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지구 한가운데에 공이 하나 더 있었다
지구를 잰 사람들 · 잉에 레만 (1936)
지구 한가운데에 공이 하나 더 있었다
듣는 사람은 아이, 읽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이 페이지는 이야기를 들은 뒤 아이가 던질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만든 자료입니다. 대본은 재생 중 스크립트 버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다루나
지구 한가운데에는 아무도 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과학책은 지구를 지각·맨틀·핵·내핵의 네 겹으로 그립니다. 그 마지막 경계, 핵 안의 또 다른 핵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덴마크의 지진학자 잉에 레만(1888–1993)입니다(DOI: 10.1029/eo068i046p01593-04).
이 편은 발견만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갑니다. 수학을 하고 싶었지만 여자에게 닫힌 문 앞에서 길을 바꾼 사람, 25년 동안 덴마크의 유일한 지진학자로 기록을 혼자 읽은 사람, 그리고 1936년 「P′」라는 한 글자짜리 제목의 논문에서 "지금 가진 자료로는 증명할 수 없다"고 적어 둔 사람입니다.
「지구를 잰 사람들」 네 편(에라토스테네스·레만·베게너·앨버레즈 부자)은 같은 질문을 공유합니다 — 직접 가 볼 수 없는 것을, 남은 흔적으로 어떻게 재는가. 레만에게 그 흔적은 지진이 남긴 흔들림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날 실제로 있었던 일
- 1888년 5월 13일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행복했고, 아버지 알프레드 레만은 덴마크에 실험심리학을 개척한 코펜하겐 대학 심리학 교수였는데 식사 때 말고는 거의 볼 수 없었고 가끔 일요일에 가족을 데리고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레만은 코펜하겐 카스텔베이에서 50년 넘게 살았습니다(DOI: 10.1098/rsbm.1997.0016).
- 열다섯·열여섯 살 무렵의 일요일 아침, 집에서 지진을 느꼈습니다. 레만 자신의 회고입니다 — 바닥이 움직이고 매달린 등이 흔들렸고, 아버지가 "지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움직임이 느릿해 먼 곳의 지진이었던 것 같다고 적었고, 이것이 20년 뒤 지진학자가 되기 전까지 유일한 지진 경험이었다고 썼습니다(DOI: 10.1029/eo068i003p00033-02).
- 여자라서 닫힌 문. 남녀공학 진보적 학교를 다녀 차별을 직접 겪을 일이 적었던 레만은, 코펜하겐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1911년 케임브리지에 갔다가 그곳의 성별 분리 관행에 대비가 안 된 채 부딪혔습니다. 과로로 지쳐 학업을 접고 귀국했습니다(DOI: 10.5194/hgss-2021-20). 닐스 보어에게 보낸 편지들이 케임브리지의 여성 제한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기록하고 있고, 1912년 겨울의 정신적 붕괴는 성차별을 넘어서려는 학업상의 과잉 보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자는 봅니다(DOI: 10.5194/hgss-13-83-2022).
- 학위를 받고도 사무직이었습니다. 덴마크에서 수학 학위를 받은 뒤 대학의 저임금 사무직원이 되었고(DOI: 10.5194/hgss-13-83-2022), 1923년에는 보험수리학 교수의 조교가 되었습니다(DOI: 10.5194/hgss-2021-20).
- 길을 바꾼 선택. 대학에서 과학 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희박했기에, 레만은 덴마크 측지 업무를 개편하던 뇌르룬 교수에게 합류했습니다(DOI: 10.5194/hgss-2021-20). 연구자의 표현으로는 명망 있는 수학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진학으로 실용적으로 분야를 바꿈으로써만 성공한 과학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DOI: 10.5194/hgss-13-83-2022).
- 요새 건물의 관측소. 1925년 가을 뇌르룬의 조수가 되었고, 첫 큰 임무는 코펜하겐을 둘러싼 요새 시설의 튼튼한 건물 두 채에 지진계를 설치하는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차량 같은 교란에 흔들리지 않을 자리였습니다. 관측소는 1926년 11월 18일 문을 열었습니다(DOI: 10.1029/eo068i003p00033-02).
