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농사를 짓고 사람은 더 건강해졌나 — 뼈에 남은 흔적을 읽는 법
고병리학이 세운 통설, 그 통설을 세운 방법 자체를 겨눈 비판, 그리고 지역마다 갈린 답을 구분해서 본다.

Paperis 아티클
고병리학이 세운 통설, 그 통설을 세운 방법 자체를 겨눈 비판, 그리고 지역마다 갈린 답을 구분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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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고원의 마을 플란데산체스에서 1982년에 죽은 사람들의 유해가 법의인류학 자료로 남아 있다. 연구자들이 그 두개골을 고대 마야의 두개골과 나란히 놓고 같은 것을 셌다. 어릴 때 빈혈을 앓으면 머리뼈에 작은 구멍이 벌집처럼 남는데, 그 흔적이 얼마나 흔한지를 센 것이다.
결과의 방향이 거꾸로였다. 현대 과테말라 시골 아이들이 빈혈을 앓는 비율은 공중보건 자료로 이미 알려져 있었고, 플란데산체스 성인 두개골에 남은 흔적의 양은 그 비율과 잘 맞았다. 그런데 그 흔적은 고고학 표본에 비하면 매우 드물었다. 천 년도 더 전에 죽은 마야 사람들의 두개골에 오히려 흔적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DOI: 10.1525/aa.1998.100.4.924).
고대 마야 두개골에 이 흔적이 흔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고전기 마야의 영양 상태가 극히 나빴다는 증거로 인용돼 왔다. 저자들이 내놓은 설명은 다르다. 현대 쪽에서 성인 두개골의 흔적이 드문 것은 사망률이 높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 빈혈을 앓은 아이가 어른이 되지 못하면 흔적을 지닌 성인 두개골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들은 과거에는 빈혈을 앓고도 어른까지 산 아이가 지금보다 많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DOI: 10.1525/aa.1998.100.4.924).
이 논문이 흔든 것은 마야의 영양 상태가 아니다. 뼈에 병의 흔적이 많다는 것을 그 집단이 더 아팠다는 뜻으로 읽어도 되는가라는, 훨씬 넓은 자리다.
말을 하나 정하고 가자. 고병리학은 옛사람의 뼈와 이에 남은 흔적을 읽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을 앓았는지 추정하는 분야다. 부검이 아니라 수천 년 뒤에 남은 자국만 보고 진단서를 거꾸로 써 보는 일에 가깝다. 방금 본 마야 연구도, 이제 볼 통설도, 그 통설을 흔든 비판도 전부 이 분야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 위에 지난 40년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 하나가 서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건강은 나빠졌다."
이 문장이 언제 정리됐는지는 문헌에 남아 있다. 농경 전환 뒤의 신장 변화를 1984년 이후 연구들로 다시 검토한 종합은 출발점을 이렇게 적는다 — 1984년에 나온 『농업의 기원에서의 고병리학』에서 농경 전환을 겪은 21개 사회 중 19개에서 건강이 나빠지는 경향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같은 종합의 자기 결론도 같은 방향이다. 1984년 이후에도 그 경향은 유효하며, 대다수 연구가 농업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성인 키가 줄어드는 쪽을 보고했고, 그 감소는 유럽·아프리카·중동·아시아·남아메리카·북아메리카에 걸쳐, 농업을 언제 채택했는가와 무관하게 관찰됐다는 것이다 (PMID 21507735, 종합 검토).
이 글은 그 문장을 검사한다. 읽기 전에 두 가지. 첫째, 이 글은 "농경이 나빴다"를 전제로 깔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정반대 결과가 나온 자리가 여러 곳이고, 그 갈림 자체가 지금 합의된 내용의 일부다. 둘째, 여기 나오는 수치는 거의 전부 특정 표본의 값이다. 그래서 표본 크기와 유적 수를 문장마다 붙였다.
우크라이나 베르테바 동굴에서 나온 이 가운데 18.18%에 가로줄이 파여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앞서 살던 수렵·어로·채집민의 이에서는 그 비율이 1.88%였다. 사람 단위로 세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농경과 목축을 함께 하던 트리폴리예 사람들은 48.57%가 그런 줄을 최소 하나 가지고 있었고, 수렵·어로·채집민은 12.77%였다 (DOI: 10.26575/daj.v27i1-2.40, 최소 35명·단일 동굴 유적).
이 가로줄이 무엇인지부터. 에나멜 형성부전은 이가 만들어지던 어린 시절에 몸이 크게 앓으면 법랑질이 그만큼 얇게 깔려 이 표면에 가로줄로 남는 자국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가문 해에 좁아지는 것과 같아서, 언제 힘들었는지까지 순서대로 남는다. 법랑질은 한번 만들어지면 다시 고쳐 쓰이지 않아 그 기록이 지워지지 않는데, 이 성질을 정리한 검토는 그것을 "지워지지 않는 연대기적 기록"이라 부르면서 결정적인 한계도 같이 적는다. 이 결함들이 영양 부족과 감염의 국면과 관련돼 보이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인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DOI: 10.1002/ajpa.1330330506, 검토 논문).
