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기록을 읽는 법 — 할머니의 일기와 그날의 신문
같은 날을 적은 두 기록이 다른 숫자를 말할 때, 역사가는 누가·언제·누구에게·왜 썼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기록은 만든 목적에 맞는 질문에 가장 잘 답하고, 남아 있는 기록은 적을 수 있었고 보관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기록을 읽는 법 — 할머니의 일기와 그날의 신문
할머니의 상자
할머니 댁을 정리하다 종이 상자 하나가 나왔다고 해 보겠습니다. 안에는 낡은 일기장과 누렇게 바랜 신문 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둘 다 50년 전 여름, 큰비가 온 같은 날을 적었습니다.
일기에는 「아랫마을 집 30채가 물에 잠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문 기사에는 「가옥 10채 침수, 인명 피해 없어」라고 적혀 있습니다. 같은 날, 같은 마을인데 숫자가 세 배 차이 납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할머니가 부풀렸을 수도 있고, 신문이 줄였을 수도 있고, 둘 다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는 마당까지 물이 든 집을 셌고 신문은 방까지 물이 든 집만 셌다면, 두 숫자는 서로 다른 것을 센 것입니다.
이 상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가상의 예이고, 글 끝까지 들고 가겠습니다. 이 글은 역사가가 옛 기록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의심하는지를 다룹니다. 어느 숫자가 맞는지 고르기 전에 역사가가 먼저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누가, 언제, 누구에게, 왜 적었는가입니다.
같은 일을 적은 두 기록이 다를 때, 먼저 물을 것은 어느 쪽이 맞느냐보다 각자 무엇을 왜 적었느냐입니다.
그날 적은 것과 나중에 정리한 것
상자를 조금 더 뒤져 보겠습니다. 일기와 신문 말고도 마을 사무소가 집집마다 피해를 적은 신고 장부의 사본이 있고, 외삼촌이 40년 뒤에 그날을 떠올리며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2020년에 나온 「마을 50년사」라는 얇은 책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료입니다. 사료는 역사가가 과거를 알아내는 데 근거로 삼는 자료입니다. 글로 된 것만 사료인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은 글로 된 기록을 다룹니다.
상자 속 사료는 두 무리로 나뉩니다. 1차 사료는 그 일을 겪었거나 본 사람이 남긴 기록입니다. 그때 쓴 것이든 나중에 쓴 회고든 여기 듭니다. 그날 밤 쓴 일기, 다음 날 신문, 그 주에 작성한 신고 장부가 1차 사료이고, 외삼촌의 편지도 그날을 겪은 사람이 썼으니 1차 사료입니다. 다만 40년 뒤에 썼다는 점을 따로 따져야 하고, 이것은 뒤에서 다룹니다. 2차 사료는 1차 사료들을 나중에 모아 읽고 정리한 글입니다. 「마을 50년사」가 그렇습니다.

1차 사료는 그 일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런데 가깝다는 것은 한 사람의 자리에서 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자기 창문으로 보이는 아랫마을을 셌고, 기자는 군청이 발표한 숫자를 받아 적었을 수 있습니다. 둘 다 1차 사료이고, 둘 다 한쪽 자리에서 본 것입니다.
전문가와 초심자는 같은 사료를 다르게 읽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인 렉싱턴 전투에 관한 글과 그림 여러 점을 현직 역사가들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주고, 읽으면서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게 한 연구가 있습니다. 두 무리는 역사적 증거를 두고 서로 다르게 추론했고, 연구자는 그 차이의 일부가 역사를 탐구한다는 일 자체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고 봤습니다 (DOI: 10.1037/0022-0663.83.1.73).