- 그린란드까지 이어진 관측망. 레만은 코펜하겐과 그린란드의 이비그투트·스코스비 사운드를 잇는 넓은 관측망 구축을 맡았고, 1928년 왕립 덴마크 측지연구소 지진학부장이 되어 1952년 은퇴할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동안 모든 기록을 직접 읽고 관측소 회보를 냈습니다(DOI: 10.1029/eo052i007p00537). 25년 동안 그는 덴마크의 유일한 지진학자였습니다(DOI: 10.1029/93eo00411).
- 레만 이전에 알려져 있던 것. 1906년 올덤이 핵과 맨틀의 경계를 찾았고, 구텐베르크가 그 깊이를 2900km로 정했으며, 1926년 제프리스가 고체설의 논거를 반박하고 핵이 액체임을 세웠습니다. 같은 글은 S파가 핵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관측만으로는 당시 지진학자들이 핵을 액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오늘날 교과서 서술과 달리라는 단서까지 붙여 적습니다(DOI: 10.1119/1.12026). 이야기에서도 그림자 설명은 "지금 과학책의 설명"으로 두고, 역사는 따로 말합니다. 즉 레만 직전의 그림은 "가운데에 액체 공 하나"였습니다.
- 1929년 6월 16일(세계시) 뉴질랜드 남섬에서 규모 7.8의 머치슨 지진이 일어났습니다(DOI: 10.5459/bnzsee.27.3.190-204). 현지 시각으로는 17일 오전이었습니다(DOI: 10.1017/s0016756800099027). 레만은 1930년 「P' as read from the records of the earthquake of June 16th 1929」라는 글을 냈습니다(openalex:W572547897 — 제목만 확인, 초록 없음). 이 글의 지진을 머치슨 지진으로 보는 것은 날짜가 같아서 그렇게 본 추론입니다(아래 「무엇이 근거이고」 참조).
- 1936년, 「P′」. 레만은 국제지진국(BCSI) 학술보고에 제목이 「P′」 하나뿐인 논문을 냈고, 그 제목 덕에 서지 편찬자들이 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DOI: 10.1029/eo052i007p00537). 논문은 이렇게 씁니다 — "P3′ 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제 그것이 회절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우리는 지구가 핵과 맨틀로 이루어졌다고 보되, 핵 안에 바깥 핵보다 속도가 더 빠른 안쪽 핵이 있다고 본다."(DOI: 10.1029/eo068i006p00073-01; DOI: 10.18814/epiiugs/2001/v24i4/007)
- 그리고 스스로 한계를 적었습니다. 같은 논문에 "이 가설은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만 지금 가진 자료로는 증명할 수 없다"(DOI: 10.1029/eo068i006p00073-01), "안쪽 핵이 있다는 가정은 적어도 관측과 어긋나지 않으며, 관측은 이 가정으로 어쩌면 더 쉽게 설명된다"(DOI: 10.1017/9781139583954.002)고 적었습니다.
- 1936년보다 먼저 시작된 생각. 레만이 제프리스와 주고받은 초기 편지에 1932년부터 이미 내핵 이야기가 나옵니다(DOI: 10.4401/ag-4625).
- "단단하다"는 그 뒤의 일입니다. 레만이 제안한 것은 "속도가 더 빠른 안쪽 핵"까지입니다. 내핵이 고체라는 주장은 그 뒤 불런이 압축률·밀도에 관한 그럴듯한 가정 위에서 폈고, 이후 지구 자유진동 분석이 꽤 설득력 있는 증거를 냈습니다. 내핵을 S파로 통과한 신호를 찾으려는 시도는 (가능한 예외 하나를 빼면) 그 글이 쓰일 때까지 실패했습니다(DOI: 10.1119/1.12026). 여러 글(DOI: 10.1029/95eo00143; DOI: 10.4169/college.math.j.44.5.399)이 "레만이 고체 내핵을 발견했다"고 줄여 쓰지만, 1936년 원문이 말하는 것은 속도가 더 빠르다는 데까지입니다.
