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마야 문명은 가뭄에 무너졌나 — 날씨의 기록과 도시의 기록을 맞대면
호수 바닥과 석순은 9~11세기의 거듭된 가뭄을 기록했고, 숲 아래를 비춘 레이저는 예전 생각보다 빽빽한 도시망을 보여 줍니다. 날짜가 겹친다는 것과 가뭄 때문이라는 것은 다른 문장입니다.
마야 문명은 가뭄에 무너졌나 — 날씨의 기록과 도시의 기록을 맞대면
돌기둥이 멈춘 9세기
지금의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반도와 과테말라 북부, 벨리즈에 걸친 낮은 석회암 땅을 마야 저지대라고 부릅니다. 이 땅에서는 기원전부터 마을과 도시가 자랐고, 서기 3세기 무렵부터는 여러 왕국이 저마다 도시를 거느리고 동맹을 맺거나 서로 싸웠습니다. 고전기 마야는 서기 250년 무렵부터 900년 무렵까지 마야 저지대에서 왕들이 도시를 다스리며 날짜를 새긴 돌기둥을 세우던 시기의 마야 사회입니다. 과테말라 북부의 도시 티칼에는 피라미드 신전과 궁전이 섰고, 왕들은 즉위와 전쟁과 의례를 돌기둥에 연도와 함께 새겼습니다. 그런데 9세기, 지금부터 약 1,100~1,200년 전에 남쪽 저지대의 도시들이 하나씩 돌기둥 세우기를 멈추고 비어 갔습니다. 숲이 신전을 덮었고, 근대에 그 폐허를 다시 찾은 사람들은 이 문명이 왜 끝났는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고고학에서 붕괴는 한 지역의 왕조와 도시 같은 정치 질서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무너지는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질서 안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이 낱말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마야의 경우 이 이야기는 흔히 한 문장으로 전해집니다. 마야 사람들이 숲속에서 홀연히 사라졌다는 문장입니다. 학술지에도 비슷한 문장이 실립니다. 가뭄과 마야 붕괴를 다룬 2007년의 한 논문은 「서기 760년에서 930년 사이에 수백만 명의 마야인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DOI: 10.1017/s0956536107000193). 1990년대 이후 호수와 동굴의 기록이 쌓이면서, 이 수수께끼의 답으로 가뭄이 자주 거론돼 왔습니다 (DOI: 10.1006/qres.1996.0042) (DOI: 10.1146/annurev-earth-060115-012512).
이 글은 두 기록을 맞댑니다. 하나는 호수 바닥과 동굴 석순에 남은 날씨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돌기둥과 집터와 숲 아래 지형에 남은 도시의 기록입니다. 두 기록의 날짜가 겹치는지, 겹친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어디까지만 뜻하는지를 차례로 봅니다.

호수 바닥과 석순이 적은 날씨
유카탄반도 북부의 푼타 라구나 호수 바닥에서 6.3m 길이의 진흙 기둥을 뽑아 올린 연구가 있습니다 (DOI: 10.1006/qres.1996.0042). 1,200년 전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재 둔 사람은 없으니, 날씨는 다른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고기후 프록시는 옛날 날씨를 직접 잰 기록이 없을 때, 날씨에 따라 달라진 자연물의 흔적을 대신 재서 그때가 가물었는지 축축했는지를 읽어 내는 자료입니다. 퇴적물 코어는 호수나 바다 바닥에 긴 관을 박아 층층이 쌓인 진흙을 기둥째 뽑아 올린 시료입니다. 아래층일수록 오래됐으니, 기둥을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푼타 라구나 코어에서 잰 것은 호수에 살던 작은 갑각류와 고둥 껍데기의 산소였습니다. 동위원소는 같은 원소이면서 무게만 조금씩 다른 것들입니다. 「뼈가 말하는 것」에서 탄소와 질소의 무게 비율로 옛사람의 밥상을 읽었듯, 여기서는 산소의 무게 비율로 호수의 물 사정을 읽습니다. 물이 증발할 때는 가벼운 산소가 먼저 빠져나가므로, 비보다 증발이 많은 해에는 호수 물에 무거운 산소의 몫이 커지고 그 물에서 자란 껍데기에도 그 몫이 남습니다. 이 코어에서 무거운 산소의 몫이 낮은 구간은 축축한 시기를 뜻합니다 (DOI: 10.1006/qres.1996.0042).