1차 사료는 그 일에 가장 가깝지만, 가장 가깝다는 것이 곧 가장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짜인가, 믿을 만한가
역사가가 기록을 근거로 쓰기 전에 거치는 절차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료 비판은 한 기록을 근거로 쓰기 전에 그것이 진짜인지, 믿을 만한지를 따져 묻는 일입니다. 물음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는 진짜인가입니다. 할머니의 일기가 정말 할머니가 50년 전에 쓴 것인지, 누가 나중에 흉내 내어 쓴 것은 아닌지를 묻습니다. 위조를 가려내는 방법 중 하나가 필적 감정입니다. 사람마다 글씨에 고유한 버릇이 있고, 같은 사람의 글씨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흔들리며, 그 버릇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원리에 기댑니다. 위조에는 남의 글씨를 흉내 내는 것, 대고 베끼는 것, 디지털로 만드는 것 같은 유형이 있고, 일부러 글씨를 바꾼 경우와 감정하는 사람의 주관은 어려운 과제로 꼽힙니다 (DOI: 10.4018/979-8-3373-3795-1.ch004).
둘째는 진짜라면, 믿을 만한가입니다. 여기서 네 가지를 묻습니다. 누가 썼나, 언제 썼나, 누구에게 보이려고 썼나, 왜 썼나. 할머니의 일기는 할머니가 그날 밤 자기만 보려고 썼습니다. 신문은 기자가 다음 날 독자에게 알리려고 썼습니다. 마을 사무소의 신고 장부는 지원금을 나눠 주려고 만들었습니다.
장부의 목적을 알면 숫자가 달리 보입니다. 지원금을 받으려는 집은 피해를 넉넉히 적고 싶었을 것이고, 나눠 줄 돈이 모자란 사무소는 기준을 좁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장부의 숫자는 「지원금을 받을 만한 피해」의 숫자입니다.
믿을 만한가는 누가, 언제, 누구에게, 왜 썼는지를 알 때 비로소 따질 수 있습니다.
장부는 장부가 물은 것에만 답한다
실제 역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료 가운데 하나가 이런 목적 있는 기록입니다. 중세 잉글랜드의 임금과 물가는 상당 부분 장원 회계에서 나옵니다. 장원 회계는 중세 잉글랜드의 큰 농지 관리인이 해마다 적어 올린 수입·지출 장부이고, 누구에게 하루에 얼마를 주었는지가 거기 적혀 있습니다.
장원 회계는 영주의 농지에서 일한 일꾼에 대해서는 고용 조건과 받은 보수까지 꽤 자세합니다. 그런데 농민이 자기 땅에서 부린 일꾼은 이 장부에 나오더라도 스치듯 나올 뿐입니다. 장부를 쓴 쪽이 그들을 따로 적을 이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DOI: 10.2307/744001). 장부가 자세하다는 것은 장부 주인이 관심을 둔 곳이 자세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장부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일당 장부에는 하루 품삯이 적혀 있지만, 그 일꾼이 1년에 며칠을 일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일당에서 연 소득을 추정하던 방식에는 그래서 근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한 연구는 이 약점을 피하려고 날마다 품삯을 받은 일꾼 대신 1년 단위로 고용된 일꾼에게 준 돈을 모아 소득을 다시 계산했습니다. 이 연구의 자료는 일당으로 한 기존 추정이 중세 노동자의 소득을 부풀리고 산업혁명기 소득은 낮춰 잡았음을 시사합니다 (DOI: 10.1093/ej/uez017). 하루치 값은 적혀 있어도, 1년치 삶은 적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든 목적과 다른 곳에 기록을 쓰는 일도 흔합니다. 11세기 잉글랜드의 둠스데이 북은 정복왕 윌리엄이 세금을 매기고 나라를 통제하려고 만든 조사 기록인데, 한 연구는 이 자료로 중세 장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했는지를 계산했습니다 (DOI: 10.1177/103237320501000206). 이때는 왕이 무엇을 세고 무엇을 세지 않았는지가 계산의 테두리가 됩니다.