- 현직 때와 은퇴 뒤에 걸쳐. 1951년 유럽지진학위원회와 1964년 국제지진센터 창설에 참여했습니다. 은퇴 뒤에는 덴마크의 집에서, 또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DOI: 10.4401/ag-4625). 은퇴 연도는 1952년으로 적은 글(DOI: 10.1029/eo052i007p00537)과 1953년으로 적은 글(DOI: 10.4401/ag-4625)이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 라몬트 관측소에 와서 일할 때 친구가 된 동료는 그를 수줍음이 아주 많던 사람, 손님 숙소에서 자기 밥을 직접 해 먹고 친구가 장 본 아이스크림과 냉동식품을 퇴근 때까지 자기 작은 냉동칸에 맡아 주던 사람으로 회고합니다(DOI: 10.1029/93eo00520).
- 명예. 1971년 미국지구물리학연합(AGU)의 윌리엄 보위 메달을 받았습니다(DOI: 10.1029/93eo00411). 수상 인용문은 그의 발견이 "어떤 컴퓨터화로도 완전히 대신하기 어려울 비술의 대가가 지진 기록을 엄밀하게 들여다봐서" 이루어졌다고 적었습니다(DOI: 10.1029/eo052i007p00537). 발견 50주년인 1986년을 돌아본 글은 "원자 물리학에서 이에 맞먹는 일이었다면 노벨상감"이라고 썼습니다(DOI: 10.1029/eo068i006p00073-01).
- 1993년 2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DOI: 10.1098/rsbm.1997.0016).
아이가 물어볼 만한 질문
"지구 속에 안 가 봤는데 어떻게 알아?" 지진의 흔들림이 지구 속을 지나 멀리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세계 곳곳의 관측소에 흔들림이 언제 도착했는지, 어디에는 오고 어디에는 안 왔는지를 모으면 흔들림이 지나간 길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DOI: 10.4169/college.math.j.44.5.399). 상자를 열지 않고 흔들어 속을 맞히는 것과 같은 발상입니다.
"그림자는 뭐야?" 흔들림 중 어떤 종류(S파)는 액체를 지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진이 나면 진앙에서 약 100° 너머 지구 반대쪽 넓은 지역에는 S파가 도착하지 않고, P파도 잘 오지 않는 구간이 생깁니다. 오늘의 교과서는 이것을 바깥 핵이 액체라는 직접 증거로 설명합니다(역사적으로는 이것만으로 설득되지 않았다는 점은 위 참조). 2025년 캄차카 지진 때 이탈리아 고등학생들이 교육용 관측망 자료로 이 그림자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DOI: 10.5194/egusphere-egu26-2627).
"안쪽 공은 단단해?" 지금은 그렇게 봅니다. 다만 그건 레만이 한 말이 아니라 그 뒤에 쌓인 증거입니다(DOI: 10.1119/1.12026). 여러 글(DOI: 10.1029/95eo00143; DOI: 10.4169/college.math.j.44.5.399)이 "레만이 고체 내핵을 발견했다"고 줄여 쓰지만, 1936년 원문이 말하는 것은 속도가 더 빠르다는 데까지입니다. 아이에게는 "레만은 거기서 흔들림이 더 빨리 간다고 했고, 단단하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보탰어"라고 나눠 말해 주시면 정확합니다.
"그 공은 이제 다 알아?" 아닙니다. 내핵을 "바깥 액체 핵에 둘러싸인 균질한 고체 구"로 보던 시절은 지났고, 지금은 방향에 따라 성질이 다르고 위쪽에 작은 구조가 널려 있는 복잡한 대상으로 연구됩니다(DOI: 10.1002/2014rg000469). 레만도 98세에 "마지막 말은 아마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썼습니다(DOI: 10.1017/9781139583954.002).