그 기둥에서 서기 862년, 986년, 1051년 무렵을 중심으로 유난히 메마른 사건들이 읽혔고, 잦은 가뭄이 이어진 이 구간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여러 곳에서도 기록됐으며 고전기 마야 붕괴와 시기가 겹쳤습니다 (DOI: 10.1006/qres.1996.0042). 다른 호수는 다른 물질로 같은 쪽을 가리켰습니다. 가물어 호숫물이 줄면 물에 녹아 있던 석고가 바닥에 가라앉는데, 유카탄 호수들의 산소와 석고 기록에서는 약 208년마다 되풀이되는 가뭄의 리듬이 읽혔습니다. 저자들은 이 주기를 태양 활동의 변화와 연결하고, 그 가뭄 정점 가운데 몇이 마야 문화의 단절과 대응한다고 봅니다 (DOI: 10.1126/science.1057759). 같은 반도의 치찬카납 호수에서는 가뭄 때 쌓인 석고 결정 속에 갇힌 옛 호숫물을 직접 분석했고, 저자들은 그 값을 모형으로 환산해 연 강수량이 지금보다 41~54% 줄었고 가장 심한 때는 최대 70%까지 줄었다고 추정했습니다 (DOI: 10.1126/science.aas9871). 네 개의 기록을 함께 해석한 다른 분석은 그 감소를 최대 40%로 추정했고, 여름 열대폭풍이 줄어든 탓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DOI: 10.1126/science.1216629). 두 숫자는 방법이 다른 추정이라 한 값으로 합칠 수 없지만, 둘 다 「지금보다 눈에 띄게 적은 비」를 가리킵니다.
마야 땅 바깥에서도 같은 시기가 읽힙니다. 베네수엘라 앞바다 카리아코 분지의 바닥 퇴적물에서는 강물이 실어 온 티타늄의 양이 그 지역의 비를 따라 오르내리는데, 계절 단위로 읽은 이 기록에서 고전기 말의 붕괴는 길게 이어진 건조기 한가운데에 있었고, 그 안에 서기 810년·860년·910년 무렵을 중심으로 몇 해씩 이어진 더 심한 가뭄이 박혀 있었습니다 (DOI: 10.1126/science.1080444).
석순은 또 다른 시계입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한 겹씩 굳어 자란 돌기둥이라, 각 겹에 그 무렵 빗물의 산소가 남습니다. 마야 지역 석순 연구는 거의 모두 이 산소의 무게 비율을 그때 내린 비의 지표로 씁니다 (DOI: 10.22201/cgeo.20072902e.2024.1.1751). 벨리즈 남부 요크 발룸 동굴의 석순은 지난 2,000년을 한 해보다 짧은 간격으로, 정밀한 연대와 함께 기록했습니다 (DOI: 10.1126/science.1226299). 이런 기록을 모아 정리한 2016년의 한 종설은 9세기부터 11세기까지의 가뭄이 마야 역사 전체에서 가장 심하고 잦았다고 정리합니다 (DOI: 10.1146/annurev-earth-060115-012512).
신호 하나를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과테말라 살페텐 호수에서는 서기 800~900년의 인구 감소와 같은 때에 무거운 산소의 몫이 올라갔는데, 저자들은 그 원인으로 더 심해진 건조함과, 숲이 되살아나면서 호수로 들어오는 물이 줄어든 효과를 함께 후보로 둡니다 (DOI: 10.1006/qres.2001.2305). 가뭄은 지역마다 고르지도 않았습니다. 기록들을 지도 위에 펼친 2024년의 한 종설에서 같은 가뭄기의 건조 신호는 고지대와 저지대에 널리 기록됐지만 마야 지역 모든 곳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DOI: 10.22201/cgeo.20072902e.2024.1.1751).
이 절에서 들고 갈 것은 이것입니다. 9~11세기 마야 저지대에 심한 가뭄이 거듭 있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장소, 서로 다른 물질의 기록이 함께 가리키는 결론입니다. 그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방법마다 숫자가 다르고, 어디에 얼마나 내렸는지는 지역마다 다릅니다.
겹친다는 것과 때문이라는 것
처음에 본 2007년의 그 논문은 카리아코 분지의 바다 퇴적물에서 760년·810년·860년·910년 무렵의 네 차례 심한 가뭄을 읽고, 이 넷이 큰 도시들이 약 50년 간격으로 네 차례에 걸쳐 버려진 시점과 맞아떨어진다고 해석했습니다 (DOI: 10.1017/s0956536107000193). 같은 분지의 원 연구가 짚은 더 심한 가뭄은 810년·860년·910년 무렵의 세 차례입니다 (DOI: 10.1126/science.1080444). 티칼에 마지막으로 연도가 새겨진 돌기둥은 서기 869년의 것이고, 9세기 중반에는 유난히 비가 적은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DOI: 10.1073/pnas.1408631111). 티칼의 농업과 물 관리를 연구한 저자들은 이미 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서 돌아가던 체제가 긴 가뭄 앞에서 먹을 것과 땔감과 마실 물을 대지 못했고, 그 결과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도시가 버려졌다고 결론짓습니다 (DOI: 10.1073/pnas.1408631111). 카리아코 기록의 저자들은 한 세기에 걸친 강수 감소가 자원에 부담을 주고 갑작스러운 가뭄이 그 부담을 키워, 마야를 무너뜨린 사회적 압력에 보탬이 됐다고 적습니다 (DOI: 10.1126/science.1080444).
