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는 약속대로 작동했다 —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보장한 것과 보장하지 못한 것
왜 이 논쟁인가
2022년 5월, 한 암호자산 생태계가 사흘 만에 무너졌다. 온체인 데이터와 거래소 거래 데이터를 함께 써서 그 국면을 재구성한 연구는 규모를 당시 평가액 기준 500억 달러로 적는다 (DOI: 10.2139/ssrn.4416677, 워킹페이퍼). 무너진 것은 스테이블코인 — 1달러라는 고정된 값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토큰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담보 없이 짝 토큰과의 교환만으로 값을 유지하려던 설계, 연구 문헌에서 TerraUSD(UST)와 LUNA의 쌍으로 불리는 구조다 (DOI: 10.4018/979-8-3373-9043-7.ch001).
그런데 이 붕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앞이야기가 있다. 그 붕괴를 설명하는 형식모형이 붕괴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2019년, 2020년, 2021년에 각각 다른 연구자들이 "이 설계는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가"를 물었고, 조건을 특정했고, 일부는 예측이 실현되는 것까지 지켜봤다.
이 글은 그 사건을 르포로 다루지 않는다. 다룰 것은 설계다. 무엇을 보장한다고 했고, 그 보장이 어디서 끊겼는가.
시작 전에 세 가지를 분명히 해 두자.
첫째, 이 글은 특정 자산이나 프로젝트를 평가하지 않는다. 여기 등장하는 프로토콜 이름은 연구자들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설계 사례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세·시가총액·전망은 다루지 않는다.
둘째, 인용하는 연구의 근거 등급이 고르지 않다. arXiv에 공개된 판본이 여럿인데, arXiv 공개는 동료심사 여부와 무관하며 상당수는 이후 학회나 저널에 실린다 — 다만 개별 논문의 게재 여부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SSRN 등에 올라온 워킹페이퍼도 인용한다. 워킹페이퍼는 심사 전 배포본이므로, 핵심 주장은 가급적 형식모형이나 심사 지면에 실린 실증 연구에 걸고, 워킹페이퍼에만 기대는 대목은 그때마다 밝힌다.
셋째, 여기 나오는 수치는 전부 "그 논문이 그 시점에 관측한 값"이다. 오늘의 시장 상황을 말해 주는 숫자가 아니다.
통념: 코드가 1달러를 보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발상은 단순하다. 암호자산은 값이 심하게 흔들려 결제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 그러니 값이 흔들리지 않는 토큰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 서베이는 이를 세 갈래로 정리한다. 법정화폐나 실물자산으로 뒷받침하는 방식, 다른 암호자산을 담보로 잡는 방식, 그리고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유지하는 방식 (arXiv:2103.01340). 이후의 분류들은 여기에 하이브리드를 더하거나 담보의 출처와 관리 주체를 기준으로 더 잘게 쪼갠다 (arXiv:1910.10098; arXiv:2308.07041; DOI: 10.4018/979-8-3373-9043-7.ch001).
디페그(depeg)라는 말부터 풀어 두자. 1달러를 목표로 하는 토큰이 실제로는 0.95달러나 1.05달러에 거래되는 상태, 즉 고정하려던 값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를 말한다. 스테이블코인 설계의 목표는 결국 하나다 — 디페그가 나면 자동으로 되돌아오게 만들 것.
세 방식 중 알고리즘 방식이 가장 야심 찼다. 담보를 쌓지 않으니 자본이 놀지 않고, 은행 계좌도 필요 없고, 사람의 재량도 개입하지 않는다. 한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어떤 자산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즉 담보가 없는)" 특수한 유형이며, 그렇기에 "주권 화폐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을"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arXiv:2210.11928). 2019년의 한 서베이도 담보 없는 방식이 탈중앙 결제 시스템으로서 잠재력이 가장 크다고 봤다 (arXiv:1906.06037).
여기서 통념이 만들어진다. 코드가 규칙이니 사람이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준비금을 빼돌릴 은행도 없다. 그러니 은행보다 안전하다.
그런데 같은 2019년 서베이는 곧바로 단서를 단다. 담보 없는 스테이블코인은 잠재력이 큰데도 실무에 쓸 만한 표준 메커니즘이 아직 없다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arXiv:1906.06037). 통념이 굳어지는 동안, 그 통념을 떠받칠 검증된 메커니즘은 아직 없었다.
반전 ①: 붕괴가 나기 전에 이미 논문이 있었다
가장 널리 퍼진 오해는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2021년 — "설계상 불안정한가"를 형식검증으로 물은 논문
2021년 1월 공개된 한 연구는 질문 자체를 정면으로 던진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설계상 불안정한가? 그리고 실제로도 불안정한가?
저자들은 대표적인 세 유형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골라 핵심 설계 프로토콜을 형식화하는 모델링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형식검증(formal verification)을 통해 이 코인들이 불안정해지는 임계 조건들을 식별했다. 형식검증이란 프로그램이 특정 성질을 만족하는지를 테스트가 아니라 수학적 증명으로 따지는 방법이다. "돌려 봤더니 괜찮더라"가 아니라 "이런 조건에서는 반드시 깨진다"를 말할 수 있다. 저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론적 가능성이 시장에서도 나타나는지 확인하려고 실제 거래 활동을 체계적으로 실증 분석했다 (arXiv:2101.08423).
