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바꿀 권한도 살 수 있다 — 토큰 투표로 굴러가는 조직에서 거버넌스가 공격 표면이 될 때
왜 이 논쟁인가
블록체인 위에서 굴러가는 조직 중에 DAO라 불리는 것이 있다. 탈중앙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로, 사장도 이사회도 없이 규칙을 스마트 컨트랙트에 새겨 두고 참여자들의 투표로 그 규칙을 바꾸는 조직을 말한다. 오늘날 DAO는 금고에 큰 자산을 쌓아 두고 널리 쓰이는 금융 프로토콜들을 실제로 운영한다 (arXiv:2406.15071).
투표권은 거버넌스 토큰이 준다. 이 토큰을 가진 만큼 표를 갖고, 그 표로 제안을 통과시키거나 부결시킨다. 한 연구의 표현대로, 누가 어떻게 참여하고 각자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는 거버넌스 컨트랙트에 명시적으로 인코딩돼 있다 (arXiv:2604.25959). 제안도, 표도, 금고에서 나가는 돈도 전부 온체인에 지워지지 않게 기록된다 (DOI: 10.3389/fbloc.2026.1890169).
여기서 아주 자연스러운 통념이 나온다. 코드가 규칙이고, 규칙은 투표로 바꾼다. 그러니 소수가 마음대로 못 바꾼다.
이 글이 따라갈 질문은 그 통념의 반대편에 있다. 만약 투표권 자체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규칙을 바꿀 권한도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닌가?
시작 전에 네 가지를 분명히 해 두자.
첫째, 이 글은 어떤 조직이나 토큰도 평가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이름은 연구자들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고, 그 논문의 서술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세·시가총액·수익률·전망은 다루지 않으며, 운영 중인 특정 조직에 "안전하다" 혹은 "위험하다"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둘째, 이 글은 공격 실행 지침이 아니다. 왜 어떤 자리가 구조적으로 약한지는 설명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절차는 쓰지 않는다. 필요한 지분을 계산하는 법도, 표를 사고파는 방법도, 특정 절차를 우회하는 법도 여기 없다. 뒤에서 다룰 매표와 '다크 DAO'는 그런 구조가 학술적으로 형식화돼 있다는 사실과 그 함의까지만이다.
셋째, 근거 등급이 고르지 않다. arXiv에 공개된 판본이 많은데, arXiv 공개는 동료심사 여부와 무관하며 상당수는 이후 학회나 저널에 실린다 — 다만 개별 논문의 게재 여부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심사 지면에 실린 논문과 SSRN 등의 워킹페이퍼를 섞어 인용하며, 워킹페이퍼에 기대는 대목은 그때마다 표기한다.
넷째, 여기 나오는 수치는 전부 "그 논문이 그 시점에, 그 데이터에서 관측한 값"이다. 어떤 조직의 오늘 상태를 말해 주는 숫자가 아니다.
먼저 층위를 갈라 두자
코드에 새겨진 권한을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한 갈래가 있다. 토큰을 더 찍을 수 있는 권한, 남의 잔고를 잠글 수 있는 권한, 넣어 둔 유동성을 되가져올 수 있는 권한 — 설계자가 자기 몫으로 남겨 둔 관리자 권한이 그대로 출구가 되는 구조 말이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층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관리자 권한이 아니라 규칙을 바꾸는 절차 그 자체다. 관리자 키가 없어도, 백도어가 하나도 없어도, 투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만 하면 성립하는 종류의 문제다. 컨트랙트 권한은 코드를 읽으면 목록으로 뽑을 수 있다. 투표 권한은 코드에 적혀 있지만, 그 표를 쥔 사람이 왜 그렇게 던지는지는 코드에 적혀 있지 않다.
DAO에 대한 공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SoK 논문이 정확히 이 대비를 짚는다. 저자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공격,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제기된 공격, 감사 과정에서 발견돼 막힌 공격을 함께 모아 공격 벡터를 네 범주로 분류했다. 그 결과 드러난 것은 이렇다 — DAO에 대한 많은 공격이 거버넌스에 개입된, 덜 만져지고 더 복잡한 인간적 성질을 이용하는데, 정작 감사는 코드와 프로토콜 취약점 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arXiv:2406.15071).
이 문장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통념: 표는 흩어져 있고, 흩어진 표는 사기 어렵다
통념을 조금 더 정확히 옮기면 이렇다. 토큰이 넓게 뿌려져 있으면 한 사람이 다수를 만들 수 없고, 다수를 만들려면 시장에서 토큰을 그만큼 사 모아야 하는데 그건 너무 비싸다. 그러니 규칙은 안전하다.
이 논리에는 조건이 하나 숨어 있다. 표를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를 한다는 조건이다.
여기서부터 실증이 통념과 갈라진다. DeFi 플랫폼들의 거버넌스를 분석한 연구는 세 가지를 나란히 보고한다 — 사용자들이 거버넌스 토큰을 투표에 잘 쓰지 않는다는 것, 투표율이 거래 수수료와 음의 상관을 보인다는 것(즉 수수료가 비쌀수록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한다), 그리고 투표가 매우 중앙집중적이라는 것이다 (arXiv:2308.04267).
투표하지 않는 표는 다수 계산에서 빠진다. 그래서 "얼마나 사야 다수가 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발행량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표의 양에 달려 있다. 굳이 숫자를 들지 않아도 방향은 분명하다 — 참여가 낮을수록 그 값은 내려간다.
이 낮은 참여는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으로 관측된다. 온체인 데이터로 DAO의 지속가능성 지표를 만든 연구는 낮은 참여율과 높은 제안자 집중이 되풀이되는 거버넌스 패턴이라고 적고 (arXiv:2504.11341), 50개 넘는 활성 DAO의 제안 6,930건과 고유 투표 주소 317,317개를 훑은 후속 대시보드 연구도 지속적으로 낮은 참여와 제안 활동의 집중을 같은 표면에서 확인한다 (arXiv:2601.14927).
