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eris 아티클
인도유럽어의 고향은 어디였나 — 유전자가 답한 것과 답하지 않은 것
2012년 언어 나무가 가리킨 아나톨리아, 2015년 고대 게놈이 보인 초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직 갈리는 것을 구분해서 본다.

Paperis 아티클
2012년 언어 나무가 가리킨 아나톨리아, 2015년 고대 게놈이 보인 초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직 갈리는 것을 구분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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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근거로 삼은 논문 중 ‘거인의 어깨’에 오른 초석 연구예요. 개념을 익혔다면 원전으로 가보세요.
유럽인의 유전자 구성이 스텝 지대에서 온 대규모 이주로 크게 바뀌었음을 고대 DNA로 보였습니다.
이 분야의 거인의 어깨 →청동기 유라시아의 사람 이동을 고대 유전체 규모로 재구성해 이주 논쟁의 기준선이 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거인의 어깨 →2012년 한 연구팀이 고대어와 현대어를 합쳐 103개 언어의 기초 낱말을 모았다. 그리고 어느 낱말끼리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지를 세어 언어 나무를 그린 다음, 그 나무가 지도 위 어디에서 시작했을지를 확률로 계산했다. 결론 문장은 짧고 셌다. 아나톨리아 기원이 초원 기원보다 "결정적으로 지지된다"는 것이었다 (DOI: 10.1126/science.1219669).
여기 계속 나올 말부터 풀어 둔다. 인도유럽어족은 영어와 러시아어와 힌디어와 페르시아어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언어들이 사실은 한 조상 언어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 밝혀져 하나로 묶인 언어 무리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들이 여기 들어 있는데, 정작 그 조상이 어디서 쓰였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3년 뒤, 전혀 다른 종류의 증거가 도착했다. 유럽 여러 곳의 무덤에서 나온 뼈 69구에서 유전체를 읽은 논문이었다. 제목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초원에서 온 대규모 이주가 유럽 인도유럽어의 한 원천이었다" (PMID 25731166).
그 뒤로 10년이 지났다. 표본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었고, 출발점으로 지목된 지역은 계속 좁혀졌다. 이 글은 그 10년을 검사한다. 무엇이 확정됐고, 무엇이 여전히 갈리는지.
들어가기 전에 두 가지를 못 박아 둔다.
첫째, 이 글에 나오는 유전학 논문 가운데 언어를 측정한 논문은 하나도 없다. 옛사람의 유전체가 알려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조상이 어느 집단들에서 얼마씩 왔는지, 그 조상들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뼈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논문이 잰 것과 논문이 제안한 것을 문장마다 갈라 쓴다. 저자들이 "지지한다", "양립한다", "제안한다"라고 쓴 자리에서 우리도 그 말을 쓴다.
둘째, 이 질문은 오용된 역사가 있다. 산스크리트와 유럽 고전어가 닮았다는 발견에서 시작된 이 탐색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가장 많은 지력이 투입된 지적 기획 중 하나였는데, 그 두 세기를 통틀어 검토한 연구서는 이렇게 적었다 — 논쟁의 양쪽 모두가 정치적·인종적·종교적·민족주의적 의제에 이끌려 왔다 (DOI: 10.1093/0195137779.001.0001). 그래서 이 글은 "어느 민족이 조상인가"를 다루지 않는다. 사람의 이동과 말의 확산은 서로 다른 사건이고, 아래에서 그 둘이 실제로 어긋난 자리를 세 번 보게 된다.
산스크리트를 읽게 된 유럽 학자들이 그 낱말들이 라틴어·그리스어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 언어들이 갈라져 나온 하나의 옛 언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가정했다 (DOI: 10.1093/0195137779.001.0001). 이 무리가 발견된 경위가 대조였다는 뜻이다.
그 옛 언어를 부르는 이름이 조어(祖語)다. 조어는 여러 언어의 공통 조상이 되는 언어를 가리키는데, 아무도 적어 놓지 않아서 후손 언어들을 서로 견주어 거꾸로 복원해 낸 것이다. 발굴된 문서가 아니라 여러 증언을 대조해 그려 낸 몽타주에 가까워서, 단어 하나하나에 별표를 붙여 '복원된 형태'라고 표시한다.
몽타주는 얼굴을 알려 주지만 주소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말은 어디서 쓰였나"가 남았다.
후보는 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도가 모든 인도유럽어 사용자의 원래 고향으로 여겨졌고, 곧 서구 학자들이 인도의 베다 문화 자체가 밖에서 들어온 이주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DOI: 10.1093/0195137779.001.0001). 근동을 고향으로 놓는 가설도 있었다 (DOI: 10.14795/j.v9i3.754). 20세기 후반에 무대 중앙에 남은 것은 두 후보였다 —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 초원, 그리고 아나톨리아.
두 후보는 시점부터 달랐다. 초원 쪽 통설은 고향을 폰토스 초원에 놓고 시점을 약 6,000년 전으로 잡았다. 아나톨리아 쪽 가설은 언어가 농경의 확산과 함께 8,000년에서 9,500년 전 사이에 퍼졌다고 봤다 (DOI: 10.1126/science.1219669). 3,000년 넘게 벌어진 두 답이 나란히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는 뜻이다.
