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테라 화산은 언제 터졌나 — 탄소와 토기 사이의 백 년
토기와 이집트 연표는 기원전 1500년 무렵을, 방사성탄소는 17세기 후반 쪽을 가리켰습니다. 새 기준표와 빙하 코어, 올리브 관목이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히고 다시 벌렸는지 따라갑니다.
테라 화산은 언제 터졌나 — 탄소와 토기 사이의 백 년
섬 하나가 묻힌 해
지금부터 약 3,600년 전, 에게해 남쪽의 테라섬에서 화산이 크게 터졌습니다. 테라는 오늘날 산토리니라고 부르는 섬의 옛 이름입니다. 섬 남쪽 해안의 청동기 마을 아크로티리는 두꺼운 부석과 화산재 아래 묻혔습니다. 바다 건너 남쪽의 크레타섬에서는 궁전을 중심으로 바다 교역을 하던 청동기 문명, 미노아 문명이 번성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 분화를 흔히 「미노아 분화」라고 부릅니다. 같은 무렵 이집트는 왕들의 재위 연수를 이어 붙인 연표를 남기고 있었지만, 이 분화가 그 연표의 어느 왕 때였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이 따라가는 물음은 하나, 분화가 몇 년에 일어났느냐입니다.
연도 하나에 학자들이 수십 년을 매달린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분화가 남긴 화산재 층은 에게해와 이집트, 근동의 연표를 서로 맞추는 기준선이 되고, 극지의 얼음과 동굴 석순, 호수 퇴적물 같은 자연의 기록을 역사 연대에 붙들어 매는 눈금이 됩니다 (DOI: 10.1126/sciadv.aar8241). 이 눈금 하나가 움직이면 그 위에 올린 여러 문명의 시간표가 함께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눈금을 두 방법이 다르게 읽어 왔습니다. 하나는 토기 양식과 이집트 연표에 기댄 고고학의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입니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은 한때 살아 있던 것에 남은 방사성 탄소를 재서, 그것이 탄소를 새로 받아들이기를 멈춘 뒤 얼마나 지났는지를 거꾸로 셈하는 방법입니다. 고고학의 연대는 기원전 16세기 중반에서 15세기 초를, 방사성탄소의 연대는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를 가리켰습니다 (DOI: 10.1126/sciadv.aar8241). 두 답 사이의 거리는 100~150년으로 꼽혔고, 그 까닭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5579x). 이 글은 그 간격이 어디서 생겼고, 새 증거가 나올 때마다 어떻게 좁혀지거나 다시 벌어졌는지를 따라갑니다.

토기와 파라오가 정한 날짜
분화 직전까지 아크로티리 사람들이 쓰던 토기는, 크레타 토기 양식의 순서로 매긴 시기 가운데 「후기 미노아 IA기」에 속합니다. 분화는 이 시기의 끝 무렵에 일어났습니다 (DOI: 10.32028/jga.v9i.2744). 이것은 순서입니다. 분화가 어느 토기 양식 뒤에 왔는지는 알려 주지만, 그게 몇 년인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순서를 연도로 바꾸는 오래된 방법이 있습니다. 교차연대는 연도를 아는 곳의 물건과 연도를 모르는 곳의 물건이 한자리에서 함께 나올 때, 아는 쪽의 연도를 모르는 쪽으로 빌려 오는 방법입니다. 동지중해에서 연도를 아는 곳은 이집트였습니다. 이집트의 왕조 연표는 기록과 유물에서 읽어 낸 왕들의 재위 연수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고, 몇 안 되는 고대의 천문 관측으로 실제 달력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DOI: 10.1126/science.1189395).
이 방법으로 나온 숫자가 기원전 1500년입니다. 그리스의 한 무덤에서 후기 미노아 IA기의 토기가 이집트의 풍뎅이 모양 인장과 함께 나와, 그 토기 양식이 기원전 1500년 무렵보다 늦지 않다는 추정이 섰습니다. 1939년 그리스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는 이 1500년을 분화의 해로 제안했습니다 (DOI: 10.1017/cbo9780511607837.009). 그다음 시기인 후기 미노아 IB기의 물건이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 시절과 이어지는 맥락에서 나왔고, 그의 재위가 15세기 전반에 놓였으므로 IA기의 끝은 그보다 앞서야 했습니다 (DOI: 10.32028/jga.v9i.2744). 그 논문의 저자는 1500년을 이 최소 연대를 둥글게 요약한 숫자로 보고, 어떤 특정한 증거에서 나온 숫자는 아니었다고 평가합니다 (DOI: 10.32028/jga.v9i.2744).
이집트 연표 자체는 그 뒤 탄소로 시험받았고, 크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짧게 살다 간 식물 시료 211개의 방사성탄소 측정을 왕들의 재위 정보와 함께 계산한 연대에서, 신왕국은 기원전 1570~1544년 사이에 시작했습니다. 일부 기존 역사 추정보다 조금 이른 값입니다 (DOI: 10.1126/science.1189395). 이 결과를 받아 한 연구는 이집트 역사 연표에 큰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배제되었다고 보고, 그런데도 에게해에는 고고학의 「낮은」 연대와 탄소가 받치는 「높은」 연대가 여전히 마주 서 있다고 적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47196). 그래서 다툼의 자리는 이집트 연표와 에게해 지층을 잇는 고리로 좁혀집니다. 그 고리를 탄소로 시험한 결과는 한쪽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나일 삼각주 동쪽의 텔 엘다바 유적에서는 분화의 탄소 나이가 이집트 제18왕조 지층의 탄소 값과 맞아, 에게해와 이집트를 잇는 전통적 대응이 대체로 맞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5579x). 다른 연구진은 문제의 핵심이 고고학 지층과 정치사를 맞대는 대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습니다 (DOI: 10.1017/rdc.2017.88).