세 결론은 모두 두 기록의 날짜가 겹친다는 관측에서 출발합니다. 가뭄과 붕괴의 날짜가 겹친다는 것은 관측이고, 가뭄이 붕괴를 일으켰다는 것은 그 관측 위에 세운 해석입니다. 해석이 서려면 적어도 순서가 맞아야 합니다. 가뭄이 먼저 오고 해체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순서를 맞대 본 결과가 엇갈립니다. 2016년의 그 종설은 남부 저지대에서 국가들을 해체로 몬 경제적·정치적 과정이 큰 가뭄들보다 먼저 시작됐다는 고고학 증거를 짚습니다. 같은 종설은 그럼에도 가뭄이 고전기 붕괴를 유난히 심하게 만들었고, 그 이전 시기에 있었던 것 같은 회복을 가로막았다는 판단을 분명히 적습니다 (DOI: 10.1146/annurev-earth-060115-012512). 과테말라 저지대의 도시 세이발에서는 탄소로 잰 연대 154개를 토기 연구와 함께 엮어 정밀한 연대표를 만들었는데, 전쟁이 격해진 것은 서기 735년 무렵, 저지대 여러 도시가 무너진 것은 810년 무렵, 세이발 자체가 크게 쇠퇴한 것은 900년 무렵이었습니다 (DOI: 10.1073/pnas.1618022114). 숯과 씨앗에 남은 탄소로 나이를 매기는 그 방법이 이런 순서 다툼에 쓰입니다.
날씨 쪽 날짜도 움직입니다. 요크 발룸 석순을 처음 분석한 연구진은 440~660년의 유난히 많은 비가 인구 팽창과 정치 중심지의 증가를 도왔고, 660~1000년의 건조화가 정치체의 분열과 전쟁 증가와 시차를 둔 해체를 촉발했다고 제안합니다. 그 뒤 1020~1100년의 긴 가뭄 속에서 인구가 무너졌다고 봅니다 (DOI: 10.1126/science.1226299). 같은 석순을 계절 단위로 다시 읽은 2023년 연구에서는 서기 700~800년에 우기가 언제 올지 예측하기가 눈에 띄게 어려워지고 심한 가뭄이 겹쳤으며, 바로 그 시기에 첫 해체와 인구 감소가 일어났습니다. 저자들은 버려짐을 이끈 것이 장기 가뭄 하나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비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 사정을 더 나쁘게 했다고 제안합니다 (DOI: 10.1038/s43247-023-00717-5). 어느 기록의 어느 척도를 보느냐에 따라 「가뭄이 먼저였나」의 답이 달라집니다.
두 기록이 3km 거리에 나란히 있는 곳이 있습니다. 벨리즈 남부의 도시 우스벤카는 기원전 100년 뒤 그 지역 최초의 정치 중심지로 섰고, 요크 발룸 동굴은 그 의례 중심부에서 3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곳은 마야 지역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축에 들고, 고전기의 습지 밭이나 대규모 농업 투자 흔적이 없어 먹을 것과 마실 물이 모두 비에 달려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탄소로 잰 연대 167개로 도시의 인구와 건설 투자가 어떻게 늘고 줄었는지를 재구성해 바로 옆 석순의 강수 기록과 맞댔습니다. 도시는 서기 200년의 심한 가뭄 뒤 오히려 빠르게 자랐고, 750년 직후까지 성장과 수축을 되풀이했습니다. 830년에 심한 가뭄이 시작됐을 때 벨리즈 남부의 정치적 해체는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자들은 60년 동안 이어진 그 가뭄이 우스벤카가 버려지는 데, 그리고 그 뒤 정치가 다시 짜이는 것을 가로막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DOI: 10.1177/03091333221112359).
이 한 도시에서 두 기록이 말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830년에 시작된 60년 가뭄이 왔을 때 해체는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다만 같은 석순을 계절 단위로 다시 읽은 연구에서는 그보다 앞선 700~800년에도 심한 가뭄이 있었고 첫 해체가 그 속에서 일어났으니, 「이미 진행 중」은 830년의 큰 가뭄을 기준으로 한 말입니다 (DOI: 10.1038/s43247-023-00717-5). 저자들의 판단은 830년의 가뭄이 흔들리던 도시의 버려짐을 거들고 정치가 다시 짜이는 것을 가로막았다는 쪽입니다.
비가 더 적은 북쪽이 더 오래 버틴 역설
유카탄반도 북부는 오늘날 남부보다 비가 훨씬 적게 오고, 과거에도 대개 그랬을 것입니다 (DOI: 10.1017/s0956536102132135). 그런데 9세기에 남부 도시들이 비어 가는 동안 북부 저지대의 많은 도시는 버텼고, 유카탄 북부의 도시 치첸이트사의 패권 아래 오히려 번성했습니다 (DOI: 10.1017/s0956536102132135). 이 역설을 다룬 2002년의 논문은 북부가 다양한 자원에 쉽게 닿을 수 있었다는 이점에 더해, 정치와 종교 영역의 큰 변화가 치첸이트사의 적응에 꼭 필요했다고 봅니다. 저자들은 이 사례를 환경이 사회의 운명을 정한다고 보는 사고가 단순화에 빠질 위험을 보여 주는 경고로 읽습니다 (DOI: 10.1017/s0956536102132135).