이런 흔적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 있다. 골격 스트레스 지표는 굶주림이나 감염처럼 몸에 무리가 갔던 일이 뼈와 이에 남긴 흔적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 주지 않고 무슨 일이 있기는 했다는 것만 알려 주는, 이름 없는 영수증 같은 것이다.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흔적이 있다.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는 눈구멍의 천장뼈가 스펀지처럼 성글어지면서 작은 구멍이 촘촘히 뚫린 상태를 가리킨다. 피를 만드는 공장이 무리하게 돌아간 자리가 뼈에 벌집 자국으로 남은 셈이다. 같은 성질의 병변이 머리뼈 윗판에 생긴 것은 따로 포로틱 하이퍼오스토시스라 부르는데, 이 글에 나오는 여러 연구가 둘을 나란히 센다.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뼈에 남는다. 상부 구석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천~3만 3천 년 전부터 20세기까지 유럽 전역 1,842명의 팔다리뼈 강도를 시계열로 본 연구는, 넙다리뼈와 정강뼈의 앞뒤 방향 굽힘 강도가 신석기(약 4,000~7,000년 전)에 크게 떨어지기 시작해 철기·로마 시기(약 2,000년 전)까지 이어졌고 그 뒤로는 방향성 있는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한다. 팔뼈나 좌우 방향 강도에서는 그만한 감소가 없어, 저자들은 이 변화의 배후 행동 요인으로 이동량 감소를 지목한다. 다만 같은 논문이 곧바로 한정어를 붙인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어서 이후의 농업 집약화까지 이어졌고, 따라서 이 결과는 유럽에서 비교적 급격한 인구 전환이 정주화와 맞물렸다는 모형을 부분적으로만 지지한다 (DOI: 10.1073/pnas.1502932112).
여기까지가 통설이 세워진 방식이다. 서로 다른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 그 방향을 믿는다. 표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문제는 이 방법이 가정 하나를 조용히 깔고 있다는 데 있다.
유럽 33개 집단과 아메리카 19개 집단의 자료를 모아, 눈구멍 천장에 구멍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각각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비교한 연구가 있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온 37개 표본 중 21개에서, 미성년자를 분석에서 빼자 두 집단의 관계가 바뀌었다. 미성년자를 넣고 보면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가 있는 사람이 유의하게 더 짧게 살았다. 미성년자를 빼고 보면 그 관계가 유의하지 않게 되거나 아예 뒤집혔다 (DOI: 10.1002/ajpa.24091).
같은 흔적이, 누구를 표본에 넣느냐에 따라 "일찍 죽은 표시"가 되기도 하고 "오래 산 표시"가 되기도 한다.
이 문제에 이름이 있다. 골학적 역설은 뼈에 병의 흔적이 있는 사람이 더 아팠던 사람이 아니라 그 병을 얼마간 버텨 낸 사람일 수 있다는 문제를 말한다. 흉터가 많은 사람이 가장 위험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 일들을 겪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인 것과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뼈가 만들어지는 속도를 생각하면 쉽다. 뼈는 느리다. 감염이 뼈까지 내려가 자국을 남기려면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린다. 그러니 병에 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사람의 뼈는 깨끗하다. 덴마크의 두 중세 묘지를 이 관점에서 비교한 연구는 그 논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 역설에 따르면 병변을 보이는 뼈는 그 집단에서 오히려 건강한 축이고, 병변이 없는 뼈는 면역 반응이 억눌린 탓에 아무 자국도 얻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다 (DOI: 10.1002/ajpa.20233).
그리고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자리다. 그 덴마크 연구가 실제로 얻은 결과는 역설을 지지하지 않았다. 비교 대상은 나병 요양원에 딸린 묘지(네스트베드)와 그보다 형편이 나았던 평범한 중세 공동체의 묘지(애벨홀트)였다. 나병 요양원 쪽 아이들은 나이가 많은 미성년 구간에서 키가 더 작았고 뼈의 무기질 함량이 더 낮았으며, 평균적으로 스트레스 지표의 빈도가 더 높았고 일부는 나병의 골격 징후를 보였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것이 나쁜 건강과 사회적 불이익이 겹친 결과이며 따라서 더 전통적인 해석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DOI: 10.1002/ajpa.20233).