기원전 1500년은 이집트 왕의 연대를 토기의 고리로 빌려 온 날짜입니다. 빌려 온 날짜는 고리가 단단한 만큼만 단단합니다.
탄소가 연대를 백 년 끌어올리다
1970년대, 아크로티리 발굴지에서 나온 탄 유기물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방사성탄소 실험실로 보내졌습니다 (DOI: 10.1017/cbo9780511607837.009). 시료에 남은 방사성 탄소를 재는 일이었고, 그 방사성 탄소의 이름이 탄소-14입니다. 공기 속 탄소-14의 양은 시대마다 달랐기 때문에, 잰 값을 그대로 셈하면 실제 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보정 곡선은 나이를 이미 아는 시료들의 탄소-14를 재어, 해마다 공기 속 탄소-14가 얼마였는지를 이어 놓은 기준표입니다. 나이테를 세어 몇 년에 자랐는지 아는 나무가 그 기준표의 재료입니다.
아크로티리 시료의 갓 잰 값은 전통 연대와 맞아 보였지만, 나이테 기준표로 옮기자 기원전 1600년보다 이른 연대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근처에서 새어 나오는 화산 가스의 오래된 탄소가 시료를 오염시켰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DOI: 10.1017/cbo9780511607837.009). 1976년의 한 검토는 에게해의 기원전 2천년기 탄소 연대가 서로 일관되고 후기 청동기의 뒷부분에서는 전통 연대와 잘 맞는데, 그 초입인 후기 미노아 IA기 무렵에서는 뚜렷이 이르다고 정리했습니다. 저자는 유물 증거가 이 이른 연대를 받쳐 주지 않으며, 지금의 증거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적었습니다 (DOI: 10.2307/503574).
1980년대부터 이 어긋남을 반대쪽에서 읽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1987년의 한 연구는 에게해와 이집트를 잇는 토기 고리를 다시 살펴, 에게해의 후기 청동기가 이집트 신왕국 이전의 힉소스 시대, 곧 제2중간기에 시작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DOI: 10.1111/j.1475-4754.1987.tb00396.x). 1988년의 종합 분석은 1500년 무렵이라는 전통 연대가 너무 늦다고 보고 분화를 17세기 후반에 두었고, 1984년에 제안된 나이테 속 서리 피해 흔적의 연대 1628~1626년도 분화의 해로 가능해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DOI: 10.1558/jmea.v1i1.17). 2002년에는 신중하게 고른 유기물 시료로 분화가 기원전 1650~1620년 무렵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DOI: 10.1017/s0003598x00091183). 2006년에는 주변 지역의 탄소 연대와 토기 시기 순서를 함께 계산해, 분화가 17세기 후반이어야 하며 후기 미노아 IA·IB·II기를 합쳐 약 100년 늘려 잡아야 한다는 연표가 나왔습니다 (DOI: 10.1126/science.1125682).
같은 2006년, 이 흐름의 정점처럼 보인 시료가 나왔습니다. 섬의 칼데라 벽에서, 연구진이 분화 때 부석에 선 채로 산 채 묻혔다고 본 올리브 나무 가지가 발견된 것입니다 (DOI: 10.1126/science.1125087). 위글 매칭은 한 나무에서 차례를 아는 여러 토막의 탄소-14 값을 재어, 그 오르내림의 모양을 보정 곡선의 굴곡에 통째로 맞춰 보는 방법입니다. 연구진은 이 가지에 이 방법을 썼습니다. 보정 곡선은 한 방향으로 매끈하게 내려가지 않고 구불거리기 때문에 시료 하나로는 정밀도에 한계가 있는데, 순서가 있는 여러 값은 곡선과 같은 굴곡을 그리므로 맞춰 볼 수 있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35967). 연구진은 X선 단층 촬영으로 나이테 72개를 찾았고, 이어진 네 토막을 재어 맞췄습니다 (DOI: 10.2307/jj.35529235.28). 결과는 기원전 1627~1600년, 계산이 95.4% 확률로 이 안에 든다고 매긴 범위였습니다. 전통적인 이집트 연표에서 나온 날짜보다 한 세기 이릅니다 (DOI: 10.1126/science.1125087). 연구진은 뒤에 이를 기원전 1613년 ±13년으로 적고, 가지가 해발 150m, 활동 중인 화산대에서 2.5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자랐으므로 화산 가스의 오래된 탄소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습니다 (DOI: 10.2307/jj.35529235.28).