"그 공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과학자들은 내핵이 지구 자기장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습니다(DOI: 10.1029/95eo00143; DOI: 10.1002/2014rg000469). 나침반 바늘을 움직이는 그 자기장입니다. 아직 "역할을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를 묻는 단계라는 점을 같이 말해 주세요.
"레만은 몇 살까지 살았어?" 아이와 직접 세어 보기 좋은 질문입니다. 1888년 5월 13일생, 1993년 2월 21일 별세이므로(DOI: 10.1098/rsbm.1997.0016) 만 104세입니다. 그런데 당시 부고 두 편은 "105세"라고 적었습니다(DOI: 10.1029/93eo00411; DOI: 10.1029/95eo00143). 이야기에서는 이 차이를 일부러 아이와 함께 셉니다.
이야기에 담긴 개념
- 흔적으로 재기 — 가 볼 수 없는 곳을, 거기를 지나온 것이 남긴 기록으로 읽는 일. 이 묶음 네 편의 공통 축입니다.
- 아는 만큼만 말하기 — "증명할 수 없다"와 "더 잘 맞는다"를 함께 적은 1936년 논문의 태도.
- 닫힌 문 앞에서 길 바꾸기 — 레만이 지진학자가 된 것은 처음부터의 꿈이 아니라 막힌 길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무엇이 근거이고 무엇이 전해지는 이야기인가
근거 문헌이 명시하는 것 — 출생일·사망일과 가족, 10대의 지진 경험(본인 회고), 케임브리지에서의 좌절과 1912년 겨울의 붕괴(연구자는 "가능성이 크다"로 표현), 저임금 사무직과 분야 전환, 요새 건물 관측소와 1926년 개소, 그린란드 관측망, 모든 기록을 직접 읽음, 25년간 유일한 덴마크 지진학자, 1936년 「P′」와 그 인용문, 은퇴 뒤의 연구, 라몬트에서의 일상, 보위 메달과 인용문.
이야기 안에서 "확인 못 했다"고 말한 것
- ⚠️ "레만이 파가 올 수 없는 곳에서 파를 발견했다" — 가장 널리 퍼진 줄거리입니다. 확보한 초록이 직접 말하는 것은 "P3′ 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회절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까지이고, 그 파가 그림자 구역 안에 도착했다는 서술은 확보한 초록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교과서 설명으로는 흔히 그렇게 연결되지만, 이야기에서는 확인한 데까지만 말하고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 ⚠️ 1929년 뉴질랜드 지진이 발견의 계기였다는 것 — 머치슨 지진의 날짜(DOI: 10.5459/bnzsee.27.3.190-204)와 레만 1930년 글의 제목 속 날짜(openalex:W572547897)가 같다는 것까지가 근거입니다. 1936년 제안이 그 지진 기록에서 나왔다는 연결은 확보한 초록에 없고, 1936년 논문은 "P파 자료의 분석"으로만 설명됩니다(DOI: 10.18814/epiiugs/2001/v24i4/007). 이야기에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 ⚠️ 오트밀 상자에 모은 카드 — 레만이 지진 기록을 카드에 적어 오트밀 상자에 보관했다는 일화는 두 각도로 찾아도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레만의 집에서 나온 수천 점의 지진 작업 문서가 보존·스캔되어 있다는 사실은 근거가 있어(DOI: 10.4401/ag-4625) 그쪽을 말합니다.
부모 자료로만 둔 것
- 냉전과 핵실험 감시. 레만의 사적인 편지와 미국·덴마크 문서를 보면, 미국 군 기관이 그린란드의 지진 관측소와 덴마크 지진학자들을 원거리 원자폭탄 탐지에 끌어들이려 했고 덴마크의 군축 정책이 그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DOI: 10.1057/978-1-137-59688-8_8). 아이 이야기의 축과 달라 넣지 않았습니다.