로마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서기 301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물건값과 품삯의 최고 한도를 정해 내린 칙령입니다. 이 칙령의 숫자로 로마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계산한 연구는, 로마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 묶음, 곧 최소한의 생계 바구니를 겨우 살 만큼 벌었고, 그 수준이 18세기 유럽의 뒤처진 지역이나 아시아 상당 지역의 노동자와 비슷했다고 결론짓습니다 (DOI: 10.1093/acprof:oso/9780199562596.003.0016). 이런 칙령을 읽을 때 사료 비판이 던지는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칙령에 적힌 값은 「이보다 비싸게 받지 말라」는 한도이고, 시장에서 실제로 오간 값과 같았는지는 칙령 자체가 말해 주지 않습니다. 이 계산이 그 차이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이 글이 본 요약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법을 누가 만들었는지도 기록의 테두리가 됩니다. 흑사병 뒤 잉글랜드 정부는 일꾼의 품삯을 누르고, 일꾼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지 못하게 하고, 고용주에게 유리한 계약을 강제하는 법을 거듭 만들었습니다. 흑사병 뒤 80년 동안 열린 의회 77번 가운데 3분의 1 넘게 노동 관련 법을 통과시켰고, 그 정부는 지주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으며, 일꾼들의 요구를 「하인들의 악의」라고 불렀습니다 (DOI: 10.1017/9781846151385.006). 잉글랜드 북서부 체셔에는 흑사병 직후 25년 동안 이 법을 어긴 사람들을 기소한 법정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DOI: 10.3828/archives.2013.6). 이런 기록은 법을 집행한 쪽이 남긴 것이라, 그 속의 일꾼은 피고석에 선 모습으로 나옵니다.
장부와 법령은 그것을 만든 쪽이 궁금했던 질문에 가장 잘 답하고, 만든 쪽이 관심 두지 않은 질문에는 침묵합니다.
수십 년 뒤의 기억
상자 속 외삼촌의 편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40년 뒤에 쓴 편지에는 「물이 지붕까지 찼다」고 적혀 있습니다. 외삼촌은 그때 열 살이었습니다. 그 뒤 40년 동안 명절마다 그날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편지 속 장면에 섞였을 수도 있고, 거꾸로 되풀이해 이야기한 덕에 장면이 또렷이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지붕까지」가 열 살 외삼촌이 직접 본 장면인지, 어른들에게 들은 장면인지는 편지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나간 일을 겪은 사람의 말을 사료로 삼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술사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겪은 일을 묻고 그 말을 기록해 사료로 삼는 방법입니다. 구술사를 다룬 폴 톰슨의 책 「과거의 목소리」도 구술 증거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와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로 한 몫으로 다룹니다 (DOI: 10.1093/oso/9780192893178.001.0001).
에이브러햄 링컨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다는 앤 러틀리지 이야기가 이 물음을 잘 보여 줍니다. 앤은 1835년에 젊은 나이로 죽었고, 링컨이 그 죽음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졌습니다. 링컨이 암살된 뒤, 그의 오랜 법률 동업자 윌리엄 헌든이 링컨의 젊은 시절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았습니다. 앤의 남동생 로버트가 가족을 대표해 헌든에게 긴 편지를 쓴 것은 1866년, 앤이 죽고 30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이 증언들을 두고 역사가들은 크게 갈렸습니다. 1945년 링컨 연구자 제임스 랜들은 러틀리지 가족의 기억을 「세월에 흐려진」 것이라 보고 이 연애를 전설로 돌렸습니다. 1990년대에는 다시 「압도적인 증거」가 있는 사건으로 다뤄졌습니다. 뒤에 볼 2005년 논문의 필자에 따르면 그사이 새로 나온 증거는 없었고, 헌든이 모은 자료가 책으로 묶여 읽기 쉬워졌을 뿐입니다. 같은 증거를 두고 읽는 법이 달라진 것입니다. 연애설을 되살린 쪽의 더글러스 윌슨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되풀이해 떠올린 기억은 오히려 생생하게 남는다고 봤습니다. 그 근거로 든 것은 한 여성의 일화입니다. 어린 시절 그 마을에 살았던 그는 훗날 옛 마을 배치를 사진처럼 기억해 냈고,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다시 들어 「그림이 생생하게 남았다」고 답했습니다 (DOI: 10.5406/19457987.26.1.04).