이 가지는 곧 표적이 되었습니다. 2014년 고고학 학술지 『앤티퀴티』의 지상 토론에서, 한 연구진은 산토리니의 현대 올리브 나무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를 들어 이 연대가 여러 이유로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DOI: 10.1017/s0003598x00050365). 가지를 잰 연구진의 반박문에 따르면, 이 비판은 식물학 조사에 다른 논거들을 더해 기원전 1500년 무렵의 전통적인 「낮은」 연대를 지키려 한 것이었습니다 (DOI: 10.1017/s0003598x00050390). 비판을 지지한 한 논평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지가 17세기 후반으로 나온 것 자체는 뜻밖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크로티리에서 나온, 수명이 짧은 다른 시료 대부분이 그 세기 후반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해마다 나이테를 만들지 않으므로, 있지도 않은 나이테를 이어 위글 매칭을 하고 보정 곡선에 맞춘 정밀도는 착시라고 보았습니다. 가지가 분화 때 살아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가장 바깥 껍질 쪽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탄소로 테라 분화의 연대를 매기는 일 자체가 역사·고고학 연대와 뚜렷이 충돌하므로,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문제적이라고 끝맺었습니다 (DOI: 10.1017/s0003598x00050389). 가지를 잰 연구진은 반박문에서 비판의 주요 논거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비판이 분화에 관한 다른 탄소 연대 연구들을 무시했다고 응수했습니다 (DOI: 10.1017/s0003598x00050390).
탄소 쪽의 다른 연구는 늦은 연대가 나올 여지를 일부러 끝까지 밀어 보았습니다. 지역에 따른 탄소 값 차이는 몇 년 수준밖에 안 되었고, 화산 가스 오염은 현장에서 관찰된 적 없는 가설 단계였습니다. 늦게 잡는 가정을 다 받아도 17세기 후반이 가장 유력하게 남았습니다. 다만 산토리니 자료만 따로 보면 16세기 중반(기원전 약 1593~1530년)의 가능성이 이전 분석보다 커졌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47202). 탄소 쪽 답의 힘은 여러 시료가 같은 쪽을 가리킨 데 있었습니다. 가장 정밀해 보인 한 시료를 두고는, 그 시료 자체를 믿을 수 있는지와 탄소 연대가 고고학 연대와 맞설 수 있는지가 함께 다퉈졌습니다.
얼음 속 화산재는 다른 화산의 것이었다
탄소와 토기가 맞서는 동안, 세 번째 시계가 끼어들었습니다. 빙하 코어는 그린란드나 남극의 얼음을 위에서 아래로 뚫어 꺼낸 얼음 기둥으로, 해마다 쌓인 눈이 켜를 이뤄 연도를 셀 수 있습니다. 큰 화산이 터지면 그 해의 켜에 산성이 높은 층이 남습니다. 1980년에 이 산성 층을 읽는 방법을 소개한 논문은 역사에 남은 분화들과 나란히 테라의 산성 층을 기원전 1400년 무렵으로 실었습니다 (DOI: 10.1017/s0022143000015227). 얼음 속 산성 층에 어느 화산의 이름을 붙이느냐가 이후 20여 년 동안 이 논쟁의 또 다른 줄기가 되었습니다.
2003년, 그린란드 GRIP 빙하 코어의 기원전 1645년(±4년) 켜에서 나온 아주 작은 화산 유리 조각이 테라에서 왔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 주장이 맞다면 분화의 해가 한 해로 정해질 수 있었습니다 (DOI: 10.1029/2003gc000608). 같은 해 한 반론은 그 짝짓기의 방법이 잘못되었고, 화학 자료로 보면 그 조각은 테라의 것이 아니라고 보였습니다 (DOI: 10.1029/2003gc000608). 이듬해 연구는 얼음 속 유리와 테라의 화산재가 여러 원소의 농도에서 달라 같은 것일 수 없고, 알래스카 아니악차크 화산의 화산재와는 모든 원소가 놀랍도록 닮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저자들은 그러면서도 테라 분화의 연대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DOI: 10.1029/2003gc000672). 2008년의 한 논평은 이 켜를 테라 분화로 날짜 매긴 그린란드 연표를 반박하며, 유리 조각 하나하나를 분석한 결과도 아니악차크를 가리킨다고 보고했고, 이 해석이 분화를 기원전 1630~1600년 무렵으로 둔 탄소 연대를 지지한다고도 적었습니다 (DOI: 10.1029/2007jd008970). 2012년의 연구는 이 무렵의 산성 신호에 북아메리카의 분화들이 보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산성 신호를 특정 분화에 붙이는 일을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DOI: 10.1029/2012jd017698).
2022년 그린란드의 연도 셈은 다시 고쳐졌습니다. 여러 얼음 기둥을 맞춰 다시 센 새 연표는 3,800년 전 무렵에서 이전 연표보다 약 13년 젊게 나왔고, 이 무렵 탄소 기준표의 2020년판인 IntCal20과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테라 분화를 얼음의 산성 신호에 짝지을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기원전 1600년 무렵 산성 신호로는 뚜렷하지 않은 냉각 사건 하나를 새로 관찰했습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 그린란드 얼음 속 테라의 뚜렷한 흔적은 여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DOI: 10.5194/cp-18-1125-2022).