정리하면 이렇다. 골학적 역설은 "병변이 많으면 건강했다"는 반대 규칙이 아니다. 그것은 병변의 많고 적음만으로는 방향을 정할 수 없으니 표본마다 다시 물으라는 요구다. 어떤 표본에서는 전통적 해석이 그대로 맞는다.
그럼 어떻게 다시 묻는가. 방법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생존곡선 분석은 어떤 흔적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이 각각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갈라서 견주는 방법이다. 병변이 몇 개인지를 세는 대신, 그 병변을 가진 쪽이 먼저 죽었는지 늦게 죽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베트남 북부의 신석기 유적 만박에서 이 방법을 쓴 사례가 있다. 농경 전환기의 유적이고, 여기서는 괴혈병의 흔적을 봤다. 성인 26명 중 35%, 앞서 보고된 비성인 44명 중 80%에서 괴혈병으로 볼 만한 병변이 확인됐다. 그런데 성인의 병변은 거의 전부 아무는 중이 섞인 상태였다. 생존곡선을 그려 보니 15세 미만에서는 병변 유무에 따른 생존 차이가 없었고, 15세 이상에서는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났다. 저자들의 결론은 두 겹이다 — 괴혈병은 더 높은 연령대까지 사는 것을 상당히 줄였지만, 병변이 아물고 있었다는 사실은 괴혈병이 반드시 직접적인 사인이었던 것은 아니고 결국 치명적이 된 전체 질병 부담에 보탠 것임을 가리킨다 (PMID 39152997, 단일 유적·성인 26명).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 연구도 같은 자리에서 끝난다. 아이에게서 이 병변을 보는 것과 어른에게서 보는 것은 목표가 다른 두 가지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에게서는 지금 진행 중인 병변과 그에 딸린 사망 위험을 재고, 어른에게서는 어린 시절의 공격이 그 사람을 약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버텨 냈다는 표시인지를 가린다 (DOI: 10.1002/ajpa.24091).
지표와 실제 몸 상태가 개인 수준에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일본 조몬 시대 수렵채집민을 동서로 나눠 본 연구는, 서일본 쪽에서 가로줄의 빈도가 더 높았는데도 동서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키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개인 단위로 가로줄 유무와 키를 이은 관계는 기각됐고, 저자들이 내놓은 해석 하나는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 뒤에 따라잡기 성장이 일어났을 가능성이다. 결론 문장은 지표 전체에 대한 평가다 — 가로줄의 빈도는 전반적인 스트레스의 지수로는 쓸 만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몸에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까지는 예측하지 못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연구는 서일본 안에서는 시간이 지나며 키가 유의하게 줄었고, 저자들이 그것을 만성 감염·식이 스트레스 노출의 증가와 잇는다고 적는다 (DOI: 10.1002/ajhb.20756).
이것이 이 논쟁에 도착한 첫 번째 새 증거다. 새 유적이 아니라 기존 유적을 다시 읽는 법이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중석기·신석기 묘지 38곳을 모아 놓고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묘지에서 나온 유해 가운데 미성년자의 비율이 500~700년 사이에 20~30% 늘어난다. 같은 신호를 북아메리카의 묘지 62곳(지금으로부터 7,755년 전에서 350년 전 사이)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거기서는 600~800년에 걸쳐 같은 전환이 나타났다 (DOI: 10.1086/498948).
아이 뼈가 많아졌다는 것은 아이가 많이 죽었다는 뜻으로 먼저 읽힌다. 그런데 묘지 표본에서 그것은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수가 늘면 죽는 아이의 절대 수도 늘고, 묘지의 연령 구성이 어린 쪽으로 기운다.
이 신호에 이름이 붙어 있다. 신석기 인구 전환은 농경이 시작된 뒤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게 되면서 인구가 빠르게 불어난 현상을 가리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태어나는 수가 죽는 수를 앞질러서 늘어난 인구다. 이 신호를 정리한 논문은 그 크기를 여성 한 명당 출생 두 명 증가로 추정한다 (PMID 21798934, PMID 2쪽 분량의 종합 논평).
묘지 표본은 편향이 많은 자료라 이 신호 하나만으로는 불안하다. 그래서 전혀 다른 줄기와 맞대 봤다. 유적에서 나온 방사성탄소 연대를 전부 합쳐 확률 분포로 만들면 시대별 활동량의 대리 지표가 되는데, 이것과 묘지의 미성년 비율을 비교한 연구는 둘 사이에 유의한 상관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같은 논문의 결론에 한 문장이 더 붙어 있다. 농경 전환이 인구 성장을 극적으로 높였다는 가설은 지지되지만, 그 성장은 몇 세기 안에 전반적인 붕괴 패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 신석기의 더 높은 취락 밀도를 감안하고 나서도 그랬다 (PMID 25153481).