중요한 것은 결론의 세부가 아니라 질문이 던져진 시점이다. 2021년에 이미 "이 설계는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가"가 연구 질문이었다.
2020년 — Black Thursday를 형식화한 확률모형
한 해 전으로 가면 사건이 하나 있다. 2020년 3월, 암호자산 시장이 급락하면서 과담보 방식의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흔히 'Black Thursday'라 불리는 국면이다.
과담보(over-collateralized)란 1달러어치 토큰을 발행하기 위해 1달러보다 많은 담보 — 예컨대 1.5달러어치 — 를 잡아 두는 방식이다. 이때 담보액을 발행액으로 나눈 비율이 담보비율이고, 이 비율이 정해진 선 아래로 떨어지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담보를 팔아 빚을 갚는다. 이것이 청산(liquidation)이다.
2020년 4월 공개된 논문은 이 사건을 계기로 확률모형을 세웠다. 이 모형에서 스테이블코인 공급량은 레버리지 포지션의 수익성을 최적화하려는 투기자들이 결정하는데, 이때 앞으로 치를 청산 비용을 미리 계산에 넣는다 — 그리고 그 비용은 스테이블코인 자신의 가격에 달려 있다. 저자들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해석되는 영역과 불안정한 영역을 형식적으로 특징짓고, 안정 영역에서는 이차변동과 큰 이탈 확률의 상한을 증명했으며 불안정 영역에서는 가격 분산이 뚜렷하게 커진다는 것을 보였다. 그 안에서 디플레이션적 디레버리징 나선을 하위마팅게일(submartingale)이라는 확률과정으로 잡아냈다 (arXiv:2004.01304).
디레버리징 나선을 쉬운 말로 옮기면 이렇다. 담보 가격이 떨어진다 → 청산이 일어난다 → 청산이 담보를 시장에 던진다 → 가격이 더 떨어진다 → 더 큰 청산이 일어난다. 논문의 표현으로는 공매도 압박(short squeeze)과 닮은 이 나선이 담보를 더 빨리 깎아 내고 가격 분산을 함께 키운다.
2019년 — 사건보다 먼저 나온 예측
더 거슬러 가면 결정적인 사례가 있다. 2019년 6월 공개된 논문은 비수탁형 스테이블코인의 동역학과 유동성에 관한 기본 결과들을 도출하면서, 이 시장이 위기 때 유동성을 말리고 담보 소진을 악화시키는 디레버리징 되먹임에 노출돼 있음을 보였다.
이 논문의 이후 판본에는 저자들이 직접 적어 둔 문장이 있다. 디레버리징 나선의 가능성은 2019년 초판에서 처음 예측됐고, 2020년 Black Thursday 위기 때 Dai에서 직접 관측됐다는 것이다. 같은 논문은 청산 주변의 차익거래성 기회를 노리는 새로운 공격도 함께 제시하고 모형 안에서 그것이 수익성 있음을 보였는데, 이 공격의 변종 역시 나중에 Black Thursday에 실제로 나타났다 — 멤풀 조작으로 청산 경매를 거의 0에 가까운 가격에 낙찰시키는 형태였고, 800만 달러의 비용을 낳았다 (arXiv:1906.02152).
같은 국면의 수치를 요약한 최근 연구는 담보 경매에서 830만 달러의 손실과 15%의 peg 이탈이 있었다고 적는다 (arXiv:2601.22168).
즉 실패는 사후에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지를 특정한 형식모형이 있었고, 그 조건이 성립했을 때 모형이 그린 그림이 실제로 나타났다. 이 순서를 기억해 두는 것이 나머지를 읽는 열쇠다.
반전 ②: 코드는 설계대로 작동했다
두 번째 반전은 더 불편하다. 2022년 5월에 고장 난 것은 코드가 아니었다.
굴러가는 한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게임
2022년 10월 공개된 한 논문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룬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제대로 안정화되지 못했고, 목표 가격에서 쉽게 이탈하거나 파국적 붕괴(이른바 death spiral)에 빠졌으며, 그래서 흔히 폰지로 치부된다 — 저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되묻는다. 그게 전부인가?
논문의 정의부터 보자. 폰지란 기본적으로 새로 들어온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금융 프로토콜이다. 그런데 폰지를 굴린다는 사실이 곧 누군가 손해를 본다는 뜻은 아니다 — 게임이 영원히 굴러갈 수만 있다면. 경제학은 이렇게 성립하는 경우를 합리적 폰지 게임(rational Ponzi game)이라 부른다. 저자들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맥락에서 이 모형을 세우고 성립 조건을 도출한 다음, 리베이스(Rebase)형과 시뇨리지 지분(Seigniorage shares)형이라는 두 유형에 적용해 실제 프로젝트들의 시장 이력으로 모형의 유효성을 확인한다 (arXiv:2210.11928).
시뇨리지(seigniorage)란 원래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가 얻는 이익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다. 시뇨리지 지분형 설계는 이 발상을 토큰 두 개로 옮긴 것이다 — 값을 고정할 스테이블코인 하나, 그 변동을 흡수할 짝 토큰 하나.
