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전통이라는 말은 헌법 앞에서 어디까지 통하는가 — 2005년 호주제 결정이 실제로 다툰 것
호주제를 무너뜨린 결정문에 가장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낱말은 "전통"이었고, 양쪽이 그 단어를 함께 들고 있었다

Paperis 아티클
호주제를 무너뜨린 결정문에 가장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낱말은 "전통"이었고, 양쪽이 그 단어를 함께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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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한 아내는 남편의 가(家)에 올랐다. 여기서 가란 집을 뜻하는 한자다. 태어난 자녀는 아버지의 가에 올랐다. 그 가의 맨 위에는 호주라는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는 직계비속남자를 통해 이어졌다. 호주제는 집안마다 호주라는 대표 자리를 두고, 가(家)라는 단위를 만들어 그 단위를 아들 쪽으로 대대로 물려주게 한 제도다.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의 골격을 이루는 민법 조항들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헌법불합치는 그 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하면서도 효력을 당장 없애지는 않고, 국회가 고칠 때까지 한동안 그대로 쓰게 하는 결정이다. 호주제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이 결정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다툼의 중심에 있던 것은 가족제도가 아니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결정문에서 가장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낱말은 "전통"이다. 전문을 세어 보면 '전통'은 83번 나오고, 다수의견 구간에 28번, 소수의견 구간에 55번으로 양쪽 심사 전체에 퍼져 있다. 따로 떼어 둔 항목이 아니라 결정문을 관통하는 말이다. 이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쪽도, 없애야 한다는 쪽도 같은 단어를 들고 있었다. 이 글은 그 단어를 두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라간다.
먼저 두 가지만. 첫째, 이 글의 원전은 논문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문 전문(全文)이다. 공식 텍스트인 결정요지와 전문을 함께 읽었고, 인용마다 어느 쪽에서 왔는지 표시했다. 결정문에서 가져온 문장은 사건번호로 표시했고, 뜻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도록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 둘째, 이 주제를 다룬 우리가 닿을 수 있는 2차 문헌은 두껍지 않다. 한국 법학 문헌의 상당수가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짧고, 근거가 없는 자리에서는 "여기까지가 확인된 것"이라고 적고 멈춘다.
법원이 헌법재판소로 보낸 조항은 민법 제778조와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이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재판을 하던 법원이 그 재판에 쓰는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 것 같다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요청하는 절차다. 헌법재판소는 여기에 처의 부가(夫家)입적을 규정한 민법 제826조 제3항까지 스스로 끌어와 함께 심리했다. 이유는 결정문에 적혀 있다 — "호주제의 위헌 여부라는 중요한 헌법문제의 보다 완전한 해명을 위하여"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부가입적은 혼인한 아내를 남편의 가(夫家)에, 태어난 자녀를 아버지의 가(父家)에 올리도록 정한 것이다. 결정문도 둘을 다른 한자로 구별해 쓴다. 심판대상이 된 것은 자녀의 성(姓)이 아니라 어느 가에 오르는가였다.
세 조항이 함께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문은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가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요지). 여기서 남계혈통이란 부계혈통주의를 가리킨다. 부계혈통주의는 자격을 아버지 쪽 핏줄로만 따지고 어머니 쪽은 보충으로만 보는 원칙이다.
같은 문단에서 결정문은 오해 하나를 미리 막는다. 호주제는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여 이를 호주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호주를 기준으로 호적을 편제하는 제도는 아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그래서 차별이 걸리는 자리도 셋으로 특정된다. 결정문은 호주제를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누가 호주가 되는가, 혼인하면 어느 가로 가는가, 태어난 아이는 어느 가에 오르는가. 세 자리 모두에서 남녀가 갈렸다.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재판관 김영일과 권성은 반대의견을 냈다. 요약해 버리면 안 되는 종류의 글이다.
반대의견은 현행법상의 호주제가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제도가 "일제 잔재로서의 색채를 불식하고 우리 고유의 관습으로 복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요지).