2012년의 그 논문이 쓴 방법이 계통연대 추정이다. 계통연대 추정은 여러 언어에서 같은 뜻의 기초 낱말들을 모아 어느 낱말끼리 같은 뿌리인지 세고, 그 셈으로 언어 나무를 그린 다음 갈라진 시점을 확률로 매기는 방법이다. 생물학에서 유전자를 견주어 종의 갈래와 갈라진 때를 추정하던 계산을 낱말에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여기에 지리 정보를 얹으면 나무가 어디서 시작했는지까지 추정할 수 있다. 저자들은 103개 언어에 이 방법을 적용해 두 가설을 명시적으로 검정했고, 추정된 시점과 뿌리 위치가 둘 다 8,000년에서 9,500년 전 아나톨리아에서 시작된 농경 확산과 맞는다고 보고했다 (DOI: 10.1126/science.1219669).
반박은 바로 나왔다. 이듬해 한 고고학자가 그 나무의 뿌리 위치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폰토스·카스피해 초원 고향을 기원전 4500년에서 2500년 사이로 놓는 쪽을 옹호했다 (DOI: 10.31826/jlr-2013-090105).
그가 든 근거는 낱말이 아니라 흙이었다. 이 초원에서 이웃 지역으로 나간 이주가 고고학 기록에 세 차례 보인다는 것이다. 기원전 4400~4200년, 기원전 3300~2800년, 기원전 3000~2800년. 그리고 이 세 차례의 순서와 방향이 언어학자들이 낱말로 그린 나무의 첫 세 갈래 순서와 나란히 간다고 주장했다 (DOI: 10.31826/jlr-2013-090105).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결론이 아니라 단서다. 저자는 자기가 서술한 이주들이 "언어에 관한 어떤 가설과도 연결되지 않은, 순전히 고고학적인 증거로 시사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DOI: 10.31826/jlr-2013-090105). 언어 나무를 보고 그 자리에 이주를 끼워 넣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논쟁은 교착 상태였다. 한쪽은 낱말을, 다른 쪽은 무덤과 토기를 들고 있었고, 두 종류의 증거는 서로를 판정할 수 없었다. 판정할 수 있는 세 번째 증거가 필요했다.
고대 DNA는 수천 년 된 뼈와 이에 조각조각 남아 있는 유전물질을 뽑아내 읽은 것이다. 온전한 책이 아니라 물에 젖어 흩어진 낱장 더미를 주워 맞추는 일이라, 한 사람에게서 몇 퍼센트를 건지느냐가 늘 먼저 나오는 숫자다.
2015년의 돌파는 발견이기 전에 기술이었다. 연구팀은 8,000년에서 3,000년 전 사이 유럽인 69명의 뼈에서 유전체를 읽었는데, 전체를 다 읽는 대신 미리 정한 약 40만 개의 자리만 낚아 올리는 방식을 썼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을 읽는 데 필요한 시퀀싱 양이 중앙값 기준 약 250배 줄어든다 (PMID 25731166). 같은 예산으로 열 배 많은 사람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고, 이것이 이 분야를 바꿨다.
결과는 이랬다. 약 4,500년 전 유럽의 서쪽과 동쪽이 만났다. 독일에서 나온 후기 신석기의 한 집단이 조상의 약 75%를 초원의 목축민 집단에 추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분은 표본으로 잡힌 모든 중앙유럽인에게서 적어도 약 3,000년 전까지 이어졌고, 오늘날 유럽인에게 보편적으로 남아 있다 (PMID 25731166).
여기서 두 용어가 붙는다.
초원 조상 성분은 어떤 옛사람의 유전체를 몇 갈래 조상 집단이 섞인 것으로 나눠 볼 때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 초원 사람들 쪽에서 온 몫을 가리킨다. 혈통의 이름표가 아니라 계산 결과의 비율이어서, 같은 사람도 어떤 조상 집단들을 후보로 놓느냐에 따라 몫이 달라진다.
그 몫의 출처로 지목된 집단이 얌나야다. 얌나야는 약 5,300년 전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 초원 전역에 나타난 무덤 양식과 부장품의 묶음에 붙은 이름이다. 봉분을 쌓고 그 아래 구덩이에 사람을 눕힌 무덤이 헝가리에서 카자흐스탄까지 같은 꼴로 나오는데, 이 이름은 그 꼴을 가리키지 어떤 민족을 가리키지 않는다.
같은 해 다른 팀이 유라시아 전역에서 101명의 유전체를 낮은 정밀도로 읽었다. 청동기가 대규모 인구 이동과 교체의 시기였다는 것이 여기서도 나왔다 (PMID 26062507).
첫 번째 논문은 이렇게 끝난다 — "이 결과들은 유럽 인도유럽어 가운데 적어도 일부의 초원 기원에 대한 지지를 제공한다" (PMID 25731166). 제목의 표현도 "그 원천"이 아니라 "한 원천"이다.