여기서 핵심은 "성립 조건"이라는 말이다. 굴러가기를 멈추는 순간이 조건 안에 들어 있다. 조건이 깨지면 게임은 끝난다. 그것은 버그가 아니라 정리(theorem)의 일부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걷어내면
프랑스어권 금융경제 저널에 실린 한 논문은 이를 다른 언어로 정리한다. 저자들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준거 자산의 값이 프로토콜 내부에서 생기는(내생적) 것과 프로토콜 바깥에서 정해지는(외생적) 것으로 나눈다. 그리고 간단한 모형으로, 내생형 설계는 지킬 수 없는 보상 약속 때문에 폰지 도식에 가깝다는 것을 보인다.
이 논문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그다음이다. 저자들은 그 "거짓 약속"을 교정하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보유자에게 예컨대 비트코인보다 큰 안정성을 줄 수 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곧바로 덧붙인다 — 그래도 그것은 위험자산이며, 투기적 공격이 없더라도 장기간의 안정성은 보증할 수 없다 (DOI: 10.3917/ecofi.149.0053).
온체인 데이터가 말하는 것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심사 지면에 실린 토큰 이코노믹스 분석에서 나온다. 이 연구는 온체인 데이터로 디페그의 근본 원인을 추적한 끝에, 프로토콜의 경제적 유인 구조 자체의 어긋남을 핵심 기여 요인으로 지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스테이블코인을 상환할 때 받는 값이 과소보상되고 있었고, 거래소에서의 그 코인 가격은 "상환해서 짝 토큰으로 바꾼 뒤 시장에 팔았을 때 실제로 손에 쥐는 값"을 따라갔다. 저자들의 결론은 프로토콜의 유인 구조를 제대로 설계하는 일이 지속가능성과 보안에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DOI: 10.5195/ledger.2023.283).
이 문장을 뒤집어 읽어 보자. 시장은 코드가 정한 값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규칙대로 소각했고 규칙대로 지급했다. 무너진 것은 그 규칙이 전제한 세계 — 즉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고 차익거래자가 계속 들어올 것이라는 전제였다.
메커니즘: 보장은 어디서 끊겼는가
이제 끊긴 자리를 하나씩 짚는다.
① 소각과 발행의 되먹임
알고리즘 설계의 심장은 공급량 조절이다. 프로토콜이 정한 규칙에 따라 토큰을 새로 찍거나(mint) 태워 없애면서(burn) 가격을 목표에 붙들어 두려 한다 (DOI: 10.4018/979-8-3373-9043-7.ch001).
시뇨리지 지분형에서 이 조절은 짝 토큰을 통해 이뤄진다.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보다 싸면 사람들이 그것을 사서 프로토콜에 소각하고 짝 토큰을 받아 시장에 판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공급이 줄어 값이 올라간다 — 이것이 차익거래(arbitrage)다. 같은 것이 두 군데에서 다른 값에 팔릴 때 싼 쪽에서 사서 비싼 쪽에 팔아 차액을 얻는 행위. 스테이블코인 설계는 이 이기적 행위가 자동으로 peg를 복원하는 힘이 되도록 짜여 있다.
문제는 이 되먹임이 양방향이라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소각할수록 짝 토큰이 시장에 쏟아진다. 짝 토큰 값이 떨어지면 같은 1달러를 상환하기 위해 더 많은 짝 토큰을 찍어야 하고, 그러면 짝 토큰 값이 더 떨어진다. 앞서 본 온체인 분석이 관측한 "상환 시 과소보상"과 "거래소 가격이 상환 실현가를 추종함"이 바로 이 회로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DOI: 10.5195/ledger.2023.283).
② 수요 의존 — 이자를 주는 예치처
되먹임 회로는 수요가 있을 때만 안정 쪽으로 돈다. 그러면 그 수요는 어디서 왔나.
여러 매체의 기록과 시간별·거래별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붕괴 국면을 재구성한 논문은, 이 프로젝트의 취약성을 특정 예치·대출 프로토콜에 대한 악성적 의존(vicious dependence)으로 요약한다 (arXiv:2207.13914). 온체인 데이터로 같은 사건을 본 연구도 붕괴의 중심에 스테이블코인 예치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한 블록체인 기반 대출 프로토콜에 대한 런(run)이 있었다고 적는다 (DOI: 10.2139/ssrn.4416677, 워킹페이퍼).
런(run)은 은행에서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들이 먼저 빼면 나는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서는 순간, 빼는 것이 각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여기서 구조가 드러난다. 값을 고정하는 회로는 코드 안에 있었지만, 그 회로를 돌리는 수요는 코드 바깥의 약속 — 예치하면 이만큼 준다는 약속 — 에 걸려 있었다. 코드는 수요를 만들지 못한다.
③ 복수 균형 — 안정도 붕괴도 둘 다 '균형'이다
왜 어떤 날은 멀쩡하고 어떤 날은 무너지는가. 게임이론이 답을 준다.