이 붕괴가 한 지역에서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본 사례가 있다. 세르비아에서 새로 얻은 200건이 넘는 방사성탄소 연대로 중부 발칸 초기 신석기(기원전 6250~5300년)를 재구성한 연구다. 기원전 6250년경 첫 농경민이 도착한 뒤 인구 대리 지표가 약 250년 늘었다가, 기원전 6000년부터 줄어 5800년경 최저를 찍었다. 다시 늘어 5600년까지 갔다가 급격히 떨어져 5500년경 또 최저를 찍었다. 저자들은 첫 증가가 높은 출산율과 이주가 함께 만든 것일 수 있고 두 번째는 출산율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 다음,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 인구 감소의 국면들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PMID 33250033).
그러면 남는 질문이 이것이다. 건강이 나빠졌는데 인구가 늘었다는 것이 어떻게 동시에 참일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뼈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물은 연구가 있다. 필리핀의 아그타 사람들은 야영지마다 정주 정도와 농경 참여 정도가 다르다. 연구진은 아그타 345명의 혈액 성분을 검사했다. 정주화가 진행될수록 바이러스 감염과 기생충 감염, 그리고 아동 사망률이 유의하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연령을 보정한 출산율과 전체 번식 성공도는 정주화와 경작 참여에 따라 높아졌다. 저자들이 붙인 이름은 양-질 맞교환이다. 어머니가 자식의 생존을 늘어난 출산과 맞바꾸어, 건강이 나빠지는 중에도 더 큰 번식 성공을 얻었다는 것이다 (PMID 27071109, 현생 집단 345명).
건강 악화와 인구 증가는 서로 모순이 아니다. 둘은 같은 맞교환의 양쪽 끝일 수 있다.
유럽의 뼈 자료에서도 이 틀과 어긋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몸 크기 3,007명, 긴뼈 견고성 2,150명, 탄소·질소 동위원소 30,937명, 방사성탄소 연대 60,197건을 한꺼번에 본 연구는, 초기 농경민의 인구 "붐"(약 8,500년 전)이 몸 크기의 감소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곧바로 지역차를 붙인다 — 북유럽과 남유럽의 몸 크기·식이 추세가 갈리는 것으로 보이고, 성장과 번식의 맞교환은 남쪽에서 더 뚜렷했다. 결론 문장은 유럽 초기 농경을 "맞교환의 복잡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이다 (PMID 42008683).
다만 인구 쪽 자료 전체가 한 방향으로 모이지는 않는다. 남부 레반트에서 나투프 수렵채집민 217구와 신석기 농경민 262구의 골격으로 생명표를 만든 연구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 정상인구를 가정했을 때 출생 시 기대수명이 24.6년에서 25.5년으로, 성인 평균 사망 연령이 31.2세에서 32.1세로 오히려 조금씩 올라갔다는 것이다. 같은 연구가 한 겹을 더 얹는다. 나투프에서는 성인 여성의 평균 사망 연령이 남성보다 높았는데 신석기에서는 그것이 뒤집혔고, 저자들이 내놓은 해석 하나는 출산율 상승과 함께 모성 사망이 늘었다는 것이다 (PMID 15252860).
여기서 정직하게 짚을 것이 있다. 이 연구가 쓴 "정상인구" 가정은 인구 규모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다. 그런데 이 절의 다른 연구들이 말하는 것은 이 시기에 인구가 빠르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숫자는 가정을 뗀 채로 인용하면 안 된다. 저자들 자신도 방향을 적어 뒀다 — 레반트에서 농경 채택이 인구 성장률을 실제로 높였다면 기대수명은 이 수치보다 극적으로 더 올라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PMID 15252860).
레반트에서 나투프 수렵채집민의 이 1,160개와 신석기 농경민의 이 804개를 같은 기준으로 셌다. 충치는 나투프 6.4%, 신석기 6.7%로 낮고 비슷했다. 치근단 병변은 양쪽 다 1.5%를 넘지 않았고, 생전에 빠진 이는 3.7%와 4.5%였다. 차이가 난 것은 다른 쪽이었다 — 나투프 사람들의 이가 더 많이 닳았고 치주질환이 더 흔했으며(36.4% 대 19%), 신석기 사람들은 치석이 더 많았다. 저자들의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레반트에서 수렵채집에서 식량 생산 경제로의 전환은, 이전에 믿어졌던 것과 달리 치아 건강의 변화를 불러오지 않았다. 나투프의 심한 마모는 섬유질 많은 식물, 절구와 공이가 음식에 들여보낸 돌가루, 이를 "세 번째 손"으로 쓰는 습관에서 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PMID 16353225).