두 번째 논문은 이렇게 적었다 — "우리 발견은 초기 청동기에 인도유럽어가 퍼졌다는 가설과 양립한다" (PMID 26062507).
지지한다, 적어도 일부, 한 원천, 양립한다. 확정을 뜻하는 낱말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저자들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측정 대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두 논문이 잰 것은 뼈에서 나온 유전체의 조상 성분 비율이고, 그 사람들의 발화는 표본에 들어 있지 않다.
이 구분을 놓치면 나머지 절이 전부 오독된다. 아래에서 보게 될 숫자들은 사람의 이동에 관한 숫자다.
사람이 움직였다는 것 자체는 그 뒤 여러 지역의 표본이 각각 확인했다. 다만 확인된 그림은 균일하지 않았고,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 절의 요점이다.
영국. 신석기·동기·청동기 유럽인 400명의 유전체를 읽은 연구가 있다. 그중 226명은 종 모양 잔이라 불리는 특유의 토기와 함께 묻힌 사람들이었다. 영국에서는 이 토기의 확산과 함께 수백 년 안에 유전자풀의 약 90%가 교체됐다 (PMID 29466337).
같은 논문에 반대 방향의 결과도 있다. 이베리아의 같은 토기 사용자들과 중앙유럽의 같은 토기 사용자들 사이에는 유전적 친연성이 제한적이었고, 저자들은 두 지역 사이의 중요한 확산 기전으로서의 이주를 배제했다 (PMID 29466337). 같은 토기가 한 구간에서는 사람과 함께 갔고 다른 구간에서는 사람 없이 갔다는 뜻이다.
이베리아반도. 고대인 271명의 유전체를 시간순으로 늘어놓은 연구는 기원전 2000년경 이 반도 조상 성분의 40%와 Y염색체의 거의 100%가 초원 조상 성분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었다고 보고했다 (PMID 30872528). Y염색체는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내려가는 염색체라, 이 두 숫자의 간격은 이주가 성별로 크게 치우쳤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같은 논문에 이 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이 들어 있다. 철기시대에 이르러 초원 조상 성분은 인도유럽어를 쓰는 지역만이 아니라 인도유럽어를 쓰지 않는 지역으로도 퍼져 있었다 (PMID 30872528). 저자들은 덧붙여 오늘날 바스크인이 그 뒤의 혼합을 겪지 않은 전형적인 철기시대 집단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고 적었다.
바스크어는 인도유럽어가 아니다. 초원 조상 성분을 가진 사람들이 인도유럽어를 쓰지 않는 곳에도 살았다면, 그 성분은 언어의 신분증이 될 수 없다.
아일랜드. 래슬린섬에서 나온 청동기 3명(보정 연대 기원전 2026~1534년)에게서 상당한 초원 유전 유산이 확인됐다. 저자들의 문장은 이렇다 — 이 교체는 인도유럽어, 어쩌면 초기 켈트어의 도입이 함께였을 가능성을 불러온다 (PMID 26712024). 같은 논문은 그보다 앞선 신석기 여성(보정 연대 기원전 3343~3020년)의 유전체가 주로 근동 기원이었다고도 보고했다.
네덜란드. 그리고 예외가 있다. 네덜란드·벨기에·독일 서부의 습지와 강가와 해안에서 기원전 8500년부터 1700년까지 살았던 112명의 유전체를 읽은 연구다.
이 지역에서는 수렵채집민 조상 성분이 약 50%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보다 3,000년 더 오래 유지됐다. 그리고 서부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일이 특히 이상하다. 새끼줄무늬 토기 — 무른 흙에 노끈을 눌러 무늬를 낸 토기로, 유럽 중북부에 초원 조상 성분이 퍼진 시기의 표지로 쓰인다 — 를 받아들인 저지대 사람들에게 초원 조상 성분이 거의 없었다. 그 문화 특유의 Y염색체는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PMID 41673154).
저자들의 해석은 이 지역의 생태였다. 강이 지배하는 저지대 풍경은 당시 유럽에 들어온 초기 농경 방식을 통째로 받아들이기에 맞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은 건너오되 사람은 거의 건너오지 않는 경계가 오래 유지됐다는 것이다 (PMID 41673154).
같은 논문의 마지막 부분이 앞의 영국 이야기와 이어진다. 이 경계는 현지인 13~18%와 양쪽 성별의 이주민이 융합해 새 집단이 만들어지면서 깨졌고, 그 집단의 확장이 영국에서 관측된 90~100% 교체의 주된 원천이었다 (PMID 41673154).
그 밖의 유럽. 같은 신호가 여러 나라의 작은 표본에서 따로따로 나왔다. 덴마크 예르릴의 석관에서 나온 다섯 사람(보정 연대 기원전 2600/2500~2200년)에게서 얌나야에서 유래한 조상 성분이 확인됐고, 저자들은 이 표본이 그 문화 집단을 넓게 대표한다고 볼 경우 앞선 신석기 문화와 뒤이은 문화 사이에 인구의 연속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PMID 33444387, 유전체 1명분과 부분 유전체 2명분의 소표본).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인골 11구(보정 연대 기원전 3330~1665년)를 읽은 연구가 이 집단의 초원 조상 성분은 스칸디나비아로의 이주로만 설명된다고 결론지었다 (PMID 31594508).