그리고 이 낮은 참여는 절차를 손본다고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다섯 개 주요 DAO의 거버넌스 제안 1,959건을 쓴 워킹페이퍼는 투표 창(voting window)의 길이가 참여와 통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의미 있는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참여 변동의 대부분을 설명한 것은 절차의 세부가 아니라 DAO별로 지속되는 제도적 특성이었다 (DOI: 10.2139/ssrn.6588294, 워킹페이퍼). 절차 손잡이를 돌려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반전 ①: 투표권이 살 수 있는 물건이면, 규칙을 바꿀 권한도 살 수 있는 물건이다
표는 이전 가능하다 — 그리고 실제로 이전된다
거버넌스 토큰의 결정적 성질은 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의 DeFi 거버넌스 연구는 바로 이 성질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들은 거버넌스 토큰의 이동과 보유를 추적한 끝에, 이 토큰들이 하나의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 쓰인 뒤 곧바로 팔려 나가는 흐름을 관측했다고 보고한다. 나아가 어떤 플랫폼이 다른 플랫폼의 거버넌스 절차를 이용해 그 호스트 플랫폼의 이익에 반하는 자기 의제를 추진한 증거도 제시한다 (arXiv:2308.04267).
"한 번 쓰고 판다"는 여섯 글자에 이 글의 절반이 들어 있다. 표를 오래 쥘 필요가 없다면, 표의 값은 그 조직의 미래 가치가 아니라 그 한 번의 결정이 만드는 값으로 결정된다.
토큰 보유자의 투표 행태를 대규모로 분석한 다른 연구도 같은 흔적을 찾는다. 이 연구는 평가한 8,116건의 제안 중 1,202건(14.81%)에서 투표 직전에 거버넌스 토큰 소유권이 이동하는 경향을 관측했다고 보고한다. 같은 연구는 최소 20.41%의 DAO에서 내부 기여자들이 단독으로 적어도 한 건의 제안을 결정했고, 7.54%의 DAO에서는 기여자들이 평균적으로 거버넌스 결정을 통제할 만큼의 다수를 쥐고 있었다고 적는다 (arXiv:2309.14232).
두 대형 DeFi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제안 370건 이상과 수백만 건의 온체인 이벤트를 분석한 연구는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 3~5명 정도면 대다수 제안의 향방을 좌우하기에 충분했다 (arXiv:2305.17655). 이 숫자를 "누가 나쁘다"로 읽으면 안 된다. 이 글의 관심에서 이 숫자가 뜻하는 것은 하나다. 표를 사는 쪽이 상대해야 할 대상이 생각보다 작다.
사지 않고 빌려도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결과가 있다. 2020년에 공개된 연구는 당시 시장 점유가 가장 컸던 DeFi 대출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설계를 공격해 프로토콜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실현 가능함을 보였다. 저자들이 제시한 전략의 핵심은 플래시론이었다. 플래시론이란 담보를 잡지 않고 빌린 돈을 같은 거래 안에서 갚기만 하면 되는 대출이다. 갚지 못하면 거래 전체가 없던 일이 되기 때문에 빌려주는 쪽이 위험을 지지 않고, 그래서 자산을 묶어 둘 필요가 없다.
저자들은 이 공격 세부를 책임 공개(responsible disclosure)했고, 약 2주 뒤 해당 프로토콜이 거버넌스 파라미터를 수정해 공격 벡터를 완화했다 (arXiv:2002.08099). 이 순서가 중요하다. 구조적 약점이 먼저 형식적으로 특정됐고, 그 뒤에 설계가 바뀌었다.
방어 쪽 문헌도 같은 그림을 정면에서 인정한다. 토큰을 표의 가중치로 쓰는 순간 플래시론으로 투표 결과를 조작해 금고의 자금을 빼내는 악성 제안을 통과시킬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 설정이고, 그에 대한 방어로 시간가중 스냅샷 구조가 제안됐다 (arXiv:2505.00888). 여기서 금고(treasury)란 조직이 공동으로 보유한 자금 풀이다. 프로토콜 개선이나 보조금에 쓰라고 모아 둔 돈이고, 제안이 통과되면 그 돈이 나간다.
빌릴 수 있는 물량이 얼마나 되느냐가 그 자체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은 다른 사례에서도 관측됐다. 한 대출 프로토콜에서 벌어진 사건을 분석한 연구는, 문제의 시도가 빌릴 수 있는 토큰 물량이 매우 컸다는 점, 그리고 그 프로토콜의 대출 설계가 신속한 개입을 어렵게 했다는 점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적는다. 저자들은 이로부터 대형 DeFi 대출 프로토콜의 딜레마를 끌어낸다 — 범위를 제한하든가, 아니면 '탈중앙'을 양보하든가 (arXiv:2302.04068).
이건 블록체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의결권과 경제적 이해를 떼어 놓는 발상은 훨씬 오래됐다. 전통 기업지배구조 문헌에는 empty voting이라는 이름이 있다. 주식과 의결권의 위치를 분리해 — 기준일에 주식을 빌리거나, 경제적 노출을 헤지하거나, 기준일과 표결일 사이에 거래해서 — 표는 갖되 그 결정의 결과를 떠안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2008년의 한 모형 논문은 이런 거래자의 존재가 전체적으로는 효율을 개선할 수도 있음을 보이면서, 동시에 그 거래자가 순매도 포지션에 이른 뒤 기업 가치를 낮추는 쪽에 표를 던지는 경우도 모형 안에 들어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결론을 조건부로 남긴다 — 표를 주식에서 떼어내는 일이 싸질수록 효율은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DOI: 10.2139/ssrn.1108632, 워킹페이퍼).
이 조건절이 블록체인에서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표를 지분에서 떼어내는 비용은, 담보 없이 한 거래 안에서 빌렸다 갚는 세계에서 아주 낮아진다.
심사 지면에 실린 이론 연구도 같은 변수를 짚는다. 토큰 기반 투표 아래에서 큰 참여자 한 명과 다수의 작은 참여자 사이의 이해 상충을 전략적 토큰 거래와 함께 모형화한 연구는, 소유 집중이 플랫폼 성장에 부정적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보이면서 그 효과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 플랫폼의 크기, 토큰의 비유동성, 그리고 장기 유인이다. 저자들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주요 DAO들의 투표 데이터로 이 예측을 확인한다 (DOI: 10.1287/mnsc.2024.07033).