22개 스테이블코인의 1년치 일별 가격과 다섯 개 블록체인의 온체인 데이터를 함께 쓴 연구는 디페그가 왜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게임이론 모형을 제시한다. 이 모형이 드러내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그 구조와 변동성 억제 메커니즘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가격 균형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arXiv:2307.11754).
균형이 여럿이라는 말의 무게를 짚고 가자. 모두가 "이건 1달러다"라고 믿고 그에 맞춰 행동하면 실제로 1달러가 유지되는 상태가 균형이다. 그런데 모두가 "이건 무너진다"라고 믿고 그에 맞춰 행동해도,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균형이다. 두 균형은 같은 코드 위에 동시에 존재한다. 코드는 어느 쪽이 선택될지 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코드가 1달러를 보장한다"는 문장이 무너지는 정확한 지점이다. 코드가 보장하는 것은 규칙이지 균형이 아니다.
④ 차익거래가 끊기는 순간
균형을 peg 쪽으로 붙들어 두는 힘은 차익거래다. 그렇다면 차익거래는 언제 멈추나.
한 워킹페이퍼는 붕괴 국면의 호가창(order book) 수준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차익거래 실효성을 재는 지표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디페그가 드러나기 48시간 전에 이미 차익거래가 작동을 멈췄다고 보고한다. 수익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블록체인 상의 마찰과 무너지는 담보 가격 때문에 peg 교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주요 중앙화 거래소 전반에서 매수 호가 쪽 유동성이 사라졌고, 호가창이 매도 흐름을 더 이상 소화하지 못했다 (DOI: 10.2139/ssrn.5571720, 워킹페이퍼).
다만 이 대목은 워킹페이퍼 한 편에만 기대고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 48시간이라는 선행 구간은 저자가 정의한 지표에 따른 값이므로, 그 구체적 수치보다는 차익거래가 가격보다 먼저 멈출 수 있다는 구조적 함의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⑤ 관찰 가능성이 런을 빠르게 만든다
전통적인 은행 런과 온체인 런에는 차이가 있다. 온체인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워킹페이퍼는 이 점을 명시적으로 짚는다. 붕괴는 여러 체인과 여러 자산에 걸친 복합 현상이었고, 제3자의 집중적 시장 조작 때문일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촉발됐다는 것이다. 소수의 대형 보유자가 포지션을 조정하자 다른 대형 참여자들이 뒤따랐고, 블록체인 기술이 서로의 행동을 감시 가능하게 만들어 런의 속도를 증폭했다. 그리고 부유하고 정교한 참여자들이 먼저 빠져나가 손실이 훨씬 작았던 반면, 덜 부유하고 덜 정교한 참여자들은 늦게 움직여 손실이 컸다. 저자들은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내부자조차 위험의 축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적는다 (DOI: 10.2139/ssrn.4416677, 워킹페이퍼).
이 마지막 문장은 곱씹을 만하다. "코드는 공개돼 있으니 누구나 검증할 수 있다"와 "그 코드가 만드는 시스템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동시에 참일 수 있다. 투명성은 가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⑥ 붕괴는 왜 순간이 아니라 며칠에 걸치는가
또 다른 워킹페이퍼는 이 붕괴가 왜 한순간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진행됐는지를 모형화한다. 저자는 시장이 언제든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모형에 넣고, 가격이 충분히 떨어지면 태환 중지가 일어난다고 설정한다. 참가자들은 이 확률들과 진행 중인 소각 유입을 함께 반영해 짝 토큰의 값을 매기고, 결국 태환 중지 확률이 각자의 문턱을 넘을 때 자기 코인을 판다. 두 시간 단위 데이터로 이론 변수를 정량화한 결과, 저자는 대다수 보유자가 중지 확률이 상당히 높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고 보고한다 (DOI: 10.2139/ssrn.4163038, 워킹페이퍼).
붕괴가 계단처럼 펼쳐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도 "지금이 끝"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⑦ 파급 — 다리를 놓을수록 통로가 넓어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구 시리즈에 실린 한 논문은 이 사건을 자연실험으로 삼아 블록체인 간 파급을 측정했다. 결과는 이렇다. 붕괴 이후 다른 블록체인들도 일시적인 시장 점유 손실을 겪었고, 그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붕괴 당시 해당 체인이 무너진 네트워크와 공유하던 브리지(bridge)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약 40%씩 커졌다 (DOI: 10.17016/feds.2023.044).
브리지란 서로 다른 블록체인 사이에 자산을 옮겨 주는 연결 장치다. 연결이 많을수록 편리하지만, 그만큼 충격의 통로도 많아진다.
이더리움 위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다층 시간 그래프로 분석한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붕괴 이전에 스테이블코인들 사이의 상호 연결이 강했고, 붕괴 이후 구조가 크게 변형됐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붕괴 전·중·후에 걸쳐 이상 신호를 식별하고 그것이 그래프 구조 지표와 이용자들의 층간 이동에 미친 영향을 보고한다 (DOI: 10.1145/3726869).