- "레만 불연속면"이라는 이름의 혼동. 1971년 메달 인용문과 1987년의 한 제안은 내핵 경계를 레만 불연속면이라 불렀습니다(DOI: 10.1029/eo052i007p00537; DOI: 10.1029/eo068i046p01593-04). 그런데 레만은 1964년에 상부 맨틀의 경계도 제시했고(DOI: 10.7146/kvant.167669), 오늘날 지진학 논문에서 "레만 불연속면"은 보통 깊이 약 200km 부근의 이 상부 맨틀 경계를 가리킵니다(DOI: 10.1029/2004gl022333). 아이가 다른 데서 이 이름을 들으면 둘 중 어느 것인지 확인해 주세요.
근거와 그 뒤
핵심 근거
- Inge Lehmann's paper: P'(1936) — 1936년 논문 인용과 그 의의. DOI: 10.18814/epiiugs/2001/v24i4/007
- 50 years of studies on the inner core (1987) — 1936년 원문 인용, "노벨상감". DOI: 10.1029/eo068i006p00073-01
- On the History of Inner Core Discovery (2017) — 레만 1936·1987 인용. DOI: 10.1017/9781139583954.002
- Discovery of the Earth's core (1980) — 핵 발견사, 고체 내핵 논증의 순서. DOI: 10.1119/1.12026
- Seismology in the days of old (1987) — 레만 본인의 회고. DOI: 10.1029/eo068i003p00033-02
- Inge Lehmann. 13 May 1888—21 February 1993 (왕립학회 전기 회고록). DOI: 10.1098/rsbm.1997.0016
- Intellectually gifted but inherently fragile (2022). DOI: 10.5194/hgss-13-83-2022
- A seismologist's beginnings (2021). DOI: 10.5194/hgss-2021-20
- Thirty-third presentation: William Bowie Medal to Inge Lehmann (1971). DOI: 10.1029/eo052i007p00537
- Inge Lehmann (1888–1993) (AGU 부고, 1993). DOI: 10.1029/93eo00411
- A personal memoir of Inge Lehmann (1993). DOI: 10.1029/93eo00520
- Inge Lehmann's work materials and seismological epistolary archive (2009). DOI: 10.4401/ag-4625
- [Comment on "Seismology in the days of old"] The Lehmann discontinuity (1987). DOI: 10.1029/eo068i046p01593-04
- Damage and intensities in the magnitude 7.8 1929 Murchison, New Zealand, earthquake (1994). DOI: 10.5459/bnzsee.27.3.190-204
- P' as read from the records of the earthquake of June 16th 1929 (Lehmann, 1930 — 제목만). openalex:W572547897
- Observations of the Seismic Shadow Zone from the 29 July 2025 M 8.8 Kamchatka Earthquake. DOI: 10.5194/egusphere-egu26-2627
- How Inge Lehmann Discovered the Inner Core of the Earth (2013). DOI: 10.4169/college.math.j.44.5.399
- The Earth's inner core and the geodynamo (1995). DOI: 10.1029/95eo00143
- Complex inner core of the Earth: The last frontier of global seismology (2015). DOI: 10.1002/2014rg000469
- Danish Seismic Research in Relation to American Nuclear Detection Efforts (2016). DOI: 10.1057/978-1-137-59688-8_8
- Inge Lehmann – seismologiens pioner (2025, 덴마크어). DOI: 10.7146/kvant.167669
- Lehmann discontinuity beneath North America: No role for seismic anisotropy (2005). DOI: 10.1029/2004gl022333
그 뒤에 이어진 것
- 교과서의 네 겹. 내핵 경계는 지구를 지각·맨틀·핵·내핵으로 나누는 세 큰 경계 중 하나이고, 다른 두 경계(모호로비치치·구텐베르크)처럼 발견자의 이름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DOI: 10.1029/eo068i046p01593-04).