가운데 항목에 잠깐 머물자. 토큰이 사고팔기 어려울수록 문제가 완화된다는 것은, 뒤집으면 표가 쉽게 사고팔리는 물건일수록 문제가 커진다는 뜻이다. 이 글이 따라온 실이 이론 쪽에서도 같은 매듭에 닿는다.
DAO 문헌도 이 개념을 이미 수입했다. 순차 경매로 한시적이고 경합 가능한 통제권을 만들자는 거버넌스 설계 제안은, 자기 메커니즘의 장점 중 하나로 empty voting에 견고하다는 성질을 명시적으로 든다 (arXiv:2403.16980). 방어 설계가 그것을 방어 목표로 적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실재하는 표면임을 말해 준다.
반전 ②: 뇌물을 눈에 안 보이게 만드는 구조까지 형식화돼 있다
여기서 훨씬 불편한 층으로 내려간다.
이해가 같은 사람들은 이미 한 덩어리다
DAO의 '탈중앙'을 어떻게 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Voting-Bloc Entropy(VBE)라는 척도를 제안한 연구가 있다. 발상은 간단하다. 지갑 수를 세거나 토큰 분포를 재는 대신, 여러 표결에 걸쳐 참여자들의 효용 함수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잰다. 이해가 가까이 정렬된 유권자들은 지갑이 몇 개든 중앙화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arXiv:2311.03530; 확장판 arXiv:2509.22620).
이 틀을 세워 두면 그동안 따로 놀던 것들이 한 자에 올라온다. 저자들은 VBE로 위임, 제안 묶기(proposal bundling), 매표, 제곱 투표가 각각 탈중앙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여러 결과를 증명한다 (arXiv:2311.03530). 제안 묶기란 여러 안건을 한 표결에 묶어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유권자가 일부만 찬성하고 싶어도 통째로 던져야 한다.
그중 이 글이 붙들 결과는 하나다 —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DAO의 탈중앙 정도가 커질수록 조직적 매표(systemic bribery)의 위험이 커진다는 결과다 (arXiv:2311.03530). 직관에 정면으로 반한다. 표가 넓게 퍼질수록 각 표의 주인은 그 결정의 결과를 덜 떠안고, 그만큼 표를 넘길 이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위협이 현실적임을 보이려고
저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위협이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들은 다크 DAO(Dark DAO)의 첫 실용적 구현을 제시한다. 다크 DAO란 신원 체계 — DAO 투표에 쓰이는 것을 포함해 — 를 프라이버시를 유지한 채 부패시키기 위해 제안된 메커니즘이다. 저자들의 프로토타입은 한 블록체인의 신뢰실행환경(TEE)을 이용해 다른 블록체인의 DAO를 겨냥한다. TEE란 칩 안에 격리된 영역으로, 그 안에서 무슨 계산이 일어나는지 바깥에서는 볼 수 없게 만드는 하드웨어 장치다. 저자들의 결론은 절제돼 있다 — 다크 DAO는 DAO 거버넌스에 대한 현실적인 미래 우려를 구성한다 (arXiv:2311.03530).
여기서 이 글이 말하는 것은 만드는 법이 아니다. 요점은 결과의 성질이다. 표를 넘기는 거래가 원장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면, "이 표는 팔린 표인가"라는 질문에 원장이 답하지 못한다. 잃어버리는 것은 정직함이 아니라 관측 가능성이다.
검증가능성과 비밀투표는 서로를 갉아먹는다
이 긴장은 DAO 거버넌스 프로토콜을 훑은 서베이에서 더 날카롭게 진술된다. 저자들의 진단은 가차 없다 — 표를 사고파는 일과 강압이 쉽고, 투표의 비밀은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짧게만 유지되며, 검증가능성이 프라이버시를 대가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arXiv:2406.08605).
두 요구가 서로를 갉아먹는 구조를 보자. 누구나 결과를 검증할 수 있게 하려면 표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표가 보이면 표를 넘겼다는 약속이 이행됐는지도 보인다. 반대로 표를 감추면 그 약속의 이행은 확인할 수 없지만, 결과의 검증도 어려워진다. 그리고 앞의 다크 DAO 결과가 말하는 것은, 이 둘을 동시에 얻는 쪽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격 쪽에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크로스체인 DAO의 보안을 정리한 연구가 네 개의 결정적 공격 벡터를 나열하는데, 그 목록의 첫 항목이 매표 공격이다. 나머지는 토큰 통제권 악용, 사람과 인터페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속임수, 그리고 프로토콜 취약점이다 (arXiv:2607.16548).
원장은 표를 보여 주지, 합의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이 절의 결론을 가장 건조하게 적은 것은 예측시장과 탈중앙 오라클 거버넌스의 관계를 분석한 워킹페이퍼다. 저자는 분쟁 상태의 계약 134건에 대한 온체인 투표 기록 4,992건을 맞춰 붙여 분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개별 투표자를 거래 주소와 연결하려는 시도를 여러 방법으로 했고 같은 사람이 어떤 시장에 표를 던지면서 동시에 그 시장에 포지션을 들고 있는 사례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저자가 여기서 끌어내는 결론은 "그러니 깨끗하다"가 아니다. 반대다 — 개인 수준의 거버넌스 포획은 공개 원장 데이터만으로는 구조적으로 감사가 불가능하다 (DOI: 10.2139/ssrn.6874201, 워킹페이퍼).
없다는 것과 안 보인다는 것을 구별할 수 없다면, 원장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의 목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짧다.
메커니즘: 무엇이 무엇을 막는가
이제 방어 장치들을 하나씩 저울에 올린다. 각 장치가 무엇을 막고 무엇을 못 막는지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① 정족수와 제안 문턱
정족수(quorum)란 표결이 유효하려면 최소한 이만큼의 표가 나와야 한다고 정해 둔 선이다. 제안 문턱은 제안을 올리려면 최소한 이만큼의 토큰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선이다.