핵심 논거는 그다음이다. 혼인과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은 전통성·보수성·윤리성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헌법 규정을 해석할 때도 그 전통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 가족법의 영역에서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함부로 재단함으로써 전통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아니되는바"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요지).
사실 판단에서도 반대의견은 다수의견과 갈렸다. 처와 자의 부가입적 원칙, 호주승계제도는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현실에 기초한 것일 뿐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고, 신분관계가 일방적으로 형성되는 측면이 있더라도 "임의분가, 호주승계권의 포기 등 이를 완화하는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요지).
반대의견은 하나가 아니었다. 재판관 김효종은 따로 반대의견을 냈고, 반대의 범위가 달랐다. 그는 자녀와 아내의 입적을 정한 조항에 관하여는 "위헌이라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하지만" 가(家)와 호주라는 개념 자체를 둔 민법 제778조에 관하여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반대의견 원문). 그의 논거는 실무적이다 — "호주제의 양성차별적 요소는 민법 제984조 등 위헌성이 있는 관련 개별규정의 효력을 상실시키거나 입법적 개선이 이루어지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요지). 제도를 통째로 무너뜨리지 않고도 차별만 걷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앞의 반대의견을 쓴 두 사람 중 하나도 한 조항에서 갈렸다. 결정문은 이 결정에 두 반대의견 말고 "재판관 김영일의 위 반대의견에 대한 별개의견"이 함께 있다고 밝힌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별개의견은 결론은 같은 쪽에 서면서 이유가 다르거나, 이 사건처럼 일부 조항에서 갈릴 때 따로 밝히는 의견이다. 김영일은 민법 제778조와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면서, 법원이 제청한 두 조항 가운데 자의 부가입적을 정한 쪽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었다 — "자의 부가입적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그 원칙 자체가 위헌은 아니나 원칙에 대한 예외의 협소한 설정으로 개인의 존엄 및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어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별개의견 원문). 이혼한 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해도 자녀는 아버지의 호적에 남고 어머니는 "주민등록상의 동거인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 그가 든 예다.
반대의 자리는 조항마다 달랐다. 제청된 두 조항 가운데 자의 부가입적 조항에 대해서는 김효종과 김영일이 서로 다른 이유로 위헌 쪽에 섰고, 그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재판관은 권성 한 사람만 남는다. 반대의견이 이 제도를 마지막까지 지탱한 논리인 것은 맞지만, 그 진영은 결정문 안에서 이미 갈려 있었다.
"헌법은 국가사회의 최고규범이므로 가족제도가 비록 역사적ㆍ사회적 산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의 우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 다수의견은 여기서 시작한다. 가족법이 헌법이념의 실현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고착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그다음이 이 결정의 심장이다. 다수의견은 헌법 전문과 헌법 제9조가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를 이렇게 다시 읽는다 —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서 헌법의 가치질서,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정신 등을 고려하여 오늘날의 의미로 포착하여야 하며",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전통문화에서는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그리고 결론이 한 문장으로 떨어진다. "전래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제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이 문장이 하는 일을 정확히 봐야 한다. 이것은 전통을 부정하는 문장이 아니다. 전통이라는 말을 헌법 안에서 쓰려면 그 내용을 오늘의 기준으로 다시 물어야 한다는 문장이다. 전통은 심사에서 면제되는 카드가 아니라, 심사를 받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에 다수의견은 이름을 따로 붙였다 — "역사적 전승으로서 오늘의 헌법이념에 반하는 것은 헌법 전문에서 타파의 대상으로 선언한 ‘사회적 폐습’이 될 수 있을지언정 헌법 제9조가 ‘계승ㆍ발전’시키라고 한 전통문화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같은 결정문이 이 점을 스스로 밝힌 대목도 있다. 다수의견은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다수의견이 사실로 든 근거는 가족의 실제 모양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결정문은 가족의 형태가 "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재혼부부와 그들의 전혼소생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등으로 매우 다변화"되었고, "여성의 경제력 향상, 이혼율 증가 등으로 여성이 가구주로서 가장의 역할을 맡는 비율이 점증하고 있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다수의견 어디에도 호주제가 일제의 것인지 우리 고유의 것인지를 판정한 대목은 없다. 결정문 전문에서 다수의견이 끝나는 자리까지 읽어도 '일제'라는 말도 '우리 고유의 관습'이라는 말도 다수의견 안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두 표현이 나오는 곳은 반대의견 쪽이다. 다수의견이 그 자리에 대신 적은 것은 이것이다 —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우리 민족 전래의 가족제도임을 인정하고, 호주제가 그러한 가족제도와 일정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가정하더라도 호주제가 성립ㆍ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결정문 전문).