북부도 결국 무너졌습니다. 연대를 다시 맞춘 2003년의 연구는 저지대 전체의 고전기 사회 구조가 무너진 과정을 200~250년 사이에 남쪽에서 시작해 11세기 치첸이트사의 몰락으로 끝나는 연쇄로 묶습니다 (DOI: 10.1017/s095653610314103x). 2016년의 그 종설은 서기 1000년 무렵 북부의 뒤늦은 정치적 붕괴가 이어진 극심한 가뭄과 관련 있어 보인다고 적습니다 (DOI: 10.1146/annurev-earth-060115-012512).
남부가 더 일찍, 더 크게 무너진 까닭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른 답이 나옵니다. 그때까지의 가뭄 증거는 주로 더 건조하고 사람이 적던 북부에서 나왔고, 그것으로는 더 축축한 남부가 더 일찍, 더 심하게 흔들린 것이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DOI: 10.1073/pnas.1419133112). 북부와 남부 호수 두 곳의 퇴적물 코어에서 식물 잎 표면 기름의 수소와 탄소를 잰 2015년 연구에서는 고전기 말에 남부가 북부보다 더 심하게 말랐고, 연구진은 이것이 남부의 더 이르고 더 끈질긴 쇠퇴와 맞아떨어진다고 봅니다. 연구진은 앞선 가뭄에 맞춰 발달한 농업 적응이 처음에는 성공했지만 고전기 말의 더 심한 가뭄 앞에서 실패했다고 결론짓습니다 (DOI: 10.1073/pnas.1419133112). 호수 두 곳을 직접 잰 이 연구와 달리, 기존 기록들을 지도 위에 펼친 2024년의 종설에서는 붕괴기에 번성한 곳들이 가장 심한 가뭄을 겪은 지역에 있었고 버려진 많은 곳이 물이 넉넉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이 모순을 설명하려는 여러 해석을 함께 검토합니다 (DOI: 10.22201/cgeo.20072902e.2024.1.1751). 지형도 갈림길이었을 수 있습니다. 반도 내륙의 높은 지대가 주변의 낮은 지대보다 체제 붕괴에 더 취약했고 회복에도 덜 알맞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DOI: 10.1073/pnas.1114838109).
같은 가뭄기를 지난 지역들의 운명이 갈렸다는 것은, 가뭄의 세기만으로는 누가 무너지고 누가 버텼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숲 아래에서 드러난 도시
2009년 4월, 비행기 한 대가 벨리즈 서부의 고전기 도시 카라콜 상공 200km²를 훑었습니다 (DOI: 10.7183/2326-3768.2.3.208). 라이다는 비행기에서 땅을 향해 레이저를 아주 많이 쏘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재서, 나뭇잎 사이로 땅에 닿은 빛만 골라 숲을 걷어 낸 지형도를 만드는 측량 방법입니다. 그 전까지는 빽빽한 숲 때문에 유적을 다 덮어 측량할 수 없었고, 연구자들은 자기들이 지도에 그리고 발굴한 표본이 옛 정착지 전체를 얼마나 대표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2013년에는 그 주변 1,057km²가 더 측량돼 카라콜을 그 지역과 정치체 전체 속에 놓고 볼 수 있게 됐습니다 (DOI: 10.7183/2326-3768.2.3.208).

카라콜의 지도에는 촘촘한 주거지와 계단식 밭과 주거지에 딸린 저수지가 드러났고, 이 계단식 밭은 흙이 쓸려 가는 것을 줄이고 물을 붙잡아 두며 빗물의 흐름을 조절했습니다 (DOI: 10.7183/2326-3768.4.3.357). 30년 동안 이 도시를 연구한 연구진은 카라콜이 서기 600~700년의 전성기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의 터전이었다고 추정합니다 (DOI: 10.1007/s10814-016-9101-z). 한 도시를 두고 그 연구진이 낸 추정치입니다.
2016년에는 과테말라 북부 2,144km²가 측량됐고, 서로 이어진 도시 정착지와 대규모 기반 시설로 가득한 경관이 드러났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마야의 인구와 농업과 정치경제를 다시 평가하게 만든다고 적습니다 (DOI: 10.1126/science.aau0137). 벨리즈의 습지에서는 앞서 원격·지상 조사로 알던 습지 밭 단지 하나가 실제로는 다섯 배 넓었고, 그보다 더 큰 단지가 새로 발견됐습니다 (DOI: 10.1073/pnas.1910553116).