같은 해 다른 연구진은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 기록을 함께 맞춰 이 시기 화산 사건마다 연도를 매겼습니다. 아주 잘게 잘라 잰 황 성분과 화산재는 기원전 1628년 켜에 하늘 높이 황을 올린 화산이 알래스카의 아니악차크II 분화임을 보였고, 저자들은 이 결과가 1628년 사건이 테라였다는 수십 년의 추측을 끝낸다고 적었습니다. 저자들이 남긴 테라의 후보는 기원전 1611년, 1561·1558·1555년, 그리고 1538년 무렵의 황 분출 사건들이고, 이 사건들은 모두 황의 양이 크지 않아, 저자들은 테라가 기후를 흔들 힘이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분화보다 훨씬 작았다고 봅니다 (DOI: 10.1093/pnasnexus/pgac048).
나무에서도 후보 신호가 하나 나왔습니다. 동지중해 청동기·철기 시대의 나이테 기록을 정확한 달력 연도에 고정한 연구는, 그 나이테의 화학에서 기원전 1560년 무렵 자라던 환경이 바뀐 흔적을 찾았습니다. 저자들은 이것이 더 입증이 필요하지만 테라 분화의 증거일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DOI: 10.1073/pnas.1917445117). 얼음과 나무는 후보 연도의 목록을 내놓았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테라인지는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습니다.
기준표를 다시 그리자 간격이 움직였다
2018년, 탄소 쪽의 답이 안에서부터 움직였습니다. 연구진은 달력 연도를 아는 나이테로 기원전 1700~1500년의 탄소-14를 한 해 단위로 다시 쟀습니다. 그 값은 당시 쓰던 국제 보정 곡선과 어긋났고, 그 어긋남은 테라의 보정 연대를 16세기 쪽으로 옮겼습니다 (DOI: 10.1126/sciadv.aar8241). 2018년 측정에 쓰인 아일랜드 참나무를 스위스의 다른 실험실에서 다시 잰 값은 처음 측정과 맞았지만, 지역마다 다른 탄소 값의 차이에 대한 물음을 새로 남겼습니다 (DOI: 10.1017/rdc.2020.14).
지역 차이는 이 논쟁의 새 변수가 되었습니다. 2012년의 검토는 에게해·아나톨리아 일대에서 지역 차이가 아주 작다는 것 말고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47202). 측정 정밀도가 높아진 2020년의 비교에서는, 지중해의 탄소 값이 특히 기준표가 뒤집히거나 평평해지는 자리에서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차이는 이집트 역사와 테라 분화를 포함한 연대를 최대 수십 년 움직일 수 있습니다 (DOI: 10.1126/sciadv.aaz1096). 같은 해 다른 연구는 지중해·아나톨리아의 나무에서 IntCal20과 탄소-14 나이로 0~22년 어긋나는 값을 보고하고, 그 원인으로 측정 기술의 세대 차이와 나무가 자라는 철의 길이와 때를 꼽았습니다 (DOI: 10.1038/s41598-020-69287-2).
2026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의 연구진은 IntCal20이 나온 뒤로 의견 차이가 커졌다고 적습니다. 한 해 단위 측정이 늘면서 이 시기 공기 속 탄소-14가 오르내렸을 가능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기원전 1660~1507년의 한 해 단위 측정 약 90개를 새로 보탰고, 이 시기에 탄소-14가 갑자기 많이 만들어졌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실험실들의 자료 사이에서, 나무의 종이나 지역, 시료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됐을 수 있는 작은 차이를 확인했습니다 (DOI: 10.1017/rdc.2025.10186).
기준표가 바뀌면 같은 측정값의 연도도 바뀝니다. 2006년 올리브 가지의 네 값은 그대로인데, 보정 곡선이 개선될 때마다 그 보정 연대가 달라져 왔습니다. 한 연구는 여러 나이테를 한데 모아 잰 평균값을 한 해 단위 기준표에 그대로 맞추면 안 된다고 보고, 기준표를 그 토막 길이에 맞게 평균 내어 다시 맞췄습니다. 그 결과는 이전 추정보다 조금 젊은,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중반에 이르는 범위였습니다 (DOI: 10.1017/rdc.2023.35). 탄소 쪽의 답은 새로 잰 시료가 없어도, 기준표가 바뀌면 움직입니다.
평평한 구간 위의 올리브 관목
2023년, 테라 바로 옆 섬 테라시아에서 같은 분화의 퇴적층에 묻혀 숯이 된 올리브 관목이 보고되었습니다. 이 관목은 2006년의 가지보다 조금 젊게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보정 결과와 가지의 생장 증가분을 센 결과를 합쳐, 분화가 16세기 중반이었을 확률이 커졌고 그 시기가 빙하 코어의 여러 화산 황 신호와 겹친다고 보고했습니다 (DOI: 10.1038/s41598-023-33696-w).