가정법이다. 일제 것이냐 우리 것이냐는 축에서만 전제를 그대로 받은 가정법이다 — 전래의 가족제도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호주제가 거기에 이어져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결론은 같다고 적었다. 다수의견은 반대의견이 주장한 기원 — 우리 고유의 전통 — 을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받은 뒤 넘어갔다. 이건 회피가 아니라 설계에 가깝다. 앞 절에서 세운 판단 방식을 쓰면 기원 논쟁을 이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원 논쟁 자체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가 확인한 2차 문헌 중 이 제도의 기원을 직접 다룬 것은 한 편이다. 그 문헌은 호주제가 일제강점기에 제도화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에서 강화되었다고 서술하며, 남성 호주를 가족의 법적 대표로 지정한 이 제도가 가부장적 권위를 제도 안에 심고 여성의 법적 개별성을 제한했다고 본다 (DOI: 10.5772/intechopen.1013207, 단행본 장·논의).
다만 "오래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별개의 실증이 있다. 20세기 이전 천 년 넘게 한국에는 호적이라는 등록 제도가 있었고, 조선의 호적은 각 호(戶) 대표자의 신분을 납세하는 상민인지, 면세되는 양반인지, 천민인지로 적어 각 지역의 세습적 신분 구분을 강화했으며, 조세와 역의 부담도 그 장부가 정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제도는 20세기로 넘어가는 불과 몇 해 만에 전면적으로 재조직되었다 (DOI: 10.1017/s0026749x04001106, 역사 실증연구). 이 연구는 호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다루는 것은 그 앞에 있던 호적이라는 장부다. "오래된 등록 제도가 있었다"는 명제와 "오늘의 호주제가 그것을 이어받았다"는 명제는 같은 명제가 아니다.
2000년 8월 31일, 헌법재판소는 국적법 조항 하나를 두고 결정을 냈다. 옛 국적법은 출생에 의한 국적 취득에서 부계혈통주의를 택하고 있었는데, 헌재는 그 조항이 "출생한 당시의 자녀의 국적을 부의 국적에만 맞추고 모의 국적은 단지 보충적인 의미만을 부여하는 차별"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헌법재판소 97헌가12). 그리고 "전체 가족의 국적을 가부(家父)에만 연결시키고 있는 구법조항은 헌법 제36조 제1항이 규정한 “가족생활에 있어서의 양성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97헌가12).
여기서 잘라 내면 안 되는 대목이 있다. 그 옛 조항 자체는 위헌으로 선고되지 않았다. 국적법이 이미 부모양계혈통주의로 개정되어 1998년 6월 14일부터는 새 법을 적용해야 했기 때문에, 헌재는 옛 조항이 "이 심판 계속 중 재판의 전제성을 상실하여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97헌가12). 헌재는 지금 진행 중인 재판의 결론이 그 조항에 달려 있을 때에만 판단할 수 있는데, 그 조건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위헌 판단이 내려진 것은 경과규정이었다. 새 법은 옛 조항 때문에 국적을 얻지 못했던 한국인 어머니의 자녀 가운데 새 법 시행 전 10년 동안에 태어난 사람에게만 국적 취득의 길을 열어 두었는데, 헌재는 시행 당시의 연령이 10세가 되는지 여부는 "헌법상 적정한 기준이 아닌 또 다른 차별취급"이라고 보았다 (헌법재판소 97헌가12). 그리고 이 부칙조항 중 "10년 동안에" 부분이 헌법불합치로 선고되었다. 그것마저 곧바로 없애면 그나마 열려 있던 국적 취득의 근거가 사라져 "법치국가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97헌가12).