사람 수는 이 지도에서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2025년의 한 연구는 공개·민간 라이다 자료를 모으고 환경 조사용으로 찍은 자료까지 다시 처리해, 고전기 마야 저지대 중부의 넓은 구역에 950만~1,600만 명이 살았다고 추정하고 9만 5,000km²에 걸친 정착 배치 모형을 내놓았는데, 이 범위는 라이다가 센 건물 흔적에 한 집에 몇 명이 살았는지 같은 가정을 얹어 얻은 값이고, 라이다는 지금의 지형을 한 장 보여 줄 뿐이라 그 건물들이 모두 같은 때 쓰였는지는 따로 발굴로 가려야 합니다 (DOI: 10.1016/j.jasrep.2025.105288) (DOI: 10.1371/journal.pone.0191619). 세이발 주변 470km²를 분석한 연구는 바로 그 한계를 다루려고 발굴로 얻은 건축 연대표를 지도에 입히고, 땅에서 확인한 결과로 건물 수를 넘게 세거나 빠뜨린 비율을 계산해 건물 수와 인구 추정을 보정했습니다. 연구진은 그 결과도 앞으로 더 시험하고 다듬어야 한다고 적습니다 (DOI: 10.1371/journal.pone.0191619).
지상 검증은 원격으로 찾아낸 흔적을 사람이 그 자리에 직접 가서 걷고 파 보며 맞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벨리즈 남부의 132km² 라이다 자료에서는 사람이 걸어서 조사한 35km² 안에 마당을 둘러싼 집터 무리 315곳이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라이다 지도 전체를 눈으로 훑어 563곳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더 찾아냈습니다. 그 지도의 나머지 90km²는 아직 걸어서 조사하지 않은 땅입니다. 큰 집터일수록 지도에서 더 잘 보였고, 연구진은 원격으로 찾은 것을 걸어서 확인하는 조사가 계속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DOI: 10.3390/rs12172838).
라이다 조사가 유명한 유적 주변을 골라 찍었으니 도시 면적과 인구를 부풀린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멕시코 캄페체에서 고고학과 무관한 환경 조사용으로 찍힌 라이다 자료를 무작위에 가까운 표본으로 삼아 분석한 연구진은, 그 자료에서도 기록된 적 없는 도시와 빽빽한 정착지가 나왔으며 이것이 중부 저지대 어디에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DOI: 10.15184/aqy.2024.148).
라이다는 고전기 저지대가 예전 생각보다 훨씬 빽빽했다는 쪽으로 무게를 옮겼고, 몇 명이었는지는 범위와 그 범위를 만든 가정을 함께 들어야 하는 숫자입니다.
빽빽한 땅은 가뭄에 강했나 약했나
라이다가 드러낸 경관은 한 가지 질문을 두 방향으로 읽게 합니다. 촘촘한 밭과 저수지는 가뭄을 버티는 장치였나, 아니면 비에 더 기대게 만든 구조였나.
과테말라 북부의 티칼 연구진은 고전기 후기의 티칼 사람들이 물 대기, 계단식 밭, 나무 가꾸기, 집 텃밭, 짧은 휴경을 섞은 집약 농업과, 물을 모아 나누는 복잡한 체계로 비교적 큰 인구를 먹여 살렸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같은 연구진은 그 효율이 환경의 회복력을 떨어뜨리고, 해마다 고르게 오는 비에 완전히 기대게 만드는 큰 대가를 치렀다고 봅니다 (DOI: 10.1073/pnas.1408631111). 벨리즈의 습지 밭은 인구가 늘고 경관이 바뀌고 가뭄이 들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고, 연구진은 이 밭들이 그 모든 변화에 대한 적응이었을 수 있다고 봅니다 (DOI: 10.1073/pnas.1910553116). 다른 습지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증거가 습지 밭이 고전기 말이나 그 직후에 쓰이지 않기 시작했음을 가리키는데, 가뭄에 덜 민감했어야 할 일 년 내내 물이 고인 습지까지 그랬고, 고전기 뒤로 메워진 수로를 되살리려 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DOI: 10.1073/pnas.1114919109). 이 연구는 건조기가 큰 전환기와 겹친다는 증거도 함께 모았습니다. 그래도 물이 남아 있던 밭까지 버려졌다는 점만 놓고 보면, 버려진 이유를 물 부족 하나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먹을 것의 폭도 따져졌습니다. 저지대 마야가 먹었다고 기록된 토착 식용식물 497종의 가뭄 견딤을 분류한 연구에서, 짧은 가뭄에는 83%를 구할 수 있었지만 1년까지 가는 중간 가뭄에는 22%, 몇 해 가는 극심한 가뭄에는 11%만 남았습니다. 저자들은 기후 변화만으로는 그 시기의 다면적인 정치 혼란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옥수수 말고도 먹을거리의 폭이 넓어 가장 극단적인 조건이 아니면 식량 공급이 이어질 수 있었다고 결론짓습니다 (DOI: 10.1073/pnas.2115657118). 벨리즈의 옛 마야 공동체 카할 페치에서 나온 50명의 뼈에서 탄소와 질소의 무게 비율로 식단을 읽은 연구에서는 고전기 후기 상류층의 식단이 좁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저자들은 그것이 사회경제 체제를 더 취약하게 만들었을 수 있고, 그 체제가 고전기 말의 경관 훼손과 심한 가뭄 속에 결국 해체됐다고 봅니다 (DOI: 10.1086/704530).