204개 DAO의 온체인 거버넌스 설계를 신호 이론으로 분석한 연구는, 최소 토큰 정족수를 두는 것이 토큰 성과와 양의 관계를 보인 반면 NFT나 추가 거버넌스 토큰 같은 투표 인센티브를 붙이는 것은 음의 관계를 보였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창립자의 지분 보유가 이 신호들을 조절하는 조건 요인으로 작동했다 (DOI: 10.1177/02683962251343627).
정족수가 막는 것은 분명하다 — 아무도 안 볼 때 조용히 통과되는 것. 못 막는 것도 분명하다. 정족수를 채운 다수 자체는 막지 못한다. 그리고 참여가 낮은 조직에서 정족수를 높이면, 통과되지 않는 제안이 늘어난다. 그 대가는 마비다.
② 타임락
타임락(timelock)은 표결이 통과된 뒤 실제 집행까지 일정 시간을 강제로 비워 두는 장치다. 크로스체인 DAO 보안 프레임워크를 제안한 연구는 이를 회복 계층(Resilience Layer)의 핵심 요소로 놓는다 — 시간잠금된 결정 되돌리기와 단계적 분쟁 해결이다 (arXiv:2607.16548).
플래시론에 대한 방어로 제시된 시간가중 스냅샷도 결이 같다. 표의 무게를 특정 순간의 잔고가 아니라 시간에 걸친 보유로 재자는 것이다. 다만 이 연구 자신이 기존 방어 기제들의 약점을 접근성에서 찾는다는 점은 짚고 갈 만하다 — 방어가 촘촘해질수록 정직한 소액 보유자도 함께 걸러진다 (arXiv:2505.00888).
타임락이 막는 것은 즉시성이다. 표가 통과되는 순간과 돈이 나가는 순간 사이에 시간을 끼워 넣어, 그 사이에 누군가 알아차리고 대응할 여지를 만든다. 못 막는 것은 다수 그 자체다. 시간을 벌어 주는 장치는 그 시간에 무언가 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
③ 위임 — 참여를 살리려던 장치가 만드는 새 집중
위임(delegation)은 토큰 보유자가 자기 투표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그 사람이 대신 투표하게 하는 제도다. 낮은 참여와 판단 부담을 동시에 풀려고 도입됐다.
그런데 이더리움에 배포된 48개 공개 DAO의 설계와 구현을 뜯어본 연구의 결론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저자들은 보안이나 참여를 개선하려고 도입된 토큰 등록, 스테이킹, 위임이라는 세 기제가 어떻게 투표권 집중에 기여하는지를 식별하고, 특정 DAO의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 기제 자체가 체계적으로 중앙화를 강화한다고 적는다 (arXiv:2604.25959).
위임 문헌을 훑은 스코핑 리뷰도 같은 긴장을 정리한다. 위임은 낮은 참여를 메우려고 채택되지만 특히 대형 보유자나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가 있을 때 중앙화를 악화시킬 잠재력이 지적돼 왔고, 그래서 위임에는 효율 이득과 의도치 않은 권력 집중 사이의 긴장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DOI: 10.3389/fbloc.2025.1598283).
누가 위임을 받는가도 관측됐다. 한 대형 DAO를 실험실 삼아 위임의 결정 요인을 분석한 연구는 자기 표가 적은 쪽, 그리고 지배적 벤처캐피털 회사와 관련된 쪽이 더 많은 위임을 받는다고 보고하면서 동시에 다른 축도 찾아낸다 — 개선 제안을 제출하고 특히 최종 단계까지 통과시킨 실적이 있으면 위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위임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평판이나 실적에 기반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arXiv:2503.11940).
문제는 그 평판이 어긋났을 때다. 한 DeFi 조직의 위임 설계를 분석한 워킹페이퍼는 세 가지를 나란히 보고한다. 위임자들은 전문성을 보였고 투표에 더 참여했으며 더 잘 알고 선택했다. 그런데 자신의 이해와 조직의 이해가 충분히 크게 어긋나고 결과를 좌우할 만큼의 표를 쥐었을 때는 개인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보다 앞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장의 감시는 대체로 보상과 처벌로 작동했지만, 저자의 표현으로는 보유가 투명하게 다 보이는데도 이해가 어긋난 위임자를 일관되게 처벌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DOI: 10.2139/ssrn.4533512, 워킹페이퍼).
인터페이스도 한몫한다. 14개 DAO 포럼의 오프체인 논의를 온체인 주소와 연결해 분석한 연구는, 위임이 토큰 보유자들이 스스로 표명한 우선순위와 자주 어긋나 있고, 현행의 순위 기반 위임 인터페이스가 권력 집중을 악화시킨다고 보고한다. 상위에 노출된 소수의 위임자가 그 정렬 여부와 무관하게 영향력을 쌓는다는 것이다 (arXiv:2510.05830).
위임의 대안을 인식론 쪽에서 저울질한 연구도 있다. 여러 탈중앙 거버넌스 방식이 정답이 있을 때 그 정답에 도달하는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를 시험한 결과, 저자들은 부분 기권(partial abstention)이 여러 형태의 이전형 위임보다 인식론적으로 강한 방식이라고 결론짓는다. 이전형 위임에는 내재적인 인식론적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직접 참여를 늘리는 것조차 인식론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함께 보인다 (arXiv:2505.04136). "더 많이 투표하게 하자"가 자동으로 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④ 감시 역량이라는 병목
왜 참여가 계속 떨어지는가에 대해 한 워킹 노트가 단순한 기제를 제시한다. 탈중앙 거버넌스는 감시 집약적(monitor-intensive)이다. 제안이 쏟아지는 속도가 넓은 참여가 따라갈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면, 실질적인 통제권은 아주 활동적인 소수 쪽으로 흘러간다. 저자는 DAO-분기 패널로 꺾임 모형을 추정해 제안 활동이 어떤 문턱을 넘으면 활동적 투표자의 한계 반응성이 유의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보이고, 이를 "too big to monitor" 기제라 부른다 (arXiv:2603.11222).