평탄 구간은 보정 곡선이 수십 년 동안 거의 수평으로 누워, 그 사이 어느 해에 죽은 시료든 탄소-14 값이 비슷하게 나오는 자리입니다. 이 관목의 측정값은 기원전 약 1620~1540년에 걸친 평탄 구간에 걸렸습니다 (DOI: 10.1017/rdc.2024.44).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한 단계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관목의 한 토막에서 탄소-14 값 하나를 잽니다. 그 값을 보정 곡선에 대고, 그 값이 나올 수 있는 해를 찾습니다. 곡선이 비탈진 구간이라면 맞는 해가 몇 해로 모입니다. 평탄 구간에서는 1620년 무렵부터 1540년 무렵까지 여든 해 가까이가 모두 비슷한 값을 냅니다. 그래서 다른 정보 없이 보정하면, 그 시료가 죽은 해의 확률이 평탄 구간 전체에 넓게 퍼지고, 쓸모가 적은 넓은 범위가 나옵니다 (DOI: 10.1017/rdc.2024.44). 얼음이 내놓은 후보 가운데 1611년과 1561년 무렵은 둘 다 이 구간 안에 듭니다 (DOI: 10.1093/pnasnexus/pgac048). 순서 정보 없이 탄소 값만으로 두 후보를 가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퍼진 확률을 좁히려면 측정값 바깥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지층의 순서, 시료가 나온 맥락, 시료 자체의 성질이 그런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DOI: 10.1017/rdc.2024.44). 베이즈 연대 모형은 여러 측정값에 「이 층이 저 층보다 먼저 쌓였다」 같은 순서 정보를 함께 넣어, 각 연대의 범위를 좁히는 계산입니다. 관목이라면 한 가지의 안쪽 토막이 바깥쪽 토막보다 먼저 자랐다는 순서, 그리고 여러 가지가 같은 분화로 한꺼번에 죽었다는 가정이 그런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2024년 재분석은 관목이 분화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 가정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DOI: 10.32028/jga.v9i.2744).
2024년의 재분석은 바로 이 대목에서 갈라졌습니다. 재분석을 낸 연구자 매닝은 1980년대부터 에게해의 이른 연대를 주장해 온 쪽입니다 (DOI: 10.32028/jga.v9i.2744). 그는 2023년 보고가 처음 얻은 범위를 「17세기 후반과 16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결론 없는 범위로 보고, 그 뒤에 16세기 중반을 지지하는 논증이 붙었다고 정리합니다. 그는 그럴듯한 순서 정보를 더 넣어 다시 계산했고, 분화의 해가 들 가능성이 높은 범위를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 사이로 보고합니다 (DOI: 10.1017/rdc.2024.44). 같은 관목의 같은 측정값이, 어떤 순서 정보를 넣느냐에 따라 「16세기 중반 쪽」과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라는 두 읽기를 낳았습니다. 어느 순서 정보가 「적절한가」가 지금 다툼의 내용입니다.
분화는 미노아 문명을 무너뜨렸나
분화가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끝냈다는 이야기는 이 논쟁 밖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76년의 한 해석은 아크로티리가 기원전 1470년 무렵까지 버려지지 않았고, 크레타 여러 유적의 후기 미노아 IB기 파괴층도 같은 무렵이므로, 두 파괴를 한 번의 분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자는 크레타의 파괴 양상이 침입자보다 충격파·지진해일·화산재 같은 자연의 힘에 더 맞는다고 보았습니다 (DOI: 10.2307/502934).
지금의 상대 순서는 그 그림과 다릅니다. 분화는 후기 미노아 IA기의 끝 무렵에 일어났고 (DOI: 10.32028/jga.v9i.2744), 크레타 동쪽 해안 팔라이카스트로의 지진해일 퇴적층에서도 가장 늦은 유물이 IA기 토기였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5579x). 크레타 여러 유적의 파괴층으로 꼽혀 온 IB기는 그 다음 시기입니다. 분화의 피해가 컸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 있습니다. 크레타 북쪽 말리아에서는 지진해일이 궁전 중심지 외곽까지 닿아 최대 400m 안쪽까지 물이 들어왔고, 연구진은 이 결과가 미노아 문명에 미친 결과를 새로 연구할 길을 연다고 적었습니다 (DOI: 10.1038/s41598-021-94859-1). 오늘날 튀르키예 서해안의 체슈메에서는 지진해일 잔해 속에서 사람과 개의 뼈가 발견되었고, 그 퇴적층은 기원전 1612년보다 이를 수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DOI: 10.1073/pnas.2114213118). 이스라엘 앞바다의 대륙붕에서도 이 분화의 지진해일 퇴적층이 확인되었는데, 그 연대 범위는 「높은」 연대와 「낮은」 연대를 둘 다 감쌉니다 (DOI: 10.1130/g25704a.1).
피해와 몰락 사이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한 연구진은 크레타가 분화 뒤에도 번영을 이어 갔다는 증거를 받아들이면서, 해상 교역망 모형으로 주요 기항지 하나가 사라진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운송비가 오르며 항로가 점점 줄어 결국 경제가 무너지는 경로입니다 (DOI: 10.1017/s0003598x00068459). 이것은 모형이 보인 가능한 경로이고, 그렇게 되었다는 관찰은 아닙니다. 분화와 몰락 사이의 시간이 몇 년이었는지는 이 글의 물음, 곧 분화의 연대와 IA·IB기의 길이에 달려 있습니다. 2006년의 탄소 연표처럼 이 시기들을 약 100년 늘려 잡으면 그 길이가 다시 매겨집니다 (DOI: 10.1126/science.1125682). 분화가 IB기 크레타 파괴보다 먼저였다는 순서는 말할 수 있어도, 분화가 미노아 문명을 무너뜨렸다는 인과는 여전히 해석의 영역입니다.