사람이 숲을 베어 가뭄을 스스로 키웠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2012년의 한 연구는 기후 모형 실험으로 이 가설을 따졌습니다. 콜럼버스 이전의 토지 피복을 재구성해 넣은 모의실험에서 멕시코 남부와 유카탄의 연 강수량은 자연 숲을 넣었을 때보다 5~15% 적었고, 저자들은 마야 붕괴기에 줄어든 비의 최대 60%를 벌채로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DOI: 10.1029/2012gl052565). 이 숫자는 관측값과 다릅니다. 옛 숲이 얼마나 베였는지에 대한 재구성을 입력으로 넣은 모형 속 계산이고, 입력이 바뀌면 함께 바뀝니다. 숲이 줄어든 원인이 기후였던 때도 있습니다. 고전기보다 훨씬 앞선 일이지만, 과테말라 페텐 이차 호수의 기록에서 약 4,500년 전에 시작된 숲의 감소는 1,500년가량 이어진 카리브해 일대의 건조화와 같은 때 시작됐고, 사람이 기른 옥수수의 꽃가루가 나타나기 전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약 4,500~3,000년 전의 식생 변화를 대체로 건조한 기후의 결과로 봅니다 (DOI: 10.1016/j.yqres.2008.10.002). 호수 퇴적물에서 기후의 흔적과 사람의 흔적을 갈라내는 일은 그 자체가 난제입니다 (DOI: 10.1017/s0956536102131063).
가뭄 바깥의 사정도 같은 시기에 겹쳐 있었습니다. 중부 저지대를 다룬 2012년 연구는 대규모 경관 변화와 자원 수요가 만든 환경 압박을 건조화가 키웠고, 같은 때 반도를 가로지르던 육상 교역이 반도를 돌아가는 바닷길로 옮겨 갔고, 사회 갈등이 커지고 엘리트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사람들이 비싼 체제를 유지하기보다 반도의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쪽을 택했다고 봅니다 (DOI: 10.1073/pnas.1210106109). 카라콜에서는 버려지기 직전의 바닥에 남은 유물이 전쟁, 시장 체계의 붕괴, 높아진 사회 긴장을 가리킵니다 (DOI: 10.1017/s0956536119000063).
물과 사회의 되먹임을 단순화한 2016년의 한 모형 연구에서는 비가 조금만 줄어도 인구가 80%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은 모의실험에서 인구 밀도와 작물이 가뭄에 얼마나 민감한가도 그만큼 중요했고, 저수지를 지으면 가뭄의 타격이 드물어지지만 저수지가 마르면 타격이 더 커졌습니다 (DOI: 10.1002/2015wr018298). 이 결과는 「작은 가뭄도 큰 붕괴를 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계산이고, 실제 마야에서 그렇게 됐다는 관측과는 다릅니다.
촘촘한 경관은 가뭄을 버티는 장치이면서 해마다 오는 비에 더 기대는 구조였을 수 있고, 어느 쪽이 더 컸는지는 장소마다 다릅니다.
무엇이 끝났고 누가 남았나
세이발의 연대표에서 고전기 붕괴는 신성한 왕이 다스리던 왕조의 몰락으로 끝났습니다. 같은 도시가 그보다 600여 년 앞선 붕괴를 지난 뒤에는 오히려 그런 왕조가 생겨났으니, 두 붕괴는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도 결과가 달랐습니다 (DOI: 10.1073/pnas.1618022114). 중부 저지대에서는 버려진 뒤 숲이 대체로 돌아왔고, 인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DOI: 10.1073/pnas.1210106109). 페텐 이차 호수의 꽃가루 기록에서도 서기 900년 무렵 붕괴 뒤에 숲이 되살아납니다 (DOI: 10.1177/095968369600600302).
중부 저지대의 사람들은 비싼 체제를 지키기보다 반도의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쪽을 택했다는 해석이 있고 (DOI: 10.1073/pnas.1210106109), 북부에서는 도시가 이어졌습니다. 치첸이트사는 11세기에 몰락하기까지 이어졌고 (DOI: 10.1017/s095653610314103x), 그 뒤 유카탄 북부에서는 마야판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 일어섰다가 무너졌습니다 (DOI: 10.1038/s41598-022-22756-2). 16세기에 스페인 군대가 왔을 때 유카탄과 과테말라에는 여전히 마야의 도시국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멕시코와 과테말라와 벨리즈에서 수백만 명이 여러 갈래의 마야어를 쓰며 삽니다.