이 결과의 함의는 뾰족하다. 조직이 커지고 활발해질수록, 즉 성공할수록 실질 통제가 좁아질 수 있다. 그리고 실질 통제가 좁아진다는 것은 앞 절의 언어로 옮기면 표를 사려는 쪽이 상대할 대상이 좁아진다는 뜻이다.
⑤ 금고 — 표가 곧 돈인 자리
DAO에서 표결이 가장 직접적으로 돈이 되는 자리는 금고다. 블록체인 금고 거버넌스를 비교제도경제학으로 분석한 연구는 문제를 이렇게 정식화한다. 참여자들이 마주한 것은 금고가 절취나 유용 같은 기회주의에 견디는지에 대한 신뢰 문제이고, 위원회나 이해관계자 투표 같은 거버넌스 구조는 그 신뢰를 만들어 내려는 장치다. 저자들은 이를 독재의 비용과 무질서의 비용 사이의 균형으로 놓고, 그 비용이 공동체의 생애주기에 따라 이동하며 대개 거버넌스 위기를 통해 드러나거나 학습된다고 정리한다 (DOI: 10.1111/rego.12659).
"위기를 통해 학습된다"는 문장은 다르게 읽으면 이렇다. 비용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금고 안건이 특히 예민하다는 것은 반사실 실험에서도 드러난다. 한 대형 DAO의 참여도 높은 제안 15건에 대해 표의 무게를 제곱근으로 눌러 다시 계산해 본 워킹페이퍼는, 그중 4건(26.7%)에서 승자가 바뀌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저자가 특기하는 대목이 있다 — 결과가 뒤집힌 네 건이 전부 자금 지원, 보조금, 보안 지출, 연합 자금 조달 같은 자원 배분 결정이었다 (DOI: 10.2139/ssrn.7103878, 워킹페이퍼).
돈이 걸린 안건일수록 표의 분포에 민감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규범적 주장이 아니라 그 표본에서 관측된 성질이다.
⑥ 투표용지 자체가 제도다
표를 어떻게 보여 주느냐가 결과를 바꾼다는 실증이 있다. DAO 거버넌스를 제안-선택지 수준에서 분석한 연구는, 각 선택지가 받은 투표권 비중을 세 가지 관측 가능한 특징과 연결한다 — 그 선택지가 찬성 지향의 입장을 표현하는지, 선택지 목록에서 몇 번째에 놓였는지, 그리고 제안 작성자 본인이 고른 선택지인지.
결과는 이렇다. 작성자가 고른 선택지가 가장 강하고 견고한 연관을 보였고(비작성자 선택지 대비 58.8% 증가), 찬성 지향 선택지가 그다음(27.1%), 목록 첫머리에 놓인 선택지도 체계적으로 더 높은 비중을 받았다(7.7%). 저자들은 이 결과를 인과적 왜곡의 증명이 아니라 체계적 연관을 가리키는 기술적 의미의 '편향'으로 쓴다고 명시하면서,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 순서, 작성자 신호, 표의 가시성은 중립적인 구현 세부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선택으로 다뤄야 한다 (arXiv:2607.09435).
대형 보유자가 언제 표를 던지는지도 관측 대상이다. DeFi DAO들의 거버넌스를 기업지배구조의 실험실로 삼은 워킹페이퍼는 큰 투표자들이 전략적으로 표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이면서, 특히 제안 마감 직전 몇 분에 표를 던지는 행위를 별도의 사건으로 구분해 분석한다 (DOI: 10.2139/ssrn.4706759, 워킹페이퍼). 언제 던지느냐가 무엇을 던지느냐만큼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⑦ DAO가 DAO를 지배할 때
한 층 더 올라가면 메타거버넌스가 있다. DAO가 다른 DAO의 거버넌스 토큰을 보유해서, 그 DAO의 표결에 개입하는 구조다.
이더리움 위에서 DAO 사이의 메타거버넌스를 식별하는 방법을 만든 연구는, 초기 16개 DAO에서 출발해 61개 DAO와 72개의 메타거버넌스 관계로 이뤄진 네트워크를 뽑아냈다. 저자들이 짚는 결과는 구조에 관한 것이다 — 의사결정의 결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실제 투표자 구성이 흐려진다. 그리고 메타거버넌스는 투표의 맥락을 가리고,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거버넌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들을 끌어들인다 (arXiv:2603.00708).
투명성의 성질이 여기서 또 한 번 바뀐다. 모든 표는 온체인에 있다. 그런데 그 표를 던진 주소가 다른 조직이고, 그 조직의 표결이 또 다른 조직에 의해 좌우된다면, "이 표는 누구의 의사인가"라는 질문은 원장 조회로 끝나지 않는다.
⑧ 제안이 말하는 것과 코드가 하는 것
가장 소박하면서 가장 불편한 결과를 마지막에 놓는다.
DAO 거버넌스 과정을 세 요소 — 거버넌스 컨트랙트, 문서, 제안 — 로 나눠 분석한 연구가 있다. 저자들은 9개 블록체인에 걸쳐 DAO 16,427개, 문서 183건, 제안 122,307건이라는 데이터셋을 만들고 자동 탐지 방법을 적용했다. 결과는 이렇다 — 검토된 제안의 60% 이상이 구성원에게 일관된 설명과 코드를 제공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이를 DAO 거버넌스 과정의 투명성 확보에 있어 중대한 간극이라고 적는다 (arXiv:2403.11758).
이 결과가 무엇을 뜻하는지 천천히 보자. 표가 잘 흩어져 있고, 참여가 높고, 정족수가 충분히 크고, 타임락이 넉넉히 걸려 있다고 하자. 그래도 투표자가 자기가 통과시키는 코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면 그 표들의 합은 동의가 아니다. 절차의 정당성은 통과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기대는데, 그 앎이 문서에서 끊긴다.
