘20만 민중봉기론’에 대해서는 애당초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북로당계는 소련 군사고문단과 함께 전쟁을 계획할 때 남로당에서 제기한 ‘20만 민중봉기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실제 남침이 개시된 직후 ‘민중봉기’가 발생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김일성이 ‘민중봉기론’에 기대를 걸고 남침을 결행하게 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그러한 주장은 사후에 북로당계에서 남로당계를 정치적으로 숙청하기 위해 내걸었던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