같은 지역의 뼈도 단순한 답을 주지 않는다. 나투프 골격 200구와 신석기 골격 205구를 비교한 고병리 연구는, 신석기 쪽에서 감염성 질환을 가리키는 병변이 더 흔했고, 남성의 두개골 외상은 전반적으로 줄었으며, 퇴행성 관절 질환에는 시간에 따른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의 결론 문장은 이 편의 제목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다 — 남부 레반트에서 신석기 전환은 단순히 전반적인 건강 악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건강 프로필을 낳았다 (PMID 20564538).
유럽 중부로 가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온다. 독일 중부의 초기 신석기 유적 세 곳에서 나온 101명(기원전 약 5500~4800년)의 치아에서 성인의 68.3%에게 충치가 있었고 이 단위로는 10.3%가 썩어 있었다. 생전에 빠진 이까지 넣으면 이 값들은 약 3%씩 올라간다. 비성년자는 훨씬 낮아 개인 기준 18.4%, 이 기준 1.8%였고, 충치 개수는 나이와 유의한 상관을 보였지만 성별과는 아니었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상관이 없었던 쪽이다. 같은 사람들 중 83명의 뼈에서 잰 탄소·질소 동위원소는 잡식성 육상 식단을 가리켰고 충치 유병률과 상관을 보이지 않았다 (PMID 35565796, 단일 지역 101명).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동서가 갈렸다. 중부 유럽 최초의 신석기 문화인 선형토기문화(LBK) 집단 다섯 곳을 비교한 연구는, 서쪽 집단에서 포로틱 하이퍼오스토시스와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가 높은 빈도로 나타났고 그것이 더 낮은 동물성 단백질 섭취와 연관돼 있었다고 보고한다. 반대로 에나멜 형성부전은 동쪽 집단에서 더 자주 관찰됐고, 저자들은 이것이 젖떼기와 관련된 사회적 관행의 지역차에서 오는 소아기 질병·사망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PMID 27385276).
차이 자체가 나오지 않은 곳도 있다. 나가엣데르·메셰이크·기자, 그리고 아마도 엘아하이와에서 나온 219명의 유해로 선왕조기와 왕조기 이집트를 비교한 연구는 두 시기 사이에도 남녀 사이에도 유병률 차이를 찾지 못했고, 병변 분포의 가장 그럴듯한 설명으로 기생충 감염 모형을 제시한다 (PMID 31593210). 다만 이 비교의 양쪽은 수렵채집민과 농경민이 아니라 이미 농경을 하던 두 시기다. 멕시코 오아하카 계곡에서도 같았다. 유적 14곳의 유해를 비집약 농경기(기원전 1400~500년)와 집약 농경기(기원전 500년~기원후 1400년)로 묶어 골막 반응·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에나멜 형성부전을 비교했더니 어느 것에서도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유의수준 0.05). 저자들은 검정력 분석을 붙여 이 검정이 거짓 귀무가설을 기각할 확률이 높았다고 밝힌 뒤, 농업의 집약화가 이 계곡 선사 인구의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적는다 (DOI: 10.1002/ajpa.1330730305, 유적 14곳).
안데스 고지대에서는 예상이 뒤집혔다. 티티카카 분지 코파카바나 반도의 유적 일곱 곳(기원전 800년~기원후 200년)을 본 연구는 고도가 높으니 농경의 부담이 더 심했으리라는 예상을 검정했는데, 식이 관련 지표는 영양실조나 미량영양소 결핍을 지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교적 다양한 식단을 가리켰다. 질병 지표는 유의하게 변하지 않았지만 흔했다. 저자들은 식단은 양호했으나 경관에 대한 투자가 사람들을 위생과 질병 문제에 노출시켰다고 읽는다 (PMID 28251719, 유적 7곳).
지역만 갈린 것이 아니라 시점도 갈렸다. 남동 아라비아의 골격 표본 11개를 후기 신석기(약 기원전 4500~3100년), 하피트기(약 기원전 3100~2700년), 움알나르기(약 기원전 2700~2000년)로 나눠 구강 상태를 본 연구가 있다. 신석기 해안 집단은 마모가 심하고 치석과 가로줄이 많고 치주질환이 잦았지만 충치는 아예 하나도 없었다. 하피트기에도 충치는 없었다. 충치와 치근단 병변과 생전 치아 상실이 유의하게 늘어난 것은 움알나르기부터였다. 저자들의 결론은 명시적이다 — 농경이 구강 건강에 미친 영향은 움알나르기에 와서야 분명하게 나타나며, 해안보다 내륙에서 더 강하다 (PMID 28877343).
