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자율주행차의 사고, 누가 책임을 지는가 — 제조물 책임과 운전자 책임의 경계
운전대를 잡지 않은 사고 앞에서, 잘못한 인간을 찾던 백 년의 원칙이 무너진다. 제조물 책임·엄격책임·과실 재해석·형사책임·보험 우선까지, 책임을 어디로 보낼지 다투는 일곱 진영과 아직 합의되지 않은 법의 현재.

Paperis 아티클
운전대를 잡지 않은 사고 앞에서, 잘못한 인간을 찾던 백 년의 원칙이 무너진다. 제조물 책임·엄격책임·과실 재해석·형사책임·보험 우선까지, 책임을 어디로 보낼지 다투는 일곱 진영과 아직 합의되지 않은 법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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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3일, 애플 엔지니어 월터 황(당시 38세)이 몰던 테슬라 모델 X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고속도로 분리대에 충돌해 그가 사망했다. 사고 직후 테슬라의 입장은 단호했다. "도의적·법적 책임의 근본 전제는 깨진 약속인데,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오토파일럿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차량이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도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만 이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DOI: 10.31228/osf.io/ur3e5). 요컨대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고, 운전자도 그걸 알았으며, 주의만 기울였다면 사고는 없었으리라는 논리다. 이것이 자율주행 사고를 둘러싼 첫 번째 전선이다.
그런데 여기엔 불편한 질문이 숨어 있다.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던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까지 "네 과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시스템이 운전을 하고 인간은 이따금 개입할 뿐인 상황에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는 요구는 얼마나 정당한가. 이 글은 자율주행차 사고의 책임을 둘러싼 법적 논쟁을, 처음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미리 분명히 해 두자. 이 문제에 관한 법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우리가 다룰 대부분은 확정된 판례가 아니라 각국 학자·입법자들의 제안과 논증이며, 국가마다 방향도 다르다. 그 미결 상태를 얼버무리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한 세기 넘게 도로 위 책임의 기본 원칙은 단순했다. 운전자의 과실(fault)이 사고의 원인이며, 과실 있는 자가 배상한다. 자동차 사고 법 전체가 이 전제 위에 서 있다 — 누가 신호를 위반했고, 누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으며, 누가 주의의무(duty of care)를 다하지 못했는가. 과실 책임(fault-based liability)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를 끼쳤음을 입증해야 하고, 그 입증이 곧 배상의 관문이었다 (DOI: 10.58837/lawchulajournal.v44i1.281356).
이 구조가 오래 작동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고의 절대다수가 실제로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매년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치명적 사고의 압도적 다수가 인간의 실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DOI: 10.1515/jtl-2019-0029). 운전자가 사고의 원점이라면,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통념은 여기서 출발한다.
문제는 자율주행이 바로 그 전제 — "운전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 — 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고도로 자동화된 주행에서 운전이라는 행위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손과 발에 있지 않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센서, 업데이트, 통신, 인프라, 때로는 원격 감독까지 얽힌 분산된 사회기술적 과정(distributed socio-technical process)이 된다 (DOI: 10.31743/recl.19473). 운전자를 중심에 둔 전통적 책임 모델은 이 구조와 근본적으로 어긋나며, 그 어긋남이 책임 배분에 체계적 공백(systemic gaps)을 만든다 (DOI: 10.51204/anali_pfbu_26201a).
앞서의 테슬라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항공·군사 분야에서 인간-자동화 상호작용을 연구한 학자들은 테슬라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법적 책임을 가르는 데 과학은 결정적 역할을 하며, 법원은 사고가 "예견 가능(foreseeable)했는가"를 판단할 때 과학자·엔지니어에게 의존한다. 설계자는, 사고 당시 과학이 그 사고와 설계자가 취하지 않은 예방조치 사이에 체계적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면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수십 년의 인간-자동화 연구를 근거로 이렇게 주장한다 —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은 다 자동화하고 나머지를 인간에게 떠넘기는 설계는 부적절하고 위험하다. 자율주행차의 설계와 지금 일어나는 사고 유형 사이에는 체계적 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이 사고들은 예견 불가능하지 않았고 운전자만의 잘못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DOI: 10.31228/osf.io/ur3e5). (물론 이는 이 저자들의 논증이며, 법원이 사안마다 어떻게 판단할지는 별개다.)