법정 밖의 궤적도 짧지 않다. 2005년의 가족법 개정과 호주제 폐지를 지역·국가·국제 층위에서 분석한 연구는, 1948년 헌법이 성평등과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는데도 가족법은 남성 중심적이고 차별적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가족법 개정을 위한 오십 년의 싸움이 보여 주는 것은 부계 중심의 가족 위계가 단지 '낡은' 가치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채 계속 실천되어 온 것이라는 점이라고 적는다. 초기에는 여성단체를 세우고 입법자에게 청원하는 방식이었고, 1970년대 초부터 풀뿌리 동원이 이어졌으며,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지역 수준에서 폐지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자라났고, 같은 시기 정부는 국제 조약에 서명하며 국제 규범에 맞춰 갔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가 호주제 폐지를 표결했다 (DOI: 10.1163/156805810x517670, 사례 분석연구).
결정문의 문장과 이 서술은 서로를 받친다. 헌재도 "우리 헌법은 제정 당시부터 특별히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했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조항은 처음부터 있었고, 제도가 바뀌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그 반세기를 채운 조직들에 대한 실증도 있다. 2000년 11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여성단체를 상대로 한 우편 설문을 분석한 연구는, 급진적 조직과 개혁적 조직이 서로 다른 자원·전략·지지 기반·전술을 가지고 움직였음을 확인하고, 민주화가 여성들의 불만을 집합적 행동 역량으로 바꾼 조직의 수적 증가를 가져왔다고 결론짓는다 (DOI: 10.1111/j.1540-6237.2007.00499.x, 설문 실증연구). 더 이른 자리에는 1956년에 만들어진 가정법률상담소가 있다 (DOI: 10.32380/alrj.v0i0.1675, 기관 소개 기사).
다수의견이 이유를 맺는 대목은 이렇게 끝난다. 심판대상조항들이 위헌으로 되면 호주제는 존속하기 어렵고, 그러면 호주를 기준으로 가별로 편제하도록 되어 있는 호적법이 그대로 시행되기 어려워 "신분관계를 공시ㆍ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중대한 공백"이 생기므로, "호주제를 전제하지 않는 새로운 호적체계로 호적법을 개정할 때까지" 그 조항들을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하게 하기 위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1헌가9).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곤란해지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선택에는 값이 따른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을 국회가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낙태 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 2020년 12월 31일이라는 입법 시한을 정했는데, 국회는 시한이 지난 뒤에도 개정 입법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낙태에 관한 규율이 없는 법적 공백이 2026년 3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논문의 저자는 그 공백에서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사실상 무력해졌고 여성의 자기결정권 역시 적극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헌재가 독일 모델을 참고해 잠정적 조치를 통한 최소한의 규율을 형성하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OI: 10.35901/kjcl.2026.32.1.523, 법학 논문·주장). 헌법불합치는 공백을 막는 장치이지만,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체가 더 긴 공백이 된다.
호주제의 경우에는 국회가 움직였다. 앞서 본 연구가 기록한 대로, 국회는 호주제 폐지를 표결했다 (DOI: 10.1163/156805810x517670, 사례 분석연구). 그 뒤에 들어선 새 등록 체계가 사람들의 생활에서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는지는, 우리가 확인한 문헌으로는 미확정이다.
법이 바뀌면 무엇이 따라오는가. 이 질문에 가장 불편한 답을 내놓은 것은 헌법의 성평등 조항 자체를 검증한 연구다. 저자들은 서로 다른 세 방법을 썼다 — 각국 헌법과 성평등 지표를 쓴 국가 간 회귀, 일본 헌법에 성평등 조항이 외부에서 삽입된 사정을 이용한 자연실험, 그리고 성평등에 대한 법적 약속을 알려 주는 것이 여성 권리 개선 지지에 영향을 주는지 본 일본에서의 설문 실험이다. 세 방법 모두에서 성평등의 권리를 헌법에 넣는 것이 실제 성평등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다만 출산휴가와 모성 보호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은 성평등 개선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시사적 증거를 덧붙이며, 이 발견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적는다 (DOI: 10.2139/ssrn.3789365, 워킹페이퍼·동료심사 전).