프랑스에서는 기원전 3400년경부터 1600년경까지의 유전체 24개를 읽어, 초원 관련 조상 성분의 도착 시점을 이르면 기원전 2650년경으로 추정했다. 같은 논문은 이 시기 프랑스 후기 신석기 집단이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했고 어떤 개인에게는 수렵채집민 조상 성분이 약 63%까지 남아 있었다고 보고했다 (PMID 33434506). 폴란드 남동부에서 유전체 19개와 스트론튬 동위원소를 함께 읽은 연구는 다른 결을 더한다 — 어머니 쪽 계통은 앞선 신석기 집단에 이어지는데 아버지 쪽에서만 초원 조상 성분이 뚜렷했다 (PMID 32303690).
속도. 고대 유전체와 지리통계를 결합해 이동을 지도 위 시간축으로 그린 연구는, 얌나야의 이동 속도가 그보다 앞선 아나톨리아 농경민의 확산보다 최소 두 배 빨랐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그 이동이 활엽수림 감소·목초지 증가와 시기적으로 겹쳤다고 보고했다 (PMID 32238559).
성별. X염색체와 나머지 염색체를 견준 연구는 초기 신석기 인골 20명과 후기 신석기·청동기 인골 16명을 비교해, 앞선 농경 확산에서는 성별 치우침의 증거를 찾지 못했고 뒤의 초원 이주에서는 이주 여성 한 명당 남성 약 5~14명이라는 값을 추정했다. 같은 논문은 이 치우침의 정도가 단일 세대의 한 번짜리 이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PMID 28223527, 인골 36구의 단일 연구). 저자들은 이 대비를 "잠재적으로 새 기술 및 정복과 연결"될 수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 표현이 저자들의 해석이라는 점은 그대로 두고 읽어야 한다.
성별 치우침 자체는 다른 연구도 관측했다. 다만 그 연구는 치우침이 새끼줄무늬 토기 집단에서 두드러지고 종 모양 잔 집단에서는 덜하다고 나눠 보고했고, 영향이 주로 중앙·동유럽에 미쳤다고 적었다 (PMID 34459341).
2015년에 지목된 출발점은 "흑해 북쪽 초원" 정도로 넓었다. 그 뒤 10년 동안 좁혀진 것이 이 절이다.
2025년 발표된 연구는 얌나야보다 앞선 시기의 고대인 435명의 유전체를 모았다. 목표는 하나였다 — 얌나야 사람들이 어느 집단에서 왔는지를 지도 위에서 짚는 것.
결과는 세 개의 띠였다. 조상 성분 비율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띠를 세 갈래 찾았는데, 그중 하나가 남쪽 카프카스 지역과 북쪽 볼가강 하류를 잇고 있었다. 이 띠 위의 사람들이 서쪽으로 옮겨 가 현지 수렵채집민과 섞이면서, 기원전 4000년경 얌나야의 직계 조상이 되는 집단이 만들어졌다. 이 집단은 기원전 3750~3350년 이후 빠르게 불어났다 (DOI: 10.1038/s41586-024-08531-5).
숫자로 말하면, 카프카스와 볼가강 하류를 잇는 이 띠의 사람들이 얌나야 조상의 약 5분의 4를 기여했다 (DOI: 10.1038/s41586-024-08531-5).
그 띠의 남쪽 끝, 즉 카프카스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채워졌다. 북카프카스에서 3,000년 구간에 걸쳐 고대인 45명을 읽은 연구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카프카스 집단과 인접 초원 집단이 유전적으로 갈려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얌나야와 그 뒤 목축 문화 집단에게서 이전에 검출되지 않았던 농경민 관련 조상 성분을 찾아냈다 (PMID 30713341). 더 큰 표본도 나왔다. 유적 38곳에서 6,000년에 걸친 131명을 읽은 연구는 서유라시아 초원 조상 성분이라 불리는 조합이 구리를 쓰기 시작한 시기에 형성됐고, 그 시기 산악 지대와 초원 사이의 왕래가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PMID 39478221).
다른 표본에서도 같은 그림이 나왔다. 북폰토스 지역 선사시대 인골 81명을 읽은 연구는 이 지역에 세 차례의 이주 파도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세 번째가 얌나야인데, 기원전 4000년경 섞임으로 형성되어 기원전 3300년경 확장했다. 그리고 두 시점 사이의 공백을 우크라이나 미하일리우카에서 나온 한 사람이 잇는다 — 보정 연대 기원전 3635~3383년, 유전적으로는 이미 얌나야인 개인이다 (DOI: 10.1038/s41586-024-08372-2).