동남아시아에서는 방향이 다시 통설 쪽으로 돌아왔다. 태국과 베트남의 성인 치아 시리즈 일곱 개를 다시 분석한 연구는 신석기에 구강 질환 비율이 높았다가 청동기·철기에 뚜렷하게 개선되는 패턴을 봤고, 거의 모든 표본에서 여성의 충치와 생전 치아 상실이 남성보다 높았다. 저자들은 이 지역에서 농경의 채택·집약화와 함께 구강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동남아 고고인류학계의 통념이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다고 적고, 쌀의 낮은 우식 유발성, 여성(특히 임신기)의 생리적 취약성, 신석기 인구 전환 모형의 예측 셋을 근거로 삼아 단 하나의 설명을 내놓는다 — 신석기에 출산율이 올랐다가 뒤이은 청동기·철기에 다시 내려갔다는 것이다 (PMID 24000119).
같은 논리를 일본에 적용하면 또 갈린다. 벼농사에 의존한 야요이 시대(약 2,500년 전부터 기원후 300년까지) 사람들의 충치 빈도를 조몬 수렵채집민과 비교한 연구는 남부 혼슈의 농경민만이 다른 모든 표본과 유의하게 달랐다고 보고한다. 다네가시마와 북부 규슈의 야요이 사람들은 조몬 수렵채집민과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쌀이 조몬 사람들이 먹던 것들보다 더 우식을 잘 일으키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식을 일으키는 음식이기는 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PMID 17935154).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전환이라고 부를 사건 자체가 없었다. 북동 발트해 지역의 기원전 3천년기를 동물뼈·식물유체·동위원소·토기 지질잔존물로 함께 본 연구의 결론 문장은 단정적이다 — 기원전 3천년기 북동 발트에는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전환이 없었다. 대신 지역 수렵어로채집민이 수렵채집 생활을 계속하고 들어온 농경민이 혼합 경제를 실천하는 "평행 세계"가 있었고, 두 생계 전략은 처음 만난 뒤로도 최소 1천 년 동안 나란히 이어졌다 (PMID 37800159).
이쯤 되면 원인 변수 자체를 의심하는 주장도 나온다. 정주·공유·집합과 건강의 관계를 다룬 한 논고는 이렇게 제안한다. 식단, 특히 농경은 질병의 확산과 지속에서 흔히 돌려지는 것보다 훨씬 작은 역할을 했고, 대신 집합이 훨씬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과거와 현재의 수렵채집민에게서도, 정주와 결합될 때 특히 그랬다는 것이다 (DOI: 10.3828/bfarm.2003.3.1, 논증적 제안). 이것이 맞다면 설명은 "농사를 지어서"가 아니라 "모여 살아서"가 된다.
한 유적을 오래 들여다본 사례가 이 방향과 겹친다. 튀르키예 중남부의 신석기 대유적 차탈회위크(기원전 7100~5950년)의 인골을 종합한 연구는, 거의 12세기에 걸친 이 정착지에서 거주민에게 드는 비용이 커졌다고 정리한다 — 길들인 식물성 탄수화물에 대한 의존과 생산에 따른 질병 노출·노동 요구의 상승, 높아진 출산율이 떠받친 인구 규모와 밀도의 증가, 가축 방목과 자원 획득에 필요한 노동량·이동량의 증가다 (PMID 31209020, 단일 유적).
유럽의 뼈 167구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읽은 연구가 있다. 긴뼈로 잰 실제 키, 그리고 같은 사람의 게놈이 예측하는 키다. 기간은 상부 구석기부터 철기까지, 지금으로부터 약 38,000~2,400년 전이다. 둘의 차이를 보면 "작게 타고났다"와 "자라는 동안 덜 자랐다"를 가를 수 있다.
결과는 이렇다. 신석기 개인들은 자기 유전적 예측치보다 작았고, 그 부족분은 상부 구석기·중석기 개인들에 견줘 평균 −3.82 cm(P = 0.040), 신석기 이후 개인들에 견줘 −2.21 cm(P = 0.068)였다. 신석기를 기준으로 그 차이는 동기 +1.95 cm, 청동기 +2.70 cm, 철기 +3.27 cm로 꾸준히 회복됐다. 그런데 같은 논문이 바로 이어서 한정어를 붙인다. 게놈 전체의 조상 성분 변이까지 함께 보정하면 이 결과들은 약해진다 — 이를테면 신석기 개인들은 신석기 이전 개인들보다 평균 −2.82 cm 작았고, 이때 P = 0.120이다 (PMID 35389750, 개인 167명). 방향은 같지만 통계적 확신은 떨어진다. 이 편에서 가장 하중이 큰 수치이므로 두 값은 항상 붙여서 읽어야 한다.
고대 DNA — 수천 년 된 뼈에서 뽑아낸 유전 정보 — 가 가져온 것이 정확히 이런 종류다. 뼈만 보면 "나빠졌다/아니다"의 말싸움이 되던 자리에 원인을 나눠 볼 수 있는 축이 생겼다.