이 연구는 한국의 호주제 결정을 다루지 않는다. 겨누는 것은 더 넓은 명제다 — 헌법 문서에 무엇을 쓰는 것과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 사이에는 자동 연결이 없다.
다른 종류의 한국 자료도 같이 놓아 둔다. 이 자료에는 법이라는 변수가 없고, 폐지 전후를 가르지도 않는다. 한국 생활시간조사 2004~2014년 자료 12,828명과 미국 생활시간조사 2003~2018년 자료 38,562명을 비교한 연구를 보면, 한국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어머니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늘고 노동시간이 길수록 줄었는데 아버지에게서는 그 연관이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자원과 노동시간이 부모 양쪽 모두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했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부모의 시간 배분에는 성별화된 체제가, 미국에서는 자원의 상충 관계가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짓는다 (DOI: 10.1111/fare.13067, 생활시간조사 실증연구).
더 가까이 들여다본 질적 연구도 있다. 6세 미만 자녀를 키우는 부부 12쌍을 심층 면접한 연구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제한된 참여를 직장 의무를 들거나 스스로를 이차적 양육자로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정당화했다. 어떤 아버지들은 성평등을 위해 그 패턴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지만 직업적 요구와 전통적 성 기대에 묶여 있었다. 어머니들은 배우자의 기여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념을 표현했고, 많은 경우 기대를 낮추고 남성의 경제적 기여를 우선시하며 돌봄 책임을 더 떠안는 방식으로 그 현실을 규범으로 내면화했다 (DOI: 10.1111/fare.70033, 심층면접 질적연구·12쌍). 표본은 12쌍이다.
세대 차이는 어떤가. 폐지를 다룬 앞의 단행본 장은 나이 든 세대가 위계와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이상의 영향 아래 이 개혁을 전통적 가족 구조를 흔드는 것으로 받아들인 반면, 젊은 세대는 가부장적 규범의 해체이자 개인 권리의 확인으로 받아들였다고 서술한다 (DOI: 10.5772/intechopen.1013207, 단행본 장·논의). 이 서술은 실증 조사가 아니라 논의다. 다만 결혼관 자체에 연령 차이가 있다는 것은 조사 자료로도 확인된다. 한국종합사회조사 자료를 쓴 연구가 있다. 2012년 조사에 응한 20세 이상 797명의 자료로 결혼관을 본 대목에서, 행복·자녀·동거·이혼이라는 네 영역 모두에서 연령 집단 간 차이가 일관되게 유의했다. 같은 연구가 2018년 조사 550명으로 본 성 가치관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성별과 연령과 개신교 맥락 사이의 상호작용이 유의하게 나타났다 (DOI: 10.25133/jpssv302022.004, 사회조사 실증연구). 이 조사는 호주제를 묻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헌법 조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의 최근 변화를 다룬 법학 논문은 만혼·비혼·졸혼과 출산 감소로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현행 헌법의 개념과 대응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고 본다. 저자의 진단은 뜻밖의 방향을 가리킨다 — 헌법 제36조 제1항의 규율 내용과 형식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대한 보장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가족 탈제도화를 헌법적으로 껴안고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헌법 개정 때 혼인·가족 조항을 손질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DOI: 10.35901/kjcl.2023.29.3.273, 법학 논문·주장). 호주제를 무너뜨린 바로 그 조항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가족의 한 형태를 보장하는 조항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법학 논문은 관습의 목록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혼과 강제혼, 처녀성 검사, 과부 의례, 여성 성기 절제, 장자상속 규칙 같은 것들이다. 저자가 그 목록 앞에 붙인 문장이 중요하다 — 전통적 문화 관행은 종종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녀 온 가치와 믿음을 반영하며, 세계의 모든 사회 집단은 저마다의 전통적 문화 관행과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는 모든 구성원에게 이롭지만 일부는 여성 같은 특정 집단에게 해로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DOI: 10.17159/1727-3781/2012/v15i1a2454, 법학 논문·주장). 