다만 이 두 연구를 서로 독립된 검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둘은 같은 날 공개본이 올라와 같은 학술지에 나란히 실린 자매 연구다 (DOI: 10.1101/2024.04.17.589597 · DOI: 10.1101/2024.04.17.589600). 표본은 다르지만 분석 계열은 한 줄기다.
서유라시아 전역을 다시 훑은 연구도 있다. 주로 중석기·신석기의 유전체 317개를 새로 읽고 기존 자료와 합쳐 고대인 1,600명 이상의 유전형을 얻은 이 연구는, 흑해에서 발트해까지 이어지는 '큰 분할'이라 부를 유전적 경계를 찾았다. 이 경계는 약 5,000년 전 얌나야 관련 조상 성분이 서유라시아로 퍼지면서 녹았고, 그 두 번째 대전환은 1,000년 안에 유럽 대부분에 도달했다 (PMID 38200295).
남쪽 끝과 동쪽 끝도 채워졌다. 남유럽에서는 고대인 314명의 유전체와 그중 224명의 스트론튬 동위원소를 함께 읽어, 청동기 남유럽에 초원 조상 성분의 동서 분리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로 들어간 성분은 서유럽의 종 모양 잔 집단을 거쳤고, 아르메니아와 그리스는 동유럽 얌나야 집단에서 직접 받았다는 것이다 (PMID 39677618). 저자들은 여기서 언어까지 말했다 — 이 결과가 고전기 지중해 인도유럽어 대부분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언어학 가설, 곧 이탈릭·켈트 가설 및 그리스·아르메니아 가설과 양립한다고 적었고, 서유럽 경로가 이탈릭어와 켈트어의 발생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기 발견이 특정 언어 분기 모형과는 맞고 다른 모형과는 어긋난다고 썼다 (PMID 39677618). 동쪽으로는 약 2,200년 전 톈산 지역 철기시대 인골 10명의 서유라시아 조상 성분이 20~80% 얌나야형으로 가장 잘 설명됐고, 저자들은 이것이 지금은 사라진 토하라어의 기원과 관련될 가능성을 지지한다고 적었다 (PMID 31353181).
여기까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흑해 북쪽 초원에서 유래한 조상 성분이 기원전 4천년기 말부터 사방으로 퍼졌고 그 흔적이 아일랜드에서 톈산까지 남았다는 것 — 이 부분은 여러 지역의 서로 다른 표본이 각각 확인했다. 반면 그 성분의 출발점을 카프카스·볼가하류까지 좁힌 것은 한 줄기의 자매 연구 두 편이고, 그만큼 뒤집힐 여지가 더 크다.
합의되지 않은 것은 그다음이다.
아나톨리아어파는 히타이트어를 비롯해 오늘날 튀르키예 땅에서 쓰이다 모두 사라진 인도유럽어 갈래다. 청동기 아나톨리아에서 인도유럽어가 문헌으로 확인되고 (PMID 29743352), 이 갈래가 조어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 이 분야의 유력한 견해다 (DOI: 10.5281/zenodo.21810919). 정작 다른 인도유럽어들이 함께 가진 특징 몇 가지가 이 갈래에는 없다.
초원 가설이 옳다면 이 갈래도 어떻게든 초원에서 아나톨리아로 갔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내륙아시아와 아나톨리아에서 고대 유전체 74개를 읽은 연구가 이렇게 적었다 — 인도유럽어가 문헌으로 확인되는 시기의 청동기 아나톨리아에서 초원 조상 성분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PMID 29743352).
같은 논문은 남아시아로 들어온 서유라시아 조상 성분이 얌나야 시기의 전과 후에는 있었지만 그 시기에는 없었다고도 보고했고,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얌나야 관련 이주의 직접적 유전 영향이 제한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PMID 29743352).
2022년에는 더 큰 표본이 나왔다. 아나톨리아와 그 이웃 지역에서 1만 년에 걸친 고대인 727명을 읽은 연구다. 결론은 아나톨리아가 서아시아 내부의 유전자 흐름으로 바뀌었고 후대 얌나야 이주의 영향은 무시할 만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것이 인도유럽어가 쓰인 다른 모든 지역과 대조된다면서, 아나톨리아어파를 포함한 더 큰 어족의 고향이 서아시아에 있었고 초원에서 나간 확산은 이차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적었다 (PMID 36007055).
그리고 2025년, 앞 절에서 본 435명 연구가 다른 위치를 제안했다. 카프카스와 볼가강 하류를 잇는 띠의 사람들이 아마 동쪽에서 아나톨리아로 들어가 히타이트어를 쓰던 청동기 중앙 아나톨리아인 조상의 최소 10분의 1을 기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들의 동사가 중요하다 — 아나톨리아어파와 나머지 인도유럽어 전체의 공통 조어를 쓰던 사람들의 마지막 통일이 기원전 4400~4000년 사이 이 띠의 사람들에게 있었다고 제안한다(propose)고 썼다 (DOI: 10.1038/s41586-024-08531-5).