⑨ 대안 설계가 부딪히는 벽
가장 자주 제안되는 대안은 제곱 투표(quadratic voting)다. 표의 힘을 토큰 수에 비례시키는 대신 제곱근처럼 완만하게 눌러서, 큰 보유자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이 완화 장치가 공격 비용을 실제로 올려 주는가라는 질문에는, 강한 부정이 돌아온다. 2026년의 한 연구는 잔고를 유일한 근거로 삼는 투표 규칙 전체에 대해 불가능성을 증명했다. 같은 사람이 여러 신원을 만들어 여러 몫의 권리를 챙기는 시빌(Sybil) 전략 앞에서는, 함수를 아무리 완만하게 눌러도 그 사람이 확보하는 총 투표권이 보유량을 따라 적어도 비례해서 자란다는 것이다. 즉 누르는 함수를 고르는 일로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arXiv:2605.18990).
제곱 투표를 블록체인 환경에서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연구도 같은 자리를 짚는다. 지분증명 플랫폼에서는 사용자의 지분이 곧 그가 쓸 수 있는 표 예산이 되는데, 저자들은 이 조건에서 표를 여러 라운드에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최적인지를 따지고 시빌 공격의 가능성과 지분을 동시에 걸 때와 순차적으로 걸 때의 차이가 결과를 바꿀 수 있음을 논의한다 (DOI: 10.3390/info13060305).
문제를 더 일반적으로 정식화한 워킹페이퍼도 있다. 신원을 검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시빌 저항의 필요충분조건을 형식화한 뒤, 저자들은 토큰만을 표의 가중치 도구로 쓰는 한 시빌 저항과 과두제 회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제안하는 것은 두 번째 도구를 들이는 것이다 — 시간 구속(time commitment), 즉 표를 던지려면 토큰을 일정 기간 묶어 두게 하는 본드 투표다. 큰 보유자일수록 토큰을 묶어 두는 기회비용이 크다는 점에 기대는 설계다 (DOI: 10.2139/ssrn.4259599, 워킹페이퍼).
세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방향이 보인다. 잔고 하나만 보는 규칙으로는 안 되고, 잔고 바깥에서 무언가를 더 가져와야 한다. 그 무언가가 시간이든, 신원이든, 평판이든 — 전부 코드 바깥에 있는 것들이다.
논쟁·미해결
논점 1 — 집중도를 무엇으로 재는가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측정이다.
한 워킹페이퍼는 보유의 집중과 행사의 집중을 명시적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표권이 넓게 배포돼 있는데도 소수가 실질적으로 그 권력을 행사하는 상태를 저자들은 "그림자 중앙화(shadow-centralization)"라 부른다. 저자들은 보유에서 행사로 넘어가는 이 전이가 커질수록 그 DAO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의 성과가 나빠지는 관계를 보고하면서, 동시에 그 효과가 조건부라는 점을 함께 적는다 — 투표자들이 전체 토큰 보유자 집단보다 더 경험이 많고 연결돼 있을 때는 그 부정적 효과가 완화되고, 숙의가 많이 필요한 제안에서는 더 뚜렷해지며 새로운 유형의 제안에서는 덜 뚜렷했다 (DOI: 10.2139/ssrn.6162109, 워킹페이퍼).
VBE는 아예 다른 축을 제안한다 — 얼마나 흩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이해가 얼마나 비슷하냐 (arXiv:2509.22620). 지표를 바꾸면 같은 조직의 평가가 달라진다.
층위를 나눠 재자는 제안도 있다. 37개 활성 DAO를 참여·의제 형성·집합적 선택·안전장치·집행·유인·메타거버넌스라는 일곱 개 제도 기능으로 코딩한 연구는, 각 기능이 있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강하게 제도화돼 있느냐를 4단계로 잰다. 그 결과는 이렇다 — 거버넌스의 폭이 넓다고 성숙한 것은 아니었고, 집합적 선택과 집행 기제는 비교적 발달한 반면 책임성·안전장치·메타거버넌스는 덜 발달했다 (DOI: 10.3390/info17060577).
지속가능성 KPI 쪽 연구들도 같은 자리를 다른 말로 짚는다. 참여, 누적 자금, 투표 효율, 탈중앙이라는 네 차원에서 점수를 매기는 대시보드가 그것이다 (arXiv:2504.11341; arXiv:2601.14927). 지표를 여러 개 두어야 한다는 합의는 있는데, 어느 지표가 무엇의 대리변수인지에 대한 합의는 아직 없다.
논점 2 — 진짜 논의는 어디서 벌어지는가
온체인 표결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 논의는 대개 포럼과 오프체인 투표 도구에서 벌어진다.
179개 DAO의 제안 26,538건을 훑은 연구는 오프체인 투표 애플리케이션의 채택이 복잡성과 비용을 피하려는 동기에서 늘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동시에 참여에서 높은 집중이 나타난다고 적는다 (DOI: 10.1108/rausp-08-2023-0162).
그런데 그 오프체인 층에도 균열이 관측됐다. 큰 금고를 운영하는 한 DAO의 포럼을 분석한 워킹페이퍼는, 포럼 활동이 표결의 접전 여부를 예측하던 성질이 특정 시점 이후 사라졌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은 이를 사람이 쓴 글과 구별되지 않는 언어모델 산출물의 등장과 연결하고, 내생적 게시·읽기·투표 모형을 세워 포럼의 신호 가치가 어떤 임계점에서 불연속적으로 무너진다는 것과 그 붕괴가 되돌아오지 않는다(hysteretic)는 것을 보인다 — 나중에 AI 게시물을 줄여도 포럼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기 결과가 AI에 기대는 대의자들이 오히려 훨씬 적은 투표권을 쥐고 있어 내부자에 의한 권력 장악 가설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적는다 (DOI: 10.2139/ssrn.7284923, 워킹페이퍼).
이 결과는 워킹페이퍼 한 편에 기대고 있고 특정 조직 하나의 표본이므로, 구체적 수치보다는 숙의의 층이 표결의 층과 독립적으로 고장 날 수 있다는 구조적 함의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논점 3 — 개입은 어디까지 닿는가
감사와 모니터링의 한계는 이 문헌이 스스로 가장 자주 인정하는 대목이다.