- 성평등 연구 지원의 이름. 레만은 덴마크에서 과학 연구의 성평등을 강화하려는 연구비 프로그램의 영감이 되었습니다(DOI: 10.5194/hgss-13-83-2022).
- 지금도 열려 있는 내핵. 내핵의 비등방성·감쇠·경계면의 굴곡·회전은 지금도 활발한 연구 주제이고, 그것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어떻게 굳어 가는지·자기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아직 풀리는 중입니다(DOI: 10.1002/2014rg000469).
함께 해볼 것
- 열지 않고 맞히기. 상자에 물건 하나를 몰래 넣고 아이가 흔들고 기울이고 소리를 들어 맞히게 해 보세요. 답할 때 "증명은 못 하지만 이건 ○○ 같아"라고 말하게 하면, 이야기의 마지막과 이어집니다.
- 나이 세어 보기. 레만의 생일과 떠난 날로 나이를 직접 세어 보세요. 글마다 숫자가 다를 때 원래 기록으로 돌아가 세는 연습입니다.
- 네 겹 그리기. 지구를 반으로 자른 그림을 그리고 네 겹에 이름을 붙여 보세요. 마지막 한 겹에는 레만의 이름을 적어 줘도 좋습니다.
근거 논문 (23)
- P' as read from the records of the earthquake of June 16th 1929 (1930)PMID openalex:W572547897
- [Comment on “Seismology in the days of old” by Inge Lehmann] The Lehmann discontinuity (1987)DOI 10.1029/eo068i046p01593-04
- Inge Lehmann. 13 May 1888—21 February 1993 (1997)DOI 10.1098/rsbm.1997.0016
- Seismology in the days of old (1987)DOI 10.1029/eo068i003p00033-02
- A seismologist's beginnings: Inge Lehmann's experiences during the 1910s and '20s as a woman in science (2021)DOI 10.5194/hgss-2021-20
- Intellectually gifted but inherently fragile – society's view of female scientists as experienced by seismologist Inge Lehmann up to 1930 (2022)DOI 10.5194/hgss-13-83-2022
- Thirty‐third presentation: William Bowie Medal to Inge Lehmann (1971)DOI 10.1029/eo052i007p00537
- Inge Lehmann (1888–1993) (1993)DOI 10.1029/93eo00411
- Discovery of the Earth’s core (1980)DOI 10.1119/1.12026
- Damage and intensities in the magnitude 7.8 1929 Murchison, New Zealand, earthquake (1994)DOI 10.5459/bnzsee.27.3.190-204
- 50 years of studies on the inner core (1987)DOI 10.1029/eo068i006p00073-01
- Inge Lehmann's paper: P'(1936) (2001)DOI 10.18814/epiiugs/2001/v24i4/007
- On the History of Inner Core Discovery (2017)DOI 10.1017/9781139583954.002
- Inge Lehmann’s work materials and seismological epistolary archive (2009)DOI 10.4401/ag-4625
- A personal memoir of Inge Lehmann (1888–1993) (1993)DOI 10.1029/93eo00520
- How Inge Lehmann Discovered the Inner Core of the Earth (2013)DOI 10.4169/college.math.j.44.5.399
- Observations of the Seismic Shadow Zone from the 29 July 2025 M 8.8 Kamchatka Earthquake. (2026)DOI 10.5194/egusphere-egu26-2627
- Complex inner core of the Earth: The last frontier of global seismology (2015)DOI 10.1002/2014rg000469
- The Earth's inner core and the geodynamo: Determining their roles in the Earth's history (1995)DOI 10.1029/95eo00143
- Danish Seismic Research in Relation to American Nuclear Detection Efforts (2016)DOI 10.1057/978-1-137-59688-8_8
- Inge Lehmann – seismologiens pioner (2025)DOI 10.7146/kvant.167669
- Lehmann discontinuity beneath North America: No role for seismic anisotropy (2005)DOI 10.1029/2004gl022333
- The Murchison (New Zealand) Earthquake, 17th June, 1929 (1930)DOI 10.1017/s0016756800099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