이 두 논문의 관계를 정확히 적어 둘 필요가 있다. 2018년과 2022년 연구가 아나톨리아에서 못 찾았다고 한 것은 얌나야의 성분이고, 2025년 연구가 찾았다고 한 것은 얌나야보다 앞선 집단의 성분이다. 재는 대상이 다르므로 두 결과 자체는 부딪히지 않는다. 부딪히는 것은 제안된 고향의 위치다 — 같은 자료 계열 위에서 그 위치가 서아시아에서 카프카스·볼가하류로 옮겨 갔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것이 있다. 2025년 논문의 초록에는 "제안한다"라고 쓴 문장 말고, 초원 목축민의 폭발적 확장이 "조상 인도유럽어를 말하던 흑해 북쪽의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됐다"고 단정하듯 요약한 문장도 함께 실려 있다 (DOI: 10.1038/s41586-024-08531-5). 같은 초록 안에서 조동사가 달라진다. 이런 자리가 인용될 때 확신이 한 단계씩 올라가는 지점이다.
언어학 쪽에서도 아나톨리아어파는 계속 문제다. 핵심 인도유럽어들이 공유하는 동사 만들기 방식 하나가 이 갈래에는 극히 드물고, 그와 똑같은 꼴로 만드는 서법 하나는 아예 없다. 2026년의 한 연구는 그동안 후보로 거론돼 온 히타이트어 동사들을 하나씩 다시 검토한 끝에, 안전하게 그 부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갈래가 인도유럽어족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왔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 이미 유력한 견해였고, 저자는 자기 결과가 아나톨리아어파가 계통상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에 대한 새 증거라고 본다 (DOI: 10.5281/zenodo.21810919, 단일 연구·리포지터리 공개본).
즉 언어학 쪽 근거는 아나톨리아어파가 일찍 갈라졌다는 쪽을 가리키는데, 유전 표본은 그 갈래가 어떻게 그 땅에 갔는지를 아직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2023년, 인도유럽어의 뿌리 연대로 약 8,120년 전이라는 값이 나왔다. 낱말로 그린 나무 쪽에서도 답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2023년 한 연구팀이 인도유럽어 기초 어휘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만들었다. 어떤 낱말끼리 같은 뿌리인지 판정하는 과거의 불일치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고, 여기에 옛 언어를 나무의 조상 자리에 직접 넣을 수 있는 분석을 적용했다. 나온 뿌리 연대는 약 8,120년 전이었다 (PMID 37499002).
저자들은 이 숫자가 무엇과 맞고 무엇과 안 맞는지를 직접 적었다. "이 연대는 초원 가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곧바로 덧붙였다 — 카프카스 남쪽에 최초의 고향이 있고 거기서 한 갈래가 북쪽 초원으로 올라갔다가 유럽으로 퍼진 그림은 배제하지 않는다 (PMID 37499002). 저자들은 이 혼합 모형이 초원과 비옥한 초승달 지대 북부에서 나온 고대 DNA 증거와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종류의 도구가 반대 결론을 내기도 한다. 2016년의 한 연구는 두 가지 연대측정 기법을 비교한 끝에, 그중 하나가 내는 연대는 초원 가설과 양립한다고 보고했다 (DOI: 10.15496/publikation-13136).
왜 갈릴까. 한 가지 기전이 밝혀져 있다. 계통 분석은 언어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변한다고 가정하는데, 실제로는 이웃한 언어끼리 낱말을 빌린다. 이 차용을 무시하면 나무의 높이, 변화 속도, 나무의 모양 자체에 체계적인 오차가 생긴다 (DOI: 10.1057/s41599-022-01211-7).
이 연구팀은 차용을 모형 안에 넣은 방법을 만들어 인도유럽어 일부에 적용했고, 알려진 접촉 사건과 알려진 차용어를 복원해 냈다. 그리고 이 모형이 복원한 나무 높이가 잘 확인된 추정치에 유의하게 더 가까웠다고 보고했다 (DOI: 10.1057/s41599-022-01211-7). 연대가 갈리는 이유의 적어도 일부는 데이터가 아니라 모형이 무엇을 가정하느냐에 있다는 뜻이다.
나무의 모양 자체도 논쟁 중이다. 13개 하위 갈래의 110개 기초 낱말 목록으로 계통을 다시 그린 2021년 연구는, 「내부 인도유럽어」라 불리는 하위 집합이 기원전 3357~2162년 사이에 네 갈래로 거의 동시에 갈라졌다고 보고했다 — 그리스·아르메니아, 알바니아, 이탈리아·게르만·켈트, 발토슬라브·인도이란이다 (DOI: 10.1515/ling-2020-0060). 이 연대는 초원 쪽 시점에 가깝다.
여기서 반드시 갈라 둘 것이 있다. 앞 절의 "기원전 4000년경"은 얌나야라는 사람 집단이 유전적으로 형성된 시점이고, 이 절의 "약 8,120년 전"이나 "기원전 3357~2162년"은 언어가 갈라진 시점의 추정이다. 두 시계는 서로 다른 것을 재고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검증해 주지 않는다.