무엇이 좁혀졌고 무엇이 남았나
다툼의 폭이 한 세기 넘던 데서 약 50년으로 좁아졌다는 평가가 2024년에 나왔습니다. 평가를 낸 사람은 앞의 관목 재분석을 낸 바로 그 연구자 매닝입니다. 그의 정리로는, 2020년 이후 남은 선택지는 얼음 기록에 큰 분화가 잡힌 기원전 1611년 무렵(테라가 지금까지 살핀 얼음 기록에 잡히지 않았다면 넓게 1600년 무렵)과, 또 다른 큰 분화가 잡힌 1561년 무렵입니다. 어느 쪽이든 후기 미노아 IA기는 이집트의 힉소스 시대, 곧 제2중간기와 같은 시기가 됩니다. 매닝 자신은 1611년 쪽이 더 유력하다고 봅니다 (DOI: 10.32028/jga.v9i.2744). 관목을 보고한 연구진은 16세기 중반 쪽을 봅니다 (DOI: 10.1038/s41598-023-33696-w). 이집트와 레반트 유적의 지층을 탄소 연대만으로 견준 다른 연구진은, 분화가 제2중간기 안에 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DOI: 10.1017/rdc.2017.88). 2012년에 이미 한 검토는 고고학 연대와 탄소 연대의 어긋남이 30~50년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DOI: 10.1017/s0033822200047196).
남은 것도 분명합니다. 후보 연도 1611년, 1561년 무렵, 1538년 무렵은 보정 곡선의 평탄 구간(기원전 약 1620~1540년) 안이나 그 끝자락에 놓여, 순서 정보 없이 탄소만으로는 한 해로 모이지 않습니다 (DOI: 10.1017/rdc.2024.44) (DOI: 10.1093/pnasnexus/pgac048). 지중해의 탄소 값이 기준표와 조금씩 다르다는 증거는 이 평평한 자리에서 연대를 수십 년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DOI: 10.1126/sciadv.aaz1096). 얼음 속 테라의 흔적은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습니다 (DOI: 10.5194/cp-18-1125-2022). 2009년 한 연구진은 두 체계를 섞지 말고 나란히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집트 연표에 이은 고고학 연대와 탄소 연대를 따로 적고, 기원전 2천년기의 이집트 연표와 탄소 연대 사이에 일종의 「보정 곡선」을 세워 어긋남의 원인도 찾자는 것입니다 (DOI: 10.1017/s003382220005579x).
이 논쟁이 남긴 것은 연도 하나보다, 연도 하나에 붙은 범위를 읽는 법입니다. 1627~1600년, 1613년 ±13년,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 「16세기 중반 쪽」은 모두 어떤 시료를, 어떤 기준표에, 어떤 순서 정보와 함께 맞췄는지를 함께 들어야 뜻이 섭니다. 방사성탄소가 시료의 나이를 재고 나이테 기준표가 그 값을 연도로 옮기는 원리는 「탄소로 나이 재기 — 모래시계와 나이테로 읽는 방사성탄소 연대」에서 처음부터 다룹니다. 이집트 왕조 연표처럼 기록에서 연대를 읽어 내는 법과 그 한계는 「기록을 읽는 법 — 할머니의 일기와 그날의 신문」이 다룹니다.
근거 논문
- "Annual radiocarbon record indicates 16th century BCE date for the Thera eruption" (2018) — DOI: 10.1126/sciadv.aar8241 — 기원전 1700~1500년 한 해 단위 탄소 기록이 국제 보정 곡선과 어긋나 테라 보정 연대를 16세기 쪽으로 옮김. 탄소(17세기 후반~16세기 초)와 고고학(16세기 중반~15세기 초)의 대립 정리.
- "The Minoan Santorini Eruption and Tsunami Deposits in Palaikastro (Crete): Dating by Geology, Archaeology, 14C, and Egyptian Chronology" (2009) — DOI: 10.1017/s003382220005579x — 팔라이카스트로 지진해일 퇴적층의 가장 늦은 유물은 LM IA 토기, 탄소와 이집트 연표의 100~150년 차이는 원인 미상, 두 연대 체계 병행·이집트-탄소 「보정 곡선」 제안.
- "Thera, the Aegean, Egypt, the Hyksos and Anatolia: rethinking the orthodox synchronisations and histories" (2024) — DOI: 10.32028/jga.v9i.2744 — 전통 1500년의 유래(LM IB 유물과 투트모세 3세), 2020년 이후 선택지 1611/1600 무렵·1561 무렵, 다툼 폭 약 50년으로 축소, 저자는 1611년 쪽이 더 유력하다고 봄.
- "Radiocarbon-Based Chronology for Dynastic Egypt" (2010) — DOI: 10.1126/science.1189395 — 단년생 식물 211개 탄소 측정+베이즈 모형, 신왕국 시작 기원전 1570~1544년, 나일 유역 19년 차이는 생장철 효과로 추정.
- "The Date of the Minoan Santorini Eruption: Quantifying the "Offset"" (2012) — DOI: 10.1017/s0033822200047196 — 이집트 역사 연표의 큰 결함 배제, 그러나 낮은·높은 연대 대립은 남음, 어긋남이 30~50년으로 줄 가능성 제기.
- "The Minoan Santorini Eruption and its14C Position in Archaeological Strata: Preliminary Comparison Between Ashkelon and Tell El-Dabca" (2017) — DOI: 10.1017/rdc.2017.88 — 문제의 핵심은 고고학 지층과 정치사의 대응, 분화는 제2중간기 안에 들 수 있음.