2005년에 이 증언들을 다시 들여다본 한 논문은 반대쪽에 섭니다. 필자에 따르면 러틀리지 가족은 모두 구애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링컨이 앤에게 구애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기억해 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앤과 링컨의 약혼을 다룬 대목에서 로버트가 증인으로 내세운 사람은, 편지를 쓰기 24년 전에 죽은 형뿐이었습니다. 로버트는 두 번이나 링컨의 슬픔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밝혔고, 그중 한 번은 그때 남에게서 들은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앤의 여동생은 1899년 한 기자에게, 링컨이 슬픔에 1년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신문에는 사실이 아닌 게 참 많다」고 말했습니다. 필자의 결론은 랜들 쪽 회의론이 증거를 잘못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DOI: 10.5406/19457987.26.1.04). 이것은 한 필자의 해석이고, 이 논쟁은 이 논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논문은 헌든이 모은 증언이 없었다면 링컨의 젊은 시절에 대한 생생한 장면 상당수가 사라졌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합니다 (DOI: 10.5406/19457987.26.1.04). 그래서 오래된 기억을 읽는 일은 그 사람이 직접 본 것과 나중에 들은 것을 갈라내는 일이 됩니다.
수십 년 뒤의 기억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물을 것은, 이 사람이 그 장면을 직접 봤는가, 나중에 들었는가입니다.
남은 것만 남았다
이제 상자 자체를 보겠습니다. 이 상자가 남은 것은 할머니가 글을 쓸 줄 알았고, 누군가 50년 동안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옆집 할머니도 그날을 겪었지만 글을 몰랐다면 일기는 없습니다. 마을 사무소의 신고 장부 원본은 10년이 지나 폐기됐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날에 대해 읽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적었고 아무도 버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마을 50년사」 같은 2차 사료도 결국 이렇게 살아남은 1차 사료들을 가지고 씁니다.
이 현상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생존 편향은 살아남은 것만 보고 전체를 판단할 때 생기는 치우침입니다. 옛 기록에서는 두 번 걸러집니다. 누가 적을 수 있었나에서 한 번, 무엇이 보관됐나에서 또 한 번입니다.

보관의 단계도 투명하지 않습니다. 기록 보관소는 역사가가 재료를 가져오는 창고인데, 무엇을 고르고, 어떻게 분류하고,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남길지는 여러 세대에 걸친 보관 담당자들의 결정이었고, 그 결정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근본적으로 빚었습니다. 이 주제를 다룬 역사가들은 보관소를 먼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창처럼 대하는 것을 자신들이 여전히 빠지는 함정이라고 적습니다 (DOI: 10.1093/pastj/gtw033). 정리 방식 하나도 기록을 가립니다. 앞에서 본 체셔의 노동법 기소 기록은 그동안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영국 국립기록보관소에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분류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DOI: 10.3828/archives.2013.6). 보관된 기록은 사회의 힘 관계를 반영하고 힘 있는 집단의 기록 쪽으로 기울기 쉬워서, 기록 관리자가 그 치우침을 알아보고 넘어서면 여러 목소리를 더 고르게 남길 수 있습니다 (DOI: 10.1108/10650750310490289).
글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과거는 다른 길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구전은 글로 적히지 않고 여러 세대의 입과 기억을 거쳐 전해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 사는 세계 여러 곳에서 구전은 과거를 되짚을 주된 사료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오래 현지 조사를 한 얀 반시나는 책 「구전」에서, 그 언어와 사회를 아는 연구자라면 구전에서 역사적 내용을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DOI: 10.4324/9781315125855).
남아 있는 기록은 그 시대에 적을 수 있었고 보관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맞대어 읽기
그래서 역사가는 한 기록만 믿지 않고 여러 기록을 맞댑니다. 상자로 말하면 일기의 30채와 신문의 10채와 신고 장부의 숫자를 나란히 놓고, 각자 무엇을 셌는지를 따집니다. 세 기록이 서로 베끼지 않고 따로 적은 것이라면, 셋이 모두 인정하는 것, 예컨대 그날 큰비가 와서 아랫마을 집들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훨씬 단단한 사실이 됩니다. 신문이 군청 발표를 받아 적었고 장부도 같은 군청 숫자에서 나왔다면, 둘이 같아도 증거는 하나입니다. 몇 채였는지는 「기록마다 숫자가 달랐고, 센 기준이 달랐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적힙니다.