시야를 시장 전체로 넓히면 파급은 선택적이었다. 사건연구 방법론을 쓴 논문은 암호자산 시장 전반에 (−4, +10) 사건 창에서 −14.272%의 누적평균초과수익률이라는 장기적 부정적 영향이 있었지만, 스테이블코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초과수익률이 유의하지 않았고, 주식시장은 사건 당일 음의 반응을 보였다가 빠르게 회복했으며, 귀금속과 에너지 시장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DOI: 10.1108/jeas-09-2023-0263).
논쟁·미해결: 그러면 담보형은 안전한가
여기까지가 "무담보 설계가 무너진 경로"다. 자연스러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담보를 제대로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정직하지 않다.
논점 1 — 2023년의 디페그는 은행에서 왔다
2023년 3월, 법정화폐로 뒷받침되는 대표적 스테이블코인 하나가 크게 디페그했다. 원인은 암호 쪽이 아니었다. 준비금 일부를 맡겨 둔 은행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은행 자체의 실패는 지극히 전통적인 이야기다. 한 경제학 저널의 해설 논문은 이 사례를 은행업 일반과 은행 위기의 경제학을 가르치기에 이상적인 교재라고 부른다. 2023년 3월의 파산에 이어 두 은행이 더 무너지면서, 미국은 두 달 사이에 역사상 최대 은행 파산 네 건 중 세 건을 겪었다 (DOI: 10.1257/jep.38.1.133).
디지털 자산 쪽 효과를 측정한 연구는, 이 은행의 붕괴가 일련의 디페그 사건들을 촉발했고 그 영향이 스테이블코인마다 달랐다고 보고한다. 특히 더 안전한 축으로 여겨지던 코인이 그 은행에 준비금을 의존한 탓에 오히려 취약했고, 다른 코인들은 담보 구조에 따라 다른 영향을 받았다. 저자들의 결론은 스테이블코인이 본질적으로 안전한 자산이라는 통념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DOI: 10.3390/fintech3040030).
고해상도 거래 데이터로 전파 경로를 복원한 연구는 이 사건을 드문 외생 충격으로 규정하고, 위기 구간에서 주요 스테이블코인들의 거래 활동이 강하게 동기화됐음을 보인다. 그리고 전파 경로가 둘로 갈렸다고 보고한다 — 일부 자산은 주로 유동성을 흡수하는 통로로 반응해 거래량이 커진 반면, 문제가 된 코인과 그 관련 자산만이 즉각적인 가격 반응과 거래 건수 급증을 함께 보였고, 이것이 이용자들의 대규모 포트폴리오 재배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arXiv:2606.07442).
여기서 확인해 둘 것이 있다. 암호로 만든 토큰이 은행 때문에 깨졌다. 담보형이 무담보형보다 안전하다는 명제는, 정확히는 "위험을 은행 쪽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논점 2 — 투명성의 역설
같은 사건에서 나온 가장 반직관적인 결과는 투명성에 관한 것이다.
유니스왑의 유동성 풀 데이터로 두 스테이블코인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하나는 공시 빈도가 높고 투명성이 큰 쪽, 다른 하나는 공시가 드물고 불투명한 쪽이었다. 결과는 이렇다. 그 은행 사건은 투명한 쪽의 총예치가치 우위를 깎았고 불투명한 쪽의 유동성 비용을 상대적으로 높였다. 저자들이 지목한 것은 투명성의 반직관적 효과다 — 잦고 상세한 공시는 신속한 시장 반응을 불러왔고, 반대로 드물고 불투명한 보고는 즉각적인 충격에 대한 안전망처럼 작동했다 (arXiv:2407.11716).
이 결과는 이론과도 맞물린다. 글로벌 게임 모형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정보 구조를 분석한 연구는, 정확한 공적 지식이 펀더멘털이 강할 때는 런 확률을 낮추지만 약할 때는 높인다고 보인다. 그런데 사적 신호가 정밀해지면 방향이 반대로 뒤집힌다 — 펀더멘털이 강할 때 오히려 런 확률을 높이고 약할 때 낮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이 불투명한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arXiv:2408.07227).
조심할 것이 있다. 이 결과들은 "불투명한 편이 낫다"는 처방이 아니다. 투명성이 스트레스 국면에서 반응 속도를 높인다는 관측이고, 반응이 빠르다는 것과 결과가 나쁘다는 것은 다른 명제다.
논점 3 — 차익거래를 개선하면 안전해지는가
peg를 지키는 힘이 차익거래라면 차익거래를 더 원활하게 만들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결과가 있다.
한 워킹페이퍼는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차익거래 집중을 측정한다. 저자들의 관측에 따르면 가장 큰 발행자는 평균적인 달에 단 6개 주체에게만 현금 상환을 허용했다. 저자들은 발행자가 차익거래 집중도를 선택하는 것이 트레이드오프를 반영한다고 본다 — 효율적인 차익거래는 2차 시장에서의 가격 안정성을 개선하지만, 투자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팔 때 겪는 가격 충격을 줄여서 오히려 런 위험을 키운다는 것이다. 함의는 뾰족하다. 가격 안정성을 높이려는 정책이 의도치 않게 런 위험을 키울 수 있다 (DOI: 10.2139/ssrn.5278385, 워킹페이퍼).