- "Case Study: The elusiveness of time" (2000) — DOI: 10.1017/cbo9780511607837.009 — LM IA 토기와 이집트 인장에서 나온 1500년, 마리나토스(1939)의 제안, 1970년대 아크로티리 탄소 측정이 보정 후 1600년보다 이르게 나옴.
- "Carbon-14 and the Beginning of the Late Bronze Age in the Aegean" (1976) — DOI: 10.2307/503574 — 에게해 탄소 연대는 일관되며 LM IA 무렵만 뚜렷이 이름, 유물이 받치지 않고 현재 증거로 설명 불가.
- "RESEARCH NOTES AND APPLICATION REPORTS DATING THE AEGEAN LATE BRONZE AGE WITH RADIOCARBON" (1987) — DOI: 10.1111/j.1475-4754.1987.tb00396.x — 토기 고리 재검토로 에게해 후기 청동기가 힉소스 시대에 시작했다고 결론.
- "The Bronze Age Eruption of Thera" (1988) — DOI: 10.1558/jmea.v1i1.17 — 전통 1500년은 너무 늦고 17세기 후반 분화 제안, 서리 나이테 1628~1626년은 가능해 보임.
- "New evidence for an early date for the Aegean Late Bronze Age and Thera eruption" (2002) — DOI: 10.1017/s0003598x00091183 — LM IA·IB 시료로 분화는 기원전 1650~1620년 무렵이 가장 유력.
- "Chronology for the Aegean Late Bronze Age 1700-1400 B.C." (2006) — DOI: 10.1126/science.1125682 — 베이즈 분석으로 분화는 17세기 후반, LM IA·IB·II기를 약 100년 늘림.
- "Santorini Eruption Radiocarbon Dated to 1627-1600 B.C." (2006) — DOI: 10.1126/science.1125087 — 부석에 묻힌 올리브 가지 위글 매칭, 기원전 1627~1600년(95.4%), 이집트 연표 날짜보다 한 세기 이름.
- "The Minoan eruption of Santorini radiocarbon dated by an olive tree buried by the eruption" (2009) — DOI: 10.2307/jj.35529235.28 — 1613년 ±13년, 나이테 72개·이어진 네 토막, 해발 150m·화산대에서 2.5km 넘게 떨어져 오래된 탄소 영향 가능성 낮다고 봄.
- "Wiggle-Match Dating of Tree-Ring Sequences" (2004) — DOI: 10.1017/s0033822200035967 — 구불거리는 보정 곡선에서 단일 연대의 한계와 시계열 맞추기(위글 매칭)의 원리.
- "The olive-branch dating of the Santorini eruption" (2014) — DOI: 10.1017/s0003598x00050365 — 『앤티퀴티』 지상 토론 소개, 올리브 가지 연대가 여러 이유로 믿기 어렵다는 주장.
- "Radiocarbon and the date of the Thera eruption" (2014) — DOI: 10.1017/s0003598x00050389 — 비판을 지지한 논평. 17세기 후반 귀속 자체는 뜻밖이 아니나, 해마다 나이테가 없는 올리브로 한 위글 매칭의 정밀도는 착시, 생존 증거·껍질 쪽 없음, 탄소로 테라를 연대하는 일은 역사·고고학 연대와 뚜렷이 충돌해 문제적.
- "The Thera olive branch, Akrotiri (Thera) and Palaikastro (Crete): comparing radiocarbon results of the Santorini eruption" (2014) — DOI: 10.1017/s0003598x00050390 — 가지 연구진의 반박: 비판은 1500년 무렵 낮은 연대를 방어하려 함, 주요 논거를 반박, 다른 탄소 연구를 무시했다고 응수.
- "Considerations of the Scale of Radiocarbon Offsets in the East Mediterranean, and Considering a Case for the Latest (Most Recent) Likely Date for the Santorini Eruption" (2012) — DOI: 10.1017/s0033822200047202 — 지역 차이는 몇 년 수준, 화산 가스 효과는 가설 단계, 17세기 후반이 여전히 가장 유력하나 산토리니 자료만 보면 16세기 중반(약 1593~1530년) 가능성 증가.
- "Acidity of Polar Ice Cores in Relation to Absolute Dating, Past Volcanism, and Radio–Echoes" (1980) — DOI: 10.1017/s0022143000015227 — 얼음 기둥의 해마다 켜와 화산 산성 층 탐지법, 테라를 기원전 1400년 무렵으로 실음.
- "Volcanic ash retrieved from the GRIP ice core is not from Thera" (2003) — DOI: 10.1029/2003gc000608 — 그린란드 화산재를 테라와 짝지은 방법이 잘못, 화학 자료는 테라가 아님을 시사.
- "Identification of Aniakchak (Alaska) tephra in Greenland ice core challenges the 1645 BC date for Minoan eruption of Santorini" (2004) — DOI: 10.1029/2003gc000672 — 1645년(±4) 켜의 유리는 테라와 다르고 아니악차크와 닮음, 테라 연대는 여전히 미해결.
- "Comment on "A synchronized dating of three Greenland ice cores throughout the Holocene" by B. M. Vinther et al.: No Minoan tephra in the 1642 B.C. layer of the GRIP ice core" (2008) — DOI: 10.1029/2007jd008970 — 낱알 분석도 1642년 켜 화산재를 아니악차크로 가리킴, 이 해석은 약 1630~1600 BC 탄소 연대를 지지.