그 축으로 보면 뜻밖의 시간표가 나온다. 유럽 1만 년 치, 개인 1,291명의 게놈에서 빈도가 빠르게 변한 유전자 자리 25곳을 찾은 연구는, 신석기에 특이적인 신호가 체중·식이·지질 대사 관련 형질과 면역 형질에 걸쳐 있다고 보고한다. 그중에는 살모넬라 감염에 대한 면역을 주는 자리가 있는데, 고대 살모넬라 게놈이 사람 숙주에 적응한 것으로 밝혀진 바로 그 시기다. 같은 연구는 신석기에 체중을 낮추는 변이 쪽으로 선택이 작용했다고 적는다 (PMID 36052370).
그런데 "선택이 언제 일했나"를 정면으로 물으면 답이 신석기에서 미끄러진다. 고대·현대 유럽인 게놈 2,879개로 지난 1만 년의 선택을 추정한 연구는 이렇게 적는다 — 유전적 적응의 대부분은 청동기가 시작된 뒤, 4,500년 전 이내에 일어났고, 숙주-병원체 상호작용 관련 유전자에 몰려 있었다. 같은 연구는 병원체 적응의 대가로 신석기 이후 유럽인에게서 염증성 질환의 위험이 높아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PMID 36819665).
식이 적응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던 자리도 흔들렸다. 지질 대사에 관여하는 한 유전자 자리를 고대·현대 DNA로 검정한 연구는, 그 변이형이 약 8,500년 전 초기 신석기 농경 집단에 의해 들어왔지만 그 집단들에서 강한 선택을 받지는 않았다고 보고한다. 유당분해효소 자리도, 농경 적응 후보로 함께 거론되던 또 다른 자리도 훨씬 뒤 어쩌면 청동기에 가서야 강하게 선택됐다는 것이다. 침으로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의 복제수 증가는 농경과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농경 전환보다 앞선다 (PMID 30272210). 여기서 문헌이 갈린다. 고대 게놈 1,600개가 넘는 자료로 선택 지형을 모형화한 다른 연구는 그 지질 대사 자리의 선택이 기존 보고보다 더 일찍 시작됐다고 적고, 유당분해효소 자리 근처의 선택은 그 지속 대립유전자의 등장보다 수천 년 앞선다고 보고한다 (PMID 38200293). 같은 유전자 자리를 놓고 두 연구가 다른 시점을 말하고 있다. 이 대목은 아직 합의가 아니다.
감염 쪽 시간표도 단순하지 않다. 옛 인골의 결핵 증거를 정리한 검토는 현존 자료가 첫 번째 역학 전환, 즉 신석기 농경과 정주 취락이 결핵의 증가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고 적는다. 다만 같은 검토가 곧바로 표본 편향을 적는다 — 결핵 증거는 대부분 북반구, 특히 후기 중세 유럽의 골격에서 나오고,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의 많은 지역에는 증거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PMID 25802030, 검토 논문). 유전자로 잰 압력은 더 늦은 시점을 가리킨다. 결핵 취약성과 연결된 한 변이를 고대 게놈 1,013개로 추적한 연구는, 이 변이가 약 30,000년 전 서유라시아인의 공통 조상에게서 기원했고 청동기 이후 빈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보고한다. 그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 시작된 강한 음성 선택이고, 동형접합자의 상대 적합도 감소는 20%로 인간 게놈에서 가장 큰 축에 든다 (PMID 33667394).
농경이 사람을 밀집시키고 가축과 붙여 놓았고 그 조건이 병원체에 유리하다는 것은 여러 줄기가 함께 가리킨다. 신석기에 특이적인 선택 신호 자체도 보고돼 있다 — 체중·식이·지질 대사 관련 형질에 걸린 신호가 그것이다 (PMID 36052370). 그러나 유전적 적응의 대부분이 일어난 시점은 농경의 시작이 아니라 청동기가 시작된 뒤다 (PMID 36819665).
묘지에서 센 미성년자의 비율과 유적에서 모은 방사성탄소 연대는 서로 다른 자료인데 같은 곡선을 그렸다. 여러 줄기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킨 항목은 이것 하나뿐이다 — 농경 뒤에 인구는 늘었다 (DOI: 10.1086/498948; PMID 25153481).
나머지는 한 연구씩이다. 유럽 표본 1,842명에서 다리뼈의 앞뒤 굽힘 강도가 신석기부터 철기·로마 시기까지 줄었고, 저자들은 그 변화의 배후 행동 요인으로 이동량 감소를 지목했다 (DOI: 10.1073/pnas.1502932112). 다만 이것을 "농경민은 덜 움직였다"로 넓힐 수는 없다 — 차탈회위크에서는 가축 방목과 자원 획득에 필요한 이동량의 증가가 보고된다 (PMID 31209020, 단일 유적). 그리고 한 연구가 유럽 신석기인이 자기 유전적 예측보다 작았다고 보고했는데, 조상 성분을 함께 보정하면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약해진다는 단서가 붙는다 (PMID 35389750, 개인 167명).