이와 짝을 이루는 최근 결과도 있다. 평균장 게임(mean-field game) 틀로 차익거래자와 일반 거래자의 상호작용을 모형화한 연구는, 세 건의 실제 디페그 사건으로 보정한 균형이 관측된 회복 반감기를 재현한다고 보고하고, 시스템 전반의 스트레스는 주로 1차 시장 차익거래가 안정시킨다는 주문 흐름 분해를 얻는다. 그리고 그 너머로 가면 디페그 회복이 뚜렷하게 느려지는 비선형 붕괴 임계값이 존재함을 식별한다 (arXiv:2601.18991).
논점 4 — "얼마나 자주 깨지는가"조차 측정의 함수다
디페그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 세어 보려는 시도가 있다. 그런데 그 숫자 자체가 흔들린다.
10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10년치 일별 가격을 분석한 프리프린트는, 사건 수가 탐지 규칙에 극도로 민감하다고 보고한다. 크기 임계값을 1%에서 5%로 올리면 사건 수가 191건에서 21건으로 줄고, 최소 지속 기간 7일을 요구하면 191건에서 29건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원자료 사건의 21.4%는 상장폐지 이후의 유동성 부재가 만든 인공물이었다. 독립적인 다른 데이터 제공자로 재현해 본 결과 심각 사건 21건 중 13건(61.9%)만 확인됐고, 약 5분의 2는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았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 측정된 빈도와 심각도는 시장의 중립적 속성이 아니라 방법론과 데이터 출처 선택의 함수다 (DOI: 10.21203/rs.3.rs-10083601/v1, 프리프린트).
사전 감지 시도도 완전하지 않다. 임계값과 패널 이항 모형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실패'를 예측한 연구는 직전 월평균 시가총액과 직전 변동성이 거시경제·정책 변수보다 강한 예측 변수라고 보고한다 (DOI: 10.3390/forecast7040068).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예측이 시장 내부 변수에 크게 기댄다는 뜻이기도 하다.
논점 5 — 담보가 멀쩡해도 깨진다
가장 최근의 사례들은 문제를 다시 낯설게 만든다.
2025년 10월의 한 사건을 다룬 워킹페이퍼는, 대규모 강제 청산 국면에서 어떤 합성 달러 토큰이 한 거래소에서는 0.65달러까지 떨어지는데 같은 시각 탈중앙 거래소들에서는 0.99달러 부근에 거래되는 상황을 기록한다. 저자들의 진단은 이것이 전 지구적 실패가 아니라 특정 거래 장소에 국한된 디페그였고, 원인은 그 거래소의 가격 오라클이 더 깊은 외부 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얕은 호가창을 참조한 되먹임 고리였다는 것이다. 강제 청산이 유동성을 더 말리고, 그것이 오라클 가격을 더 떨어뜨리는 회로다.
오라클(oracle)이란 블록체인 바깥의 가격 같은 정보를 온체인으로 가져다주는 장치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스스로 시세를 알지 못하므로 누군가 알려 줘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결과를 바꾼다.
이 사건에서 프로토콜은 내내 완전히 담보돼 있었다고 저자들은 적는다(독립 검증 주체가 확인했다는 단서를 달아서). 그런데도 그 거래소에서의 디페그는 디레버리징의 초점 역할을 하며 실제 담보 위기에 준하는 경제적 결과를 낳았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 글의 주제를 정확히 관통한다 —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은 담보 설계만의 성질이 아니라 그 자산이 거래되는 장소의 미시구조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으며, 오라클 구조는 peg 회복력의 1차적 결정 요인이다 (DOI: 10.2139/ssrn.6571858, 워킹페이퍼).
한 달 뒤의 다른 사건을 분석한 워킹페이퍼도 결이 비슷하다. 저자들은 시간별 온체인 데이터로 연쇄를 재구성한 뒤, 생존을 가른 것은 온체인 노출이나 규모가 아니라 뒷받침의 질,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환이 실제로 이행됐는가 여부였다고 보고한다. 전염은 관찰 가능한 조합가능성(composability)을 타고 흐르지 않았고, 오프체인 준비금 관계와 — 하나의 실질적 노출에서는 — 붕괴 이전 값에 얼어붙은 가격 오라클을 타고 흘렀다. 그 결과 청산이 발동하지 않았고 온체인 부실채권 사건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은 채 부실이 쌓였다. 저자들은 이 사건의 시스템 채널이 조합가능성이 아니라 평가의 불투명성이었다고 읽는다. 다만 저자들 스스로 이 논문이 한 사건에 대한 기술적·구조적 해부이며 인과 식별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DOI: 10.2139/ssrn.7219718, 워킹페이퍼).
이 두 사건은 모두 워킹페이퍼 단계의 분석이다. 심사를 거친 후속 연구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아직 모른다. 여기서 가져갈 것은 개별 수치가 아니라 방향이다 — 담보가 온전해도 peg는 깨질 수 있고, 그 이유가 담보 바깥에 있을 수 있다.
논점 6 — 설계로 풀 수 있는 문제인가
그래서 더 나은 설계는 가능한가. 이 질문에는 낙관과 비관이 함께 있다.