2019년 한 고고학자는 고대 DNA가 기원전 3천년기 동유럽에서 중앙유럽으로의 뚜렷한 유전자 유입을 시사한 이후 "닫힌 인구 집단의 대규모 이주라는 낡고 단순한 서사가 고고학 논의에 다시 등장했다"고 적었다 (DOI: 10.1017/ppr.2019.4).
그의 재분석이 흥미롭다. 중앙유럽 기원전 3천년기의 물질 자료를 문화 라벨이 아니라 속성별로 다시 분류하자, 기존 라벨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단독 매장 의례 복합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논증한다. 그리고 유전적 초원 조상 성분은 새끼줄무늬 토기나 종 모양 잔이라는 물질 문화가 아니라 이 매장 방식 쪽에 주로 연결됐다 (DOI: 10.1017/ppr.2019.4).
같은 방향의 사례가 더 있다. 모라비아 지역의 토기와 뗀석기를 들여다본 연구는, 대규모 이주로 퍼진 균질한 고고학 문화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겹쳐 있는 국지적 변화들의 연속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였다 (DOI: 10.15184/aqy.2020.151).
가장 깔끔한 반례는 유전학 쪽에서 나왔다. 신석기 구형암포라 문화 사람들의 핵 유전체 6명분(개인당 597,573개 자리)과 미토콘드리아 11개를 읽은 연구다. 이 문화는 고고학 기록에서 동쪽과의 친연성을 보여 초원 이주와 연결될 후보로 여겨졌는데, 유전체는 초원 이주와 관련된 어떤 집단보다도 앞선 신석기 집단들에 더 가까웠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렇다 — 고고학 기록에 나타난 동쪽 친연성은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동쪽 다른 집단들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을 반영한다 (PMID 29167359).
같은 논문은 자기 결과가 후기 신석기에 초원에서 중앙유럽으로 유전자가 흘러들었다는 모형과 모순되지는 않는다고 명시했다. 뒤집는 것이 아니라 결을 더한다는 것이다 (PMID 29167359).
이주의 성격에 관해서도 다른 그림이 나온다. 공간을 명시적으로 넣은 시뮬레이션 연구는 여러 시나리오를 견준 끝에, 자료가 목축민과 농경민의 직접 경쟁보다는 제한된 유전자 흐름을 동반한 공존을 지지한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최초 접촉 이후 양쪽 인구가 모두 감소하는 국면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PMID 34621003, 시뮬레이션 연구).
접촉의 시점도 앞당겨졌다. 남동유럽과 북서 흑해 지역의 고대인 135명을 읽은 연구는 기원전 4500년경부터 이 지역 집단들이 구리를 쓰던 시기의 집단과 삼림·초원 지대 집단의 조상 성분을 섞어 갖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예상보다 약 1,000년 이른 접촉이다 (PMID 37468624). 그보다 앞서 남동유럽 고대인 225명을 읽은 연구도, 초원 집단과의 간헐적 유전 접촉이 북유럽 인구를 크게 바꾼 대규모 이주보다 최대 2,000년 먼저 있었다고 적었다 (PMID 29466330).
즉 기원전 3300년의 확장은 아무 일 없던 곳에 갑자기 들이닥친 사건이 아니라, 천 년 넘게 이어진 접촉의 끝에 있었다.
초원 가설이 대중에게 전해질 때 거의 항상 따라붙는 그림이 있다. 말을 탄 초원 사람들이 유럽으로 밀려들어 왔다는 그림이다.
2021년, 고대 말 유전체 273개를 읽은 연구가 현대 집말의 고향을 서유라시아 초원, 특히 볼가강 하류와 돈강 지역으로 짚었다. 여기까지는 초원 가설에 유리하다.
문제는 시점이다. 이 계통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급속히 퍼지면서 다른 지역 말들을 거의 다 대체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였고, 그 확산은 바퀴살 달린 전차를 포함한 기마 관련 물질문화와 동시였다 (PMID 34671162). 얌나야가 유럽으로 확장한 기원전 3000년경보다 천 년 뒤다.
저자들의 문장은 단호하다 — 우리 결과는 기원전 3000년경 얌나야 초원 목축민의 대규모 유럽 확장이 승마에 의해 추동되어 인도유럽어를 퍼뜨렸다는 통념적 연결을 기각한다 (PMID 34671162). 같은 논문은 아시아 쪽은 사정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쪽에서는 인도이란어와 전차와 말이 함께 퍼졌다는 것이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같은 해에 나왔다. 서유라시아 초원 사람들의 치아에 굳은 치석에서 단백질을 검출한 연구는, 청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유제품 소비가 급격히 보편화됐다고 보고했다. 말 젖 단백질도 검출됐고, 저자들은 이것이 초기 청동기에 이미 말이 가축화돼 있었음을 가리킨다고 봤다. 결론은 이차 축산물의 새로운 이용이 초원 확장의 핵심 동인이었다는 견해를 강하게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PMID 34526723).