「붕괴」라는 말이 사람들의 끈질긴 회복력과 그들이 내린 선택을 가린다는 비판이 학계 안에 있습니다. 「붕괴」를 다시 묻는다는 제목의 2009년 논문집은 21세기의 걱정거리를 8세기 마야 사회에 덧씌운 것 아니냐고 묻는 장을 포함해 여러 사례에서 사람들의 회복력과 제국 이후의 삶을 다뤘고 (DOI: 10.1017/cbo9780511757815), 2017년의 한 개설서는 고대 문명의 붕괴가 흔히 인정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공동체의 회복력이 간과돼 왔다고 봅니다 (DOI: 10.1017/9781316584941).
9~10세기 남부 저지대에서 끝난 것은 신성한 왕이 다스리던 왕조와 그 도시들이었고, 마야 사람과 마야어는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세 층으로 나눈 답
「마야 문명은 가뭄에 무너졌나」라는 질문은 한 문장으로 답하기보다 세 층으로 나누어 답할 때 근거와 맞습니다.
- 9~11세기에 마야 저지대에 심한 가뭄이 거듭 있었다는 것은 호수와 바다의 퇴적물, 동굴 석순이 함께 가리키는 강한 결론입니다.
- 그 가뭄이 남부의 해체를 더 심하게 만들고 회복을 막았다는 것은 여러 연구자가 내린 판단입니다. 언제 무엇이 먼저였는지, 어느 지역에 얼마나 내렸는지를 두고 지금도 기록마다 답이 갈립니다.
- 가뭄 하나로 붕괴가 설명된다는 주장은 지금의 근거와 맞지 않습니다. 830년의 큰 가뭄이 오기 전에 이미 흔들리고 있던 도시가 있고(그보다 앞선 700~800년의 심한 가뭄 속에서 첫 해체가 일어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평소 비가 더 적은 북부가 더 오래 버텼고, 같은 시기에 전쟁과 교역로와 정치의 변화가 겹쳐 있었습니다.
이 글이 맞댄 두 기록은 성격이 다릅니다. 돌기둥은 왕이 자기 쪽 이야기를 새긴 기록이라, 「기록을 읽는 법 — 할머니의 일기와 그날의 신문」에서 본 것처럼 누가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부터 읽어야 합니다. 도시의 연대는 「탄소로 나이 재기 — 모래시계와 나이테로 읽는 방사성탄소 연대」의 방법으로 매기고, 옛사람의 밥상은 「뼈가 말하는 것 — 이와 뼈에 나눠 적힌 한 사람의 일기」의 방법으로 읽습니다. 두 기록의 날짜를 더 촘촘히 맞출수록, 「겹친다」와 「때문이다」 사이의 간격은 더 정확하게 재어집니다.
근거 논문
- "Climate Variability on the Yucatan Peninsula (Mexico) during the Past 3500 Years, and Implications for Maya Cultural Evolution" (1996) — DOI: 10.1006/qres.1996.0042 — 푼타 라구나 코어 산소 동위원소. 862·986·1051년 무렵 극심한 건조 사건, 잦은 가뭄 구간이 고전기 붕괴와 겹침.
- "Solar Forcing of Drought Frequency in the Maya Lowlands" (2001) — DOI: 10.1126/science.1057759 — 유카탄 호수 산소·석고 기록에서 약 208년 주기의 가뭄. 일부 극대가 문화 단절과 대응.
- "Quantification of drought during the collapse of the classic Maya civilization" (2018) — DOI: 10.1126/science.aas9871 — 치찬카납 석고 결합수 동위원소를 모형화해 연 강수 41~54%(최대 70%) 감소 추정.
- "Collapse of Classic Maya Civilization Related to Modest Reduction in Precipitation" (2012) — DOI: 10.1126/science.1216629 — 네 기록의 정량 해석, 최대 40% 감소, 여름 열대폭풍 감소가 원인일 가능성.
- "Climate and the Collapse of Maya Civilization" (2003) — DOI: 10.1126/science.1080444 — 카리아코 티타늄. 장기 건조기 속 810·860·910년 무렵 다년 가뭄. 저자: 사회적 압력에 기여.
- "Spatial and temporal distribution of palaeoclimatic records in the Maya Area" (2024) — DOI: 10.22201/cgeo.20072902e.2024.1.1751 — 석순은 대부분 산소 동위원소를 강수 지표로 사용. 건조 신호가 지역마다 고르지 않고, 번성지는 강한 가뭄 지역·버려진 곳은 물 넉넉한 지역이라는 모순.
- "Development and Disintegration of Maya Political Systems in Response to Climate Change" (2012) — DOI: 10.1126/science.1226299 — 요크 발룸 석순 2,000년 기록. 440~660년 다우가 팽창을, 660~1000년 건조화가 분열·해체를 촉발했다고 제안. 1020~1100년 장기 가뭄 속 인구 붕괴.