글로 된 기록은 글이 아닌 증거와도 맞댈 수 있습니다. 흑사병 직전 잉글랜드 사람들의 건강을 두고, 고고학이 찾은 유골과 장원 기록의 숫자를 함께 읽은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흑사병 전 잉글랜드 인구 대부분이 적어도 한 세대 동안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 B12가 모자란 상태였다고 해석합니다. 흔히 대기근이라 부르는 3년의 흉작보다 훨씬 긴 기간입니다 (DOI: 10.1162/jinh_a_00500). 장부는 그 시절의 숫자를 남겼고, 뼈는 그 시절을 살아 낸 몸을 남겼습니다. 이 해석은 둘을 함께 읽어서 나왔습니다.
한 기록은 한 자리에서 본 것이어서, 역사가는 기록끼리 맞대고 글 밖의 증거와도 맞댑니다.
써 보기 — 「새로 발견된 일기, 그날의 진실 밝혀」
이제 이런 기사 제목을 만났다고 해 보겠습니다. 「새로 발견된 병사의 일기, 전투의 진실 밝혀」. 이 글에서 쓴 물음을 차례로 대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진짜인가.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진위를 확인했는지 기사가 말하는지 봅니다. 둘째, 언제 썼나. 전투가 끝난 그날 밤인지, 수십 년 뒤에 떠올려 쓴 회고인지에 따라 읽는 법이 달라집니다. 셋째, 직접 봤나, 들었나. 러틀리지 가족의 편지처럼, 생생한 문장이 남에게 들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넷째, 누구에게, 왜 썼나. 자기만 보려고 쓴 일기와 가족에게 보이려고 쓴 편지, 상관에게 올린 보고는 같은 일을 다르게 적습니다.
다섯째, 누가 남기지 못했나. 이 병사는 글을 쓸 줄 알았고 그의 일기는 보관됐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남았을까요. 여섯째, 다른 기록과 맞는가. 같은 전투를 적은 다른 사람의 기록이 있는지, 흑사병 전야처럼 글이 아닌 증거와 맞춰 볼 수 있는지를 봅니다. 맞대는 기록이 서로 베낀 것은 아닌지도 함께 봅니다.
「진실 밝혀」라는 말은 이 여섯 물음을 다 거친 뒤에야 조심스럽게 쓸 수 있습니다. 일기 한 권은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본 것을 알려 주고, 그것만으로도 귀한 사료입니다. 할머니의 상자도 그렇습니다. 역사가가 그날에 대해 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문장은 아마 「그날 큰비로 아랫마을 집들이 물에 잠겼고, 기록마다 센 집의 수가 달랐다」일 것입니다.
사료를 잘 읽는다는 것은 한 기록이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어디를 더 볼까
수십 년 뒤의 기억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링컨과 앤 러틀리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보듯 같은 증거를 두고도 해석이 갈려 왔습니다.
이 글에서 스친 사례들은 더 깊은 글로 이어집니다. 「흑사병 뒤에 임금은 정말 올랐나 — 어디서, 언제, 누구의 임금이었나」는 장원 회계와 노동자법 기록을 들고 실제 논쟁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노예해방선언은 왜 하필 그때였나 — 링컨의 1862년」은 편지 한 통이 쓰인 날짜가 그 편지의 뜻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따라갑니다.
글로 된 기록이 침묵하는 자리는 다른 증거가 일부를 비춰 줍니다. 「뼈가 말하는 것 — 이와 뼈에 나눠 적힌 한 사람의 일기」는 유골에서 옛사람의 삶과 병을 읽는 법을, 「탄소로 나이 재기 — 모래시계와 나이테로 읽는 방사성탄소 연대」는 숯과 씨앗으로 연대를 재는 법을, 「유전자가 말하는 것 — 대대로 베껴 쓴 낡은 책 한 권」는 옛사람의 DNA로 이동과 혈통을 읽는 법을 다룹니다.