앞서 인용한 SoK가 지적한 비대칭 — 공격은 인간적 층을 노리는데 감사는 코드 층을 본다 — 이 그 출발점이다 (arXiv:2406.15071). 자동화 쪽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 컨트랙트들의 경제적 보안을 형식적으로 따지는 프레임워크는, 명시적으로 공격 전략을 프로그래밍해 넣지 않고도 모델링된 컨트랙트들에 걸친 경제적 공격을 기계적으로 남김없이 추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 거래 활동에서 유의미한 규모의 추출 가능 가치를 찾아낸다. 저자들이 모델에 포함시킨 요소 중에는 플래시론과 투표도 있다 (arXiv:2109.04347).
강력한 도구다. 그런데 이 도구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모델링된 컨트랙트들의 조합 안에서 무엇이 가능한가이다. 표를 쥔 사람이 왜 그렇게 던지는지는 그 안에 없다. 그리고 그 바깥을 원장으로 감사하려는 시도에는 앞서 본 벽이 있다 — 개인 수준의 포획은 공개 원장만으로 구조적으로 감사 불가능 (DOI: 10.2139/ssrn.6874201, 워킹페이퍼).
논점 4 — 대안 설계가 실제로 배포되면 어떻게 되는가
설계 제안은 많다. 배포된 뒤의 성적은 이제 막 관측되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수렴이다. 세 개의 큰 DAO를 질적 비교사례 연구로 분석한 논문은, 세 조직이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3체 구조 — 법적 재단, 보안 위원회, 토큰 보유자 거버넌스 — 로 수렴했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비슷한 기술적·법적 환경에서 비슷한 거버넌스 문제를 만나면 비슷한 구조적 해법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구조가 비슷해도 실제 운영 방식은 규모와 형식화 수준, 공동체 맥락에 따라 크게 달랐다 (DOI: 10.3389/fbloc.2026.1890169).
'법적 재단'과 '보안 위원회'라는 말에 잠깐 멈추자. 코드 바깥의 제도를 다시 들여오는 방향이다. 그리고 이 방향은 다른 연구가 지적하는 문제와 맞물린다. 40개 DAO를 13개 제도 항목으로 평가한 워킹페이퍼는 가시성의 역설을 보고한다 — 토큰 발행이나 금고 잔고처럼 눈에 보이는 산출물을 내는 항목은 점수가 높고, 법적 껍데기나 분쟁 해결 절차처럼 눈에 안 보이는 제도 기반은 점수가 낮다는 것이다. 저자는 눈에 안 보이는 제도 기반이 장기 회복력을 더 잘 예측하는데도 체계적으로 과소 공급된다고 적는다 (DOI: 10.2139/ssrn.6819121, 워킹페이퍼).
실무 지향의 정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실제 DAO들의 증거를 근거로 한 워킹페이퍼는 성공적인 거버넌스가 최대한의 탈중앙이 아니라 사려 깊은 설계에 달려 있으며, 포용적 참여·잘 조율된 제약·보안 기제가 집합적 의사결정을 훼손하기는커녕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OI: 10.2139/ssrn.6065407, 워킹페이퍼).
반례도 있어야 정직하다. 다른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프레임워크에서 20개월간 제안 3,000건 이상을 분석한 연구는, 다른 프레임워크에서 시간이 갈수록 참여가 떨어진다고 보고한 연구들과 달리 이쪽에서는 참여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었다고 보고한다. 저자들은 그 프레임워크의 거버넌스 기제와 절차가 더 높은 활동, 더 낮은 비용, 더 빠른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적는다 (arXiv:2507.20234). 참여 하락이 DAO의 필연이 아니라 설계의 함수일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장 급진적인 방향은 투표를 아예 빼는 것이다. 한 워킹페이퍼는 재량적 거버넌스나 집합 투표 대신 형식적으로 제약된 규칙으로 조율과 가치 배분을 정하는 경제 구조를 검토하면서, 투표 기반 거버넌스가 참여 비대칭·거버넌스 포획·강압·장기적 불안정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보인다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든다 (DOI: 10.2139/ssrn.6277238, 워킹페이퍼).
투표를 없애면 매표도 없다. 대신 규칙을 바꿀 방법 자체가 없어진다. 이 교환이 좋은 거래인지는 그 조직이 앞으로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달려 있고, 그건 미리 알 수 없다.
논점 5 — 문제가 설계에 있는가, 사람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문헌 안에는 진단 자체를 다시 묻는 목소리가 있다.
한 워킹페이퍼는 DAO 거버넌스의 실패가 잘못된 기제나 부족한 유인 때문이라는 통상의 설명을 거부한다. 저자의 주장은 더 근본적이다 — 실패는 거버넌스 장치에 인코딩된 참여자 모형과 실제 인간의 인지적·사회적 구조 사이의 체계적 불일치에서 예측 가능하게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섯 개 프로토콜의 2차 증거로 다섯 가지 실패 차원을 정리하고, 그 모두에서 형식적 탈중앙이 기능적 재중앙화를 낳는다고 적는다. 지속적 참여에 쓸 인지적·재정적 자원을 가진 쪽으로 권력이 모인다는 것이다 (DOI: 10.2139/ssrn.6797979, 워킹페이퍼).
조직론 쪽에서 DAO를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보는 워킹페이퍼도 비슷한 자리에 도착한다 — 거버넌스 집중, 어긋난 유인, 낮은 참여율이 DAO의 실패율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DOI: 10.2139/ssrn.6455658, 워킹페이퍼).
이 두 편은 모두 워킹페이퍼이고 2차 증거에 기대는 서술적 분석이라 인과를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져갈 것은 진단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이다 — 기제를 고치면 되는 문제인가, 아니면 기제가 상정한 사람이 없는 것인가.
의의: 확인 가능한 것과 확인 불가능한 것
이 글이 지나온 자리를 되짚어 보자.