- "Impacts of Climate Change on the Collapse of Lowland Maya Civilization" (2016) — DOI: 10.1146/annurev-earth-060115-012512 — 종설. 9~11세기 가뭄이 가장 심하고 잦았음. 남부 해체 과정이 큰 가뭄보다 먼저 시작. 그럼에도 가뭄이 붕괴의 심각성에 기여하고 회복을 막음. 북부 1000년 무렵 붕괴는 가뭄과 관련.
- "A 4000-Year Lacustrine Record of Environmental Change in the Southern Maya Lowlands, Petén, Guatemala" (2002) — DOI: 10.1006/qres.2001.2305 — 살페텐. 800~900년 산소 동위원소 상승은 건조화 또는 숲 회복에 따른 유입 감소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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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ests, fields, and the edge of sustainability at the ancient Maya city of Tikal" (2014) — DOI: 10.1073/pnas.1408631111 — 티칼 집약 농업·물 관리, 회복력 저하와 강우 의존의 대가. 마지막 연대 돌기둥 869년, 가뭄 앞에서 체제가 실패했다는 저자 결론.
- "High-precision radiocarbon dating of political collapse and dynastic origins at the Maya site of Ceibal, Guatemala" (2017) — DOI: 10.1073/pnas.1618022114 — 연대 154개 베이즈 분석. 전쟁 격화 735년, 여러 중심지 몰락 810년, 세이발 쇠퇴 900년. 고전기 붕괴는 왕조 몰락으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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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Use of LiDAR in Understanding the Ancient Maya Landscape" (2014) — DOI: 10.7183/2326-3768.2.3.208 — 2009년 카라콜 200km², 2013년 1,057km² 라이다. 숲 때문에 표본 대표성을 몰랐던 한계를 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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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ient Maya wetland fields revealed under tropical forest canopy from laser scanning and multiproxy evidence" (2019) — DOI: 10.1073/pnas.1910553116 — 습지 밭 단지가 기존 추정의 다섯 배, 더 큰 단지 새로 발견. 인구 팽창·가뭄기에 쓰인 적응이었을 가능성.
- "New regional-scale Classic Maya population density estimates and settlement distribution models through airborne lidar scanning" (2025) — DOI: 10.1016/j.jasrep.2025.105288 — 중부 저지대 9만 5,000km²에 950만~1,600만 명 추정.
- "Archaeological application of airborne LiDAR to examine social changes in the Ceibal region of the Maya lowlands" (2018) — DOI: 10.1371/journal.pone.0191619 — 라이다는 공시적 지형만 제공. 발굴 연대표와 지상 확인 오차율로 건물 수·인구 보정, 추가 검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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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tland fields as mirrors of drought and the Maya abandonment" (2012) — DOI: 10.1073/pnas.1114919109 — 습지 밭 대부분이 고전기 말 무렵 폐기, 가뭄에 덜 민감한 상시 습지 포함. 수로 복구 시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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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ole of Diet in Resilience and Vulnerability to Climate Change among Early Agricultural Communities in the Maya Lowlands" (2019) — DOI: 10.1086/704530 — 카할 페치 50명 동위원소. 고전기 후기 상류층의 좁은 식단이 취약성을 키웠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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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LEOLIMNOLOGY OF THE MAYA LOWLANDS" (2002) — DOI: 10.1017/s0956536102131063 — 호수 퇴적물에서 기후 신호와 인간 신호를 가르는 어려움. 800~1000년이 후기 홀로세 최건조기.
- "Classic Period collapse of the Central Maya Lowlands: Insights about human–environment relationships for sustainability" (2012) — DOI: 10.1073/pnas.1210106109 — 복합적 인간-환경 상호작용, 교역로의 해상 이동, 이주 결정. 환경은 회복, 인구는 돌아오지 않음.
- "FINAL MOMENTS: CONTEXTUALIZING ON-FLOOR ARCHAEOLOGICAL MATERIALS FROM CARACOL, BELIZE" (2020) — DOI: 10.1017/s0956536119000063 — 버려지기 전 바닥 유물이 전쟁·시장 붕괴·사회 긴장을 가리킴.
- "Conceptualizing socio‐hydrological drought processes: The case of the Maya collapse" (2016) — DOI: 10.1002/2015wr018298 — 사회수문 모형. 작은 강수 감소로 80% 인구 붕괴 가능, 밀도·작물 민감도도 같은 비중, 저수지의 양면.
- "A Holocene vegetation history from lowland Guatemala" (1996) — DOI: 10.1177/095968369600600302 — 페텐 이차 꽃가루. 서기 900년 무렵 붕괴 뒤 숲 재생.
- "Northeast Yucatan hurricane activity during the Maya Classic and Postclassic periods" (2022) — DOI: 10.1038/s41598-022-22756-2 — 2,200년 허리케인 기록. 치첸이트사·코바 쇠퇴와 마야판 연합의 흥망을 포괄하는 시기.
- "Questioning Collapse" (2009) — DOI: 10.1017/cbo9780511757815 — 붕괴 서사를 되묻는 논문집. 회복력과 제국 이후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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