- "Holocene tephras highlight complexity of volcanic signals in Greenland ice cores" (2012) — DOI: 10.1029/2012jd017698 — 17세기 BC 산성 신호에 북아메리카 분화가 보탰을 가능성, 산성 신호 귀속에 신중해야.
- "A multi-ice-core, annual-layer-counted Greenland ice-core chronology for the last 3800 years: GICC21" (2022) — DOI: 10.5194/cp-18-1125-2022 — 새 연표는 3,800년 전에서 약 13년 젊음, IntCal20과 정렬, 테라 짝짓기 결정적 증거 없음, 1600 BCE 무렵 냉각 사건.
- "Geochemical ice-core constraints on the timing and climatic impact of Aniakchak II (1628 BCE) and Thera (Minoan) volcanic eruptions" (2022) — DOI: 10.1093/pnasnexus/pgac048 — 1628 BCE 켜의 황은 아니악차크 II, 테라 후보는 1611·1561/1558/1555·1538년 무렵, 모두 기후를 흔들 힘이 탐보라보다 훨씬 작음.
- "Securing timelines in the ancient Mediterranean using multiproxy annual tree-ring data" (2020) — DOI: 10.1073/pnas.1917445117 — 동지중해 나이테를 달력 연도에 고정, 기원전 1560년 무렵 화학 변화는 입증이 더 필요하나 테라의 증거일 수 있음.
- "Annual Variation in Atmospheric 14C Between 1700 BC and 1480 BC" (2020) — DOI: 10.1017/rdc.2020.14 — 아일랜드 참나무 재측정은 기존 측정과 맞음, 지역 차이 물음 제기.
- "Mediterranean radiocarbon offsets and calendar dates for prehistory" (2020) — DOI: 10.1126/sciadv.aaz1096 — 기준표가 뒤집히거나 평평한 자리에서 지중해 탄소 값의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 연대를 최대 수십 년 움직일 수 있음.
- "Radiocarbon offsets and old world chronology as relevant to Mesopotamia, Egypt, Anatolia and Thera (Santorini)" (2020) — DOI: 10.1038/s41598-020-69287-2 — IntCal20과 0~22 탄소-14년 차이, 원인은 측정 기술 세대와 생장철.
- "Investigating potential radiocarbon anomalies around the time of the Minoan eruption of Thera: A new high-resolution dataset from Groningen" (2026) — DOI: 10.1017/rdc.2025.10186 — IntCal20 뒤 의견 차이 확대, 1660~1507 BCE 한 해 단위 약 90개, 급격한 생성 증가 증거 없음, 자료 사이 작은 차이.
- "CALIBRATION OF MULTIPLE TREE-RING BLOCKS AND ITS IMPLICATION ON THE DEBATE OF MINOAN ERUPTION OF SANTORINI AROUND 17TH–16TH CENTURY BCE" (2023) — DOI: 10.1017/rdc.2023.35 — 올리브 가지 보정 연대는 곡선 개선마다 바뀜, 이동평균 곡선으로 17세기 후반~16세기 중반.
- "Olive shrub buried on Therasia supports a mid-16th century BCE date for the Thera eruption" (2023) — DOI: 10.1038/s41598-023-33696-w — 테라시아 올리브 관목은 가지보다 조금 젊음, 16세기 중반 확률 증가, 빙하 코어 황 신호와 겹침.
- "Problems of Dating Spread on Radiocarbon Calibration Curve Plateaus: The 1620–1540 BC Example and the Dating of the Therasia Olive Shrub Samples and Thera Volcanic Eruption" (2024) — DOI: 10.1017/rdc.2024.44 — 1620~1540 BC 평탄 구간에서 확률이 퍼짐, 순서 정보를 넣은 재분석(매닝)은 가능성 높은 범위를 17세기 후반~16세기 초로 봄.
- "Thera and the Devastation of Minoan Crete: A New Interpretation of the Evidence" (1976) — DOI: 10.2307/502934 — 아크로티리와 크레타 LM IB 파괴를 1470년 무렵 한 번의 분화로 설명하는 해석.
- "Discovery of a tsunami deposit from the Bronze Age Santorini eruption at Malia (Crete): impact, chronology, extension" (2021) — DOI: 10.1038/s41598-021-94859-1 — 지진해일이 말리아 궁전 중심지 외곽, 최대 400m 안쪽까지 도달.
- "Volcanic ash, victims, and tsunami debris from the Late Bronze Age Thera eruption discovered at Çeşme-Bağlararası (Turkey)" (2021) — DOI: 10.1073/pnas.2114213118 — 지진해일 잔해 속 사람과 개의 뼈, 기원전 1612년보다 이를 수 없음.
- "Tsunami waves generated by the Santorini eruption reached Eastern Mediterranean shores" (2009) — DOI: 10.1130/g25704a.1 — 이스라엘 대륙붕의 지진해일 퇴적층, 연대는 높은·낮은 연대를 모두 감쌈.
- "The Theran eruption and Minoan palatial collapse: new interpretations gained from modelling the maritime network" (2011) — DOI: 10.1017/s0003598x00068459 — 분화 뒤 크레타 번영 지속, 해상망 모형으로 기항지 상실의 지연된 경제 붕괴 경로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