낙관 쪽. 상환 곡선을 새로 설계한 연구는 기존 발행·상환 메커니즘들이 임기응변에 가까웠고 그중 몇몇이 최근의 디페그에 기여했다고 지적하면서, 프로토콜과 보유자 양쪽에 손실 상한이 보장되는 1차 시장 자동화 마켓메이커를 제시한다 (arXiv:2212.12398). 동적 게임과 최적 제어를 쓴 연구는 프로토콜과 이용자 사이의 스타켈베르그 게임 모형으로 고정 상환가 방식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디페그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고한다 (arXiv:2410.21446). 담보형 설계의 정책과 연산을 형식논리로 표현해 시뮬레이션·분석할 수 있게 만든 프레임워크도 있다 (arXiv:2412.15814). 비수탁형 설계의 유인 보안을 옵션 가격결정 이론으로 분석해 거버넌스 공격이 없는 균형의 존재 조건을 도출한 연구도 있다 (arXiv:2109.08939).
비관 쪽. 2026년의 한 이론 연구는 뒷받침 자산이 있는 설계 중 모두에게 고정된 발행·상환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결과는 불가능성에 가깝다. 2차 안정화 장치가 없다면 이런 설계는 뒷받침 자산 자체가 이미 안정적이지 않은 한 단기 안정성과 장기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트레이드오프는 이렇다 — 투기자의 지속적 차익거래로 준비금이 결국 고갈될 위험을 지거나, 아니면 발행가와 상환가의 간격을 차익거래가 안 될 만큼 벌리거나. 후자를 택하면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가격이 뒷받침 자산의 변동성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arXiv:2602.15981).
설계 목표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정식화도 있다. 한 설계 제안 논문은 이를 스테이블코인 트릴레마라 부르며 탈중앙성·자본효율성·안전성-안정성 세 축을 형식적으로 정의하고, 셋을 동시에 밀어붙이는 것이 최적화 문제로서 어렵다는 점을 명시한다 (arXiv:2412.18182). 이 논문 자체는 특정 설계의 청사진이므로 결론보다 문제 정식화를 보는 편이 낫다.
논점 7 — 규제는 무엇을 하고 있나
규제 논의는 이 글의 범위 밖이다. 논문들이 사실로 보고하는 것만 적어 둔다.
여러 관할권이 이미 규칙을 만들었다. 한 SoK 논문은 유럽연합의 MiCA, 미국의 GENIUS Act,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규제 개입의 사례로 나열한다 (arXiv:2508.02403). 소매 결제 관점에서 카드망과 비교한 다른 SoK는,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효율적이고 연속적이며 프로그래밍 가능한 정산을 제공하지만 가격·위험 배분 구조가 뒤집혀 있다고 정리한다 — 카드망은 보조금과 표준화된 책임 규칙, 사후 구제로 소비자 쪽 마찰을 내부화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 방식은 수수료·오류 방지·분쟁 해결을 이용자와 중개자와 법원에 외부화한다는 것이다 (arXiv:2601.00196).
설계별로 위험이 다르므로 규제도 달라야 한다는 실증도 있다. 여덟 개 스테이블코인의 2021~2025년 일별 데이터와 세 개 코인의 분 단위 사건연구를 결합한 연구는, 법정화폐 담보형은 분위 전반에서 순 파급이 0에 가까운 "안정 닻"으로 기능하는 반면 알고리즘형과 암호자산 담보형은 극단적 시장 상황에서 특히 위험 증폭기가 된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은 이로부터 획일적인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부적절하며, 비-법정화폐 담보형의 극단 손실 대비 규제 자본 버퍼는 중앙값 기반 측정치가 시사하는 것보다 2~3배 높아야 한다는 함의를 끌어낸다 (arXiv:2602.18820). 이것은 그 논문의 함의이지 이 글의 주장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도 측정되기 시작했다. 온체인 거래를 도매 은행 간 지급과 연결한 한 중앙은행 연구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의 예금 프랜차이즈를 잠식할 뿐 아니라 유동성 스트레스를 은행 시스템으로 전달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스테이블코인 예치를 받는 은행들이 지급 수요 증가와 유동성 노출 증가를 겪는다는 증거를 보고한다 (DOI: 10.59576/sr.1185). 은행에서 온 충격이 토큰을 흔든 것이 2023년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 방향도 측정 대상이 됐다.
의의: 무엇이 무엇을 보장하는가
연구 157편, 활성 스테이블코인 95개, 주요 보안 사고 44건을 함께 분석한 대규모 SoK가 있다. 이 논문의 첫 번째 결론이 이 글의 결론이기도 하다.
안정성은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와 지속적인 유동성 사이의 상호작용에 기대는 창발적이고 취약한 상태다. 두 번째 결론은 이렇다 — 스테이블코인 설계들은 위험을 줄이는(mitigation)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전문화하는(specialization) 트레이드오프를 보여 준다. 세 번째는 수익 메커니즘의 광범위한 도입이 안정이라는 본래 사명과 경쟁적 수익을 내기 위한 고위험 금융공학 사이에 구조적 긴장을 만든다는 것이고, 네 번째는 대형 사고들이 일종의 진화적 압력으로 작동해 설계를 스트레스 테스트하고 보안의 최전선을 재정의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만든 정량 방법론을 적용해 보니 낮게 평가된 위험은 과거 사고의 교훈을 반영한 정도와 강하게 상관돼 있었다 (arXiv:2506.17622).