이렇게 통념이 흔들리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운전자 너머로 향한다. 운전자, 소유자, 제조사, 소프트웨어 공급자, 통신망 사업자, 부품 제조사, 정부까지 — 누구든 책임의 후보가 될 수 있다. 전통적 불법행위법(tort law) 규칙만으로는 이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가려낼 수 없다 (DOI: 10.3390/wevj12020062). 인간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판단이 사고를 냈을 때, 사고의 원인을 인간에게서 찾던 사고 법의 원점 자체가 흐려진다. 인도네시아와 쿠웨이트의 민사법 인과이론을 비교한 한 연구는, 그 결과 인과 판단이 교통법의 틀 밖 제조물 결함의 영역으로 밀려난다고 본다 (DOI: 10.47268/ballrev.v7i1.3700).
운전자가 유일한 답이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여러 진영의 논리가 갈린다. 각 진영은 서로 다른 법 도구를 들고 나오며, 그 도구들은 종종 충돌한다. 아래 일곱 갈래는 경쟁하는 제안이지 확립된 정답이 아님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자율주행 사고를 제조물 책임(product liability) 문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한다면, 사고는 운전자의 실수가 아니라 제품의 결함으로 봐야 한다는 발상이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어야 한다. 제조물 책임이 전적으로 무과실(엄격)책임이라는 통념이다. 아직 심사를 거치지 않은 한 논고는 실제 구조가 더 미묘하다고 정리한다. 제조 결함(manufacturing defect)은 주의 여부와 무관하게 엄격책임을 지지만, 설계 결함(design defect)과 경고 결함(warning defect)은 위험-효용 분석(risk-utility analysis)에 기반한 과실 틀 안에서 작동한다 (DOI: 10.2139/ssrn.6687638). 제품의 효용이 위험을 정당화할 만하면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제조사가 경고나 지시로 예견 가능한 위험을 줄이는 합리적 조치를 취했는지로 초점이 옮겨간다.
자율주행에서는 이 세 결함이 모두 문제가 된다. 설계·제조·경고의 실패가 피해자 손해의 "충분한 원인"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앞의 인도네시아·쿠웨이트 비교 연구, DOI: 10.47268/ballrev.v7i1.3700). 특히 까다로운 논점은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실패다. 자동화가 진행되면 운전자와 시스템의 상호작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그 상호작용이 매끄럽지 못해 사고가 나면 — 이 상호작용의 붕괴 자체를 EU 제조물책임지침(85/374/EC)상의 "결함"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DOI: 10.1093/ijlit/eaac010).
제조물 책임 진영의 강한 주장은 이것이다. 자율주행차가 통계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사실이 곧 면책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조물 책임 소송의 역사를 보면, 법원은 낡고 위험한 차라고 해서 최신 안전장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결함이라 하지 않았고, 새롭고 안전한 차라고 해서 뛰어난 총량 성능만으로 면책해 주지도 않았다. 같은 논리로, 인간 운전자에 의존한다는 이유로 재래식 차가 결함차가 아니듯, 자율주행차도 그 결함이 피해를 냈다면 면책될 수 없다는 것이다 (DOI: 10.1515/jtl-2019-0029).
두 번째 진영은 더 급진적이다. 아예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는 과실 틀을 버리자는 것이다. 흔히 엄격책임(strict liability)은 과실 책임의 예외로 소개되지만, 한 이론적 분석은 이를 뒤집는다. 엄격책임은 과실 논리에서의 이탈이 아니라, 특정 범주의 위험을 처음부터 행위자에게 배정해 두는 제도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상위험 활동, 제조물 책임, 사용자 책임이 모두 이 구조를 공유하며, 이 관점에서 과실은 책임의 토대가 아니라 책임이 발생하는 하나의 경로일 뿐이다 (DOI: 10.2139/ssrn.6168207).
이를 AI에 적용한 것이 기업책임(enterprise liability) 이론이다. AI는 복잡하고 인간 통제에서 벗어나 있어, 피해자에게 "누구의 과실인지 특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부담이 된다. AI의 행동과 손해 사이의 인과를 명확히 입증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사가 결함에 대해 과실과 무관하게 책임지도록 하되, 피해자의 부담은 "AI가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이 손해를 냈다"는 점 입증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 모델은 책임을 위험 분산과 비용 내부화의 문제로 보고, 제조사가 잠재 손해 비용을 미리 계산해 시장에 분산시키도록 유도한다 (DOI: 10.58837/lawchulajournal.v44i1.281356).