두 연구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아니다. 앞의 연구가 잰 것은 현대 집말로 이어지는 계통이 언제 퍼졌는가이고, 뒤의 연구가 잰 것은 초원 사람들의 치석에 말 젖 단백질이 있었는가다. 다만 "말 탄 전사가 유럽을 휩쓸었다"는 그림에 관해서는, 앞의 연구가 그 연대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확정된 것.
기원전 3천년기에 흑해 북쪽 초원에서 유래한 조상 성분이 유럽 여러 지역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한 연구의 결론이 아니라 영국·이베리아·아일랜드·프랑스·덴마크·스칸디나비아·폴란드의 서로 다른 표본이 각각 확인한 것이다. 다만 들어온 정도는 지역마다 크게 다르고, 라인·뫼즈 저지대처럼 토기는 받아들이고 사람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곳도 있다.
그 성분의 출처인 얌나야 집단이 언제 어디서 형성됐는지도 2015년보다 좁혀졌다. 435명 표본과 81명 표본이 기원전 4000년경, 흑해 북쪽의 강 유역을 가리켰다. 다만 이 둘은 한 줄기의 자매 연구라, 앞 항목만큼 여러 줄기가 받치고 있지는 않다.
중앙유럽으로 들어간 이 이주는 성별로 크게 치우쳐 있었고, 한 세대의 한 번짜리 사건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졌다. 다만 치우침의 정도를 수치로 준 것은 인골 36구를 쓴 단일 연구이고, 치우침의 정도는 문화 집단마다 달랐다. 치우침의 방향 자체는 이베리아의 Y염색체 교체율, 폴란드 남동부의 부계·모계 대비, 공개 유전체 재분석이 각각 같은 쪽을 가리켰다.
아직 아닌 것.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직접 관측되지 않았고, 지금도 관측되지 않는다. 이 글이 인용한 유전학 논문 중 언어를 측정한 논문은 없다. 그리고 철기시대 이베리아에서 초원 조상 성분은 인도유럽어를 쓰지 않는 지역에도 퍼져 있었다.
아나톨리아어파를 포함하는 더 큰 어족의 고향으로 제안된 위치는 2022년의 서아시아에서 2025년의 카프카스·볼가하류로 옮겨 갔다. 두 제안 모두 아직 제안이다.
조어의 뿌리 연대는 방법에 따라 약 6,000년 전에서 9,500년 전 사이에서 갈린다. 그리고 이 연대는 얌나야 집단의 형성 연대와 같은 것을 재는 시계가 아니다.
아나톨리아어파가 어떻게 그 땅에 갔는지는 여전히 비어 있다. 언어학 쪽은 이 갈래가 일찍 갈라졌다는 쪽을 가리키는데, 히타이트어가 쓰이던 시기의 아나톨리아에서는 얌나야 조상 성분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주의 사회적 성격도 미결이다. 같은 종류의 자료에서 대규모 인구 교체 모형과 제한된 유전자 흐름을 동반한 공존 모형이 둘 다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의 방향을 한 번 뒤집어 보는 결과가 있다.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 이후 4,000년을 다룬 연구가 고대인 137명의 유전체를 읽었다. 철기시대에 이 초원을 지배한 집단들은 후기 청동기 목축민, 유럽 농경민, 남시베리아 수렵채집민이 섞인 고도로 구조화된 집단이었고, 그 뒤 동쪽 유목민과의 혼합과 중세의 여러 이동을 거치며 이 지역은 주로 서유라시아 조상을 가진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의 땅에서 주로 동아시아 조상을 가진 튀르크어 사용자들의 땅으로 바뀌었다 (PMID 29743675).
인도유럽어의 고향으로 지목된 바로 그 땅이 나중에 인도유럽어를 잃었다. 조상 성분과 언어가 같이 바뀐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 땅의 언어가 영구적인 속성이 아님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 글이 지나온 자리에서 사람의 이동과 말의 확산이 어긋난 장면이 세 번 있었다. 철기시대 이베리아에서는 초원 조상 성분이 인도유럽어를 쓰지 않는 지역에도 있었다. 라인·뫼즈 저지대에서는 새끼줄무늬 토기가 건너왔는데 사람은 거의 건너오지 않았다. 구형암포라 문화에서는 동쪽과의 친연성이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문화적 영향이었다.
두 세기 동안 이 질문이 정치와 인종과 민족주의의 의제에 이끌려 왔다는 지적 (DOI: 10.1093/0195137779.001.0001) 앞에서, 위의 세 장면은 경고문보다 쓸모가 있다. 조상 성분은 언어의 신분증이 아니고, 토기는 사람의 대리물이 아니며, 고고학 문화의 이름은 민족의 이름이 아니다. 이 세 문장은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위에서 본 자료가 실제로 보여 준 것이다.
고대 DNA가 지난 10년 동안 답한 질문은 누가 어디서 어디로 갔는가였고, 그 답은 꽤 정밀해졌다. 답하지 않은 질문은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의 자료로는 답할 수 없고, 그래서 인도유럽어의 고향은 아직 열려 있다.
표본 크기·연구 종류·프리프린트 여부는 본문에서 그때마다 표시했다.