근거 논문
- "Historical problem solving: A study of the cognitive processes used in the evaluation of documentary and pictorial evidence." (1991) — DOI: 10.1037/0022-0663.83.1.73 — 렉싱턴 전투 문서·그림을 역사가와 고교 3학년이 소리 내어 검토, 증거 추론 방식이 달랐고 탐구에 대한 믿음이 그 차이의 일부를 설명한다고 봄.
- "Forensic Handwriting and Signature Analysis" (2026) — DOI: 10.4018/979-8-3373-3795-1.ch004 — 필적의 고유성·자연 변이·지속성 원리, 흉내·대고 쓰기·디지털 위조 유형, 위장 필적과 해석의 주관성이라는 과제.
- "The Social Context of Statute of Labourers Enforcement" (1983) — DOI: 10.2307/744001 — 장원 회계는 영지 일꾼은 자세히 적지만 농민 보유지의 일꾼은 거의 적지 않음.
- "Unreal Wages? Real Income and Economic Growth in England, 1260-1850" (2019) — DOI: 10.1093/ej/uez017 — 일당으로는 연간 노동일수를 알 수 없어 연 단위 고용 지급으로 소득 재추정, 기존 추정이 중세는 과대·산업혁명기는 과소.
- "Using William the Conqueror's accounting record to assess manorial efficiency" (2005) — DOI: 10.1177/103237320501000206 — 왕이 세금·통제용으로 쓴 둠스데이 북 자료로 11세기 장원 생산 효율을 평가.
- "How Prosperous were the Romans? Evidence from Diocletian's Price Edict (AD 301)" (2009) — DOI: 10.1093/acprof:oso/9780199562596.003.0016 — 최고가격 칙령 자료로 본 로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최소 생계 바구니 수준, 18세기 유럽 후진 지역·아시아 상당 지역과 비슷.
- "The Problem of Labour in the Context of English Government, c. 1350–1450" (2000) — DOI: 10.1017/9781846151385.006 — 흑사병 뒤 의회 77번 중 3분의 1 이상이 노동 입법, 품삯 억제·이동 제한·계약 강제, 지주 이익을 대변한 정부.
- "The Voice Of The Past" (2000) — DOI: 10.1093/oso/9780192893178.001.0001 — 구술사의 역사와 방법, 구술 증거의 신뢰성과 기억을 다룸.
- ""Overwhelming Evidence" of a Lincoln-Ann Rutledge Romance?: Reexamining Rutledge Family Reminiscences" (2005) — DOI: 10.5406/19457987.26.1.04 — 러틀리지 가족 회고를 재검토, 구애의 구체적 기억이 없고 슬픔은 직접 보지 못했다며 회의론이 증거를 잘못 읽지 않았다고 결론.
- "The Social History of the Archive: Record-Keeping in Early Modern Europe" (2016) — DOI: 10.1093/pastj/gtw033 — 기록의 선별·분류·보존 결정이 과거에 대한 지식을 빚었고, 보관소는 투명한 창이 아님.
- "Archives and memory" (2003) — DOI: 10.1108/10650750310490289 — 기록 기억은 사회의 힘 관계를 반영하며 힘 있는 집단의 기록 쪽으로 기울기 쉬움.
- "Oral Tradition" (2017, 재간행본) — DOI: 10.4324/9781315125855 — 문자 없는 사회에서 구전은 주된 사료이며, 언어와 사회를 알면 역사적 내용을 가려낼 수 있음.
- "THE ENFORCEMENT OF THE ORDINANCE AND STATUTE OF LABOURERS IN CHESHIRE, 1349 TO 1374" (2013) — DOI: 10.3828/archives.2013.6 — 체셔의 노동법 위반 기소 기록 목록화, 흑태자 통치로 행정·기록이 달랐고 국립기록보관소 분류 방식이 그 중요성을 가려 거의 쓰이지 않았음.
- "Between Famine and Death: England on the Eve of the Black Death—Evidence from Paleoepidemiology and Manorial Accounts" (2013) — DOI: 10.1162/jinh_a_00500 — 유골과 장원 기록을 함께 읽어 흑사병 전 잉글랜드 인구 대부분이 적어도 한 세대 동안 단백질·칼슘·B12 부족이었다고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