세 번째 진영은 과실 개념을 버리는 대신 다시 그리자고 한다. 핵심은 예견가능성(foreseeability)이다. AI 개발자는 흔히 "그 결과는 예견 불가능했다 — 인과 경로가 새롭고 복잡하고 불투명했다"고 방어한다. 그러나 미국 불법행위법과 미국 법원의 예견가능성 적용을 분석한 한 논문은, 이 방어가 책임을 잘못 배분한다고 본다. 불투명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고급 AI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해석 가능성보다 정확성·효율을 우선한 개발자의 추상화 선택(abstraction choices)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선택이 불투명한 결과의 가능성을 높인다면, 법은 그 책임을 반영해 조정돼야 한다 — 원고가 이기기 어려운 예견가능성 기준을 원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완화하고, 특히 주의의무(duty) 단계를 개혁의 급소로 보자는 제안이다 (DOI: 10.1515/jtl-2025-0027).
과실을 재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은 "컴퓨터 운전자(Computer Driver)"라는 법적 의제를 세우는 것이다. 컴퓨터 운전자가 "주의 깊고 온전한 인간 운전자"에게 기대되는 주의 수준을 흉내 내거나 넘어서지 못했다고 법원·배심이 판단하면, 그 컴퓨터 운전자에게 과실책임을 지운다는 발상이다 (DOI: 10.25172/smustlr.27.1.5). 인간의 자리에 놓인 시스템을, 인간에게 적용하던 과실 기준으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지대는 이른바 레벨 3(조건부 자동화)다. 여기서는 시스템이 운전하다가, 필요할 때 인간에게 제어를 넘긴다(takeover request). 문제는 이 "넘겨받는 순간"이 책임의 진공지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레벨 3 차량에 관한 불법행위·제조물 책임·프라이버시 문제는, 기존 법리를 이 좁은 영역에 적용해 보는 별도의 논의로 다뤄지고 있다 (DOI: 10.36645/mtlr.30.2.tort).
앞서의 컴퓨터 운전자 제안은 이 회색지대를 정면으로 다룬다. 제어가 컴퓨터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기(take-over transition period)의 일정 구간 동안은, 인간 운전자가 법적으로 기여과실·비교과실을 질 수 없도록 못 박자는 것이다 (DOI: 10.25172/smustlr.27.1.5). 왜 이런 완충이 필요한가. 인간공학 실험이 실마리를 준다. 운전자 18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레벨 3 시뮬레이터 연구에서, 인계 반응 시간은 도심 시나리오에서 고속도로보다 길었고, 비운전 과제(음악·영상·뉴스 요약)에 몰입할수록 인계 성능이 나빠졌다 — 특히 뉴스 요약 과제는 반응을 가장 지연시키고 상황 인식을 떨어뜨렸다 (DOI: 10.54941/ahfe1007862). 표본이 작아 일반화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경고를 줬으니 즉시 대응했어야 한다"는 요구가 인간 인지의 실제 작동과 어긋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넘겨받는 순간의 책임을 인간에게 온전히 지우는 것은, 실증적으로 무리한 전제 위에 설 위험이 있다.
민사 배상을 넘어, 형사책임(criminal liability)은 훨씬 뜨겁다. 자율주행 시스템 자체는 형사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낸 사고의 형사책임은 누가 지는가. 중국 형사법 논의는 제조사의 주의의무를 생산·적용 전 과정에서 분석해, 제조사가 제품 침해 이론(product infringement theory)을 통해 책임질 수 있다고 보고, 나아가 자율주행차 제조사를 교통사고죄의 단위 주체로 추가하자고 제안한다 (DOI: 10.54097/vswsyq46). 다만 이는 입법 제안이지 현행법이 아니다.
형사 과실을 자율주행에 적용하는 일은 개념적 난관에 부딪힌다. 한 비교법 연구는 이를 "과실의 실패(negligence failures)"라 부른다. 인식의 문제(epistemic problem), 통제의 결여, 일반화된 위험, 그리고 "많은 손의 문제(problem of many hands)" — 개발자·통합자·배치자·운영자가 얽혀 누구의 책임인지 흐려지는 것 — 이 형사 과실의 구성요소인 인식·예견가능성·위험인수를 무너뜨린다. 싱가포르·프랑스·영국은 각기 다른 모델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으며, 이 연구는 사용자에 대한 AI 훈련·면허 제도와 인계 요구의 실증적 검증 등을 권고한다 (DOI: 10.1007/s10609-023-09451-1). EU 차원에서도 기술 표준만 밀어붙일 뿐 형사책임의 규율이 빠져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인간이 AI를 운전석에 앉혔을 때" 형사책임을 배분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DOI: 10.1177/20322844231213336).