확인 가능한 것들이 있다. 누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어떤 주소가 어떤 제안에 어떻게 표를 던졌는지, 언제 던졌는지, 금고에서 얼마가 어디로 나갔는지. 이것들은 원장에 있고, 누구나, 언제든, 남의 말을 믿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작은 성취가 아니다. 기존 조직에서 이 정도로 세밀한 표결 기록을 외부인이 통째로 받아 분석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 글이 인용한 대부분의 실증 연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확인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 표가 누구의 의사인지 (arXiv:2603.00708). 그 표에 대가가 있었는지 (arXiv:2311.03530). 그 표를 던진 사람이 자기가 통과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는지 (arXiv:2403.11758). 그리고 개인 수준에서 거버넌스가 포획됐는지 — 이것은 원장 데이터만으로는 구조적으로 감사할 수 없다 (DOI: 10.2139/ssrn.6874201, 워킹페이퍼).
이 두 목록의 경계가 이 글의 결론이다. 확인 가능한 것은 표의 분포이고, 확인 불가능한 것은 그 표 뒤의 합의다.
그러니 "코드가 법"이라는 문장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 문장이 참으로 말하는 것은 규칙이 코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규칙을 바꿀 권한이 코드 바깥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규칙을 바꾸는 절차는 코드에 적혀 있지만, 그 절차를 움직이는 표는 시장에서 옮겨 다니고 (arXiv:2308.04267), 담보 없이 잠시 빌려질 수 있으며 (arXiv:2002.08099), 위임이라는 이름으로 넘겨지고 (arXiv:2604.25959), 다른 조직의 손에 들려 있을 수 있다 (arXiv:2603.00708). 그중 어느 것도 코드의 버그가 아니다. 전부 설계된 대로 작동하는 기능이다.
그래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 조직은 탈중앙인가"가 아니다. 무엇이 무엇을 보장하는가다.
정족수는 아무도 안 볼 때 조용히 통과되는 것을 막는다. 다수 자체는 막지 못한다 (DOI: 10.1177/02683962251343627). 타임락은 즉시 집행을 막는다. 그 시간에 아무도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arXiv:2607.16548). 위임은 참여의 부담을 던다. 대신 새로운 집중을 만들고, 이해가 어긋난 위임자를 일관되게 처벌하기는 어렵다 (arXiv:2604.25959; DOI: 10.2139/ssrn.4533512, 워킹페이퍼). 제곱 투표는 큰 보유자의 표를 누른다. 다만 잔고에서만 권력을 끌어내는 한 지갑을 쪼개는 쪽을 이기지 못한다 (arXiv:2605.18990). 형식 검증은 모델링된 컨트랙트 조합 안의 경제적 공격을 남김없이 찾아낸다. 그 바깥은 찾지 못한다 (arXiv:2109.04347).
각각은 무언가를 정확히 보장한다. 다만 그 목록을 다 더해도 "이 결정은 이 공동체의 뜻이다"는 나오지 않는다. 그 문장은 원장이 증명할 수 있는 종류의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암호학과 블록체인이 하는 일은 합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의라고 주장되는 것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를 확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지우지 않고 계속 재는 일 — 표의 분포를 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표가 무엇에서 왔는지를 묻는 일 — 이 지금 이 문헌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규칙이 코드에 있다는 말은, 규칙을 바꿀 권한이 코드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근거 논문
- "SoK: Attacks on DAOs" (2024) — arXiv:2406.15071 — 과거·이론상·감사에서 막힌 공격을 네 벡터로 분류, 공격은 인간적 층을 노리는데 감사는 코드 층에 집중한다는 비대칭.
- "The Vulnerable Nature of Decentralized Governance in DeFi" (2023) — arXiv:2308.04267 — 낮은 투표 이용, 가스비와 음의 상관, 높은 중앙집중, 토큰이 한 번 쓰이고 팔리는 흐름, 타 플랫폼 거버넌스의 전용.
- "DAO Decentralization: Voting-Bloc Entropy, Bribery, and Dark DAOs" (2023) — arXiv:2311.03530 — 이해 유사성으로 탈중앙을 재는 VBE, 위임·제안 묶기·매표·제곱투표의 효과, 탈중앙 증가에 따른 조직적 매표 위험, TEE 기반 다크 DAO 프로토타입.
- "Voting-Bloc Entropy: A New Metric for DAO Decentralization" (2025) — arXiv:2509.22620 — VBE의 확장판, 강화학습 기반 투표 개념모형과 실측·거버넌스 실험.
- "Perils of current DAO governance" (2024) — arXiv:2406.08605 — 매표·표 판매·강압의 용이함, 투표 비밀의 부재, 검증가능성과 프라이버시의 상충.
- "The Decentralized Financial Crisis" (2020) — arXiv:2002.08099 — 대출 프로토콜 거버넌스 장악의 실현 가능성과 플래시론 전략, 책임 공개 약 2주 뒤 파라미터 수정, 유동성 고갈 스트레스 테스트.
- "Balancing Security and Liquidity: A Time-Weighted Snapshot Framework for DAO Governance Voting" (2025) — arXiv:2505.00888 — 플래시론에 의한 표 조작과 금고 인출 제안, 기존 방어의 접근성 약점, 시간가중 스냅샷 제안.
- "Short Squeeze in DeFi Lending Market: Decentralization in Jeopardy?" (2023) — arXiv:2302.04068 — 빌릴 수 있는 물량과 대출 설계가 만든 조건, 대형 대출 프로토콜의 범위-탈중앙 딜레마.
- "Empty Voting and the Efficiency of Corporate Governance" (2008) — DOI: 10.2139/ssrn.1108632 (워킹페이퍼) — 의결권과 경제적 노출의 분리 모형, 분리 비용이 낮을수록 효율이 나빠지는 조건.
- "Economic DAO Governance: A Contestable Control Approach" (2024) — arXiv:2403.16980 — 순차 경매로 한시적 경합 통제를 만드는 설계, empty voting에 대한 견고성.
- "On the Centralization of Governance Power in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2026) — — 이더리움 48개 DAO, 토큰 등록·스테이킹·위임이 체계적으로 투표권 집중을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