통째로 지키는 것도 통째로 버리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구도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서면 이 결정이 쓴 논변의 유형 자체가 비교헌법의 오래된 주제다. 헌법재판의 도덕적 논변을 분석한 단행본은 비교헌법 실무에서 지배적인 가치 기반 논변을 헌법적 정체성, 공통 감정, 보편 이성이라는 유형으로 식별하고, 이들이 전제하는 가치 관념을 비판한 뒤 어느 것도 단독으로 서는 도덕 판단의 방법으로는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헌법 공동체의 정서적 직관에서 출발하되 다른 관점에 반성적으로 노출시켜 그 직관을 검증해 가는 방식이다 (DOI: 10.1093/oso/9780198808084.001.0001, 단행본·이론). 성평등을 겨냥한 헌법 설계를 국가별로 비교한 단행본이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적·종교적 관행을 헌법이 어떻게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는지를 별도의 설계 쟁점으로 다룬다 — 같은 쟁점이 헌법 설계의 목록에 따로 올라 있다 (DOI: 10.1017/cbo9780511596780, 단행본·비교설계).
그렇다면 헌재가 이 방식을 계속 밀고 나갔는가. 여기서는 조심해야 한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사법적극주의라는 틀로 검토한 논문은, 심사 요건을 완화해 관할을 넓히거나 심사 기준을 높이고 명문에 없는 헌법 규범을 발견해 다른 헌법기관에 대한 통제를 키우는 것을 사법적극주의로 규정하면서, 그 평가가 국민주권·권력분립·헌법의 우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적는다. 같은 결정이 권한의 한계를 넘었다는 비판이 될 수도, 헌법을 지킨 것에 대한 상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DOI: 10.35901/kjcl.2023.29.1.1, 법학 논문·주장).
그리고 반대 방향의 판례 분석이 있다. 2001년 이후 비시민의 기본권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들을 검토한 논문은, 헌재가 2001년에 비시민의 기본권을 '인권'으로 승인하는 결정을 내린 뒤 이주민과 난민에 관한 판단에서는 시민과 동등한 지위의 권리 보호로부터 후퇴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헌재가 어떤 권리를 '인권'으로 인정할 때의 기준을 국제인권법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비시민에 대한 제한이 문제될 때는 심사 기준을 완화했다고 지적한다 (DOI: 10.35901/kjcl.2023.29.1.117, 판례 분석연구). 하나의 결정에서 세운 판단 방식이 그 뒤의 모든 자리에 자동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2005년의 결정문을 읽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좁다. 헌법재판소는 호주제가 우리 고유의 전통인지 아닌지를 판정하지 않았고, 전통을 계승하는 일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헌재가 한 일은 전통이라는 말이 헌법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조건을 붙인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그다음이다. 호주제를 대신한 등록 체계가 사람들의 생활에서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는지, 우리가 확인한 문헌은 답하지 않는다. 폐지 이후의 세대 차이를 직접 측정한 조사도 우리 손에는 없다. 헌법에 성평등을 써 넣는 것이 실제 성평등을 개선한다는 증거를 국가 간 자료에서 찾지 못했다는 보고와, 그럼에도 이 결정이 한국에서 제도를 실제로 끝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함께 놓을지도 열려 있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리고 열려 있는 쪽에 반대의견이 남아 있다.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전통문화를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경고는 2005년에 소수의견이었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증명이 결정문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견이 한 일은 그 경고에 답한 것이 아니라, 그 경고가 통하지 않는 자리를 정한 것이다.
인용의 하중이 가장 큰 것은 결정문 원문이다. 요약한 자리는 요약임을 문장 안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