독일의 폭스바겐 사례는 이 난관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독일 도로교통법(StVG) §63a와 제조물책임법(ProdHaftG)을 놓고 볼 때,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개입한 복잡한 사고에서 불투명한 AI 모델의 판단이 원인일 때 인과관계 입증이 지극히 어렵다. 2023년 브라운슈바이크 지방법원 판결과 베를린 항소법원의 계류 소송은, 충돌 시뮬레이션 데이터의 증거능력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시스템 구조에 대한 표준화된 문서의 부재라는 반복되는 공백을 드러냈다. 이 연구는 의무적 "소프트웨어 책임 문서(Software Liability Dossier)", 시뮬레이션 증거의 증거능력 기준, 자율주행차 전용 보상기금 같은 규제 혁신을 제안한다 (DOI: 10.55843/icl2025cong223p). 다만 이 사례가 다뤄진 자리는 형사가 아니라 민사 제조물책임 틀(제조물책임법·집단소송·보상기금)이다 — 형사책임의 어려움을 비추는 거울로 읽되, 형사 판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앞선 모든 논쟁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실무 문제가 깔려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래서 자동차의 블랙박스(사건 데이터 기록장치)가 책임 판단의 핵심 증거로 떠오른다. 한 연구는 중국의 쉬(Xu) 사건과 기술표준(GB44497-2024)을 분석하며, 블랙박스 데이터가 결정적 증거이지만 극한 기상 조건에서는 한계가 있고, L1~L5 자동화 등급 평가 체계가 제조사·소프트웨어 공급자·운전자 사이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본다 (DOI: 10.54254/2753-7048/2025.bo23203).
블랙박스는 그 자체로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소프트웨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차량에서는, 업데이트 메커니즘이 악의적 조작이나 실수로 인한 부정합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분산 해시 테이블과 공개 블록체인을 결합한 분산형 블랙박스 감사추적(audit trail) 설계가, 차량 소프트웨어의 무결성과 출처를 보증하는 방안으로 제안된다 (DOI: 10.4271/11-03-02-0006). 더 근본적인 장벽은 데이터 접근권이다. 블랙박스·사건데이터기록장치의 정보는 대개 보험사와 제조사가 쥐고 있고, 프라이버시·지식재산·경쟁이라는 법적 장애물이 그 재사용을 가로막는다. 유럽의 데이터법(Data Act)이 이 접근권 문제의 해법으로 검토되는 이유다 (DOI: 10.12688/openreseurope.16468.1).
증거의 어려움은 곧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의 문제로 이어진다. EU의 AI 책임지침(AILD) 제안은 강화된 증거개시 규칙과 인과관계 추정을 통해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 다만 한 분석은 그조차 불충분하다고 보며, AI에 내재한 위험 자체가 오히려 엄격책임 방향의 조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OI: 10.1093/ijlit/eaae021).
책임 주체를 가리는 지난한 다툼을 아예 뒤로 미루자는 진영도 있다. 보험-우선(insurer-first) 보상 모델이다. 피해자를 먼저 신속히 구제하고, 책임 배분(제조사냐 운전자냐)은 그 뒤에 구상권(subrogation)으로 정리하자는 것이다. EU법은 단일한 자율주행 책임 코드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보험-우선의 피해자 보상 논리와 소프트웨어 손해를 겨냥한 제조물 책임의 현대화, 그리고 상류 행위자에게 문서화·사후관리 의무를 지우는 위험 기반 규제를 결합한다 (DOI: 10.31743/recl.19473).
각국은 기존 강제보험 틀을 이 방향으로 손보고 있다. 독일은 StVG 개정으로 자율주행차 사고의 배상 상한을 두 배로 올리고 레벨 4·5 개념과 기술감독자 지위를 도입했으며, 일본은 기존 책임 체계를 유지하면서 무인 주행을 겨냥한 규정과 허가제를 신설했다. 한국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논의도, 자율주행 시대에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고 사회적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이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DOI: 10.18189/isicu.2024.31.2.149). 미국은 주별로 흩어져 있어, 한 조사는 30개 주에서 관련 입법을 확인했지만 그 효과를 평가할 데이터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DOI: 10.1017/jme.2022.96).