"위험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전문화한다"는 문장을 붙들자. 무담보 설계는 은행 위험을 없앴다. 대신 수요 위험을 통째로 떠안았다. 법정화폐 담보형은 수요 위험을 줄였다. 대신 은행 위험을 다시 들여왔다 — 2023년 3월이 정확히 그것을 보여 줬다 (DOI: 10.3390/fintech3040030). 암호자산 담보형은 은행을 빼는 대신 담보 가격 위험과 청산 나선을 안았고, 그것이 2020년에 실현됐다 (arXiv:1906.02152; arXiv:2004.01304).
그러니 물어야 할 질문은 "이 스테이블코인은 안전한가"가 아니다. 무엇이 무엇을 보장하는가다.
코드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은 생각보다 짧다. 얼마가 발행됐는지, 얼마가 소각됐는지, 상환 규칙이 무엇인지, 지금 이 주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 이것들은 확인 가능하다. 누구나, 언제든, 남의 말을 믿지 않고.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이 훨씬 길다. 준비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 준비금을 맡아 둔 곳이 내일도 열려 있는지 (DOI: 10.3390/fintech3040030).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환이 실제로 이행될지 (DOI: 10.2139/ssrn.7219718, 워킹페이퍼). 오라클이 보는 가격이 진짜 가격인지 (DOI: 10.2139/ssrn.6571858, 워킹페이퍼). 차익거래자가 내일도 나타날지 (DOI: 10.2139/ssrn.5571720, 워킹페이퍼). 그리고 무엇보다 — 다음 사람이 이것을 1달러로 받아 줄지.
2022년 5월에 무너진 것은 이 마지막 항목이었다. 합리적 폰지 게임의 성립 조건에는 처음부터 "굴러가기를 멈추는 순간"이 포함돼 있었고 (arXiv:2210.11928), 게임이 굴러가는 동안에는 그 조건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코드는 그때도 규칙대로 소각하고 규칙대로 지급하고 있었다 (DOI: 10.5195/ledger.2023.283).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은 암호가 증명해 주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1달러로 사 줄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다. 암호학이 하는 일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일이다.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믿어야 하는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 —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유산이다. 그리고 그 선은 코드 안이 아니라 코드 바깥에 그어져 있다.
근거 논문
- "Understand Volatility of Algorithmic Stablecoin: Modeling, Verification and Empirical Analysis" (2021) — arXiv:2101.08423 — 세 유형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형식화하고 형식검증으로 불안정해지는 임계 조건을 식별, 실거래 데이터로 실증.
- "While Stability Lasts: A Stochastic Model of Non-Custodial Stablecoins" (2020) — arXiv:2004.01304 — Black Thursday를 계기로 한 확률모형, 안정/불안정 영역의 형식적 특징화, 디플레이션적 디레버리징 나선을 하위마팅게일로 포착.
- "(In)Stability for the Blockchain: Deleveraging Spirals and Stablecoin Attacks" (2019) — arXiv:1906.02152 — 디레버리징 나선을 2019년에 예측하고 2020년 Black Thursday에서 관측, 청산 주변 공격이 800만 달러 비용으로 실현.
- "Stablecoin Design with Adversarial-Robust Multi-Agent Systems via Trust-Weighted Signal Aggregation" (2026) — arXiv:2601.22168 — 2020년 3월 담보 경매 830만 달러 손실과 15% peg 이탈의 요약, 적대적 스트레스 테스트 설계.
- "Rational Ponzi Games in Algorithmic Stablecoin" (2022) — arXiv:2210.11928 — 합리적 폰지 게임 모형과 성립 조건, 리베이스형/시뇨리지 지분형 적용.
- "Les fausses promesses de Terra-Luna" (2023) — DOI: 10.3917/ecofi.149.0053 — 내생/외생 준거자산 구분, "지킬 수 없는 보상 약속"이 만드는 폰지 도식과 그 교정 가능성.
- "A Token Economics Explanation for the De-Pegging of the Algorithmic Stablecoin: Analysis of the Case of Terra" (2023) — DOI: 10.5195/ledger.2023.283 — 온체인 데이터, 상환 시 과소보상과 거래소 가격이 상환 실현가를 추종한 현상.
- "Anatomy of a Stablecoin's failure: the Terra-Luna case" (2022) — arXiv:2207.13914 — 특정 예치 프로토콜에 대한 의존, 촉발 사건의 시간별·거래별 식별, 61개 암호자산의 의존 구조 변화.
- "Anatomy of a Run: The Terra Luna Crash" (2023) — DOI: 10.2139/ssrn.4416677 (워킹페이퍼) — 사흘·500억 달러, 예치 프로토콜에 대한 런, 관찰 가능성이 증폭한 런 속도, 참여자 정교함에 따른 손실 격차.
- "A Luna-tic Stablecoin Crash" (2022) — DOI: 10.2139/ssrn.4163038 (워킹페이퍼) — 태환 중지 확률 문턱 모형, 붕괴가 단계적으로 펼쳐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