확정되지 않은 것이 그보다 많다. 아래는 그 목록 전체가 아니라 이 글이 실제로 인용한 자리만 꼽은 것이다.
첫째, "농경 = 건강 악화"라는 전 지구적 일반문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 남부 레반트에서는 치아 건강이 바뀌지 않았고 (PMID 16353225), 오아하카에서는 집약화가 해로운 영향을 남기지 않았으며 (DOI: 10.1002/ajpa.1330730305), 이집트에서는 이미 농경을 하던 선왕조기와 왕조기 사이에 차이가 없었고 (PMID 31593210), 티티카카에서는 영양 지표가 정상이었다 (PMID 28251719). 남동 아라비아에서는 영향이 나타나기까지 1천 년 이상이 걸렸고 (PMID 28877343), 북동 발트에서는 전환이라 부를 사건 자체가 없었다 (PMID 37800159).
둘째, 인구가 왜 다시 줄었는지는 모른다. 발칸 자료를 쓴 저자들이 직접 그렇게 적었다 (PMID 33250033).
셋째, 자연선택이 언제 일했는지가 갈린다. 지질 대사와 관련된 그 유전자 자리를 놓고 두 연구가 서로 다른 시점을 말한다 (PMID 30272210; PMID 38200293).
넷째, 유당분해효소 지속이 왜 퍼졌는지도 미결이다. 일조량이 높아 비타민D·칼슘 결핍을 예상하기 어려운 후기 신석기 이베리아인 8명에서 판독에 성공한 전원이 파생 대립유전자를 갖지 않았고, 여기에 프랑스 신석기 자료 재분석과 시뮬레이션을 더해 저자들은 칼슘 흡수 가설만으로는 유럽에서의 확산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고 결론지었다 (PMID 24448642, 개인 8명 + 프랑스 자료 재분석·시뮬레이션). 반면 세계 빈도 자료와 시뮬레이션을 함께 쓴 연구는 선택 압력이 위도에 따라 커지는 양상이 칼슘 흡수 가설과 매우 잘 맞는다고 적으면서, 신석기 확산의 최전선에 이미 양성 선택된 유당분해효소 유전자가 실려 있었다면 유전자-문화 공진화 가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DOI: 10.1371/journal.pone.0006369). 앞서 본 1,291명 게놈 연구는 유당분해효소 지속이 효율적인 칼슘 흡수를 위한 소수 유전자 적응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PMID 36052370).
다섯째, 병변 하나의 의미는 여전히 표본마다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되물음이 항상 전통적 해석을 뒤집는 것도 아니다 — 덴마크의 두 중세 묘지에서는 뒤집히지 않았다 (DOI: 10.1002/ajpa.20233).
「농사를 짓고 사람은 더 건강해졌나」는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답할 수 있는 것은 조건이 붙은 질문들이다. 어느 지역에서. 레반트와 동남아시아가 다른 답을 냈다. 언제부터. 남동 아라비아에서는 농경이 시작되고 한참 지나서야 이가 썩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같은 집단 안에서 여성의 생전 치아 상실이 남성보다 높았고, 남부 레반트에서는 성인 평균 사망 연령의 남녀 순서가 뒤집혔다. 무엇을 기준으로. 키와 출산율은 같은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 편의 축이었던 문제가 마지막에 남는다. 뼈에 병의 흔적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팠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프고도 얼마간 버텼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을 가르는 것은 흔적의 개수가 아니라 그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 몇 살까지 살았는가다. 만박의 괴혈병에서 15세를 경계로 답이 달라졌듯이,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에서 미성년자를 넣느냐 빼느냐로 관계가 유의하지 않게 되거나 뒤집혔듯이.
그러니 지난 40년 동안 이 분야가 실제로 한 일은 답을 뒤집은 것이 아니다. 질문을 하나 더 얹은 것이다 — 이 흔적을 남긴 사람은 죽어 가던 사람인가, 살아남던 사람인가. 그 질문을 얹고 나서야 "인구는 늘었는데 몸은 작아졌다" 같은 문장이 모순이 아니게 된다. 늘어난 것과 줄어든 것이 같은 맞교환의 양쪽 끝이었다는 해석은 지금 살아 있는 수렵채집 집단에서도, 유럽의 1만 5천 년 치 뼈 자료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제안돼 있다.
농경이 사람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좋아졌다와 나빠졌다의 저울로 계량되지 않는다. 저울이 잘못된 도구였다.
표본 크기·유적 수·검토 논문 여부는 본문에서 그때마다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