여기까지 일곱 진영을 훑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어느 것도 승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여러 틀이 뒤섞여 경쟁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율주행 사고의 책임 체계를 비교한 한 연구는 이를 네 유형으로 정리한다 — 운전자 책임, 시스템 책임, 제조사·운영자 책임, 그리고 이들을 섞은 복합 책임. 그리고 각 유형마다 고유한 제도적 딜레마가 드러난다고 본다. 책임 경계의 모호함, 증거 확보와 사실 인정 메커니즘의 미비, 책임 배분의 불균형, 판단 규칙의 파편화다 (DOI: 10.3390/wevj17010032).
중국의 법·산업 환경을 분석한 한 연구는 자동화 등급에 따라 답을 달리하자는 절충을 내놓는다. 레벨 0~2는 운전자, 레벨 3은 도로와 시스템 상황에 따라 운전자와 제조사·운영자가 분담, 레벨 4~5는 주로 제조사·운영자·시스템 공급자에게 책임을 지우자는 것이다 (DOI: 10.3390/wevj16120665). 심사를 거치지 않은 한 논고는 영국·미국·캐나다를 비교한 뒤 반증 가능한 추정(rebuttable presumption)을 담은 혼합 기준을 내놓는다 — 자동 주행 중의 설계·경고·실패는 원칙적으로 제조사 책임으로 추정하되, 시스템 오용이나 인계 요구에 대한 불합리한 미대응은 운영자 책임으로 돌리고, 사건 데이터 로그로 입증책임을 전환하며, 보험사 우선 보상 후 구상하자는 것이다 (DOI: 10.2139/ssrn.6543563). 서로 다른 진영의 도구를 한 틀에 녹인 셈이지만, 이 역시 하나의 제안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정교한 제안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라는 목소리도 있다. 자율주행차가 자동차 사고 책임 체계의 실무를 크게 바꿀 것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래의 윤곽을 상상해 미리 책임 체계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는 오류와 좌절을 부르기 쉽다. 그러니 일단은 더듬어 나가자(muddle through)는 것이다 (DOI: 10.1515/jtl-2020-2012). 이것은 게으른 회피가 아니라, 확립되지 않은 문제 앞에서의 지적 정직이다.
국가별 편차도 이 미결 상태를 키운다. EU는 보험-우선·제조물책임 현대화·위험기반 규제를 결합하되 국가별로 다르게 적용하고(독일·프랑스·네덜란드), 베트남은 "이상위험원(source of extraordinary danger)" 같은 강한 무과실 법리로 피해자 보호의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어디서든 증거 접근, 사이버 사고의 귀속, 형사 책임의 조율에서 지속적인 불일치 위험이 남는다 (DOI: 10.31743/recl.19473). 요컨대 자율주행 책임법은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는 중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갈라진 채 실험 중이다.
그렇다면 이 논쟁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자율주행차 사고의 배상금을 누가 낼 것인가"라는 실무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일은 훨씬 크다. 기술의 진보가 '과실'이라는 법의 근본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한 세기 넘게 자동차 사고 법은 "잘못한 인간을 찾아 책임을 묻는" 구조였다. 자율주행은 그 구조의 심장 — 운전하는 인간 — 을 제거한다. 그 빈자리를 두고 제조물 책임은 "결함을 증명하라"고 하고, 엄격·기업책임은 "과실 찾기를 포기하고 위험을 배분하라"고 하며, 과실 재해석 진영은 "예견가능성을 다시 그리자"고 하고, 형사법은 "제조사를 피고석에 세울 수 있는가"를 묻는다. 보험-우선 진영은 "다투기 전에 먼저 보상하라"고 답한다. 이 모든 제안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서로 다르게 변주하고 있다 — 운전대를 잡지 않은 사고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이 글이 다룬 대부분이 확정 판례가 아니라 제안과 논증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해 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정답의 발견이 아니라, 개념이 다시 쓰이는 과정 그 자체다. 다음에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면 누가 책임지나"라는 질문을 들으면, 그 질문에 단일한 답이 아직 없다는 것 — 그리고 그 답의 부재가 곧 법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를 고쳐 쓰고 있다는 증거임을 함께 떠올려도 좋겠다. 과실이라는 낡은 저울은, 운전대를 놓은 시대에 맞게 다시 만들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